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 테이블에서 태어난 소설'이라는 작가의 말을 처음엔 못 알아들었다. 부엌 테이블이 작가가 글이 잘 써지는 장소로구나, 정도로 생각하다가 이 작품의 성공을 계기로 전업작가가 되면서 부엌 테이블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는 부분을 읽고 아차, 했다. 부엌 테이블은 전업작가가 아니라는 말이고, 생계에 보탬이 되는 이러저러한 일들을 마친 뒤 고요한 시간인 밤 시간을 이용해서 썼다는 말의 대명사격 의미였다. 글을 쓰고 싶다고 마음만 먹고서는 직장 때문에 시간이 없니, 돌봐야 될 가족 때문에 시간이 없니, 건강하지 못해 시간이 없니 등의 핑계를 무색하게 만드는 하루키의 한때의 공간, 부엌 테이블. 난 작가가 꿈도 아니면서 괜히 하루키의 성실함에 부끄러움을 느꼈고, 하루키의 열정에 부러움이 생겼다. 그게 무엇이 되었든지간에 너무나도 하고 싶은 그 무언가를 하고 있는 순간은 얼마나 소중한 시간들일까. 아직 그것을 찾지 못한 나로서는 그 부러움이 클 수 밖에 없다. 다만 이렇게 퇴근 후 피곤하고 지친 시간에 쉬지 않고, 책을 읽고 이렇게 글을 올리는 것으로 그 부러움을 조금이라도 줄일 뿐이다.
 
소설이 유명세를 타고나서 시간이 좀 흐르고나면  미흡해보이는 부분이 생기기도 하나보다. 하루키는 몇 작품에 대해서는 손을 댔지만 첫 작품과 두번째 작품인 '1973년의 핀볼'은 전혀 손질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왜냐면, '이것이 당시의 나였고, 결국은 시간이 흘러도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남기고서. 하루키가 던지는 이런 직관적인 말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 하루키가 하는 말들은 그에게도 통하고, 나에게도 통하며, 하루키의 글에도 통하고, 나의 일상에도, 그리고 우리들의 일상에도 통하는 말이 된다. 시간이 흘러 나의 모자란 부분이 보여도 보이는 그대로 놔둘 수 있는 그런 마음의 관용을 하루키는 알고 실행한 것이다. 하루키의 작품을 읽으면서 소설 속에서, 혹은 하루키의 말에서 나오는 이런 말들을 건지기 위해 나는 하루키의 작품을 하나씩 읽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불완전한 자신의 존재를 미화시키지 않고 그대로 인정하는 일. 그것 참 멋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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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1-05-31 0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키의 책을 읽다 보면 의외로 그의 성실성, 꾸준함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을 주위의 시선이나 상황이 어떠하든 밀고 나가는 힘. 하루키라는 사람에 대한 저의 인상이지요.
'부엌 테이블에서...'라는 제목을 보고 여자 작가의 책인가 했네요 ^^

달사르 2011-05-31 15:42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러셨어요? 저도 하루키가 부엌 테이블에서..라고 해서, 하루키가 요리를 좋아하나? 부엌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나보지? 이렇게 생각했더랬어요. ^^
네. 맞지여? 저도 하루키의 성실성, 꾸준함을 책을 읽을수록 알게되는 느낌이에요. 위 책을 포함한 4부작 연작만 해도 멋졌구요. 일본 지하철 사린사건을 취재한 작품인 <언더그라운드>는 최고였어요.
 
1973년의 핀볼 - 무라카미 하루키 자전적 소설, 개정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윤성원 옮김 / 문학사상사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한다. 자신의 속에 가득찬 기쁨, 슬픔, 뿌듯함, 억울함 등의 감정을 타인에게 표출하고 싶고 공감받고 싶어한다. 타인의 이야기만을 주구장창 들어야된다면 그것만으로 힘이 들어 녹초가 될 것이다. 내 직업 또한 타인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야 되는 경우인데 오후 정도되면 녹초가 되어 손님이 하는 어떤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을 때도 있다. 하루에 들을 수 있는 한도를 넘어서면 듣고싶어도, 아니 들어야해도 들리지가 않는 것이다. 그럴때는 어쩔 수 없이 건성으로 듣는 척 할 수 밖에 없는데, 주인공인 '나'는 신기하게도 낯선 고장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를 무척 좋아해 병적이다 싶을 지경까지 다다른 사람이다. 참 요상한 사람이네..라는 생각을 하면서 '나'에 대해 관심이 생겼다. '내'가 들었던 이야기의 여러 주인공들 중 특히 나오코의 이야기에는 '개'가 나온다. 언제나 기차 플랫폼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어슬렁거리며 다니고 있는 시골의 한적한 역과 인근의 따분한 거리들이 나오는 이야기. '나'는 어쩜 나오코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이 되어버린걸까?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이라는 소문이 나면 나오코도 '나'에게로 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늘어놓을테니까. 그렇다면, 나는 '나'처럼 이야기를 얼마든지 잘 들어줄 수 있겠다.  

그런 나오코가 어느날 죽었고, 방황하던 '나'는 나오코가 말한 플랫폼에서 개를 보러 갔다. 결국 개를 플랫폼 끝에서 끝까지 다니게 한 '나'는 이제 나오코를 잊을 수 있을까. 소설 속에 자세히 나오지는 않지만, 연인이거나 짝사랑의 그녀 나오코가 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여전히 살고 있는 '나'는 이제 어떤 희망으로 살아야할까. 막막한 그에게 쌍둥이 자매가 다가온다. 눈을 떠보니 침대 양 옆으로 누워있는 쌍둥이 자매. 어쩜 환상인듯 '나'의 옆에 존재해줬던 쌍둥이 자매 덕에 나는 용기를 내어 '개'가 있는 플랫폼을 보러 갈 수 있었을까. 쌍둥이 자매는 이름조차 남에게 말할 것이 안되며, 옷도 그다지 갖춰입지 않으며, '나'의 퇴근 후부터 출근 전까지 같이 시간을 보낸다. '나'에게 먹을 것을 만들어줘 같이 식사를 하기도 하며, 죽어가는 '배전반'의 장사를 지내러 저수지에 가기고 하며, 골프코스를 돌며 떨어진 공을 줍기도 했다. '내'가 쌍둥이 자매와 보낸 시간은 그런 것들이었다. 치유의 시간은 그런 시간들 속에 스며들어 있는 것이다.

'나'는 쌍둥이 자매에게 위안을 얻었을까. 쌍둥이 자매들과 함께하던 언젠가부터 '스페이스십'을 찾으러다니고 있었다. 독자들는 '내'가 나오코와 만난 시점이 1969년이라는 것만 알고 그 이후의 시간은 알지 못한다. 다만 1년 뒤인 1970년에 제이스 바에서 스페이스십이라 불리는 모델로 핀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1970년의 겨울에 드디어 핀볼의 주술에 빠져 오락실에서 스페이스십(그녀)와 열애하듯 몰두하게 된다. 그리고 열애가 식듯 스페이스십은 어느날 오락실이 망하면서 사라졌고 그 자리에는 멀쩡한 도넛 가게가 생겼고, 거리는 오락실이 있었다는 과거조차 모르는 사람들로 채워졌다. '나'역시 적당히 핀볼을 그만두었다. 그때로부터 시간이 꽤 많이 흘렀는데 나는 왜 갑자기 '스페이스십'을 찾는걸까. 그녀가 '나'를 부르는 걸까? 아니면, 나오코가 '나'를 부르는 걸까. '나'는 그야말로 막무가내로 그녀를 찾으러다녔다. 그리고 결국 찾게 된 그녀는..차갑고 넓은 공간에 시체처럼 있었다. 그녀는 그렇게 있으면 안되었다. 그녀는 살아서 사람들의 환호소리를 들으며 움직여야했다. 그러나 차가운 공간에 송장처럼 존재하는 그녀를 보며, 그제서야 '나'는 뭔가를 느낀다. 그녀를 이제 보내야하는 시간이 되었음을. '나'는 그녀를 보내는 의식을 치르면서 내 속에서 여지껏 보내지 않았던 나오코까지 같이 보내는 걸까. 그녀와 함께하던 차가움이 옮겨져 심한 몸살을 앓던 '나'는 열이 내리면서 어떤 시절과 이제 정말 이별이라는 걸 느낀다. 그리고 이제 쌍둥이 자매도 '나'에게서 떠난다. 환상처럼 '내' 곁에 존재했던 쌍둥이 자매는 언젠가 어딘가에선가 다시 막연히 만나는 존재로 바뀐다. 그렇게 '나'의 20대 초반이 지나간다. 그렇게 생의 한 순간이 지나간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생의 한 순간을 보낸다. 보내고 싶지 않는 그 무엇을, 가슴 속 깊이 가지고 있던 그 무엇을. 어느 순간이 지나면 우리는 모두 그렇게 보내게 된다. 사랑하던 사람을, 젊음을, 꿈을.. 그게 무엇이 되었던간에 이별의식을 제대로 치르는 건 중요하다. 나는 이 책이 소중했던 그 무엇과의 이별의식에 관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무엇과 이별을 해야할 날이 다시 또 올때, 나는 이 책을 다시 읽고 싶다. 다음에는 '나'의 친구인 '쥐'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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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소도시에 내려와보니 별의별 게 다 있다. 전문대도 있으며, 평생교육원도 있고, 일반인들을 대상으로하는 저렴한 교양수업들도 제법 된다. 교양수업의 내용을 보니 외국어 강좌, 컴퓨터 강좌, 도자기 만들기, 스포츠 마사지, 경혈요법, 약초학, 기타 등등 숱하게 많은 종류가 1년에 두 번씩 개설된다. 벌써 십 년도 넘게 운영되고 있으나 매번 높은 신청률을 보여서 개설한 주최측에서도 매번 깜짝 놀란다고 한다. 비슷한 종류의 수업을 다른 타도시에서도 개설을 해봤으나, 이삼년이 넘어가면 시들해져서 개설취소된 곳이 많다고 하는데 유독 이 시골소도시의 경우는 해를 거듭할수록 신청자가 많아진다고 한다. 한 과목을 이수한 사람이 다음 번엔 다른 과목을 신청하기도 하고, 주위 친구나 남편이 같이 듣기도 하는 등의 이유로 신청자는 꾸준이 늘어나고 수업의 수준은 갈수록 높아진다고 한다. 이 기이한 현상은 아마 이 시골소도시가 교육열이 높은 공간에 속한다는 이유도 있을 것이고, 타도시보다 월등히 많은 수의 공무원, 교직원, 숱한 학원교습소 선생님들, 그리고 높은 교육수준의 자영업자들 때문일 것이다.  

올 봄에 나는 옥경 언니와 스포츠마사지를 선택했는데 스물몇살의 젊은 아가씨도 있었고, 오십몇살의 아저씨도 있었으며, 앞을 못 보시는 맹인 아저씨도 있었다. 다들 나름대로 수강을 한 목적이 있었고, 이타적인 수업과목답게 대부분 타인을 위한 목적이었다. 어떤 사람은 지병으로 운신을 못하시는 노모를 위해 배우기도 했고, 부부간에 서로 마사지해주자는 이유도 있었고, 자격증을 얻어서 샵을 개설하자는 이유도 있었고, 사람 많은 곳에 와서 애인을 구하고자 하는 소 키우는 농촌 총각도 있었다. 나의 경우는 젊어서 숱한 고생을 한 덕에 몸이 많이 부실해진 엄마를 위한 것이 한 이유이고, 또 다른 이유가 하나더 있다.

첫 수업은 무난히 따라갔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기교가 복잡해질수록 내 머리로 접수가 조금씩 힘이 들어갔다. 일주일에 한 번 수업이어서 배우고나면 집에가서 연습을 해봐야하나, 매일 피곤하게 퇴근하는 내 상태인지라 한동안 연습할 엄두도 못 냈더니 어느새 진도는 저만치 멀리가있고, 나는 머리로, 몸으로, 기억나는 게 없는 것이다. 이래서는 안되겠다싶어 작년에 이어 재수강하는 실력 좋으신 분(총무오빠)을 초빙해서 개인적으로 수업을 받았다. 옥경 언니가 마사지샵을 하는데 그 공간에서 같이 추가수업을 받기로 한 것이다. 마루타를 해줄 사람이 필요한 관계로 엄마와 언니를 꼬셔서 눕혀놓고 수업을 받았는데 2주에 걸쳐 두 번의 마사지수업을 받았다. 총무오빠가 엄마를 맡아서 전체적인 마사지를 했고, 그 옆에서 옥경언니는 울언니를 맡아서 강사분의 동작을 따라서했고, 나는 눈으로 총무오빠의 몸동작을 익히면서 아이폰으로 전과정을 찍었다.  자리보전중인 엄마의 간병을 위해 수강을 신청했다는 총무오빠는 당신어머니에게 하듯이 꼭같이 울엄마에게 해주셨는데 그 정성스런 동작을 보는 것만으로 나는 뭔가 뭉클해졌다. 두번의 수업을 받고, 동영상으로 반복해서 과정을 보면서 마사지에 대한 어떤 감각이 내 속에서 깨어나는 느낌을 받았다. 마사지도 역시나 정성이었다. 손으로 해당부위를 정확한 자세로 마사지하는게 중요한게 아니고, '이 사람이 나았으면 좋겠다' 라는 마음이 같이 들어가야 된다는 걸 이해했다.

해마다 가을이면 지역에서는 사과마라톤대회를 하는데 거기에 이 수업 수강생들이 가서 스트레칭을 해준단다. 그때는 수업에서 배운 전체과정을 해주진 않고, 요약해서 20분 가량 해당되는 마사지를 해주는데 그 마사지수업을 이번주에 배웠다. 옥경언니가 새로 장만한 스마트폰으로 교수님의 수업내용을 찍었고, 각자 자리에 돌아온 우리는 동영상을 재생하면서 그대로 따라했다. 눈으로 교수님의 동작만 보고 자리에서 돌아와 연습할 때는 순서가 기억이 안나서 매번 힘들었는데 이렇게 동영상을 같이 보면서 따라하니 훨씬 쉬웠다. 마구 웃으며 좋아하는 우리에게 경험많은 총무오빠가 한마디 해준다. "동영상을 보고 따라하면 처음엔 좋다 싶으나 계속 그거만 보고 따라하면 나중에는 동영상 안 틀면 순서를 모른다. 그러니 동영상은 몇 번 보는데 그쳐야하고 몸으로 계속 익히는 연습을 해야한다." 역시나 경험많은 총무오빠는 게으른 우리들의 경향까지 파악한다. 나는 내 속마음이 들킨 듯해서 뜨끔했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서 엄마에게 동영상없이 복습을 해야겠다, 마음먹었다. 

집에 와서 엄마를 보니 또 아프다고 누워계신다. 아까의 마음먹음에도 불구하고 아, 피곤한데 그냥 모른 척 할까..란 생각이 슬며시 깨어난다. 에잇. 안돼. 피곤해도 아까 마음먹은데로 하자! "엄마, 오늘 수업 재미있는거 했어. 내가 엄마한테 마사지 오늘 제대로 해줄께~"  해주다보니 엄마의 옷이 꺼끌거려 불편했다. 맨살에 해주는 마사지가 최고라는 말을 기억해낸 나는 엄마에게 속옷까지 벗으라고 했고 맨살에 해주는 마사지는 기이한 느낌을 내게 주었다. 상징적인 엄마의 이미지가 손으로 잡히는 현실의 감각으로 느껴지는 기분 같은거라 할까. 그 감각은 어릴적 엄마가 아이였던 내 머리를 이쁘게 묶어줄 때 내 머리카락에서 느껴지던 엄마의 손길을 순간적으로 떠올리게 했다.  목 뒤쪽을 마사지해주는데 엄마가 마사지 자리를 교정해주신다. "그때 그 총각이 해주던 자리는 거기가 아니고 여기야. 여기 이 부분을 결따라 해야하고, 세게 하지말고 부드럽게 해줘야 해." 헉..센스만점인 엄마는 마사지를 고작 두번 받으면서 몸으로 죄다 기억을 하신거다. 엄마의 조언을 들으면서 나는 자리교정을 했고 마사지를 끝냈다.  

마사지까지 하고나니 피곤하다고 침대에 드러누워있는 나를 툭툭 치면서 엄마가 말씀하신다.  "엄마가 우리 딸내미 피곤할테니 나도 마사지해줄께. 자~누워볼래?" 엄마의 손길이 그렇게 부드러울 수가 없다. "엄마, 엄마가 아파서 내가 마사지해줬는데 엄마가 다시 나에게 해주면 엄마가 도로 아플까봐 걱정돼."  "괜찮아. 딸내미에게 해주는 건 하나도 안 힘들어."  "엄마. 기가 서로 맞는 사람들은 맛사지해주고나서 서로가 좋은데 기가 안 맞는 사람들은 맛사지해주고나면 그렇게 몸이 안좋대. 엄마랑 나랑은 기가 잘 맞을까?"  "당연하지. 엄마딸인데 기가 잘 맞지. 이렇게 예쁜 내 새끼인데, 안 맞을리 없어."  "엄마, 엄마가 마사지해주는 게 너무나 따뜻해." 엄마는 한 학기 내도록 수업 배운 나보다 더 마사지를 잘했고, 엄마의 부드러운 손길에 나는 왈칵 눈물이 나오려는 걸 참느라 고생했다. 늦은 밤 엄마와 딸내미는 그렇게 서로를 마사지해주며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웠다.  

사람이 손으로 누군가를 어루만지는 마사지. 참 따뜻한 느낌이다. 언젠가 배가 아팠을 때, 귀찮아하지 않고 몇 시간이고 내 배를 만져줬던 그 사람의 손 역시 그렇게 따뜻했더랬다. 손바닥을 통해서 상대방의 마음이, 기운이 내 속으로 들어오는 느낌은 내게 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정체없고 근거없는 이름모를 그 향수는 내게 미지의 것에 대한 불안을 가라앉히며 평안을 준다. 사람에게 평안과 안정을 주는 건 늘 이렇게 형체없고 내용없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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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창 2011-05-29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다가 울컥, 했습니다.

달사르 2011-05-30 12:45   좋아요 0 | URL
아유..고맙습니다. ^^
저는..일주일에 한번이라도 엄마에게 마사지를 해줘야겠다, 생각했어요. 히.

2011-05-30 2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5-31 0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당선작이 있으면 탈락작 또한 있다. 많은 후보작 중에 6편을 뽑아서 2차 심사를 한다. 몇 명이나 이런데 응모를 하는진 모르겠지만 문학에 꿈을 품은 많은 사람들이 도전을 하는 공간에서 6명의 후보에 오른다는 건, 그 자체로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일이겠다. 그래서그런지 심사평도 당선작만 하지 않고, 6명의 후보에 대해서 각각의 심사평이 모두 있다. 탈락한 후보작의 경우는 책으로는 접할 수 없고 이렇게 심사위원의 심사평으로만 접할 수 있는 듯해서, 후보작의 심사평도 꼼꼼하게 읽어봤다.  

후보작으로 그쳐야만 했던 작품들도 모두 뛰어난 작품들이었지만 조금씩 모자라거나 과한 부분이 보였을 것이고, 이에 반해 당선작은 그 부분에서 남다른 솜씨를 보여주는 것 같다. 그중 당선작에 버금가지만 결국 탈락한 한보라씨의 <육성호텔>의 경우, 간단한 스토리 속에 다양한 주제의식이 무리 없이 표현되는 '소설의 기술'을 갖췄지만 결정적으로 인물과 장소의 전형 획득에 실패를 했다는 평을 읽을 수 있다. 헤겔식으로 표현하자면, '바로 이 사람', '바로 이곳' 이라할 만한 특이성을 얻지 못한 것이다. 반면 수상작은 '바로 이 사람'을 그려내는 솜씨가 남달라 등장인물들이 살아 꿈틀거리게 만들었으며, '바로 이곳' 역시 진정성이 살아있는 공간으로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당선작가가 느꼈다는 바로 그 느낌, 주인공이 글에서 걸어나와 자기 옆에 있고 자기에게 말을 걸어주는 그런 느낌을 심사위원들이 공유한 것이다.  

나는 내가 소설을 왜 읽지? 라고 잠시 생각을 해보았다. 소설 속 가상세계에 접속해서 주인공처럼 모험을 하기도, 슬퍼서 울기도, 행복해하기도 하는 등 갖가지 경험과 감정의 유사체험을 해보고 싶어서, 라는 결론이 나왔다. 물론 책을 펴는 첫 시도는 그저 머리를 식히기 위해서, 심심해서..정도의 이유일테지만 책을 읽어가면서 흥미를 느끼고 책을 덮으면서 행복해하는 그런 류의 책을, 독자들이라면 읽고 싶을 테니까 말이다.  이럴 때 내가 등장인물들이 경험하는 사건들에 몰입하게 되는 건, '바로 이곳'이라는 특정장소에 대한 명확한 상이 그려질 때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역시 등장인물들의 감정에 유사체험을 하게 되는 건, '바로 이 사람'이라 지칭할만큼 등장인물의 캐릭터가 살아서 움직여 소설 밖으로 걸어나올 정도까지 가야되는 것이다. 나는 지금도 작년에 읽었던 하루키의 <1Q84>에서 특히 아오마메를 옆에서 가끔씩 느낀다. 아오마메가 꾸준히 했던 스트레칭, 아오마메가 협박용으로 썼던 얼굴 구기기, 아오마메가 도구로 사용했던 특제아이스픽, 아오마메가 숨어 살던 아파트와 그 아파트 앞 공원 앞에서 하늘을 보던 덴고, 하늘에 떠 있던 두 개의 달. 아모마메를 떠올리면 상술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이 그 뒤에 책을 다시 들춰보지 않았음에도 머리에 아직까지 남아있는 걸 보면, 아모마메는 나에게서 전형성의 획득에 성공했나보다. 수상작의 태만생군에서도 그런 전형성을 찾고 싶은 바램이 있다. 

여러 심사위원 중 내가 유일하게 작품을 읽은 사람인 한강 역시 위의 안타까운 후보작에 대한 평을 썼다. 소설을 직조하는 필력이 돋보이는 작품, 소설의 형식에 대해 탐구하고 실험한 흔적이 역력한 작품, 그러나 이토록 정교하고 힘있게 직조된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 속에 담긴 것이 과연 무엇인가, 하는 의구심이 생기게 만드는 작품이라는 평이다. 소설을 읽을 때의 긴장감이 끝까지 가지 못하고 후반부 어드매쯤에 탄력이 떨어져 고무줄이 터지는 듯한 느낌을 말하는 걸까. 역시 <1Q84>에서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덴고는 소설을 완성해 후보작을 응모하지만 매번 떨어진다. 마지막까지 경쟁작으로 남아있으나 마지막 관문을 넘어서지 못하고 떨어진다. 이유는 탄탄하게 완공된 건축물같은 소설임에도 작가가 이 소설을 쓸 수 밖에 없는 필연성을 심사위원에게 전달하지 못했으며, 소설이 간절히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덴고 스스로도 모르고 따라서 심사위원들의 가슴을 울리지 못한 것이다. 이 시점에서 등장한 후카에리의 후보작은 덴고를 놀래켰고, 편집장을 놀래켰다. 덴고와 정반대랄 수 있는 글을 쓴 후카에리. 덴고에게는 없는, 소설을 읽을 때의 간절함과 소설을 읽고나서의 여운을 가지고 있는 후카에리. 그러나 후카에리는 덴고에게는 충만한 건축술과 여타의 기술 들이 많이 모자랐다. 결국 편집장을 제안을 받아들여 덴고는 후카에리의 작품에 손을 대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덴고의 건축술은 유용했고 덴고 역시 자신 속에 숨겨져 있던 자신만의 그 무엇을 발견해낸다. 소설을 쓸 수 밖에 없는 사연이 생겼고, 소설에서 간절히 말하고자 하는 그 무엇이 생겼다. 위의 안타까운 후보작 역시 다음 번 작품에서 간절한 그 무엇을 찾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래서 강건한 건축물 위에 우뚝 서 있을 깃발 같은 간절한 그 무엇을 많은 독자들과 공감할 수 있는 미래의 행복한 작가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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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29 1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5-29 14: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제 비가 많이 오는 계절로 들어서는 듯하다. 완연한 봄인 듯 저번 주부터 계속 줄기차게 비가 내리고 있다. 약국의 커다란 창으로 비 내리는 바깥 풍경을 내다보며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는 것도 비 오는 날의 즐거움이고,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손님들의 수다를 듣는 것도, 차를 기다리는 엄마와 아이들의 장난을 보는 것도 한 즐거움이다. 그러나 유독 비가 오는 날 좋지 않은 게 약국가에 딱 하나 있으니, 바로 눅눅해지는 소아가루약이다. 소아과 처방에 기본으로 깔아주는 약 중에 뮤테란과립이 있다. 아세틸시스테인이라는 성분으로 목 안의 가래를 녹여주는 진해거담제인데 소아가 복용하기 쉽도록 분홍색 과립으로 되어 있다. 이 제제는 비 오는 날이면 습기를 빨아들이는 성질이 강해져서 조제에 애를 먹는다. 보통의 약국에서 쓰는 일반 약포지를 쓸 경우 약을 받아간 다음날이면 뮤테란과립이 약포지에 들러붙어 찐득거리는 덩어리가 되기 때문이다. 냉장고에 보관하라고 말을 하지만 그래도 갓 만들어 약을 받았을 때와는 많이 달라져버린다.

이런 애로사항을 개선하려고 약국가는 많은 노력을 가했고 어떤 약사님의 획기적인 아이템 개발로 소아가루약 전용 약포지가 작년에 새로 나왔다. 얇은 비닐포장으로 투명하게 되어 있어서 내용물을 훤히 볼 수도 있으며, 스틱 타입이어서 한 쪽만 잘라서 시럽통에 부으면 가루약을 전혀 흘리지 않고 아이에게 약을 먹일 수 있다. 새로운 약포지는 물론 습기에도 강해서 뮤테란과립을 넣고 오래 놔둬도 전혀 찐득거리지 않는다. 문제는 가루로 만든 약을 약포지에 하나하나 균일한 양으로 넣어주는 일인데(이걸 분포라고 한다) 이게 생각보다 힘이 든다. 나는 스틱형약포지를 구매하면서 자동으로 분포해주는 기계는 구매하지 않았다. 장소가 협소한 이유도 있었지만 기계로 균일한 분포가 가능할지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일이 손으로 분포를 하는데 처음에는 무척 애를 먹었다. 기존의 약칼로 하는 분배야 도가 터서 약사발에 약을 갈아 한번만 탁탁 쳐도 약포지에 가루약이 고르게 들어가는데, 소아가루약전용 약칼은 면적이 좁아져서 손으로 탁탁 쳐서 분배할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약수저를 이용해서 분배를 대충 하고 여러 번에 걸쳐서 고르게 만든 다음 약포지에 가루를 넣는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담아도가루의 높이가 달라서 약수저를 스틱약포지 바닥까지 넣어 재조정을 해야했다. 그렇게 여러번의 과정을 거쳐서야 비로소 비슷한 높이의 가루약을 만들 수 있었고, 찍쇄에 찍어서 밀봉을 하면 이제 조제실을 나와 매대로 가는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이렇게 한 것은 아니고 갖가지 다양한 실수를 겪었다. 이제는 어느 정도 감이 잡혀가는 상황에서 내가 사지 않았던 기계를 가지고 분배하는 사람은 나보다 쉽게 할까, 그리고 손으로 분포하는 사람은 또 어떤 곤란을 겪고 있을까 등의 생각을 했는데 오늘 스틱형약포지로 인해 시비에 말린 약사님의 기사를 읽었다. 조제받은 스틱형약포지의 약 높낮이가 다른 것에 엄마가 민원을 넣어 보건소에서 실사가 나왔다는 것이다. 보건소 관계자 입회 하에 각각의 스틱형약포지 속 가루약의 그람을 재었고, 대부분이 1.3그람이었으나 하나가 1.5그람이었다. 0.2그람. 많다면 많고 작다면 작은 용량이다. 스틱형약포지의 좁은 입구로 인해 외관상 차이가 많이 나 보였으나 실지로 0.2그람밖에 차이가 나지 않자 엄마는 수그러졌다고 하지만, 보건소에 이미 민원이 접수되었기 때문에 해당 약국에 대한 처분이 불가하다는 쪽으로 난 모양이다. 이에 대해 소아과 조제를 하는 약국가는 의견이 분분하며 뒤숭숭한 마음들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앞서 설명처럼 소아의 원활한 약 복용을 위해 기존의 약포지보다 더 비싼 스틱약포지를 썼다는 것 부터가 해당약국의 선진적인 마인드를 보여주는 것인데, 이번에 이런 사태가 발생해 다들 난감하다는 표정이다. 아예 이런 시비를 피해서 기존의 넓적한 약포지로 회귀하는 쪽도 생길 것이다. 기존의 넓적한 약포지로는 1.3그람이나 1.5그람의 용량은 거의 같은 걸로 보이므로 이런 시비에 말릴 우려가 없다.

좀더 잘 하려고 한 일이 어떤 실수로 인해 이전만 못하게 되는 일은 살다보면 종종 만나게 된다. 이런 경우 우리는 어떡해야할까. 이전으로 회귀해서 시비거리를 없애는 게 맞을까. 아니면 실수를 겸허하게 인정하고, 반성하고, 이런 일 생기지 않도록 좀더 조심해야할까. 세상은 점점 각박해져서 이런 일로도 보건소에 신고하는 세상이 이미 되어버렸고, 우린 이런 세상에 적응해야한다. 물론 단골일수도 있는 그 어머니에게 서운하겠지만, 보건소 신고하기 전에 약국에 먼저 들러 항의를 했더라면 수긍하고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의 사건이었겠지만 말이다. 각박하다면 각박하고, 정확하다면 정확하다고 할 수 있는 이런 변화된 세상 속에서 여전히 중요한 건, 소아가 비오는 여름날에 눅눅한 뮤테란과립을 먹지 않고 뽀송뽀송한 뮤테란과립을 먹을 수 있게 되는 것일테다. 이 커다란 원칙이 유지된다면 소아의 엄마와도, 보건소와도 합의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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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27 13: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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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27 14: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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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31 21: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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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02 11: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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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31 21: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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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02 11: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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