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8월
평점 :
<소설이 영화보다 더 공감적일 때>
영상의 시대이다. 텍스트는 지루하고 구식이다. 30년만에 지하철 광경을 보면 책이나 신문에서 유튜브나 넥플릭스가 대체해버렸다.
아래로 내려가는 텍스트의 시대에 최은영 작가의 소설은 영상과 경쟁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순간적인 임팩트가 강한 영상에서 텍스트를 읽으면서 되씹으며 무엇을 느낄까? 잔잔한 공감이면서 우리 주위에 누군가의 모습을 그리고 있기 때문아닐까?
이 소설들을 읽어가다보면, 연예인이나 재벌2~3세의 환타지 이야기가 아니라 나 자신이거나 우리 가족의 모습이거나 주변 지인 상황이었다. 현실 모면이거나 극복이 아닌 현실 상황을 마주하는 텍스트에서 출발한다.
7편의 중•단편 소설로 구성되어 있다. 소설의 화자들은 다음과 같다. 은행 비정규직 출신의 늦깍이 여성 대학원생(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학보사 출신의 현직 여성 기자(몫), 방송 pd 준비하다가 건설사 인턴 여직원(일년), 현재 교도소에 복역중인 이모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여조카 (답신), 텃밭을 가꾼 삼촌을 기억하는 여성 조카 (파종), 함께 산 나이 많은 이모를 기억하는 여성 파일롯 (이모에게), 산업화 시기 봉건 잔재가 관통한 엄마 이야기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
여성들의 처지를 이야기하되, 과장되거나 복수를 말하지 않는다. 그 대신 그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복기한다. 그래서 소설이기보다는 보여주는 논픽션에 가깝다. 여성 입장에서 보면, 내 이야기를 이렇게 하다니…나와 주변 이야기를 들어주는 느낌이다. 책띠에 <더 진실하기를, 더 치열하기를, 더 용기 있기를> 소개되어 있다. 누군가에게는 진실을, 또 누군가에게는 치열을,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용기를 말하고 있다. 7편의 소설에서 느껴보셔라.
소설 <몫>에서 보면, 3명과 1명 남자선배가 나온다. 배울 것이 많은 동기와 함께한 집회에서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전단지(고 윤금이 사건-시신공개)에 충격을 받는다. 과거나 현재나 극단주의를 배격하고자 하는 작가의 마음이 전해진다.
결국 일정한 거리를 유지할 수 밖에 없는 관계는 거의 모든 소설에서 연락처를 교환하지 않는다. 고독은 현대인이 살아가는 마음인가?
여러편에 남성들이 나온다. 소설 <이모에게>에서 나온 아빠, <편지>에 나온 형부,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에 나온 남성들을 생각이나 행위를 보면 분노가 일으킨다. 반면 <몫>에서 학보사 남자 선배의 모습에서 가식적인 모습도, 무엇보다 <텃밭>에는 마음이 따스한 삼촌도 나온다.
끝으로, 최은영 소설가와 약 15년 정도 나이 차이가 나는데, 소설적 장소를 공유하는 재미 - 지금은 사라진 홍보관 건물, 극회 옆 깡통-도 잃을 수 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최은영 소설을 읽는데 고개를 끄덕이거나 코끝이 찡하거나 눈물을 보일 것이다. 그 여운이 길다. 그렇게 텍스트는 살아있다.
엽서가 한장 들어있다.
‘더 가보고 싶었다’ 그녀는 말했다.
이런 문구가 <아픔이 길이 되려면>의 저자 김승섭 교수의 서문에 나온다. 외롭고 두렵지만, 생각한 바를 묵묵히 걸어가는 이 시대의 청춘에게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