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 문화로 쓴 세계사 - 하버드대 마틴 푸크너의 인류 문화 오디세이
마틴 푸크너 지음, 허진 옮김 / 어크로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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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모더니즘이라고 부르는 것의 전부는 아니더라도 대부분은이와 유사한 경험에서 탄생했다. 모더니즘은 종종 세계 다른 지역에 퍼진 서구적 현상으로 설명된다. 그러나 메리 맥닐이 파운드를 설득해 페놀로사가 일본의 여러 스승에게 도움받아 만든 공책을 넘기며 작업을 맡길 때 인식한 것은 달랐다. 바로 중간자들이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서로 다른 목적을 추구하면서 아이사와 서양 전통이 뒤섞인 합작품을 만들어낼 가능성이었다. - P382

고위 관리가 예측한 것처럼 불교는 계속 동쪽으로 흘러갔다.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는 그곳에서 차츰 기반을 잃고 오늘날의 아프가니스탄과 티베트 산악 지역으로 옮겨갔다가 중국으로, 다시 한국과 일본으로 그리고 전 세계로 퍼졌다. 고위 관리가 말하지 않았지만 그말에 함축된 의미는, 이 동쪽으로의 흐름을 가능하게 만든 것은 현장과 엔닌 같은 여행자들, 불교를 동쪽으로 가져가기 위해 서쪽으로 찾아간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 P161

우리는 문화를 평가할 때 독창성을 언제 어디서 처음 발명되었는지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원조라는 주장은 종종 우월성과 소유라는 미심쩍은 주장을 뒷받침할 때 사용된다. 그런 주장은 편리하게도 모든 것이 어딘가에서 왔음을 발굴되고 차용되고 옮겨지고 구매되고 도난당하고 기록되고 복사되고 종종 오해받는다는 사실을 잊는다. 무언가가 본래 어디서 나왔는지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것을 가지고 무엇을 하느냐이다. 문화는 거대한 재활용프로젝트이며, 우리는 다음에 사용될 때를 기다리며 그 유적을 보존하는 매개자에 불과하다. 문화에 소유자는 없다. 우리는 다만 다음세대에 문화를 물려줄 뿐이다. - P168

계몽주의의 새로운 언어는 무엇보다도 <미국 독립 선언>(1776)과프랑스의 <인간 및 시민의 권리 선언>(1789)에 뚜렷하게 드러난다. 두 선언은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자연권이라는 말을사용한다. 이제 특권은 없다. 자연권 사상이 두 혁명의 원인은 아니었고 오히려 발생하는 일들을 정당화하고 설명하고 이해하는 데 사용되었다. - P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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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4-03-05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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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 문화로 쓴 세계사 - 하버드대 마틴 푸크너의 인류 문화 오디세이
마틴 푸크너 지음, 허진 옮김 / 어크로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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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소카 왕은 새로운 소통 기술을 이용해백성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고, 그들의 행동과 생각에 영향을 끼치고자 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시작한 문화 교류는 점점 가속화되었고 아소카 왕은 이 교류망을 이용해 페르시아와 그리스에서 들여온 기술을 선별하고 인도의 과거와 결합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냈다. 문화적 기술을 새로운 목적에 맞게 변형시키고 뚜렷한 목적을 위해 특정한 방법으로 사용했던 것이다. - P94

문화는 종종 먼 과거와 직면하면서 발전한다. 인간은 네페르티티와 아케나톤처럼 과거를 거부하기도 하고, 그리스의 플라톤처럼 과거를 발명하기도 하고, 과거를 복원시켜 다시 이해하거나 새로운 환경에 맞춰 변형하기도 한다. 아소카 석주는 위의 예들과 다르지만 관련된 극적인 방식을 보여준다. 즉 피루즈 술탄이 그랬던 것처럼 이해하기 힘든 옛 시대의 파편을 발견해서 새로운 목적을 위해 사용하는것이다. 문화 접촉이 지리적으로 넓은 지역에 걸쳐 확산되면서 이해하지 못하는 문화유산을 발견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졌다. 그러한 파편을 거부하고 모르는 것은 모르는 대로 남겨둔 채 자기들이 아는것만으로 만족스럽게 지내기도 했으나 호기심을 가지고 최대한 이해하려고 애쓰는 경우가 더 많았다. 때로는 자기네 목적에 맞게 변형해서 이용하기도 했다. - P95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문화 접촉은 역동적인 과정을 촉발하여 인간이 상호작용하고 서로에게 이익을얻는 방식을 증대시켰다. - P96

비범한 아소카 왕과 그가 세운 석주에서 배워야 할 진정한 교훈은 이처럼 복잡한 파괴와 창조의 뒤얽힘을 인식하는 것이다. 아소카 석주는 세워지고, 버려지고, 오해받고, 잊히고, 재발견되고, 옮겨지고, 마침내 다시 해독되었다. 석주의 메시지가 영원히 잊히지 않기를. - P100

인도 조각상이 도착했을 때 폼페이는 활기차고 로마화된 도시였다. 지붕이 달린 아트리움 양식의 중앙 안뜰을 갖춘 집들이 많았다. 가장 붐비는 지역에는 술집과 식당이 있었는데 그중 한 곳에는 우아한 대리석 바가 있었다(2020년에 ‘스낵 바‘의 흔적이 새로 발굴되었다). 우리는 인도 조각상이 폼페이로의 기나긴 여정을 언제 끝냈는지 정확히 모르지만 79년 가을 전에 도착했다는 사실만은 안다. 바로 그때 화산이 폭발했기 때문이다. - P105

지진, 홍수, 화산은 파괴적이므로 역사적 보존이란 관점에서는 좋지 않다. 하지만 인간의 지속적 사용은 그러한 재난보다 더욱 철저히 파괴한다. 폼페이가 재에 파묻히지 않았다면 사람들이 그곳에서 계속 살았을 것이고, 기존 집들을 무너뜨리고 새 집을 짓느라 예술과 문화의 모든 흔적이 사라졌을 것이다. - P108

로마의 근간을 이루는 이야기가 된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는 문화 접목의 영광을, 그 가능성과 미묘한 방법을 보여준다. 문화접목은 패배나 열등함으로 인한 행동일 필요가 없다. 로마 문화의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이다. 테렌티우스와 플라우투스는 영향력 면에서 (19세기 초 그리스 비극이 부흥하여 다시 상연될 때까지) 몇백 년, 아니몇천 년 동안 그리스 극작가들의 그 어떤 작품보다도 뛰어난 희곡을썼다. 로마 건축가들은 그리스 모델을 바탕으로 새로운 건물과 사원 양식을 만들어냈고, 로마 조각가와 화가들도 마찬가지였다. 플루타르코스는 그리스인과 로마인을 한 쌍으로 묶어 그들이 얼마나 비슷한지 보여주는 위인전을 씀으로써 두 문화를 하나로 결합했다. - P122

오늘날 우리는 국가 통치 기술과 (도로에서 목욕탕에 이르는) 기반시설, 군사 조직, 정치적 통찰력 때문에 로마를 우러러본다. 그러나로마의 가장 놀라운 유산은 접목 기술이다. 사실 미국처럼 역사적·지리적으로 거리가 먼 문화들이 로마에서 영감을 찾으려 한 것은 로마가 그리스 문화를 접목시켰듯이 그들도 광대한 거리를 뛰어넘어 로마 문화를 접목시키고 문화 접촉이라는 로마의 유산에 간접적으로 경의를 표하는 행위였다. - P122

2세기에 불교가 중국에 일으킨 가장 중요한 혁신은 아마도 다르마, 환생, 열반의 교리가 아니라 이 교리를 수행하는 제도, 즉 승려 공동체였을 것이다. - P132

현장이 대표하는 것은 그가 번역가로서 한 일보다 중요하다. 그는(나중에 성지를 찾아 떠나는 기독교도들처럼) 수입된 문화를 쫓아서 그근원을 찾아간 사람을 대표한다. - P143

페놀로사는 과거의 물건을 발굴할 때 (또는 포장을 풀 때) 그가 가르치는 다윈이나 스펜서의 저작과는 다른 서양 사상에서 동기를 얻었다. 바로 과거를 다루는 새로운 과학이었다. 이를 위해 그는 도쿄미술학교와 도쿄제국박물관 설립을 돕는 등 과거에 독특하게 접근하는 19세기 제도를 일본에 도입했다. 페놀로사는 이와 비슷한 동력으로 국보 목록을 만들고 사원과 다락방이 보관한 작품을 찾아냈다. 한국 불상을 발견한 후로는 비슷한 작품을 더욱 열심히 찾아다녔다. 또한 페놀로사는 사원과 예술품 보존을 위한 법률의 초안 작성을 도왔다. 일본 황제는 과거를 다루는 새로운 과학을 인정하면서 페놀로사 자신의 설명에 따르면 그를 이렇게 칭찬했다. "당신은 우리 국민들에게 우리 예술을 가르쳤소. 고국에 돌아가면 그들에게도 가르쳐주시오. " - P375

정치적 해방을 통해서든, 산업화를 통해서든, 외세를 통해서든 앞으로나아가는 진보의 궤적을 밟고 있다고 생각하는 수많은 나라에서 과거를 복원하여 박물관이나 도서관에 전시했고, 새로운 과학을 통해과거가 체제 안으로 편입되고 있었다. 모더니즘은 이러한 문화 저장제도에 반대하는 대신 산업의 진보와 협력했다. 예술은 더 이상 전통의 편이 아니긴 바 기게 하께 진보의 편이었다. - P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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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의 사물들
장석주 지음 / 동녘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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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과 수고로 지친 몸을 소파에 전적으로 맡길 때, 소파는 이 몸뚱이를 삼켰다가직립활동에서 생긴 모든 가벼운 피로들과 경미한우울들을 빨아먹고 다시 뱉어낸다. -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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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기술로 인해 문화 콘텐츠가 풍성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오래된 파일 형식, 웹사이트, 데이터베이스를 읽을 수 없게 되는 속도 또한 가공할 정도로 빨라졌기에 과연 우리가 조상들보다 과거를정말로 잘 보존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문화의 저장과 배포기술은 바뀌었지만 문화가 작용하는 방식, 즉 저장되고 전파되고 교환되고 복원되는 방식을 지배하는 법칙은 변하지 않았다. 인류의 거의 모든 문화가 끊임없이 서로 접촉하는 세상에서도 보존과 파괴, 상실과 복구 오류와 적응의 상호작용은 줄어들지 않고 계속된다. 우리는 과거와 그 과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두고, 누가 문화를 소유하고 그 문화에 접근할 수 있는지를 두고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싸운다. - P25

요셉이 비축을 활용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집트가 저장 혁명에서 이익을 본 것은 역사적 사실이기 때문이다. 저장 혁명의 바탕에는농업이 있다. 인간은 이를 통해 도시에 정착하고 붐비는 공간에서 살아갈 수 있었다. 수자원뿐 아니라 영양분 가득한 범람원까지 제공하는 나일강은 이러한 새로운 생활 방식에 완벽했다. - P51

목동들과 이집트 군주의 복잡한 관계에 대한유일한 기록은 목동들이 가나안에 정착하여 도시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작은 왕국을 건설한 뒤 후대에 남긴 글에서만 찾을 수 있다. 그글이 바로 히브리 성경이다. - P52

우리는 과거를 이용하면서 우리의 필요와 편견에 따라 그것을 끊임없이 세웠다가 무너뜨린다. - P56

그리스를 포함해 이집트만큼 운이 좋지 못한 문화권에서는 화재와 홍수가 발생했지만 이집트는 두 자연재해에서 안전했고 나일강의 주기적인 범람을 잘 통제했으며 오히려 범람이 농업에 이로웠다. 안정적 환경이라는 축복을 받은 이집트는 장수하는 문화를 만들어냈다. 이집트에 비하면 그리스는 후발 주자이자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았다. - P62

페니키아 (현재의 레바논) 무역 상인들은 소리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문자 체계를 그리스에 전해 주었다. 그 뒤 몇백 년이 흐르면서 다른 문자 체계보다 훨씬 간편한 이 알파벳은 혁신적인 것으로 판명되었다. 기존 문자 체계는 전문 필경사만의 영역이었으나 새로운 알파벳이 들어오면서 읽기와 쓰기를 훨씬 빨리 배울 수 있게 되자 식자율이 높은 시대가 시작되었다. - P63

플라톤은 종종 고전 그리스를 대표하는 사람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사실 플라톤은 예외적 인물로 이집트를 찬양했으며 오래된 문자 체계와 사원들, 사제들을 갈망했다. 그는 이집트를 찬양함으로써 자신의 문화를 공격했다. -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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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 문화로 쓴 세계사 - 하버드대 마틴 푸크너의 인류 문화 오디세이
마틴 푸크너 지음, 허진 옮김 / 어크로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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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등장하는 이들의 업적으로부터 새로운 문화 이야기가 탄생한다. 그것은 시간과 장소라는 제약을 뛰어넘어 서로 놀라울 정도로 연결되어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끼치는 이야기이다. 항상 아름다운 이야기는 아니며 아름답게 그려서도 안 되지만 이것이 우리가 가진 유일한 이야기다. 문화를 만드는 종으로서 인간의 역사, 바로 우리의 이야기다. - P12

물론 인간 역시 느린 진화 과정을 겪는다. 하지만 다른 동물과 달리 우리는 또 다른 진화 과정을, 언어와 문화 기술을 바탕으로 하는과정을 만들어냈다. 두 번째 과정은 유전자 변이가 일어날 때까지 기다릴 필요 없이 정보와 기술을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 능력에 달쳐 있다. - P15

두개골, 신화적 인물, 추상적 상징은 이 동굴이 의식, 빛의 효과, 이야기, 음악과 관련된 특별한 경험의 무대였음을 암시한다. - P17

동굴은 인간이 의미를 만드는 장소였다. 그것은 방법에 대한 지식 노하우 know-how가 아니라 이유에 대한 지식 노와이 know-why라고 부를 만한 것이었다. -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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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4-02-29 11: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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