집 떠난 뒤 맑음 - 하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너 그럼 그 아가씨의....?"

"네. 사촌 동생이에요." (p87)


모르는 사람이 봐도 어떤 느낌은 오는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동아시아인이니 말입니다.


비록 소설이지만 아직 나이 어린, 더군다나 여성 두 명에서 미국 땅을 이처럼 정처없이(?) 돌아다닌다는 게 독지 입장에서 위험천만하다는 느낌, 그리고 조마조마한 마음을 거둘 수 없습니다. 에쿠니 가오리 소설인데도 이건 무슨 마치 스릴러를 읽는 것만 같습니다. 물론 큰 사고 같은 게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정도는 압니다. 하지만 독자가 걱정되는 건 주인공 그녀들의 "감정, 정서, 영혼, 마음" 같은 것입니다.


방금 전 올림픽 경기를 보면서 어떤 이가 "사람 몸은 아주 강인하여 위기에서도 잘 살아남는 듯하지만,죽으려면 한순간"이라고 하는 걸 들었습니다. 몸뿐 아니라 마음, 영혼도 마찬가지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악한 이가 어디 있겠습니까? 살아가면서 나쁜 본을 보게 되고, 혹은 나쁜 사람한테 큰 상처를 입고, 그 자신도 똑같은 사람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여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성 특유의 선한 마음으로 제법 커서까지 좋은 심성을 간직하지만, 우연히 나쁜 인간을 만나 한순간에 악귀로 변하곤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룻밤 사이에 이렇게 쌓이는 건가?(p91)"


이츠카가 이렇게 말할 때는 약간 남자 같아서 당혹스럽기도 합니다. 아니면, 이츠카는 한 번도 열도의 북국(?)을 못 가 봐서 그 엄청난 적설량과 추위를 경험 못 해 본 걸까요? 


맡은 일이 바빠서인지, 아니면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브라이언은 우리 선입견과는 달리 말썽을 부리거나 그럴 것 같은 손님을 "Sir, ma'am" 호칭 등을 써 가며 부랴부랴 쫓아냅니다. 말은 정중하게 행동은 과감하게! ㅋ 어떻게 보면 브라이언 다운 행동이고 말씨라서 웃음이 지어집니다. 이런 생생한 인물 묘사는 아마도 작가 에쿠니 상이 실제로 미국에서 겪어 본 바 누군가를 모델로 삼아서가 아니겠습니까? 모르긴 해도 작가가 이 모델(...)을 실제로 보았을 때의 느낌이 지면을 통해 전해지는 것만 같습니다.


"헤이, 당신들이 일본에서 온 손님이로군. 리틀록을 즐겨요.(p230)"


"리틀록에 온 것을 환영한다" 같은 의례적인 인사말보다 "즐기라"고 하는 말투에 눈길이 갑니다. 리틀록은 한때 인종차별 관련 큰 사고가 일어난 곳이기도 하고, 가장 진보 성향의 대통령이었던 빌 클린턴의 출생지이기도 하죠. 


p278에서 오렌지남은 리틀록이 어땠냐고 묻습니다. 이때 레이나의 대답이 재미있습니다 ."최고였어요." 과거형을 썼다는 게 씁쓸한 기분이라고 하네요. 어딘가를 곧 떠나야 할 때는 그곳이 어디라도 아쉽습니다. 


p303에는 재미있는 묘사가 있습니다. 남자아이가 호텔로 데려왔는데 살찐 여성이 머리를 묶은 고무줄이 헬로키티라는 것입니다! 뭐 글로벌 캐릭터이니 그러려니 하면 되는데 구태여 놀라는 이츠카가 재미있습니다. 


p334에서 이츠카는 다시 과거형을 씁니다. "있었지"라고요. 이제 이 긴 여정이 서서히 마무리되어간다는 뜻도 되겠습니다.


아이올라이트를 손에 쥐고 둘은 "돌아옵니다". 길다면 물론 길었지만, 사실 그리 길지도 않은 여정이었습니다. 그래도 우리 독자들은 함께 지치고, 함께 뿌듯해하고, 함께 맛있었고, 함께 눈물 지었으며, 또 함께 많은 친구들(나이를 떠나)을 사귀었습니다. 다시 제목을 봅니다. "집 떠난 뒤 맑음". 내 마음의 날씨는 과연 어떨까요? 여태 안 겪어 본 많은 사람, 많은 고장, 또 많은 이별을 겪은 후에 말입니다. 여행은 확실히 많은 사람들의 마음의 키를 키워 주는 듯합니다. 눈으로 그들의 여행을 따라가보기만 한 경우에도 어쩌면.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집 떠난 뒤 맑음 - 상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래서 딸 키우기가 그렇게 겁이 나나 봅니다. 보통 아들 키우기를 엄마들이 더 버거워하고, 딸 걱정은 아빠들이 더 자주 합니다. 일본이나 한국처럼 기본적인 치안은 안정된 나라에서도 아이가 갑자기 사라지거나 그저 잠시 밖에만 나가도 부모들이 걱정스러워하는데, 그것도 미국에서 무작정 가출이라면 얼마나 걱정들이 되시겠습니까.


이런 도입부는 예전 영화 <굿바이 마이 프렌드(원제: The Cure)>가 생각이 나기도 했습니다. 그 영화에서는 몸이 아픈 아이 하나, 그 아이보다는 키가 크고 건강해 보이는 아이 하나(둘은 혈연 사이는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위험천만한 환경으로 "치료약을 찾아" 가출하는 이야기인데 물론 곳곳에 위험한 요소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위험한 건 "사람"이었죠. "악의를 품은 사람".


사촌 사이라는 게 묘합니다. 아주 형제처럼 친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이른바 sibling rivalry라고 해서 뿌리 깊은 적대감이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물론 의 좋은 형제들도 많죠)... 어찌 보면 간만에 보는 사이라서 더 반갑고 살갑게 느껴질 수도 있고, 반대로 남보다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 소설에서 레이나와 이츠카는 독자인 제 생각에 너무 서먹하지도 않고 너무 친하지도 않고 딱 동양에서 보기 쉬운 적절한 친족 관계입니다. 


"모두 좋은 사람들이었어(p91)"


그렇죠. 좋은 사람 옆에 항상 좋은 사람이 끼기 마련입니다. 널 처음 만났을 때 이러이러했다면서 좋은 느낌과 설레는 기억을 항상 떠올려 줄 수 있는(지겹지 않은 범위 안에서) 사람이 곁에 있는 건, 또 원할 때 옆에서 떠올려 줄 수 있다는 건 행복합니다. "뱅!"하고 처음 만났을 때의 그 느낌. 우리는 삶이 힘들어도 이런 추억으로부터 다시 힘을 얻고 또 평생을 버텨 나갈 활기를 얻습니다. 


"재미가 없었다고 해야 하나. 보통이었어(p167)."


그렇죠. 이츠카가 이렇게 대답하자 크리스는 씩 웃습니다. 그 느낌 안다는 듯이 말입니다. 이처럼 마음이 통하는 친구끼리는 말없이 짓는 미소만으로 모든 소통이 됩니다. 


"Shameful(p219)."


왜 할머니들은, 자신이 남에게 피해를 입은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들 앞에서의 체면을 먼저 떠올리거나, 아예 자신의 탓을 하는 걸까요. 속상합니다. 이츠카는 다만 지금 레이나를 먼저 찾아보는 게 급해서 더 이상 못 머뭅니다. 다리도 짧고 우스운 닥스훈트 녀석은 대체 어디로 간 건지.


이후 미즈 패터슨과는 병구완을 하면서 더 친해집니다. 그리고 구르망... 언제나 이츠카가 신경 써 주어야 하는 아이... 곧 이 곳에는 패터슨 부인의 친손녀인 어느 뮤지션이 그녀의 남자친구와 함께 도착한다고 합니다. 느낌이 그리 좋지는 않습니다. 


실로 파란만장한 두 사촌의 모험 아닌 모험은 과연 어떤 방향을 틀지. 환경보다는 마주치는 사람이 문제라는 생각, 지울 수 없습니다. (하권 서평에 이어짐)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8월의 태양
마윤제 지음 / 특별한서재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독자인 저는 개인적으로 동해 하면 뭔가 약간 흥겨우면서도 상업적인, 금단의 무엇인가가 자리한 고장으로 여겨집니다. 아마도 고교 수학 여행 당시, 친구들이 그곳에 대해 퍼뜨린("몇 발짝만 나가면 무엇인가가 있는") 잡담 속의 불측한 이미지 때문인 듯합니다. 고교생 아이들이 세상에 대해 뭘 알까 싶고, 물론 그런 이미지는 실상과는 거의 무관한, 철없는 아이들이 제 멋대로 지어낸 허상과 과장에 불과합니다. 이성적으로는 이리 여기고 한 점의 의혹도 없는데, 사람의 감성이란 또 별개의 영역으로 자라는 듯합니다. 막상 이 장편 소설을 펴 보니 또 그때의 이미지가 작중 주인공들의 사연과 얽혀 묘한 감성을 불러일으키니 말입니다. 더군다나 이 소설은 다섯 청춘 남녀의 사연을 담았습니다. 그러니 예전 저의 수학 여행 당시, (아마 저보다는 한참 나이가 많았겠지만 여튼) 비슷한 또래의 시간을 보냈을 젊은 영혼들의 사연이라는 게 더 궁금해지는 거죠. 


요즘은 국제협약이라는 게 있어서 함부로 고래잡이를 할 수 없습니다(그러나 일본이 최근 그 협약을 깨려는 움직임을 보이죠..). 강주는 물론 가상의 도시입니다만 1980년대 고래잡이라면 아마 나이 좀 드신 분들이라면 대번에 어느어느 고장이 떠오를 것입니다. 


"사람의 성장은 어느 한 사건으로만 이뤄지는 게 아니다." 어촌에는 언제나, 고기잡이(물론 엄청 큰 포유동물인 고래이지만)를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아버지의 사연이 항상 있습니다. 고려, 조선 이래 우리 나라는 풍족하게 농업을 일구며 산 적이 없습니다. 인구는 많지만 산지 위주의 지형 때문에 산물이 넉넉하지를 못했죠. 삼면이 바다인데 왜 어업에 다들 종사하지 않았을까? 답은 이처럼, 농사에 비해 어업이라는 게 예측 불허의 바다라는 터전에서 일을 해야 하는 위험이 따릅니다. 또 어업권이라는 게 텃세가 없지 않죠.


드라마 <스파르타쿠스>를 보면 빚을 지고 자진하여 검투사 노릇을 하는 가장이 있습니다. 돈을 보내 주기는 하나 너무 적은 나머지 그 부인은 다른 일을 하다 외간남자에게 몸을 빼앗기고 아이를 배는 사고를 당합니다. 어디까지나 사고였으며 외도 같은 건 아니었습니다만, 남편 입장에서 가슴이 찢어지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어린 동찬은 살인범 강태호에게 어머니를 "빼앗기지만" 달리 대향할 방법이 없습니다. 여튼 이런 과정을 통해 그는 남자로서 성장합니다. 그 영혼에 새겨지는 생채기가 얼마나 깊고 독한 것인가와는 무관하게 말입니다. 


시골 어촌이라고 뛰어난 두뇌가 없겠습니까? 오상윤이가 바로 그런 아이이며, 오히려 큰 인물은 이런 나쁜 환경에서 더 독하게 마음을 먹고 성취 동기를 키웁니다. 친구이기는 하지만 처한 환경이 다 다른데 생각도 달리 가질 수밖에 없고, 얼굴이 엉망이 된 동찬은 상윤이한테 속 편한 소리를 듣습니다. "폭력적인 운동은 문명 세계에서 다 퇴출시켜야 해.(p118)" 그러면서 하는 말이 스포츠도 바둑이나 체스 처럼 두뇌를 쓰는 거만 남겨야 한다는 겁니다. 이거는 시대 배경을 좀 살펴야 합니다. 1980년대에 최고 인기 스포츠는 격투기 관련 종목들이었습니다. 복싱 세계 타이틀전이 열리면 지상파에서 생중계를 했으며 승자는 그날로 국민 영웅이 되고 돈방석에 앉았죠. 물론 바둑도 조훈현, 서봉수, 이창호 같은 스타가 있었으나 아직 올림픽, 아시안게임 등 국제대회 종목은 아니었고(응씨배 등 거액의 상금이 걸린 단일 대회는 있었다고 하죠)... 근데 과연 상윤이 같은 생각을 하는 이들이 많았는지 (상윤이 지금이라면 노년의 연령에 접어들었을) 한국에서 지금 복싱의 인기는 안타깝게도 완전 바닥입니다.


"9월 동진호는 세 마리의 밍크고래를 포획했다.(p210)" 이 대목은 독자 입장에서 마음이 뿌듯해집니다. 마치 내가 어떤 수확을 거둔 것처럼요. 허먼 멜빌의 <모비 딕>을 보면 에이허브 선장의 그 집요함에 전율이 느껴지듯, 동찬도 무슨 품은 한이 그리 큰지 내뱉는 말을 보면 살벌합니다. 영미문학의 진가가 그 복잡하기 짝이 없는 뱃사람 어휘를 풍부하게 구사하는 묘미에 있다고 하듯, 이 장편에도 같은 한국 사람인 우리가 들어본 적도 없는 희한한 말이 다 나옵니다. 무대가 바다라는 게 실감납니다. 


"나와 붙어 보자. 돼지xx, 자신 없냐?"


무모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류재열은 강한 상대입니다. 이제 "아버지" 없이, 동찬은 그 거친 주먹을 견딜 수 있을까요? 류재열은 그저 개인이 아닙니다. 강주라는 거친 도시, 비열한 거리를 상징하는 주먹입니다. 


사람은 결국 혼자 살아야 합니다. 부모님도 결국은 내 곁을 떠납니다. 어른이 되면 배우자 한 사람을 곁에 두고 자녀도 두어야 하며, 그때부터 헤쳐나가는 삶에는 저런 류재열이 계속해서 밀려들어옵니다. 삶은 누가 대신 싸워 주지 않습니다. 거친 바다도 바다이지만, 이곳 강주 역시 끝까지 내 편이 되어 줄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곁의 윤주를 지켜 주기 위해서라도 나는 강해져야 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내들
태린 피셔 지음, 서나연 옮김 / 미래와사람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영화 <월요일이 사라졌다>를 보면 똑같은 외모를 한 여인들이 각각 요일 이름을 달고 나옵니다. 이 소설에서도 자칭 목요일, 월요일, 화요일이라는 여성 셋이 나옵니다. 정확하게는 목요일 여성만 자신에게, 또 다른 두 명의 여인들에게 그런 이름을 붙이는 건데요...물론 그 영화에서처럼 암울한 미래를 배경으로 한 디스토피아 상황은 전혀 아니구요. 그저 지극히 평범한, 우리 시대의 세팅입니다. 


그렇다고는 하나 주인공 여성은 불편하고 불안합니다. 믿었던 남성이 몰래 두 명의 정부를 두어서인가.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 부분은 자신이 미리 양해했던 부분이기도 합니다. 사정이 그러함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녀는 그에게 먼저 연락을 취했고, 당초 기대하지 않았던 남자는 고맙게 받아들입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그녀의 어머니도 그렇게 여기지만 여튼 딸의 선택을 인정합니다.


소설 본문 역주에도 나오지만 모르몬 교도는 창교 당시 일부다처제를 교의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미국 법과 영국 법, 상당수 유럽법은 중혼을 범죄로 취급하죠. 범죄로 취급하지 않는다 해도 세상 어떤 여인이 다른 여자들과 남편을 공유하길 바랄 리 없습니다. 생각만 해도 역겹습니다.


이 소설에서 참 흥미로운 대목은, 여인이 다른 여인들(남편이 요일 따라 찾는 여인, 또 전처 등)을 몰래 탐색하는 부분입니다. "이 여자한테서 내 남자가 무엇을 기대하고 바라봤을까?" 확실히, 각각의 여인들은 어떤 미덕이라는 걸 표상합니다. 아주 약하게 표상하는 여인도 있고, 그렇지 않아서 거의 모든 남자들이 그 여자한테서 그 미덕(우아함, 섹시함, 정숙함, 이지적임, 강인함, 푸근함, 착함 등등)만을 바로 캐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바람둥이는 "어떤 여자라도 그녀만의 매력이 있기에 소중하다"고 했는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어떤 여인에게서도 그녀만의 장점을 보고 그 장점을 찬양하고 끄집어냅니다. 여성을 잘 유혹하는 비결이 거기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제가 재미있게 본 건, 이 여인이 워낙 해당 남성에게 몰입해서인지, 용케도 그의 시선으로 그 여인들을 관찰할 줄 안다는 겁니다. 남자의 시선으로 여성을 본다는 건, 논자에 따라 그만큼 해당 여성이 남성에 종속적이어서 그렇다고 비판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달리 말하면, 그게 다 그 여성이 해당 남성의 심리 동선을 꿰뚫어서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남녀 관계에서 가장 끔찍한 건 "폭력"입니다. 남성과 남성 사이라면, 폭력이 어떤 갈등을 매조지하는 (가장 야만적인) 한 방법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남녀 사이라면 대개 신체적 우월, 강약이 정해져 있습니다. 더군다나 부부, 혹은 연인 관계라면 원칙적으로 가장 내밀하고 사적인 소통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이런 데에 폭력이 한번 개입하기 시작하면 관계는 치명적으로 다칩니다. 더욱 기가 찬 건, 많은 경우 여성들이 상대 남성에게 이미 의존 관계를 맺은 후라서 쉽사리 종료도 안 된다는 점입니다.


우리의 목요일 여사는 과연, 나쁜 버릇을 지닌(독자인 제 생각으로는 구제불능으로 보이는) 세스를 단호히 끊어낼 수 있을까요? 책 뒤에는 흥미롭게도 독자가 더 생각해 볼 문제, 그리고 작가와의 질의, 응답까지 실어 놓았습니다. 출판사와 편집인의 기발한 아이디어 같기도 하고, 그만큼 이 문제가 심각하다는 걸 독자에게 강조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국어가 쉬워지는 초등 맞춤법 사전 교과서가 쉬워지는 시리즈
이미선 지음, 권석란 그림 / 미래주니어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과연 초등학교 맞춤법에 대해 우리 어른들은 얼마나 잘 알까요? 아이들 앞에서 목에 힘 주고 뭘 가르치려면, 가르치는 본인부터가 지식을 제대로 갖춰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이들이 잘 틀리는 건 아직 활자로 된 텍스트를 많이 접하지 않아서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어른들은, 나이를 먹고도 책을 많이 안 읽어서 표기법 자체에 서투르거나, 예전식 책을 읽던 습관이 남아서일 가능성이 큽니다. 제 생각에 아이들한테도 편집이 예쁘고 핵심만 잘 짚은 교재를 골라 학습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어른들이 잘 틀리곤 하는 맞춤법 사례"를 잘 정리한 교재로 공부하게 해서, 이러이러한 건 어렸을 때부터 배워서 안 틀리게 하는 습관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또 커서 한국어 능력 시험 같은 스펙, 자격 요건을 채우게 하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학교 내신, 중간/기말고사 대비는 말할 것도 없고 말입니다.

일찍이(O), 일찌기(X) 어른들이 이걸 잘 틀리는 이유는 예전에 이런 맞춤법이 실제로 통했기 때문입니다. "일찍이"는 누가 생각해도 형태소 분석이 "일찍+이"로 되기 때문에 발음대로 적을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1989년 개정 때에도 이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이렇게 바꾼 거죠. 제 생각에는 지금 초등학생들은 이렇게 틀리는 경우가 극히 적을 듯합니다. "일찌기"란 표기를 본 적이 없으니, 정말로 소리나는 대로만 적는, 다소 학습 능력이 부족하거나 한글 감각이 서투른 아이가 아니라면 말입니다.

역할(O), 역활(X) 이 역시, 후자는 아예 없는 말이고 나이 든 층에서만 저런 실수를 합니다. 이는 발음의 착오일 수도 있고, 활동(活動)하고 헷갈려서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이는 "역할"이 일종의 사회과학용어이며 한자에 분명히 그렇게 옮긴 의도가 들어있다고 절대 후자로 쓰면 안 된다고까지 말합니다.

p114에 천정(X), 천장(O)이 나오는데 원래는 천정에서 유래했다고 책에도 친절하게 나옵니다. 이제는 사람들이 많이 쓰는 게 후자가 되었으므로 이렇게 정했고, 다만 지구과학 용어 중에 전자가 있기는 합니다.

뒤치다꺼리(O), 뒤치닥거리(X). 책에서는 어원 설명이 있습니다. 원래 "치다꺼리"라는 말이 있었고, 그 앞에 "뒤"가 붙은 것이라고 합니다. 발음은 쌍기역으로 나는데 "거리"를 왠지 살리고 싶으니 뒤치닥거리라는 말이 오래 통한 거겠죠?

p32에는 "나래"와 "날개"가 둘 다 맞다고 나옵니다. 과거에는 전자를 사투리로 여겨 시(詩) 등에서만 쓸 수 있었으나 지금은 모두 표준어로 인정된다고 아주 친절하게 설명합니다.

p55에는 "며칠"이 맞고 "몇 일"이 틀렸다고 합니다. 여기서 눈에 띄는 건, 이 책은 단어를 제시할 때 원고지 칸 안에 표제어(틀린 것이건 맞은 것이건)를 넣습니다. 그러니 띄어쓰기까지 정확히 배울 수 있는 겁니다.

p186에는 지향과 지양의 서로 다른 뜻에 대해 설명합니다.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한번 정리할 필요가 있죠.

p86에는 안성맞춤과 안성마춤이 나옵니다. 이상하게도 과거에는 후자가 제법 많이 쓰였습니다. 맞춤은 분명히 동사 "맞추다"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니 "마춤"으로 할 이유가 없는데, 아마 안성맞품의 경우에는 개별적으로 그리 쓴다고 착각한 듯합니다.

안쓰럽다 vs 안스럽다 도 많이 틀리는 경우일까요? "스럽다"라는 접사형이 워낙 많이 쓰이니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책에는 "윗사람한테는 쓰지 않고, 안타깝다라는 표현을 쓰면 돼요"라고 친절히 일러 줍니다. 이런 점이 좋은 것 같습니다. 이건 맞춤법은 아니고 존비법 이슈입니다만 초등학생들이 함께 배우면 좋지 않겠습니까.

p178에는 익다 vs 읽다가 나옵니다. 이걸 헷갈리는 경우는 진짜 없을 텐데, 그래도 책에서 이걸 제시한 건 이유가 있겠습니다. 뜻은 전혀 다르고, 쓰는 경우도 확연히 구별되지만, 이게 발음이 같아질 때가 있죠. "읽다"의 발음이 "익따"라는 걸 배우기 위해서라도 이 설명은 주의 깊게 읽을 가치가 있습니다.

p65의 "벼라별"은 하도 이렇게 발음하는 경우가 많으니, 어원이 별의별이라도 이미 이렇게 바뀌지 않았을까 착각하지만, 몇십 년 뒤 그리 바뀔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아직은 "별의별"이 맞고 책에서도 이 점을 환기합니다.

p196에는 띄어쓰기 오류를 지적해 주는데 가량 앞에는 띄어쓰는 게 맞으니 붙여쓰지 말라고 합니다. 이유는 "가량"이 의존명서라서인데, 책에는 초등학생용이니 그런 말은 없습니다만 여튼 띄어쓰기가 꽤 어려운데 이런 점 지적해 주는 게 좋은 것 같습니다. 띄어쓰기는 이 책의 제3장(pp.196~241)에서 집중적으로 다룹니다.

p238에 보면 "공부 하다"와 "공부하다" 중 어느 것이 맞겠는지를 묻습니다. 공부, 로그인, 줄다리기 등은 동작성이 있으므로 붙여쓰고, "친구 하다"는 친구 부분에 동작성이 없으므로 띄우라고 합니다. 참 명쾌한 설명입니다.

이 책은 1~3장에서 이른바 정서법에 대해 잘 가르쳐 주지만, 제 생각에 이 책의 아주 보석처럼 빛나는 부분은 제4장입니다. 듣기만 해도 예쁘고 상쾌해지고 귀여운 우리말들을, 예문과 함께 가르쳐 줍니다.

부록에는 틀리기 쉬운 외래어, 문장부호의 정확한 쓰임이 나옵니다. 그리고 색인이 있는데, 기껏 잘 공부해 놓고 나중에 헷갈리면 그 표제어, 사항만 갖고도 바로 본문의 해당 설명을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게 안 되면 공부하는 사람 입장에서 답답해 미치는데, 이 책에는 이게 있어서 좋았네요.

제목은 초등학생용이지만 어른이 읽어도 아무 지장 없습니다. 오히려, 애들보다 어른들이 더 요긴하게 쓰겠다 싶었습니다. 편집도 아이들 책이라서인지 예쁘고 산뜻해서 더 좋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