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에서 자유로워지려면 - 성경에서 찾다! 원치 않는 습관에서 벗어나는 법
마이클 그럽스 지음, 박찬영 옮김 / 샘솟는기쁨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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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은 우리의 심신을 병들게 합니다. 몸도 축나지만 그 과정에서 마음에 드는 병이 더 큰일입니다. 중독을 통해 우리를 유혹하고 망가뜨리는 건 우리 주변에 무척 많습니다. 술, 담배, 도박, 다양한 형태의 성(性) 습관, TV, 모바일 서핑... 중독은 필요 이상으로 이런 것들에 의존하게 되는 건데, 의존을 넘어 나중에는 노예가 되는 게 문제입니다. 우리 인간은 자신의 건전한 심성과 선택, 의지를 통해 인생을 개척하고 일상을 살아갑니다. 중독은 이것을 불가능하게 만드니 인간을 이처럼 타락시키고 비참하게 몰아넣는 것도 또 없을 것입니다.

특히 종교에서는 절제와 금욕을 가르칩니다. 금욕이 지나치게 강조되면 이 역시 정신에 나쁜 영향을 주고 사회에 적응할 수 없게 됩니다만 좋지 못한 욕구를 적정 선에서 다스리게 하는 데에는 종교만큼 바람직한 길이 있기 힘듭니다. 어떤 고등 종교라도 금욕과 절제를 가르치곤 하며 특히 한국의 기독교는 대개 금주 금연을 강하게 권하는 편이죠.

책 추천사를 쓴 분들 중 한 분인 이재기 목사님은 한국 사회의 위기상을 다음과 같이 요약합니다. "알코올 중독, 게임 중독, 스마트폰 중독... 그 어느 때보다도 중독의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며 이는 기독교인이라고 해도 예외가 아니다.(p12)" 오히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종교인들이야말로 중독의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이웃의 모범과 선도자가 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 마이클 그럽스는 침례교 목사님이며 현재 캔사스 소재의 신학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님이기도 합니다. 특히 국가와 사회의 장래를 책임진 젊은이들을 교육하는 직분도 겸하시기에 이 실천적인 과제에 대해 더욱 큰 관심을 기울였을 만합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느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화이니라.(p25)" 로마서 8장의 인용입니다. 사람이 육신과 그 욕구에 집착하면 남는 건 허탈함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강렬하게 특정 욕구를 떠올리고 마침내 실현한다고 해도, 과연 욕구의 충족 후 뿌듯한 느낌이 듭니까? 오히려 회한과 허탈함, 자괴감이 엄습할 것입니다.

이 육(肉)이라는 것은 언젠가는 한 줌의 흙과 재로 화할 뿐입니다. 그러나 영(靈)은 이와는 달리 영원할 수 있으며, 그리스도가 2천 년 전 이 땅에 와서 가르치신바 영원한 생명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육의 유한성과 무상성"을 전제로 삼은 교의입니다. 그리스도의 정신을 본받는다면서 육의 욕구에 굴복한다면 대체 성도가 된 의의가 무엇이겠습니까.

책에서는 한 장(章)이 끝날 때마다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이 벌거벗은 몸이 된다면 어떨 것 같습니까?" 이때 벌거벗은 몸이란 내면까지 완전히 들여다보인다(p33)는 뜻이라고 합니다. 아마 태초의 아담과 이브 역시 처음으로 이를 각성하고 한없는 부끄러움에 휩싸였을 듯합니다. 어리석은 자는 자신이 발가벗은 줄도 모르고 따라서 부끄러움도 모릅니다. 우리는 절대자, 신, 내 마음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존재를 의식함으로써 비로소 도덕적 부끄러움이란 걸 체험할 수 있습니다. 동양에서도 하늘이 알고 땅이 알며 당신과 내가 안다는 이른바 사지(四知)의 고사를 들어 부끄러움을 깨우치는 예가 있었죠.

"이 죄악된 본성은 갈망한다!(p48)" 이 문장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 중 하나는, 갈망이라는 게 죄악된 본성 중 하나라는 것입니다. 너도 갈망하고 나도 갈망하며 죄악된 본성도 갈망하곤 한다는 느슨한 뜻이 아니라, 갈망한다(crave)는 자체가 죄악의 속성이라는 거죠. 우리가 무엇인가에 중독되어 갈망한다면? 우리의 본성은 그 순간 죄악과 동의어가 됩니다. 가뜩이나 아담과 이브의 원죄를 안고 태어난 우리들인데 말입니다.

교활하게도 갈망은 우리 개개인의 특성에 맞추어 침투해 들어옵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성 중독, 어떤 이는 알코올 중독, 게임 중독 하는 식으로 다양하게 중독의 현상을 나타냅니다. 허나 그 다채로운 현상의 내면, 중핵에는 똑같은 죄악이라는 녀석이 또아리를 틀고 있는 거죠. 뒤집어쓴 탈은 제각각이나 그 사지의 끈은 죄악이 쥐고 우리를 꼭두각시처럼 조종합니다. 나쁜 충동과 중독은 마치 우리 자신의 일부인양 친밀하게 기만하고 밀착하지만 이는 우리가 아니라 죄악의 지시요 명령입니다. 속으면 안 됩니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p58)." 로마서 7장의 인용입니다. 저자는 우리 마음 속에 선과 악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으며, 유한하고 죄 많은 육신을 따른다면 그 사람의 마음 속에서 선이 이길 가능성은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흔히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며 어떠어떠한 충동에 굴복하곤 합니다.

"고생을 했으니 술 한 잔 정도야." 혹은 그보다 더한 것도 있죠. 그런데 이런 육의 충동은 나 자신의 정직하고 바람직한 요청이 아닙니다. 다이어트를 생각해 보십시오. "고생했으니 오늘만 한 상 차려 놓고 폭식하자." 이런 속삭임에 넘어가면 아름다운 몸으로 가는 길은 또 한 걸음 멀어지고 건강 역시 나쁜 쪽으로 한 걸음 더 기웁니다. 이게 과연 자신을 위하는 요구이겠습니까, 아니면 악마가 가면을 쓰고 파멸로 이끄는 유혹이겠습니까? 죄악의 달콤한 손놀림도 이와 같습니다.

여기서 탐욕이라 번역되는 용어는 원어로 (책에 나와 있듯이) insatiability입니다. 이 단어의 뜻은 문자 그대로 충족이 안 되는, 만족을 모르는, 이런 의미죠.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듯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가 않는 겁니다. 육신의 욕구를 따르면 이렇게 됩니다. 중독자의 행태가 어떠합니까? 아무리 술을 마셔도 만족을 모르고 계속 마십니다. 성(性) 중독은 어떻습니까? 횟수도 제한이 없고 상대를 아무리 바꿔도 계속 새로운 상대를 찾습니다. 계속 그(녀)에게 말초적 쾌락을 공급해 줘야 할까요? 아니면 자신이 중독임을 일깨우고, 죄악에 물든 상태임을 깨우쳐 이 사슬을 끊도록 해야 할까요?

이 책의 원제는 <Broken Chains>입니다. 우리가 죄악과 중독의 사슬을 단칼에 끊지 않는 이상 영원히 육신의 감옥에서 헤어날 길은 없습니다. 이 책은 출구(Way Out)를 제시합니다. "첫째 일단 죄를 인정하고 생각을 바꿔야 한다. 둘째 새롭기만 해서는 안되고 마음의 일대 변화가 필요하다. 셋째 앞에서 말했듯 완전한 공개가 필요하다." 내가 뭘 숨기고 있으면 이미 죄악으로 복귀할 공간을 마련한다는 뜻이니 이는 중독과의 절연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뜻이죠. 이게 바로 재발과 다시 시작(fits and starts. p131)를 막는 길입니다. 트리거를 제거하고, 사소한 나쁜 습관(habit)이 습관화(habituation)하여 죄악의 본거지가 내 마음에 요새를 구축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기도하고 성찰하며, 밑도 끝도 없는 구덩이를 사악한 욕구 대신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채울 수 있게 하라, 이것이 이 책의 결론입니다. 은총과 은혜는 아무리 받고 채워도 지나지치 않으니 말이죠.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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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후와 철학자들 - 덕질로 이해하는 서양 현대 철학 자음과모음 청소년인문 20
차민주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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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덕업일치라는 말이 유행입니다. 열정을 바쳐 몰두(이른바 덕질)하는 주제를 이용해서 생업의 영위까지 가능해지는 걸 가리킵니다. 아마도 예전의 쟁쟁한 철학자분들은, 알고보면 이 덕업일치를 실현한 이들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윤보미라는 가수를 모르는데 이 책을 읽고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이분에 대해서는 여러 재미있는 별명들이 붙는데, 저자는 그 별명들(이름들 자체)을 시니피앙, 이러이러한 가수라는 "뜻"을 시니피에라고 설명합니다. 드 소쉬르가 이런 체계를 창시할 때에는 훨씬 어려운 설명이었지만, 저자의 이런 설명을 듣고 나니 확 쉬워지는 듯합니다. 아직도 시니피에와 시니피앙이 헷갈리는 분들은 "에"와 "의"가 우리말에서 왔다갔다 하기도 하는 발음이니, 뜻 의(意)를 시니피"에"와 연결지어 외우시면 될 것 같습니다.

라캉은 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시니피앙이 시니피에를 지배한다고까지 주장(p17)했습니다. 사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서도 유명론과 실재론의 대립이 언급되죠. 스콜라 학파의 시대에까지 그 연원이 거슬러올라가는 아주 오래된 논쟁입니다. 저자는 일본 애니 <너의 이름은.>을 예시하며 "이름은 존재를 정의한다(p19)"고도 합니다. 한국의 대표적 명시 김춘수의 <꽃>도 생각이 나는 대목입니다.

p23에는 역시 천재 언어학자였던 소쉬르의 또하나의 개념체계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파롤과 랑그인데, 랑그는 그 사회의 규범 언어이며 파롤은 개인의 구체적인 언어입니다. 저자는 "사람들은 내 언어(파롤)을 랑그로 이해하고 들어줄 사람들을 찾아 모이기 마련"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향우회, 동호회 등이 생기는 거고 말이죠. 이렇게 설명을 들으니 진짜 한 번에 이해가 되는 듯합니다. 알랭 들롱과 달리다 두 사람이 아주 예전에 부른 샹송 "빠호레 빠호레("paroles paroles")"를 연상하면 더 이해가 잘 될 것 같습니다.

찰스 샌더스는 아이콘, 심벌, 인덱스로 기호를 구분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OO의 아이콘" 같은 말을 흔히 쓸 때, 알든 모르든 은연중에 이분의 개념정의에 바탕을 두고 그런 말을 해 온 셈입니다. "즉시 해석이 가능하면 아이콘, 잠시 생각해서 유추 가능하면 인덱스, 학습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면 심벌(p29)" 이는 저자의 요약 설명인데 이 역시 딱 듣고 바로 이해가 가능한, 쉽고 명쾌한 규정이죠.

p35에는 중간쉼터라고 해서 "기호학의 변증법적 계단"이라는 일러스트가 있습니다. 한 층위 한 층위를 올라가면서 드 소쉬르, 퍼스, 롤랑 바르트, 야콥슨 등이 놓이는데, 이렇게 간단하게 언어학의 한 중요한 구도가 이해되게 만든 건 처음 봤습니다. 진짜 이 한 페이지만으로도 책의 멋짐이 증명됩니다. 야콥슨에 대한 설명을 잠시 옮겨 적으면요... "그는 커뮤니케이션 상황에 따라 뜻을 다르게 해석한다고 보았는데 예컨대 야구장에서 '마!'는 경고의 뜻이다." 혹시 저자분이 롯데 자이언츠 팬이실까요?

"존재- 존재자- 초월 존재"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설명입니다. 존재자는 이기적이지만 초월 존재는 변증법적 발전을 거쳐 "이타적"이 됩니다. 그래서 요즘 유행하는 "부캐"와는 다르다(p39)고 합니다. 초월도 세 가지가 있는데 출산, 양육 같은 조건 없는 사랑이 첫째요,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한 선행 같은 것이 둘째이며, 덕질과 같은 헌신(아무 보상이 없을 것임을 앎)이 세번째라고 합니다. 내 가수가 음원 랭킹에서 1위를 하는 것이 그 예라고 하네요. 첫째는 본능이고 둘째는 먼 거리에 있을망정 보상이 의식되는 거고 셋째는 그야말로 아무 대가가 없음을 행위 주체가 아는 것입니다. 존재자는 코나투스(뜻은 p41에 나옵니다. 철학용어이죠)를 갖고 있는데 초월은 이 코나투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겁니다.

goods는 영어권에서야 원래 다른 뜻이지만 일본에서 "굿즈"로 쓰기 시작하면서 전혀 별개의 뜻(우리가 지금 아는 그 뜻)을 갖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저자는 "원본의 대리, 심벌, 인덱스" 같은 용어를 이 굿즈에 적용하여 설명합니다. 읽으면서 아 과연 그렇겠다 싶었습니다. "본질은 실존에 앞서지만, 오직 인간만이 예외라서 스스로 본질을 정의한다. 오직 인간의 실존만이 (인간의) 본질에 앞서게 된다. " 여기서 사르트르의 실존주의가 마르크시즘과 결정적으로 갈라서게 되죠. 방탄의 "리플렉션"이라는 노래에서 "자유로부터 자유롭고 싶다"는 가사는, 실존주의의 "자유라는 형벌"을 촌철살인으로 지적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꼭 사회적 성공이 아니라더도 자신이 머리 속에 그린 그림대로 살아내는 선택이 가능한데 이것을 기투(企投. Entwurf)라고 합니다(p51). "세상에 던질 나의 모습에 대한 설계"라고 저자는 말하는데, 저 독일어 명사 Entwurf가 동사 entwerfen("그리다"), ent(비분리전철 중 하나)+werfen("던지다")에서 왔기 때문에 과연 정확한 번역입니다. 영어에서는 그저 design이라고 번역하지만 이래서는 "던지다"의 뉘앙스까지를 담기가 곤란하죠.

예전에 동방신기의 "오 정반합"이라는 노래가 있었죠^^ 당시에 저도 신기하다고 생각했는데, 저자는 "무려 헤겔의 개념을 주제로 하고 있다(p57)"고 하십니다. 무려 말입니다. 저자는 후라이드(프라이드), 양념, 그리고 반반의 관계를 정반합에 비유(p58)합니다. 한국의 자랑스러운 메뉴인 짬짜면도 예시로 등판해 줘야 할 것 같습니다.

저자는 이미 <BTS를 철학하다>라는 저서를 낸 적 있는데 "케이팝은 정이면서도 스스로 반을 찾아내 매력을 극대화시켜 합을 만드는 프로세스를 반복해 왔다(p59)"고도 합니다. 약간은 ㅎㅎ 꿈보다 해몽이란 느낌도 듭니다만 여튼 케이팝이 장르로서 세계적으로 이만큼이나 성공한 걸 보면 타당한 분석 아닐까 싶네요. "어제의 나에 머무름을 지양(止揚)하는 과정이 변증법이다(p62)." 와, 말씀을 너무 잘하시는 것 같습니다. 레알.

앞 p42에서 세번째 단계의 초월이 대가(對價) 없이 이뤄지는 것이라고 했는데, p69에서 저자는 덕질을 자본론적 관점(마르크스주의 중)에서 분석합니다. 덕후의 노동은 "지불되지 않은 노동"이지만 덕후는 "이미 대상에게서 과지불받은 행복을 돌려 주기 위해 노동과 재능을 기부한다"고 합니다. 정말 기가 막힌 설명이네요. 유튜브에서도 슈퍼챗(아프리카라면 별풍선)을 유저들이 쏘지만 저는 이게 사업모델로서 과연 타당성이 있겠는지 처음에 의심했습니다. 컨텐츠를 보고 행복을 얻어도 (그 대가를) 안 쏘면 그만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사람들은 그렇게 행동하지 않습니다. 책의 저 한 문장으로 다 설명이 되네요. 그래서 구글의 유튜브는 말할것도 없고 아프리카TV의 주가도 (생각보다) 잘나가는 것입니다.

"자신의 이익을 추구해 자본(계급의 기초)을 추구하지 않고 다른 대상(덕질 대상)의 계급 상승에 이바지(재능과 노동의 무상 기부)하는 행동은, 자본의 관점에서는 우습게 보일 수밖에 없으며 이것이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덕후들이 무시당하는 이유이다.(p70)" 우와, 할 말을 잃었습니다. "덕질은 범사회적인 교환가치는 없어도 사용가치인 행복지수는 (그 덕후 본인에게는) 다른 것들과 비교할 수 없이 높다." 교환가치와 사용가치의 갈등 관계는 일찍이 애덤 스미스 때부터(아니 그 이전부터) 치열한 논쟁거리였는데 이게 여기서 다시 등장하네요.

매슈 아널드는 필리스티니즘, 즉 "심미적으로는 조악하고 인지구조에서는 반지성주의와 단선적 사고(p75)"를 경계하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20세기 초 이래 이미 여기서 파생한 대중문화는 주류로 자리잡았고 엄청난 부를 창출하는 상황입니다. "기자분보다 사진을 더 잘 찍으시는 것 같아요 - 우리는 애정을 갖고 찍으니까요(p78)." 저자는 이른바 홈마들이 인물 사진에 있어 탁월한 감각을 갖는다고 하는데 "좋아하고 원해서 하는 일이기도 하고, 자신의 스타가 어느 순간에 가장 빛나는지를 경험으로 알기 때문(p78)"이라고 합니다. "좋아해서 하는 것은 잘된다(p83)." 빈센트 반 고흐의 말입니다.

"오타쿠의 감성은 흔히 '벅차오른다'고 표현된다(p92)" 이때 벅차오른다는 감정은 학습된 관성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오토마티즘(의식의 흐름 같은 것), 데페이즈망(낯설게하기), 초현실주의 기법 등이 덕후들이 즐겨 쓰는 표현수단이라고도 합니다. "내 상상력이 우스워질 만큼 그렇게 넌 아름다워(p95)." AB6IX의 "초현실"에 나오는 가사 중 일부입니다.

"푼크툼(꽂힘)과 덕통사고(덕질 계기)는 wish와 관련되어 있다(p103)" wish는 hope나 want와 달리 먼 미래에의 불확실한 소망이며 그래서 영어의 가정법은 wish와 흔히 결합합니다. wish가 앞에 나오면 그게 적어도 지금의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는 뜻입니다. 저도 저의 10대를 되돌이켜 보면 분명 덕통사고가 있었고 그때 이후와 이전이 완전히 다른 취향, 영혼, 욕구로 바뀌었던 걸 기억합니다. "푼크툼을 찔린 관객은 웅크린 야수로 변한다(p104)." 롤랑 바르트의 말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것도 단일하게 규정될 수 없는 다양체(p110)"라고 한 건 들뢰즈이며 그는 모든 것을 일종의 기계 모듈로 보았습니다. 모듈은 분리와 재결합이 가능한데 통접(connexion)이 있고 이접(disjoinction)이 있다고 합니다. 또 확고하고도 개념적인 체계는 수목(tree)적이며, 유연하고 이념적인 체계를 리좀(rhizome)적이라고 불렀습니다(p111). 이게 중요한 이유는, 리좀적 체계 하에서만이 다양한 이종적 요소가 결합과 분리를 반복할 수 있음을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즉 콜라보가 가능한 거죠. 저자는 "리좀적인 것은 고정 폴더가 없다(p113)"고 합니다.

덕질에는 고통이 따릅니다. 이를 두고 저자는 라캉의 개념을 빌려 "고통을 즐기는 쾌락"이란 의미로 "주이상스(jouissance)"와 관계 있다고 합니다(p153). 거의 라캉만 그런 뜻으로 쓰죠. 왜 덕질이 이것과 관계 있냐면 덕후가 노리는 게 대개는 확률이 낮아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낮은 확률에 비례하여 쾌감도 커지는 게 역설적입니다. 금지와 장애물이 있어서 욕망이 더 커진다는 게 저자의 말(p154)입니다. 영원히 도달 못하는 쾌락은 잉여 주이상스라고 합니다. 과잉 그 자체가 목표라서입니다(p155). "강아지 꼬리용 샤넬 모자"는 실제 사용 가치가 거의 0이지만 가격은 또 엄청나게 비싼데 바로 이런 것, 즉 달성되지 못하는 욕망을 즐기는 게 잉여 주이상스라는 거죠. 그렇다고 해도 잉여 주이상스는 삶을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해 주고 힘든 삶을 지탱해 준다고 합니다. "덕후는 계를 못탄다(덕계못)"도 이것과 관련이 있죠(p167).

"환상은 잠재적 현실이며, 그래서 virtual은 잠재성으로 번역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p174)" "환상을 기술하면 서사가 되고 환상을 표현하면 예술이 된다(p175)". 왜냐하면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으며 무의식은 우리가 모르는 또 하나의 우리이고, 미지의 초능력"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프로이트나 융과 달리 아들러는 무의식과 의식을 그리 선명히 대립시키지 않았다고 하죠.

실재계에는 이미 버려진 소망(오브제 쁘띠 아)가 있는데 이게 우리 무의식에 그대로 남아 상징계에 균열이 생기는 순간 나타나서 뜻하지 않게 무엇인가를 이루는(혹은 저지르는) 동인이 되기도 한다고 라캉은 말했습니다(p130). 저자는 "어릴 때 배우다 만 피아노나 마이클 조던의 부친이 아들에게 바라던 야구선수"등을 예로 듭니다. 그래서 라캉은 무의식을 두고 타자(autre)의 담론(p102)이라고 했는지도 모릅니다.

"하늘에 무지개를 보면 내 가슴은 뛰는구나" 이는 워즈워스의 시 중 한 행인데 저자는 이를 두고 무지개가 워즈워스에게 설렘을 부르는 매개체라고 합니다.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한 기억이다(p203)." 이는 워즈워스의 말입니다. 저자는 영화 <아비정전>을 예로 들며 장국영과 장만옥이 집중한 그 매 초 매 분이 일상의 순간과는 완전히 다른 이미지 기억 속의 시간과 감정이라고 합니다. 베르그송은 바닥에 현재의 내가 사는 지면이 있고, 거꾸로 선 원뿔이 과거(의 레이어)와 같으며 그 아슬아슬한 한 접점에서 과거와 현재가 만날 뿐이라고 합니다(p205). 이 역시 후설이 말한 "현상(p119)"과 통하며, 필터라고 할 수 있는 노에시스가 만든 노에마(pp.119~120)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저자는 현재의 아이돌이라고 할 때 이 뜻은 플라톤적 의미(p208)보다는 에피쿠로스 학파가 말한 에이돌라(p210)에 가깝다고도 합니다. 그들에 의해 창조된 예술품이나 퍼포먼스 외에도, 그 사람이 가진 매력의 파동까지 이미지인 상으로 전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작품이나 공연뿐 아니라 평소 사는 모습, 일상까지 아름다워야 하고, 그래서 소속사는 좋은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애쓰며 이 때문에 포털 연예 뉴스 댓글란이 없어졌겠지요. 이런 심상(연예인에 대해서라면 어떤 환상 같은 것)이 깨지는 걸 유행어로 쿠크라고들 한다는데 모 과자처럼 이런 환상이 순식간에 쉽게 깨지곤 한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보들리야르가 말한 시뮬라크르(p216)입니다. "애인이 있어도 관계 없으니 제발 공개하지 말아달라." 1996년 카디건즈가 부른 노래 <러브 풀>이 생각나죠(디카프리오 주연 바즈 루어만 감독 <로미오+줄리엣>의 삽입곡).

덕후 현상 하나로 이렇게 많은 철학 토픽이 굴비 꿰듯 주루루 설명될 줄은 몰랐습니다. 이 독후감에는 핵심 주제어 중심으로 요약하다 보니 어려운 용어가 많이 쓰였지만 책은 실제로 펴 보면 엄청 쉽고 재미있게 진행됩니다. 참, 혼자 보기 아까운 유익하고 재미있는 책이네요. 이게 가능하다니.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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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의 기억, 시네마 명언 1000 - 영화로 보는 인문학 여행
김태현 지음 / 리텍콘텐츠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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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예술이 그 탄생 이래 우리에게 꾸준히 사랑 받았고 앞으로도 영원히 우리 곁에 머무를 수 있는 건 아마도 우리네 인생의 압축된 모습을 90분 남짓한 시간에 선명히 담기 때문이겠습니다. 영화는 물론 "활동 사진"이므로 먼저 시각으로 우리에게 어필하지만, 그 오디오를 통해서는 무수히 많은 명언, 명대사를 우리 귀로 들려 주며 우리 심장을 두들깁니다. 영화는 명장면, 그리고 명대사로 우리 뇌리와 가슴에 자리를 잡습니다. 

 

명장면은 한 사람의 기억 속에서 그 나름의 방식으로 재생될 뿐이지만, 명대사는 입에서 입으로 사람 간의 소통을 통해 무한 전파할 수 있습니다. 또 그 대사를 추억과 함께 공유함으로써 공감대와 정(情)을 널리 모두의 것으로 만들곤 합니다. 영화는 그 제목을 통해 명예를 남기며, 그 명대사를 통해 뭇 인류의 감성을 지배합니다. 

 

이 책은 모두 8개의 챕터로 구성됩니다. 잠시 각 장의 타이틀을 옮겨 적어 보면

 

1) 꿈과 자유를 찾아 주는 명대사
2) 사랑이 싹트는 로맨스 명대사
3) 인문학적 통찰력을 길러 주는 명대사 
4) 사람의 심리를 파고 드는 명대사
5) 지친 마음을 힐링하는 명대사
6)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명대사
7) 불굴의 의지를 보여 주는 명대사
8) 내 안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명대사

 

이상과 같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원래 영화를 좋아하므로 인생 영화로 꼽는 명작도 각각 간직하겠고 그와 별개로 명대사 역시 기억해 두는 구절이 많겠습니다. 그러나 저렇게 범주로 나눠서는 각 한 개씩만 꼽아 보라고 하면 아마 다들 당황할 것입니다. 일단 영화의 명대사를 저렇게 나눌 수 있다는 자체가 독자로서 부러웠습니다. 살면서 추억과 감동의 원천을 잘 정리해 왔다는 뜻이니 말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멋진 책을 만났으면, 우리도 슬쩍 남(=저자분)의 앨범에 약간의 추가와 삭제를 가함으로써 우리만의 추억 항아리를 예쁘게 가꿀 수 있지 않을지요. 내용이 너무 풍성해서 누구라도 이 교구(?)로 자신의 작품을 새로 만들고 싶을 것 같습니다.

 

각 챕터마다 25편의 영화가 소개되는데 25x8을 하면 200입니다. 200편의 영화! 그리고 각 작품마다 5구절씩 명대사가 소개되니 책 제목대로 1,000개의 명대사를 읽을 수 있는 거죠. 200편의 명작을 다이제스트로 접하는 것도 행복한데, 명대사 5개씩을 그것도 영어 원문과 함께 읽으니, 아포리즘이 우리 영혼을 정화시키는 효과도 효과거니와 영어 공부까지도 됩니다. 흐뭇합니다. 


 

영어 대사 영화만 있는 건 아니고 중국어, 일본어, 그리고 한국어로 된 영화들도 있으며 여기서의 명대사들은 모두 해당 언어로 인용됩니다. <타인의 삶>, <다운폴>(이상 독일어), <아무르>(프랑스어) 같은 건 영어 번역 대사가 실렸습니다. <기생충>은 영어 번역(자막)이 잘됐다는 평가를 당시에 받았으며 <올드보이>는 미국에서 리메이크도 되었으므로 해당 명대사들은 영어 버전도 나란히 실려 있네요. 

 

CHAPTER 1


제일 먼저 등장하는 영화는 <죽은 시인의 사회>입니다. 제목이 오역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이건 이미 대중의 뇌리에 굳었으므로 그냥 받아들여야 할 듯합니다. 책에서는 그저 명대사 인용만 하는 게 아니라, 우리 독자에게 어떤 포인트로 이 말을 이해해야 할지 저자의 교훈, 감상이 덧붙여집니다. 그러니 이 책은 자계서로 읽어도 좋고 인생 독본으로 삼아도 좋습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대사는 우리 모두가 잘 아는 Carpe diem이며 이 말 자체는 라틴어입니다. 영화에는 (이 책에 소개된 대로) Seize the day라는 영어 번역 대사도 함께 나옵니다. 

 

<불의 전차>가 다음에 나오는데 요즘 전지현이 "△△△는 묵음이야"라고 하는 TV 광고 중 그 배경음악이 바로 이 영화 음악을 작곡한 반젤리스의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 <One More Kiss, dear>은 이 책 8-6, p313에 나오는 <블레이드 러너 2049>의 오리지널인 <블레이드 러너>의 삽입곡이었죠. "불의 전차"는 기독교 구약 열왕기 하 6장에 나오는 말입니다. "차별과 편견을 이겨내는 주인공"이라고 책에 나오는데 왜 차별을 받냐면 유대인이라서입니다. 미국도 영국도 백 년 전까지만 해도 유대인 차별이 심했죠. 주인공 역의 벤 크로스는 여기서 정의롭고 선한 인물이었으나 이후 나이 들고 나서는 나쁜 사람 역으로 더 자주 나왔기에 재미있습니다. 목소리가 독특한 분이죠. 

 

<아마데우스>에서 "왜 신은 나에게 재능을 주지 않고 그 재능을 알아 보는 안목만 주셨는가?"라며 울부짖는 살리에리 역의 머레이 에이브러햄 연기가 일품이었죠. 사실 그가 말하는 "나는 평범한 사람들의 챔피언이요 후원자"라는 대사(이 책 p32. 명대사 번호 053)는 반어적 저주라서 그리 좋은 뜻은 아닌데도, 이상하게 이 말이 우리 관객들 마음 속에 오래 남습니다. 저자도 아마 비슷한 느낌이 드셨는지 명대사가 많은데도 이 라인을 1000개 안에 넣었습니다. 꼭 교훈적이라서가 아니라 여튼 명대사는 명대사입니다. 우리 영화 <타짜 2>에서 "너는 나에게 구땡을 줬을 것이여" 같은 것도 명대사는 명대사 아니겠습니까. ㅎㅎ

 

<리틀 미스 선샤인>은 이상하게도 한국에서는 어순이 약간 바뀌어 "미스 리틀 선샤인"으로 개봉되었습니다. 이 책에서는 원제대로 바로잡고 있습니다. 명대사 058을 잠시 인용해 보겠습니다. 

 

잠깐, 패배자란 어떤 사람인지 알아? 진짜 패배자는 질까 무서워서 시도도 안 해 보는 사람이야. 
You know what a loser is? A real loser is somebody that's so afraid of not winning, they don't even try it.

 

사실 이 원 대사는 문법적으로 안 맞습니다만 해당 캐릭터의 개성과 분위기가 생생히 그대로 전해지기 때문에 영화를 본 분들에게는 분명 명대사입니다.

 

CHAPTER 2


<사랑과 영혼>은 특히 당시 우리나라에서 대히트를 친 흥행작입니다. 번역도 잘된 편이죠. 이 영화에서 명대사라면 많은 이들이 ditto(동감이야)를 기억할 텐데 책에서는 그보다는 더, 우리에게 교훈이 되거나 로맨틱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대사 5구절이 제시됩니다. 이 챕터 제목이 "사랑이 싹트는 로맨스 명대사"이니 말이죠.

 

<물랑 루즈>는 아주 예전 고전도 있지만 이 책에서는 니콜 키드먼과 유언(=이완) 매그리거 주연의 그 잡탕 뮤지컬 영화를 소개합니다. 잡탕이라고 한 건 이 영화가 독특하게도 오리지널 아리아가 아니라 기존 명곡들을 재활용했기 때문입니다. 남주는 가난하고 여주는 불치병에 걸렸기에 보는 내내 관객들은 마음이 아픕니다. 그런 와중에 주고받는 절절한 사랑의 대사는 슬프기에 더 달콤합니다. 

 

<중경삼림>은 지금의 중년 세대가 젊었을 적 감미롭게 봤을 만한 걸작입니다. 별 내용도 없는데 여튼 우수 가득하고 폼 나고 도회적이면서 달달합니다. 

 

"기억이 통조림이라면, 영원히 유통기한이 없었으면 좋겠다." (명대사 번호 224번. p87)

 

CHAPTER 3


<다크 나이트>를 소개하며 저자는 "다른 히어로물처럼 단순하지 않고 생각할 여지를 준다"고 합니다. "정의를 지킨다는 게 과연 어떤 의미이겠는지 생각해 보자"고도 합니다. 

 

"계획대로 되는 일에는 누구도 혼란에 빠지지 않아. 그 계획이 아무리 끔찍해도 말이야."

 

과연 다시 봐도 명대사가 맞습니다. 그래서 우리 평범한 대중이 역사상 그처럼 많은 악행에 공범으로 가담해 왔던 것 아니겠습니까.

 

같은 감독이 <메멘토>도 좀 이전에 만들었었는데 이 역시 명대사가 많습니다. 이를테면

 

"기억은 기록이 아니라 해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후자 아닌 전자로 착각하기에 그토록 많은 다툼과 오해가 빚어집니다. 

 

CHAPTER 4


<처음 만나는 자유>에는 그야말로 환히 빛나는 청춘 위노나 라이더가 나와 그 청순+퇴폐미(?)를 동시에 풍깁니다. 사람이 자신의 꿈을 너무도 사랑하면 이른바 광기의 문을 열고 한 발짝 들여놓는다는 건데, 그렇다면 미친 사람은 우리들 중 가장 순수한 마음을 잘 간직한 사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실의 광인은 위노나처럼 예쁘지 않은 경우가 많겠지만 말입니다. 저자는 이 영화의 명대사들을 "사람의 심리를 파고드는" 범주에다 넣습니다.

 

"프릭쇼"는 몇 년 전 휴 잭맨 영화에서도 소재로 쓰였는데 데이빗 린치 연출의 <엘리펀트 맨(1980)>은 실화를 바탕으로 삼았습니다. 존 허트의 분장이 무섭기도 하지만 한 인간의 삶이 저토록 비참의 바닥으로 떨어질 수 있나 싶어서 맨정신으로 영화를 보기가 힘듭니다. 저자는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다른 사람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들 것"이라 말합니다. 이 영화의 명대사들 역시 4장에 배치한 저자의 의도가 무엇일지 저는 더 생각해 보고 싶네요. 

 

"규칙과 화합, 피와 야만, 둘 중에서 무엇을 선택하겠어?" 

 

이것은 <파리 대왕>에 나오는 명대사이고 동시에 노벨 문학상 수상작인 원작에 나오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영화는 원작 소설에 비해 덜 유명하고, 책에 소개된 1990년작보다는 그로부터 십 수 년 전에 만들어진 흑백물이 더 유명합니다. 1990년작은 화면이 아름다우며 진행이 깔끔하기는 합니다. 저자가 이 작을 챕터 4에 넣은 이유를 독자인 저의 멋대로 짐작하자면, 우리는 누구나 예의바르고 도덕적인 척 하며 살아가지만 막상 약육강식의 무정부상태가 닥치면 모두 잽싸게 짐승으로 복귀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냐는 잔혹한 질문을 이 영화(와 원작)이 우리에게 던져서가 아닐지...

 

CHAPTER 5


<맘마 미아!>는 원래 뮤지컬이며 뮤지컬이 히트를 치자 메릴 스트립, 피어스 브로스넌, 콜린 퍼스 등을 기용해서 영화로 만들었죠. 혼성 4인조 아바의 1980년대 히트곡을 아리아로 썼는데 곡들이 워낙 좋고 내용도 힐링이 차분히 되는 내용이라 저자도 "힐링용으로 추천"한다고 책에서 밝힙니다. 이 영화는 개봉 당시 20대들은 잘 이해하지 못하더군요. 내용도 중노년의 정서를 타겟으로 삼았고 올드 팝을 써서였는지...

 

"당신의 감정을 다른 곳에 허비하지 마세요. 당신의 모든 사랑을 나에게만 주세요."

 

그게 어려운 게 아니라 내 사랑을 줄 사람을 언제 어디서 만나냐는 게 문제입니다. 제때 만나기만 하면 낭비, 하라고 해도 안 하죠. 쓸데없이 감정 낭비할 대상을 인생에서 요리조리 피하기만 해도 그 사람은 운 좋은 사람입니다. 

 

CHAPTER 6


<아메리칸 뷰티>는 진행이 코믹하고 화면이 따스하지만 내용은 좀 무섭습니다. 반전 가득한 결말은 슬프고 말이죠.  

 

"오늘은 당신 남은 인생의 첫번째 날이에요." (명대사 645번)

 

주인공은 그야말로 번아웃된, 대체 뭘 위해 남은 생을 살아가야 할지 완전히 목적을 잃어버린 불행한 가장입니다. 좋은 일자리 다 걷어차고 잘나가는 부인도 방치하고 어디서 맥잡을 얻어 자신의 인생에 대해 때늦은 반항을 벌이던 중 딸의 친구를 만나 불측한 관계를 맺기 직전이죠. 과연 이렇게 해서라도 생의 마지막 남은 불꽃을  태울 필요가 있을까요? 

 

"시간은 모든 것을 앗아가지. 좋든 싫든 간에."

 

이 대사는 <그린 마일>에 나옵니다. 원작 소설은 스티븐 킹이며 이 사람도 명언 제조기이죠. 커피라는 거대한 체구의 흑인 사형수는 알고 보니 일종의 메디슨 맨이었다는 건데... 주인공인 교도관은 더 큰 도덕적 가치의 실현을 위해 엄중해야 할 행형 규칙을 어깁니다. 그 와중에 주인공과 교도소장은 자신들에게서 시간이 서서히 앗아가는 그 모든 것에 대해 절망하고, 커피의 기적(!) 후에 새로이 성찰합니다. 

 

CHAPTER 7


"아들아, 아무리 처한 현실이 이러해도 인생은 정말 아름다운 것이란다." 

 

그걸 증명하기 위해 아빠는 아이(공주님이 낳으셨습니다)에게, 악마(나치 등)들이 행하는 "사람으로 비누 만들기"가 거짓이라며 필사적으로 연극을 합니다. "넌 어쩜 그렇게 바보니? 그걸 믿어? 사람으로 어떻게 비누를 만들겠니?" 그런데 이걸 실행에 옮기는 미친 녀석들이 역사에 있었죠. <인생은 아름다워>를 보면 정말 슬퍼지기도 하고 미안해지기도 합니다. 

 

"폐하를 위해 싸웠고 로마를 위해 죽습니다."

 

존귀한 장군이었으면서 이제 검투사로 전락한 막시무스는 죽음의 결전장에서 필생의 원수를 다시 만납니다. 하지만 극한 상황에서도 생의 목적을 잊지 않고 품위를 지키려 애씁니다.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구이도가 아들을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것과 비슷하지만 막시무스의 아들은 죽었죠. 그것도 아주 비참하게. 하지만 <글래디에이터>의 막시무스의 의지와 혼은 꺾이지 않습니다. 

 

CHAPTER 8


"의심은 좋은 거에요. 믿음을 더욱 굳게 해 주니까요."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 주인공은 망망대해에서 맹수인 호랑이와 죽음의 동거 항해를 이어갑니다. 이 와중에서 그는 상상의 나래를 펴며 현재의 극한 상황을 극복하려 드는데... 결말에 가서 밝혀지지만 이는 소년의 상상에 의한 현실의 우화적 치환이었던 거죠. 


 

명대사 1,000개, 영화 200편을 책으로 일별하고 나니 마치 꿈나라에 다녀온 듯 뿌듯하고 황홀합니다. 영화사 백 년을 한 권의 우표첩으로 감상한 듯한 느낌입니다. 저는 13년 전 <쿵푸 팬더>를 보면서 옆자리의 커플 중 남자가 해당 작품의 명대사 하나를 미리 외워 와서 귓속말로 여친에게 들려 주는 걸 본 적 있습니다. 지금 어떻게 사는지야 물론 알 수 없지만 그들의 추억 속에 그날 그 시각의 영화 관람은 해당 명대사와 함께 죽을 때까지 남을 것입니다. 이 책 한 번 죽 읽고 나서, 셋톱이나 OTT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영화 한 편 같이 "땡기면" 어떨까요? 아름다운 순간은 원래 명대사라는 BGM이 깔려야 제맛이니 말입니다. 

 

(아, 혹 그게 힘들면, 나 혼자서 유익한 인문적 성찰에 빠져들 수도... ㅠ)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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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85
세라 해거홀트 지음, 김선희 옮김 / 자음과모음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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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제목은 저렇습니다만, 사실 결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 아니며, 또 마냥 "괜찮"지도 않은 심각한 상황입니다.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이런 일이 닥쳤다면, 몹시도 곤혹스럽고 혼란스러우며 또한 슬퍼할 만한, 그런 일이라고나 하겠습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건 주변 사람들이 아닌 바로 본인의 감정이며 인격이고 자존감이며 미래이겠지만 말입니다.

 

소설의 주인공은 이저벨이며 애칭은 "이지"로 불립니다. 이저벨의 친구는 그레이스이며 둘은 가장 내밀한 사정도 서로에게 공유할 만큼 친한 사이입니다. 아직 나이가 어리다고는 하나(나이가 들고 나면 이만큼 친한 친구를 만들기가 어렵죠) 여튼 이처럼 가족 외에 자신의 곤란한 사정을 다 들어 줄 좋은, 또 속 깊은 친구가 있다는 건 분명 축복 받은 겁니다. 샘 케너라는 멋진 또래 남자애가 있나 본데 얘한테는 그레이스가 더 관심이 많습니다. 이번에 이저벨의 학교에서는 뮤지컬 공연을 하는데 유명한 히트작인 <아가씨와 건달들>이며, 공교롭게도 이 둘이 극중 연인인 세라 브라운과 스카이 매스터슨 역을 맡아 그레이스가 난처하게 됐습니다(이저벨이 더 난처하겠지만 말입니다). 


 

이저벨에게는 엄마 캐슬린이 있고, 남동생 제이미가 있고, 언니 메건이 있습니다. 동생은 아직 철이 없는 듯하고 언니 메건은 얼핏 보기에 성격이 까다롭고 감정적인 듯합니다. 그리고.... "아빠"가 있습니다. 아직 틴에이저이니 아빠와 함께 사는 게 당연하지만, 이 아빠가 좀 특별한 분이라서 상황이 아주 난감하고, 힘들어졌습니다. 그것도 어느날 갑자기(이저벨에게는)... 

 

소설을 읽으면서 독자도 좀 당황하게 되는데, 거의 초두부터 아빠가 갑자기 커밍아웃을 했기 때문입니다. 아빠(대니얼 파머 씨. 이제 성별을 바꾸기에 대니엘 파머로 이름이 조금 변합니다)는 가족들 앞에서 자신아 트랜스젠더라고 밝힙니다. 그전부터 눈물이 많고 익살스러우며 다정다감하기는 했지만 아빠가 오늘부터 갑자기 여성으로 바뀐다니요? 남자가 어느날 선언만 하면 여자로 될 수 있는 걸까요? 엄마는 이미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한 건지 비교적 담담합니다. 하지만 언니 메건은 완전히 정신이 나가 버렸습니다(p51). 당연하죠. 우리 입장에서도 최대한 아빠를 이해하려고 애 쓰는 이저벨이 대건해 보이지, 메건을 탓하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이런 이저벨도 "그레이스 말고, 다른 친구들은 어떻게 생각할까?"부터 대뜸 고민하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드라마를 볼 때마다 느끼는 건, 저 많은 대사를 배우들이 어떻게 다 외울까 하는 점입니다. 배우들이 특별히 머리가 좋은 걸까요? 아니면 일에 대한 열정과 책임감이 자연스럽게 그런 결과로 배우들을 이끄는 걸까요? 어느 쪽이든 쉬운 건 아닙니다. 키가 엄청나게 큰 샘은 그레이스를 "내려다보며(p79)"미소를 짓는데, 그레이스는 <아가씨와 건달들> DVD를 빌려 주겠다고 합니다. 극을 보면 대사 외우기가 쉬울 거라면서 말입니다. 그래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아무리 좋아하는 영화라도 몇 번 반복해 봐도 대사 줄줄 외우기란 정말 어렵지 싶습니다.


 

그레이스는 이지에게 말합니다. "넌 적어도 아빠가 있잖아? 그리고 아빠가 어디 먼데로 가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거듭 말하지만 이지가 성숙해서 그렇지, 이 일이 어린 딸에게 얼마나 당혹스럽고 힘들겠습니까. 그런데 그레이스는 어찌 보면 더 보편적이어서 덜 당황스러울, 평범한(?) 가정 불화를 겪는 중입니다. 자신이 겪는 어려움이 자녀로서 더 괴롭다고 생각하는 거죠. 

 

이지도 그렇고 그레이스도 학교에서 제일 싫어하는 애가 루커스입니다. 아주 짓궂고 장난을 많이 치며 성격도 나쁩니다. 이런 애 귀에 "이저벨 아빠가 여자래!" 같은 말이 들어가기라도 하면 학교 생활이 어떻게 바뀌겠습니까? 아마도 아빠에 대한 감정 정리, 배신감(?), 낯설어짐 같은 것보다 현실적으로는 이런 고민이 훨씬 더 클 것입니다.

 

"이지, 갑자기 이렇게 되어서 미안하다. 하지만 아빠는 39년만에 진짜 삶을 찾은 거야."
"그런데 아빠, 그럼 우리는 여태 아빠한테 가짜 인생이었어?"

 

그분의 선택은 물론 존중해야 마땅하겠으나, 이저벨의 저 질문에 대해 뭐라고 대답하실 지가 궁금해집니다. 젊은 시절에 더 신중하게 생각하고 결정을 내리셨다면, 아직 어린 자녀들을 덜 혼란스럽게 하지 않았을까요? 보통 이런 경우 이성 배우자가 더 극심한 충격을 받고 상처를 달래게 됩니다. 이 소설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만 이는 지금까지 배우자로 살아온 이에게 결과적으로 못할 짓을 하게 되는 겁니다. 아닐까요? 

 

직장에서도 문제입니다. 여기서 고용주로 보이는 "마크 아저씨"는 상관 없다고 했답니다. 이해심 넓은 분입니다. 하지만 세상 모든 고용주가 이분처럼 오픈된 마인드를 갖고 있진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우리 주변 사람들의 평균적인 이해심과 아량과 도덕성, 성숙을 고려하고 행동해야만 합니다. 만일 이들의 우리 기대에 못 미친다면? 이 역시 주어진 조건이고 운명입니다. 온 세상더러 날 위해 바뀌어 주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고 저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여튼 메건은 가장 큰언니(누나)인 만큼 계속 징징거리진 않습니다. 중요한 건 아빠(였던) 대니엘이 성별만 바꾸고 계속 같이 살 거니까, 이제 뭐라고 부를 거냐는 건데... 일단 이름도 D로 시작하고 대디라고 부르던 지난 십 년 동안의 버릇도 있고 약간 여성스럽기도 해서 "디"라고 부르면 어떨까라는 겁니다. 디! 하.... 대디가 아닌 디! 안타깝기도 하고 약간 우습기도 하지만 이것이 삼남매가 합의한 결과입니다. 사실 큰일이 닥친 건데(적어도 저에겐 그렇게 보입니다) 마치 별 일 아니라는 듯 의연하게 대처해 나가는 삼남매가 기특합니다. 


 

우리는 용어를 좀 조심할 필요가 있는데(매너의 문제죠), 일단 아빠, "디"인 대니엘을 포함해서 이제 주변 사람들은 "섹X"라고 써야 할 자리에 "젠더"라는 말을 씁니다. 물론 둘은 동의어가 원래 아니지만, 많은 경우 경계선상에 있을 때 젠더라는 말을 대신 써 주면 분위기가 더 부드러워지고 더 바람직한 용법이 되곤 합니다. 그레이스도 "섹X 체인지" 대신에 트랜지션이 맞다고 어디서 배워 와선 알려 줍니다. 

 

소설 중반쯤에 충격적 내용이 하나 나옵니다. 루커스 같은 녀석이 말썽을 피우는 건 뭐 그러려니 합니다. 무시하면 되죠. 그런데 이지가 충격을 받은 건.... O의 OO도 역시 OOOO이었다는 사실입니다!(스포라서 가렸습니다) 자 그런데 난감하게 된 건 그레이스입니다. 둘이 너무도 놀라운 팩트 하나 때문에 공감대가 생긴 것뿐인데 둘 사이를 오해한 거죠. 그렇다고 진실을 밝힐 수도 없고... 참 미칠 노릇입니다. 

 

하 그런데... 비밀 하나를 알게 되니 다른 비밀(인지 아닌지 모르지만)도 눈에 들어옵니다. 토머스 선생님은 이곳 출신이 아닌데 왜 여기서 교사 생활을 하는 걸까요? 고향을 멀리 떠날 사정이 있었던 걸까요? 왜 부인도 없고 자녀도 없는 걸까요? 알고 보면 세상 사람들은 그저 평범한 처지이기만 한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뭔가 한 가지 이유 정도로는 비정상(?)인 겁니다. 비정상과 정상을 가르는 기준이 뭔지도 모르겠지만 여튼요. 

 

또 어려운 게 종교 문제입니다. 그레이스는 교회를 다니는데 이 교회의 담임인 존슨 목사(p247)는 대니엘 파머 같은, 혹은 O의 OO 같은 성전환자를 결코 고운 시선으로 보지 않습니다. 이런 종교 문제가 또 걸리기 때문에 당사자들이 이중삼중으로 어려운 거죠. 

 

뮤지컬 공연은 성공입니다. 그리고 이지는 선생님으로부터 이런 말을 듣습니다. "너희 가족은 정말로 특별하구나. 그리고 너 이지, 네가 얼마나 특별한 아이인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소설은 "큰 재앙이 닥친 줄 알았는데 아무 일도 안 일어나고 끝났다"는 이지의 말로 마무리됩니다. 하지만 어디 그렇겠습니까? 이지 정도나 되니까 상황에 잘 대처하고 승리자로 남은 것입니다. 그 용기와 지혜에 박수를 보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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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후 나는 잘살고 있을까 - 영끌세대 서른의 선택
박요한 지음 / 북네스트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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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주로 30대가 읽어 볼 필요가 있는 책입니다. 30대야말로 인생의 어떤 고비가 만들어지는 시기죠. 회사에서는 과연 부장, 팀장급으로 성장할 수 있을지 어떤 기준이 만들어질 구간이며, 혹 피치 못해 회사를 나왔다고 해도 다른 분야에서 기반을 잡을 수 있을지 어떨지가 결국 이 시기에서 결판이 난다고 하겠습니다. 자영업을 해도 자신의 적성에 딱 맞는 업종을 잡은 사람은 30대가 그야말로 전성기가 됩니다. 혹 그렇지까지는 못해도, 적어도 30대라는 나이를착실하게 알차게 보낸 사람은 40대, 혹은 그 이후 시기가 찬연히 빛날 수 있다는 게 이 책의 결론입니다. 요즘은 백세시대라고 들하지 않습니까. 

 

본디 우리는 알제강점기, 한국전이라는 큰 시련을 겪고 가난에 찌들던 시기가 있었으나 이후 대도약을 이뤘다, 뭐 이런 얘기만 나오면 귀부터 막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자는, 첫째 긍정의 마인드를 가진 사람은 어떤 이야기라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둘째 그시절을 돌이켜 보면 열심히 일하던 분들은 항상 입에 긍정의 언어를 달고 살았다, 이 두 가지 포인트를 짚습니다. 반면, 저자께서 만난 어떤 40대 중개사분은 만나면 항상 비관적인 말을 습관적으로 했었는데, 결국 암에 갈려 안타깝게도 타계하셨다고 합니다. 과연 이런 결과가 우연이겠는지 저자는 우리 독자들에게 묻습니다. 


 

이어 저자는 이런 말씀을 합니다. "인생은 말싸움이다." 도로에서 시장에서 다른 사람과 부딪혔을 때 언성을 높이고 말싸움에서 지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내 마음 속에는, 언제나 긍정의 말과 부정의 말이 서로 싸웁니다. 이때 결코 부정의 언사가 긍정의 말을 이기게 놔 두지 말라는 겁니다. 내 마음이 부정으로 물들면 내 인생도 패배자의 그것으로 치닫습니다. 내 마음이 긍정으로 가득하면? 그렇다고 성공이 다 보장되는 건 아니겠습니다만 적어도 성공의 기회가 더 넓게 제공되는 건 분명합니다. 혹 안 되면 뭐 어떻습니까? 최선을 다한 나 자신의 모습은 여튼 자랑스럽지 않습니까? 나 자신에게나 남들에게나 말입니다. 

 

저자는 기독교의 구약성경에서 소년 다윗의 패기만만한 언사를 인용합니다. "주의 종(자신)이 사자와 곰도 쳤거들 하물며 블레셋의 야만인들이야 무엇이 어렵겠습니까?" 저자의 취지는, 이 자신감 가득한 말을 본받으라는 겁니다. 이렇게 의욕과 긍정으로 가득한 영혼이 그 말에서부터 벌써 상서로운 징조가 뚝뚝 묻어나지 않냐는 겁니다. 이렇게 팔팔하고 기세 좋은 청년이 성공을 안 하고 배기겠냐는 겁니다. 


 

다윗도 다윗이지만 이 구절에서 이런 결론을 이끌어내는 저자의 힘 넘치는 마인드셋과 안목도 참 운수 대통입니다. 우리 독자가 책에서 이런 기(氣)를 좀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명강사다 뭐다 하는 사람들 강연장을 기를 쓰고 찾아가는 게 뭐 새로운 이야기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런 분들로부터 그 긍정의 기운을 좀 나눠 얻으려는 겁니다. 

 

"우리가 태어나면서 부모를 고를 수 없듯이, 취직할 때 좋은 상사를 우리가 마음대로 고를 수 있는 게 아니다." 참 맞는 말씀입니다. 좋은 분 만나 기회도 얻고 좋은 라인 타고 일도 배우고 승승장구할 수도 있고, 어디서 웬 못된 싸이코한테 걸려서 고생 오지게 할 수도 있습니다. 이건 그야말로 운에 좌우되는 거죠. 우리가 상사를 고를 수는 없지만, 일단 걸려든 상사한테 현명하고 영리하게 대처할 수는 있습니다. 

 

저자는 "무능하교 욕심이 많은 상사, 부하의 공을 가로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상사와는 단호하게 결별하도록"이라는 조언을 내놓습니다. 그게 쉽냐고 되물을 수 있는데, 바로 그게 충고의 포인트입니다. 이런 사람과 최대한 잘하려고 해 봐야 헛수고고 내 시간만 낭비할 뿐이라는 거죠. 또 저 기준에 해당하지는 않는, 그저 좀 불쾌한 정도일 뿐 공과 사는 가리고 감정대로 하지는 않는 상사라면 이번에는 내가 적응을 해야 한다는 결론도 됩니다. 


 

저자의 요지는 "나를 소모시키지 않는 상사, 까다로운 대우를 하지만 유능한 상사 밑에서 혹독하게 클 각오를 하라"입니다. 무능하지만 나한테 잘해주는 상사보다는 이 편이 훨씬 낫다고 하며, 유능하기는 한데 결국 나를 소모시킬 뿐 키워 주지 않은 상사는 결국 나와 연이 없을 사람이므로 과감하게 결단하라고 합니다. "30대는 이제 상사를 고를 권리가 있다." 멋진 말입니다. "역경보다 더 큰 장애는 바로 편안함이다." 이는 덴젤 워싱턴의 말이라고 합니다.

 

"전문성은 곧 희소성이다." 역시 명쾌하고 타당합니다. 만약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기능이고 실력이라면 그건 전문성이 아니라는 거죠. 이제 미래 사회는 "대체 불가능성"으로 승부를 본다는 겁니다. 이 말은, 아직까지 사회에서 대접깨나 받는 직종일 변호사건 의사건 간에, 남들 하는 만큼만 하는 실력으로는 살아 남기 힘들다는 뜻도 됩니다. 대접받는 사람은 곧 레어한 사람이다, 뭐 이거죠. 사실 아직까지 우리 사회는 그저 남들 하는 평균만큼만 하고 괜히 튀지 말자는 주의가 어디에서나 만연한데, 저자는 일정 기반을 이룬 40대 이상이라면 모르겠지만 지금 30대라면 그런 마인드로 살다가는 큰일난다고 말하는 겁니다.

 

"고전은 십 년 주기 반복이다. 베스트셀러는 한 번만 읽어도 된다. 그러나 전문 서적은 옆에 두고 몇 번이라도 읽어라."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학부 갓 입학했을 때 전공서적만큼 부담스럽게 다가오는 것도 없을 겁니다. 머리가 아주 탁월한 친구라면 바로 소화를 해 냅니다만 모두가 그럴 수는 없습니다. 

 

저자는 "몇 번 읽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마스터할 때까지 읽어라. 100% 이해를 했으면 그때 멈춰라"라고 합니다. 아무리 처음에 어렵고 싫어도 자기 분야에서 계속 참조하고 생각하다 보면 어느 순간 눈이 확 띄는 체험을 합니다. 그때부터는 전공서적이 절친으로 다가오죠. 율곡 이이는 "남이 한 번에 되게 하면, 나는 열 번이라도 시도해서 결국 되게 하라. 그럼 똑같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아홉 번 과거를 봐서 아홉 번 모두 장원을 한 분이 이런 말씀을 하니, 우리 둔재들은 더욱 정진하여 부끄럽지 않게 처신할 일입니다.

 

"거짓말"과 배려하는 말은 다릅니다. 인간관계를 망치려고 작정을 한 게 아니라면, 언제나 입을 떼기 전에 저 사람은 무슨 생각, 무슨 감정을 지닐지 먼저 생각을 하고 말을 하라는 겁니다. 당연한 소리 같아도 이게 안 되는 사람이 우리 주변에는 너무 많습니다. 

 

얼마 전에 기사 한 사람을 만났는데 나이가 젊은데도(기껏해야 20대) 눈치가 아주 빠르고 말솜씨가 좋았습니다. 말을 번드르르하게 다변으로 늘어놓는다는 게 아니라 필요 없는 말은 딱 그 순간에 멈추는데 젊은 사람이 내공이 상당하다 싶더군요. 내가 별 필요 없는 말을 한다 싶으면 "네 선생님 무슨 말씀인지는 이해를 했습니다"하고 말을 자르는데, 말이 잘려도 제가 불쾌하지가 않았습니다(솔직히 말하면 저는 평소에 이런 경우 표정부터가 달라지며 반응하는 편입니다). "이해했다"고 말하는 순간 이 사람이 정말로 이해했다는 게 와 닿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게 말을 잘하는 사람이고 사람 상대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하는 일이나 나이는 문제가 안 되죠. 지금은 몸이 좀 힘들겠지만 어쨌든 나중에 저 조직에서 출세할 타입이다 싶었습니다. 책 p140에서 "'이해됩니다'라고 말하라"는 문장이 있는데 저는 이 대목에서 대뜸 그 기사가 생각났습니다. 

 

30대, 가장 많이 부딪히고 굴려지고 스트레스 많이 받을 나이 아니겠습니까? 저자는 말합니다. "30대부터 인격의 기초를 닦기 시작해야 한다. 스트레스로 마음이 파괴되기 전에 비워내야 한다. 비우면 자유를 경험한다. 마음의 자유는 당신을 행복하게 만든다." 정말 맞는 말이죠. 반면 어떤 인간은 마음을 비운다는 게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주제파악도 못하면서 실력이 없어 밀리고 주저앉는 걸 "마음을 비우겠다"고 기만적으로 표현하는 걸 봤습니다. 이런 건 마음을 비우는 게 아니라 도리어 분수를 넘는 욕심으로 마음을 더 채우는 겁니다. 저자는 또 말합니다. "사람들은 당신의 성공에 감동 받는 게 아니라, 당신의 인격에 감동 받는 것이다." 결국 이런 사람은 성공도 자연히 따라옵니다. 덕불고 필유인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마음을 비우고 자유를 진정으로 찾은 사람은 겉모습에 그게 다 드러납니다. 

 

세상에는 무리의 법칙이라는 게 있다고 합니다. 저도 동물 다큐를 보면 아니 분명 다른 동물이 끼어 있는데도 시선을 그리 주지 않고 결국 자신들끼리만 모입니다(포식자가 피식자를 사냥할 때는 예외). "모든 존재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고, 그 에너지는 동일한 것을 끌어당기는 성질을 소유하고 있다." 저자의 말입니다. 이런 건 어떤 과학적 근거를 갖는다기보다, 우리가 일상에서도 매번 확인하는 경험칙입니다. 여기서 저자는 다시 "불평불만을 쏟아내는 사람은 그들끼리 모이고, 긍정의 에너지를 발산하는 사람들도 결국 그들끼리 모인다"고 합니다. 그러니 될 사람은 계속 잘되고 안 되는 사람은 계속 안되는 거죠. 

 

이게 어떤 숙명이겠습니까? 인간은 얼마든지 자신의 에너지와 태도와 습관을 바꿀 수 있고 그래서 만물의 영장인 것입니다. 자기 의지대로 자신의 진로를 만들 수 있으니 인간이 존엄한 것 아니겠습니까. 

 

"30대의 목표는 전문가로 성장하는 것이다. 마음이 원하는 것을 따라 목표를 세우고 지속적인 열정으로 나아가라" 저자의 말입니다. 30대라는 시기를 이처럼 강렬한 가르침에 따라 벅찬 감격과 열정으로 채울 수 있다면 그 사람의 성공은 보장된 것입니다. 혹 그렇지 못하더라도, 그는 자신의 인생을 언제나 자부심과 긍지, 존중의 시선으로 회고할 수 있습니다. 이 정도면 멋지게 살았다고 말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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