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 테이블에서 태어난 소설'이라는 작가의 말을 처음엔 못 알아들었다. 부엌 테이블이 작가가 글이 잘 써지는 장소로구나, 정도로 생각하다가 이 작품의 성공을 계기로 전업작가가 되면서 부엌 테이블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는 부분을 읽고 아차, 했다. 부엌 테이블은 전업작가가 아니라는 말이고, 생계에 보탬이 되는 이러저러한 일들을 마친 뒤 고요한 시간인 밤 시간을 이용해서 썼다는 말의 대명사격 의미였다. 글을 쓰고 싶다고 마음만 먹고서는 직장 때문에 시간이 없니, 돌봐야 될 가족 때문에 시간이 없니, 건강하지 못해 시간이 없니 등의 핑계를 무색하게 만드는 하루키의 한때의 공간, 부엌 테이블. 난 작가가 꿈도 아니면서 괜히 하루키의 성실함에 부끄러움을 느꼈고, 하루키의 열정에 부러움이 생겼다. 그게 무엇이 되었든지간에 너무나도 하고 싶은 그 무언가를 하고 있는 순간은 얼마나 소중한 시간들일까. 아직 그것을 찾지 못한 나로서는 그 부러움이 클 수 밖에 없다. 다만 이렇게 퇴근 후 피곤하고 지친 시간에 쉬지 않고, 책을 읽고 이렇게 글을 올리는 것으로 그 부러움을 조금이라도 줄일 뿐이다.
 
소설이 유명세를 타고나서 시간이 좀 흐르고나면  미흡해보이는 부분이 생기기도 하나보다. 하루키는 몇 작품에 대해서는 손을 댔지만 첫 작품과 두번째 작품인 '1973년의 핀볼'은 전혀 손질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왜냐면, '이것이 당시의 나였고, 결국은 시간이 흘러도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남기고서. 하루키가 던지는 이런 직관적인 말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 하루키가 하는 말들은 그에게도 통하고, 나에게도 통하며, 하루키의 글에도 통하고, 나의 일상에도, 그리고 우리들의 일상에도 통하는 말이 된다. 시간이 흘러 나의 모자란 부분이 보여도 보이는 그대로 놔둘 수 있는 그런 마음의 관용을 하루키는 알고 실행한 것이다. 하루키의 작품을 읽으면서 소설 속에서, 혹은 하루키의 말에서 나오는 이런 말들을 건지기 위해 나는 하루키의 작품을 하나씩 읽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불완전한 자신의 존재를 미화시키지 않고 그대로 인정하는 일. 그것 참 멋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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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1-05-31 0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키의 책을 읽다 보면 의외로 그의 성실성, 꾸준함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을 주위의 시선이나 상황이 어떠하든 밀고 나가는 힘. 하루키라는 사람에 대한 저의 인상이지요.
'부엌 테이블에서...'라는 제목을 보고 여자 작가의 책인가 했네요 ^^

달사르 2011-05-31 15:42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러셨어요? 저도 하루키가 부엌 테이블에서..라고 해서, 하루키가 요리를 좋아하나? 부엌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나보지? 이렇게 생각했더랬어요. ^^
네. 맞지여? 저도 하루키의 성실성, 꾸준함을 책을 읽을수록 알게되는 느낌이에요. 위 책을 포함한 4부작 연작만 해도 멋졌구요. 일본 지하철 사린사건을 취재한 작품인 <언더그라운드>는 최고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