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열심히 일하고 낭비하지 않는다면 가능할 거라는 희망이 있었다. 그런 희망이라면 숭배할 가치가 있다고 믿었다. 주말이면 늦잠을 자고, 오후 햇살을 받으며 천천히 산책을 하고, 영화관에 가서 마음에 드는 영화를 보는 동안 손을 더듬어 잡기도하는 시간을 누릴 수 있을 거라는 희망. 그리고 언젠가는, 우리를 닮은 아이가 잠투정을 하느라 칭얼거릴 때 상대가 깰까봐 서둘러 아이를 안고 달래는 날이 오리라는 희미한 기대도.
_ 최소한의 너 중 - P46
교차점을 이루었을 때 우리는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 사들이고 또 사들이고, 소비하고 더 소비하도록 부추기는 일이었다. 필요를 발명해내는 생산업체와 놀라운 발명품들을 퍼뜨리는 유통업체의 구미에 맞춰 인간들의 탐욕을 부추겼다. 당신은구매할 수 있다고 용기를 불어넣었고 구매해야 뒤처지지 않는다고 조바심을 자극했다. 우리는 일을 썩 잘했다. 달콤하게 유혹할 줄 알았고 적당히 위협할 줄 알았다. 우리 또한 유혹에 약했고 위협에 쉽게 굴복하는 쪽이어서 그들의 속성을 아주 잘알았으니까. 욕망이라면 나도 만만치 않았다. 그래, 그랬다. 나는 성취하고 싶었고 잘살고 싶었다. 너와 함께했던 한 시절,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불안과 의심을 봉인해두고 외면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 P48
언제부터였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네가 없는 날들의 나는 나를 해치고 싶었다. 너와 함께 ‘출세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던 나를 혐오하면서, 더는 그렇게 살 수 없게 된 나를 동시에 증오하면서, 아무것도 아닌 내가 되고 싶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면, 이 말은 아무래도 모순이지만, 그런 마음조차 아무것도 아니게 될 테니까. - P59
그것이 너의 선언이었다. 네 몸 하나만. 네 몸 바깥의 어떤것에도 너는 책임이 없다고 말했다. 네가 소유하는 모든 재화에 대해, 제공받는 모든 서비스에 대해 너는 화폐를 치렀으므로 더는 책임이 없다고 단언했다. 나는, 과연, 아이를, 책임지려는 것일까? -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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