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여왕이 던진 이 경제적 승부수는 숙적 프랑스의 자금줄에 압박을 가하는 동시에 포르투갈이라는 확실한 우군을 확보하려는 전략적 선택이었다. 1703년의 메수엔 조약은 전쟁 수행을 뒷받침하는 경제적 동맹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 P223
이때 확보한 ‘원래의 키안티‘ 영토는 오늘날 ‘키안티 클라시코(Chianti Classico)‘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그래서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대표 와인인 키안티 클라시코 와인 병목에는 검은 수탉(Gallo Nero) 문양이 그려져 있다. 이것은 약 800년 전 피렌체가 치열한 지략 끝에 쟁취한 정통 영토의 증표이자 자부심이다. - P232
군대들은 상대 영주가 다시 일어서지 못하도록 수십 년 된포도나무를 고의로 베어버렸다. 곡물은 한 해 농사를 망쳐도 이듬해 다시 심으면 수확할 수 있지만, 포도나무는 한 번 베어지면 다시 심어 고품질 와인을 생산하기까지 최소 5~10년 이상의 시간이필요하다. 30년 동안 이 파괴가 반복되면서 찬란했던 라인강과모젤강의 유서 깊은 포도밭들은 거대한 잿더미로 변했다. 결국 독일 와인 산업은 회복에 긴 시간을 투여하는 큰 피해를 입었고, 영주들은 당장 배를 채울 보리와 관리가 쉬운 맥주로 고개를 돌리며독일은 점차 맥주의 나라라는 인식이 강해지게 되었다. - P241
무엇보다 프랑스 서남부의 샤랑트(Charente) 강 유역에서는 오늘날 세계 최고의 증류주로 꼽히는 코냑(Cognac)의 기틀이 마련되고 있었다. 당시 이 지역에서 생산되던 와인은 산도가 높고 알코올 도수가 낮아 장거리 해상 운송 중 산화되어 변질되기 일쑤였다. 이러한 물류상의 치명적인 결함을 해결하기 위해 네덜란드 상인들이 도입한 해결책은 바로 와인을 증류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네덜란드어로 ‘태운 와인‘을 뜻하는 브란데바인(Brandewijn), 즉 브랜디의 시초가 되는 증류주를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했다. - P243
결과적으로 부르고뉴가 왕의 식탁을 차지했다면, 샴페인은베르사유의 밤잔치와 유럽 귀족들의 화려한 파티를 공략했다. 특히 샴페인의 톡 쏘는 기포는 사교계에서 "기분을 들뜨게 하고 여성을 아름답게 만드는 술"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하며, 왕실의 엄격한 격식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던 젊은 귀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는 샴페인이 와인을 넘어 ‘럭셔리 브랜드‘로 진화하는 신의한 수가 되었다. - P254
보르도는 브랜드 중심의 규모의 경제를 달성했고, 부르고뉴는 토지 자체의 가치를 중시하는 소규모 생산자 중심의구조를 유지하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오늘날 두 지역의 차이는 동일한 법적 제약 아래에서 자본주의가 발달했던 보르도와 농촌적 특성이 강했던 부르고뉴가 각자의 시장 구조와 자본 접근성을 어떻게 활용했는가에따른 결과다. - P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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