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스무 번
편혜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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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는 아니지만 일부는 거짓이라고. 이진수가 자신에 대한 상관들의 처사를 바로 납득해서였다. 그는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이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인지를 잘 알고 있는것 같았다. 그것 말고 다른 이유도 있다는 뜻이었다.

_ 홀리데이 홈 중 - P66

가까이 있으면 거리를 두고 간혹은 적개심을 가지고 서로를 살피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친구였다.

_ 리코더 중 - P100

함께 살아났다는 것에 감동받은 적 없지만 적어도 안심은 됐다.

_ 리코더 중 -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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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의 황홀 - 온 세상을 끌어들이는 한국의 정원
윤광준 지음 / 아트레이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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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쇄원과 명옥헌에 드나들었던 사람도달랐을 것 같다. 고고한 선비와 예술가들이 소쇄원을 찾았다면, 털털한 성품의 사람들이 걸진 목소리로 창을 하는 곳이 명옥헌이 아닐까. 공간의 분위기가 오가는 사람들의 유형을 결정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다.

_ 담양 명옥헌 중 - P263

관가정의 마당은 비어 있어 채워지는 게 많다. 바람 불어 날리는흙먼지와 지저귀는 새소리도 햇빛과 달빛도 마당 안에 가득 찬다. 열어놓기만 하면 채워지는 하루와 계절의 볼거리, 들을거리로 지루할 틈이 없다. 관가정 누마루에 앉아 누리는 풍요란 마당을 비워놓아 생기는 일이다.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가 말한 모자라는 것이 넘치는 것이라는 Less is more‘를 조선시대에 이미 실천하고 있었다.

_ 경주 관가정 중 - P271

서석은 자연석이다. 땅을 파니 돌이 나와 연못을 만들었을 뿐이다. 60여 개의 조각으로 이어진 돌은 형태와 크기가 각기 다르다. 그중 특징적인 돌 19개에 이름을 붙였다. 문외한이라도 돌을 들여다보고 있자면 ~처럼 생겼다는 생각이 든다. 경정의 주인은 돌에서 성리학적 질서를 발견했을 것이다. 이름을 붙이고 의미화시키니 돌은 서석이 되었다. 이름을 불러주기 전엔 꽃이 아니라 했던 김춘수 시인의 ‘꽃‘을 서석지에서 새삼 떠올리게 된다.

_ 영양 경정 중 - P277

여름의 서석지는 무성한 연잎으로 뒤덮여 있어 연못인지 모를 정도다. 새잎 돋는봄에 찾은 서석지에서 전모를 보게 됐다. 자그마한 서석지를 품은 경정의 크기 또한 크지 않다. 사우단 뒤의 주일재까지 포함한 면적이다. 경정과 서석지가 작아 보이지 않는 건 차경된 뒷산이 시선을 확장시키기 때문이다. 우리 정원은 배경된 자연과 합쳐진 크기로 파악해야 옳다.

영양 경정 중 - P280

초간정은 냇가 바윗돌 위에 지어졌다. 물에 더 다가서고 오묘한 기암의 생김새를 잘 보기위해서다. 얻는 게 있으면 버릴 것도 있는 법이다. 지형 탓에 정자 앞쪽 먼 산의 차경을 포기하고 가까운 물과 돌에 집중했다.

_ 예천 초간정 중 - P285

초간정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병암정이 있다. 초간정을 먼저 들렀다면 규모와 분위기가 달라 당혹감을 느끼게 될지 모른다. 직벽의 암벽 위에 서 있는 정자는 임금의 대궐집에 비해도 꿀리지 않는다. 도대체 이렇게 큰 정자가 시골마을에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여기에 얽힌 이야기를 알면 묘한 기분에 휩싸이게 된다. 사람은 가도 정원은 남아 푸르른 생명력을 이어간다는 점에서..

_ 예천 병암정 중 - P296

서로의 시선을 거두어버리는 방법은 크고 높은 건물로 위압의상징물을 만드는 거였다. 저곳은 다가서면 안 되는 곳으로 보이게해야 하니까. 반대로 자신도 바깥에 관심 없음을 드러내야 했다. 높은 담을 세우는 일이다. 담장은 병암정 전체를 둘러싸고 있다. 오가는 사람 하나 없는 절벽 위에서 담장을 두르고 그 안에서 해야 할 일은 무엇이었을까.

_ 예천 병암정 중 - P302

작지 않은 크기의 연못과 십이봉이어울린 압도감도 다른 곳에선 보기 힘들다. 나무는 제자리를 잡아 안정되고고목에서 피는 꽃의 풍성함이 조화되어사람을 안심시킨다. 흙산인 십이봉은주변과 구분되지 않을 만큼 동화되었다. 백 년의 세월이 촘촘하게 메꿔준 자연의 디테일 덕분이다. 이곳을 처음 찾았다면 사람의 손길이 느껴지지 않는자연스러움에 놀란다. 용호정원에선 유독 행동이 느려지는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_ 진주 용호정원 중 - P312

낙동강과 멀리 이어진 산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악양루. 기름지고 넉넉한 땅을 일구기 위해 둑을 쌓은 함안 사람들이다. 치수를 위한 노력은 고됐지만 풍광은 풍요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보기만 해도 배부를 것 같은 차경이다.

_ 함안 억양루 중 - P319

악양루는 강 건너편에서 봐도 아름답다. 습지에 핀 꽃밭과 이어진 산세가 유난히 부드럽다. 산 능선은 강을 향해 머리 숙였고 강은 산을 머금어 안정된다. 뒷산이 다시 고개 들어 상승의 움직임으로 이어지는 중첩된 풍경은 선의 예술 같다. 우리 산하가 아니라면 어디서 이런 풍경과 마주칠 수 있을까. 산속의 낮은 곳에 악양루가 들어섰다는 것만으로 풍경의 의미는 각별해진다.

_ 함안 악양루 중 - P322

갖추어야 할 정자의 요소는 다 갖춘 거연정. 산 좋지 물 좋지 정자까지 훌륭하지. 요즘엔 와이파이도 잘 터진다. 이곳에 정자를 지은 이도 알았을 것이다. 책 읽으며 이토록 멋진 산수를 즐기는데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할까라고. 서양의 키케로도 서재와 정원을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호사로 꼽았다.

_ 함양 거연정 중 - P327

곧게 낸 길 양편에 연못을 둔 임대정의 입구는 독특하다. 길 위에 돋은 풀들은 마치 양탄자 같은 색깔과 질감으로 다가온다. 담으로 경계를 두르지 않은 원림이란 성격이 중요하다. 의도적인 공간구획으로 동선을 유도하고 시선을 이끄는 장치를 두었다. 딱딱한 정형에 얽매이지 않는 호남 정원의 독특함이다.

_ 화순 임대정 원림 중 - P332

정자 앞에도 작은 연못이 있다. 우리 정원에서 연못은 만드는 방식에 따라 구분하는데 석축을 쌓아 물을 가둔 연못은 당이고 연못을 파서 물을 채운 것은 지가 된다. 위쪽의 연못은 사각으로석축을 쌓고 원형의 가산까지 들인 당이다. 천원지방의 원리를그대로 적용한 반듯한 연못이다. 연못가에 여섯 개의 돌을 세워 정자가 세워진 이유를 드러낸다. 연꽃 향은 멀리 갈수록 더욱 맑아지니 이 향기를 붙잡고 싶다는 내용이다. 마음을 닦아 스스로 돌아보는 다짐도 잊지 않았다. 고매한 삶의 덕목을 수시로 확인하고 실천하기 위한 증표로 삼았다는 걸 알 수 있다.

_ 화순 임대정 원림 중 - P336

한국인이 말하는 절경의 조건을 다 갖추었다는 침수정. 이곳을 찾아낸 손성을 또한 경치를 감탄하며 건너편위에 각자까지 해놓을 정도였다. 맑은 물이 소와 폭포를이루고 흰 모래와 기암이 어울렸으며 직벽으로 선 석화암 산은 그 자체로 절경이 되었다. 밖에서 보는 것보다침수정 안에서 보는 경치는 더 아름답다. 아쉬운 점은 평소문이 닫혀 있다는 점이다. 정자는 많은 사람들이 즐길수 있게 했으면 좋겠다. 국토의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이들이 늘어나게 하는 일이니까.

_ 영덕 침수정 중 - P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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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의 황홀 - 온 세상을 끌어들이는 한국의 정원
윤광준 지음 / 아트레이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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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화정 석축의 아름다움을 스쳐버리면 안 된다. 납작돌만을 써서 쌓은 2단 석축의 안정감은 각별하다. 전라남도 화순에 있는 운주사의 석탑에서도 이런 느낌을 받은 적 있다. 돌의질감과 색깔이 중요하다. 만든 이는 석축 쌓는 돌의 재질과 방법도 허투루 여기지 않은 미감을 지녔음이 분명하다.

_ 보성 열화정 중 - P223

체화정 양옆엔 배롱나무 고목 두 그루가 있다. 형제의 우의를 다지기 위해 만든 정원이니 서로의 상징으로 다가온다. 붉은 배롱나무꽃으로 둘러싸인 체화정은 여름 한 철 화려함을 뽐낸다.

_ 안동 체화정 중 - P231

만휴정 앞의 송암폭포가 얼어붙은 겨울에 이곳을 찾았다. 여름에 가보니 이런 풍경은 마주칠 수 없었다. 주변 숲의 울창함에 파묻혀버려서다. 만휴정은 우리 정원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폭포가 있는 멋진 경치 속에 사람이 들어가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만휴정에선 넉넉해진다. 산과 물, 하늘이 몽땅 내 것 같은 시선의 포만감을 느끼게 될 테니까.

_ 안동 만휴정 중 - P238

강을 멀리 돌아 들어와야 고산정에 닿는다. 누마루에 앉으면 이어지는 청량산과 낙동강이어우러진 풍경을 만든다. 바깥에 있는 이들은 절경 속의 고산정을 보고 안에 있는 이는 넉넉하지만 소박한 보통 풍경을 본다.

_ 안동 고산정 중 - P250

배롱나무꽃 만발한 명옥헌에 때맞춰 들른다는 건 거의 행운에 가깝다. "바쁘다 바빠!"를입에 달고 다니는 현대인에게 시간의 여유가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나도 열 번 넘게 명옥헌을 찾았지만 배롱나무꽃 핀 모습을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사진 속의 명목헌도 만개된 상태가 아니다. 온 산은 붉은색으로 넘실대고 내는 핏빛으로 흐른다는 소문은 언제 확인해볼 수 있을까.

_ 담양 명옥헌 중 - P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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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스무 번
편혜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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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을 둘러보며 아내가 물었다. 아내는 그간 많은 걸 잃어왔는데 믿음이나 신뢰, 약속 같은 것만이 아니었다. 유머와 여유도 잃었다.


_ 어쩌면 스무 번 중 -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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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의 황홀 - 온 세상을 끌어들이는 한국의 정원
윤광준 지음 / 아트레이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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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선정은 우리 정원의 특징을 말할 때 제일 먼저 등장하는 ‘자연속으로 들어가 하나가 된다‘의 좋은 사례다. 와선정 주위를 살펴보면 인간이 자연 속으로 어떻게 들어갈 수 있는지가 보인다. 원래부터 있던 숲에 인간이 거처할 공간만 있으면 되는 거였다. 시간이 흐르면 인간의 거처조차 자연의 일부로 바뀌는 동화의 과정을 거친다. 이런 상태가 되면 자연이 인간인지 인간이 자연인지 구분되지 않을 때가 있다.

_ 봉화 와선정 중 - P178

무기연당 담장 밖은 여느 마을과 다를 게 없다. 전선이 어지럽게 지나가고 주변 공단의 공장 건물이 보이기도 한다. 마을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는 무기연당은 그래서 보석과 같은 정원이 됐다. 숨막힐 듯 아름다운 빗속의 무기연당을 본 이후 이곳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에겐 소나무 한 그루만으로 정원을 완결하는 능력이 있다

_ 함안 무기연당 중 - P187

소쇄원은 생각보다 돌아볼 권역이 많다. 영화로 치면 몇 부로 나누어지는 셈이다. 소쇄원에 들어오는 진입부에서 자연암반 위를 흐르는 시냇물이 있는 아랫부분 담장 밑을 뚫어 물이 들어오게 한 끝 부분이 1부다. 인간의 공간인 제월당에서 마당을 거쳐 광풍각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2부가 된다. 나는 인간의공간인 제월당에서 보이는 소쇄원 전체 모습과 차경된 산이 좋다. 산과 하늘, 흐르는 시냇물까지 다 가진 넉넉한 사람이 된 듯한 느낌 때문이다. 달빛 내리는 가을밤 이곳 누마루에서 들었던 가야금 연주는 평생 잊지 못할 듯하다.

_ 담양 소쇄원 중 - P195

소쇄원은 타협 없는 성품으로 인간의 바른길을 찾으려는 지식인의 현실 도피처였다. 정원의 역할과 기능이 무엇인지 짐작할 대목이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자신의 수양과 기억의 환기를 위해 이곳을 만들었을 뿐이다. 양산보가 꿈꾸었던 이상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설명하기 어려운 관념은 직설보다 상징적은유법으로 전달하는 게 효과적이다. 대나무 숲, 나무와 풀, 바위, 흐르는 물과 들리는 소리까지.. 계절이 바뀌고 날씨와 기온에 따라 달라지는 하루하루의 인상은 상징을 입고 더 큰 의미로 전달되었을 것이다.

_ 담양 소쇄원 중 - P200

《택리지>에서 이중환은 이렇게 말했다. "산수가 없으면 감정을순화하지 못하여 사람이 거칠어진다. 산수란 멀리서 보면 큰 포부를 갖게 해서 인물을 만들어내고 가까이서 보면 마음이 깨끗해지고 즐거워진다." 서원을 하나같이 산수 경치 빼어난 곳에 들어서게한 이유다. 그 가운데서 으뜸이 병산서원이라는데 아니라고 할 사람은 없을 듯하다.

_ 안동 만대루 중 - P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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