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주로에 비행기가 닿을 때면 발생하는 통상적인 충격을 나는 기다리고 있다. 그것이 바로 현재다." - P10
"21세기 한국 사회는 불시착중이며, 이제 발생할 충격을 나는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현재다." - P12
안이한 언어와게으른 상상력에 의존해온 기존 이해 방식의 실패다. 이제 한국을 다시 생각할 때가 왔다. 한국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다시 숙고할 때가 왔다. 한국을 이해할 언어를 새롭게 발명할 때가 왔다. 이 책이 그러기 위한 나의 소박한 첫걸음이기를, 언젠가 쓰일 한국사상사가 그 마지막 걸음이기를 바란다. - P15
이처럼 한국의 정체성에는 아주 일찍부터이주, 식민, 제국의 시선이 깊게 드리워져 있다. 한국의 정체성은 바로 그런 시선들과 길항하며 전개되었다. 단군신화는 제국을 의식한 정치신학이다.
_ 홍익인간이라니 중 - P26
새해 결심은 결국 미래의 자신을 창조하는 행위다. 작년과는 다른 올해의 나를 창조하려는 행위가 바로 새해 결심이다.
_ 단군신화를 생각한다 중 - P30
박제상의 부인이 자신의 참담함을 정말 돌로 남겼다면, 그 돌은 "바르게 살자"처럼 명랑(?)하지 않고, 겸재 정선의 그림이나 안젤름 키퍼(Anselm Kiefer)의 그림처럼 어둡고 침울할 것이다. 그 돌은 충성심이나 절개보다는 화해하기 어려운 가치의 충돌, 그리고 그 충돌에서 희생된 인간을 상징할 것이다.
_ 역사책을 다시 읽는다 중 - P48
그는 죽었지만 우리 가슴에 영원히 살아 있을 거라고 말할 때, 혹은 어떤 나쁜기억을 머리에서 지우고 싶어 머리채를 흔들 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하나의 대상에 깃든 두 개의 존재를 의식하고 있다.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망각할 것인가? 시공을 넘어 지속되는 한국이란 공동체는 이선택적 기억과 망각의 결과다.
_ 왕의 두 신체 중 - P65
정조의 말을 통해 그 많은 사찰은 다 나름대로 국가에 필요한 존재들이었기에 남아 있었다고 추측해볼 수 있다. 아무리 이데올로기적으로 억불(佛)을 외쳐도 현실적 필요가 있으면 국가와 종교는 공조한다는 사실을 여기서 새삼 확인할 수 있다.
_ 역사 속의 불교 중 - P73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 인간을 정치체에 비유한 것은, 일견 조화로워 보이는 인간이나 사회에도 존재의 분열이 있다는 것, 인간의 두뇌와 위장은 항상 사이가 좋은 편은 아니라는 것, 오른손에게 해로운 일을 왼손이 저지르기도 한다는 것, 계급 간, 지역 간, 젠더 간에는 갈등이 있기 마련이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그 분열을 재조정하는 것이 바로 정치다. 존재의 분열을 인정하는 한 정치는 불가피하고, 정치를 긍정하는 한 존재의 분열을 인정해야 한다.
_ 성군은 없다 중 - P80
유교랜드는 실제의 나라, 실제의 한국 전체가 유교랜드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안동에 있는 것이 아닐까. 꼭 과거에 존재했던 문화라기보다는 현대 한국이 발명한 ‘유교‘의 랜드.
_ 유교랜드 중 - P98
미셸 푸코는 쿠데타 상황에서 국가이성은 "법 자체"에 명령한다고 말했다. 법을 어기고 지키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권위 자체에 도전하는 것이 쿠데타의 본질이다.
_ <서울의 봄>과 쿠데타 중 - P137
법이란 사전 재가를 목표로 한다. 어떤 일이 준법이고 어떤 일이 위법인지 사전에 공포하고, 그것을 따진다. 반면, 쿠데타는 사후 재가의 성격을 띤다. 어떤 일이 준법이고 위법인지를 소급해서라도 결정해버릴 수 있는 힘이 쿠데타에 있다. 쿠데타가 목표로 하는 것은 법을 초월하고 법을 시녀로 부리겠다는 것이므로, 사후 재가조차 가능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최규하가 계엄사령관의 체포를 재가하면서 그것이 사후 재가임을 분명히 하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 P139
《소년이 온다>의 마지막 부분, 죽은 동호의 어린 시절을 엄마는 이렇게 회상한다. 여덟살 묵었을 때 네가 그랬는디. 난 여름은 싫지만 여름밤이 좋아." (191쪽) 그렇게 말한 동호에게 나는 이렇게 화답해본다. "난 인간은 싫지만 인간의 영혼이 좋아." 영혼은 밤처럼 서늘한 것이니까. 여름밤이 없으면 여름을 견딜 수 없고, 영혼이 없으면 인간을 견딜 수 없으니까.
_ 소년이 온다 중 - P149
근대화 과정에서는 많은 일이 일어난다. 사람들과 물자의 교류, 경제 여건의 개선, 외래 정치제도의 수입, 새로운 부유층의 등장 등등. 그것들은 불가피한 일들이지만, 개인과 사회의정신적 성숙이 따르지 않는다면, 그 근대화는 결국 공허한 것이다. 그 근대화의 결과, 정신적 허허벌판이 된 ‘선진국‘에 한국인이 서 있다.
_ 이것이 한국의 근대화다 중 - P174
중졸 학력 김장하의 견결한 삶은 고학력 정치인들이 보여준 정치적 퇴행과 선명하게 대조되는 안티테제다. 머슴 출신 김장하의 헌신적 삶은 화려한 학생운동 경력을 가진 일부정치인들이 불러온 환멸에 맞서는 안티테제다. 지방에서 평생을 보낸 김장하의 일관된 삶은 수도권 정치인들의 이합집산에 대한 안티테제다. 시민운동으로 시종한 김장하의 삶은 시민운동 경력을 발판으로 정계에 투신한 정치인들에 대한 안티테제다.
_ 환멸에 맞서는 안티테제 중 - P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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