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법정 - 미래에서 온 50가지 질문
곽재식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법정에서 벌어지는 사건 처리, 당사자 사이의 공방을 보면 그 사회의 축소판을 구경하는 듯합니다. 우리가 사는 공동체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구나, 평화롭게 잘 작동하는 듯 보였던 이면에서 이런 분쟁상이 존재했구나 등등... 만약 미래의 법정을 미리 구경할 수 있다면, 그 법정에서는 어떤 일들이 다뤄지고 또 심판은 어떻게 내려질까요? 

이 책에는 마치 법정물소설, 혹은 SF처럼, 등장인물들이 실제 사건 속에 등장하여 대화를 나누거나 싸우기도 하며, 미래 사회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립니다. 그냥 하나의 소설로 읽는 편이 낫겠으며, 독자에게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읽힐 것입니다. 다만 소설 속에 수시로 작가가 끼어들어, 미래상이 이러이러하게 펼쳐질 전망이니 지금부터라도 우리가 이런 쪽으로 생각을 해 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과 설명이 나옵니다. 

누구나 나 자신, 혹은 나의 아이가 키도 크고 똑똑한 사람이었으면 하고 바랍니다. 그러나 사람의 외모, 자질, 적성 등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지며 이를 유전자 조작을 통해 인위적으로 바꾸는 것은 자연의 이치에 반하지 않냐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p58). 주어진 조건이 아무리 보잘것없어도 엄연히 나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소중한 조건들이며 다만 이 조건 하에서 나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는 게 지금의 통념입니다. 그런데... 

이제 크리스퍼 기술 등을 써서 호조건으로 바꿔 놓는다면 그 역시도 인간 삶의 조건 개선, 발전으로 보아야 할지, 아니면 자연의 질서를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무모한 시도로 볼지는 현재로서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외모나 지능의 개량이 아니라 유전병, 신체 장애 등의 치료라면 이는 예외적으로 허용되어야 할까요? 허용과 금지의 기준 경계는 언제나 모호합니다. 만약 전면적으로 모든 게 허용된다 해도 한정된 자원을 분배할 때 누구한테 우선적으로 혜택을 줘야 할까요? 지불의사와 능력 기준이라면(=돈 많은 사람 위주라면) 아마 사회가 붕괴할 것입니다.    

베텔게우스는 항성 간의 크기 비교 짤방 같은 것 때문에라도 대중에 널리 알려진 별입니다. 이 베텔게우스 별 근처에 우연히 들른 이미영과 김양식에 대해 우주 검찰에서 곧 기소할 예정이라는 정보를 얻고 로봇 변호사(대리)가 등장하여 자기네 서비스를 이용할 것을 권하는 듯 촐싹거리는 투로 설명합니다(p110). 이 대목은 여러 모로 흥미로웠는데, 일단 우주 검찰 같은 게 따로 있어서 전체 질서를 관할하기는 한다는 거겠습니다. 지금 지구 같은 작은 별에도 질서가 하나로 세워지지 않아 나라 간 전쟁이 끊일 날이 없는데(단일 질서가 바람직한지 여부는 별개로 하더라도), 그 광활한 우주 한 구석에서 잘못하는 사람이 있으면 누가 잡아가기는 한다는 게... 

다음으로는 이런 사소한 개인의 범죄(?)까지도 누가 관찰하고 잡아내는 기술적 감시 시스템이 있다는 뜻이겠고요. 마지막으로 관(官)과 결탁하여 사건 있는 곳에 사설 구급이나 렉카, 혹은 흥신소처럼 한 발 먼저 찾아와 수익을 올리려는 업체가 있는 걸 보니 미래에도 자본주의가 잘만 작동하는구나 하는 점이었습니다. 여튼 여기서 저자가 강조하시려는 바는, 서로 다른 문명이 충돌 여지가 있을 때 과연 어느 편의 규범을 어느 정도까지 침투시키고 조정해야 할지 그 기준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겠고, 이는 먼 미래의 문제라기보다 지금 우리들이 겪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법의 무지(ignorance of the law)가 보호되지 않는다는 원칙은 미래에도 변함이 없나 봅니다.  

인공지능이 빚는 저작권 침해 역시 현재의 난제입니다. 인공지능의 핵심 원리는 바로 딥러닝인데 이 과정에서 엄청나게 많은 데이터를 학습시켜 그로부터 패턴을 뽑아내게 합니다. 그런데, 그 방대한 데이터는 어디서 나오겠습니까? 모두, 기성 작가들이나 화가들, 사진작가들의 표현력과 구도 포착 센스와 독특한 심미안으로 이룬 성과들인데, 이제 이것들을 기계(컴퓨터)에 투입하여 원료로 소모하고 그를 통해 기계적 창작을 대량으로 이룬 후 금전적 이익은 AI 운영 주체에 귀속된다면 이는 칼만 안 든 강도짓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실제로 몇 달 전에 일어난 미국 헐리웃 작가 파업도 이런 이유에서 일어났습니다. 물론 창의성이라고는 1도 없는 엉터리 작가라면 기계한테 일거리를 빼앗겨도 할 말이 없겠으나 진짜 작가의 진정한 비선형적 창작 의욕에마저 그 싹을 밟는다는 게 문제이겠습니다. 

기억조작은 아마 PKD의 <기억을 도매가로 팝니다>가 이 문제를 다룬 원조 SF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과연 기억이 조작될 수 있는지 기술적 가능성은 일단 논외로 하고, 기억은 결국 개인의 존엄과 정체성을 이루는 본질이라는 데 인식이 미치면 세상에 이처럼 윤리적으로 델리키트한 이슈가 또 있을까 싶습니다. 저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폴 버호벤의 영화 <토털 리콜>을 보면 이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됩니다. 나아가 생각을 조종당해 저지른 범죄의 처벌가능성을 논하는 대목도 매우 심오합니다. 이렇게 어려운 문제들인데 가상의 사연 속에서 캐릭터들로 하여금 다투고 옹호하는 형식에서 다루기 때문에 청소년들이 읽으면 아주 유익할 것 같습니다. 이슈가 50개나 되기 때문에 독자가 생각할 거리가 많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