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에 대한 이론
이하진 지음 / 열림원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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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웹진 LIM에 연재되었던 이하진 작가님의 장편입니다. "모든 사람에 대한 이론"은 이 책 표지에 나와 있듯이 "theory for everyone"으로 영역될 수 있으며 또 작가의 의도도 이를 통해 부분적으로 엿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하진 작가님은 물리학 베이스가 갖춰진 분이고 소설을 읽어 보면 우리 독자들도 알 수 있듯 이 제목은 문언상의 의미 외에 다른 암시를 풍기는 구절입니다. 물리학에서 theory of everything이라고 하면,  상대성이론의 주창자 아인슈타인(뿐 아니라 현재까지 그 누구도)이 생전에 접점을 마련 못 했던 앙자이론까지를 모두 포괄하는 이론을 뜻합니다. 2014년 에디 래드메인 주연의 영화 <Theory of everything>도 생각이 났습니다. 이 소설의 제목은 everything이 아니라 everyone이란 단어가 쓰였으며, 전치사도 of("대한")가 아니라 for("위한")라서, 작품의 주제에 걸맞게 뭔가 포근하고 따스한 느낌을 줍니다. 

재능이 축복이 아니라 저주일 수 있다는 건 당사자뿐 아니라 주변의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당혹감을 안깁니다. 이 소설에서 이능력(異能力)은, 그 정체를 모르지만 뭔가 기분나쁘고 예측 불허의 부작용이 염려되며 원하지 않는 이들에게 감염까지 될 수 있는 일종의 병으로까지 여겨집니다. 반갑다기보다 기분 나쁘니까 이능력, absurd force라는 모호한 이름만 붙었으며 몇 가지 현상들만 기술, 보고될 뿐입니다. 자연계에는 지금까지 4개의 힘이 학자들이 알려졌는데, 이 이능력이란 건 다섯 번째 힘인 셈입니다. 아무도 거스를 수 없는 열역학 제2법칙까지 무너뜨릴 수 있는 이능력이라는데 역사상 이적이 전해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병자 치유라든가 망자의 소생 능력 같은 것도 어쩌면 이것의 일종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이능력을 영구적으로 무효화할 수 있는 이론을 만들고 싶습니다(p46)." 미르 같은 애 입에서도 오로지 대학 입학을 위해 위선적인 말이 줄줄 나올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현행 입시 제도는 확실히 문제가 있습니다(?). 여튼 한 사람, 그 한 사람 외 나머지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미르의 말은 솔직해서 좋습니다. 이력흔과 그것이 암시하는 이능범죄가 만연한 사회의 앞날이 고작 이 어린 미르에게 좌우된다는 게... 

"거 요술 부리는 사람이면 사람 아녀요? 좀 놔줘!(p98)" 영화 엑스맨(마블) 시리즈에서도 뮤턴트들은 각양각색의 방법으로, 말하자면 일종의 이능력자들인데 소수자(p95)라는 이유만으로 멸시와 차별을 받습니다. 그들은 사회로부터 배제되고 타자화되다 못해 일부가 반란을 시도한 건데, 이 소설에서 미르는 그보다 더 입장이 미묘합니다. 미르는 여튼 이능력을 일종의 질병으로 보고 이를 무효화할 방법을 찾겠다고 내세우는 것이고, 영화 엑스맨에서는 입장이 다른 주인공 둘이서 공존이냐 절멸이냐를 놓고 대립합니다. 미르의 입장은 만약 엑스맨의 세계관이라면 제3의 스탠스, 자기 부정인 셈이라서 더 흥미롭습니다. 

p373의 심완선 평론가들도 그 점을 지적하지만 소설 본문 p123에서도 이 이능력이란 걸 absurd라 부르는 대목이 있습니다(정확하게는 명사형 absurdity겠지만). 아델리온(p122)은 이 소설에서만 존재하는 민들레의 이종입니다. 어차피 이능력이라는 것도 이 지구상에서 갑자기 출현한 이현상이다 보니, 그를 해결, 원상복구, 아니 무효화할 단서나 큐어도 지상에서 기어이 발견되기는 한다는 게 참... 병이 있으면 약도 반드시 있다는 말이 맞는 건지(p163에서 이 아델리온은 혈액반응법 시약으로 쓰입니다). "RIMOS에는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가 있습니다(p139)." 직원이라면 누구나라는 뜻이지만 이 소설에서는 "누구나"라는 말이 특별한 뚯으로 들립니다. 

사람이 번호로만 불리는 관행이나 상황은 참 삭막합니다. <벤허>에서 주인공은 갤리선 안에서 그저 41번이라는 죄수번호로 호칭됩니다. p200에서 레이첼 머스크라는 배우 지망생은 그저 1번 사망자로 지칭될 뿐입니다. 우리도 코로나 팬데믹 때 많은 이들이 병으로 죽었으며, 어떤 이들은 백신 부작용으로 허망하게 목숨을 잃기도 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그토록 소중한, 소중했던 사람들이 이처럼 온 세상을 병적인 무엇인가가 휩쓸고 지나가면 그저 하나의 숫자로, 부호로 치환되어 짐짝 같은 취급을 받으니 얼마나 슬픕니까. 능력이란, 재능이란, 사람을 위해 쓰여야 하며 그것의 소유 여부가 사람을 차별하는 표식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 소설에 나오듯 우리 모두는 재능의 보균자이며 다만 발현되고 안 되고의 차이가 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다만, 아무 노력도 않고 남과 같은 대접을 받거나 남을 속이려 들어서는 안 되겠죠?)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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