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비가 많이 오는 계절로 들어서는 듯하다. 완연한 봄인 듯 저번 주부터 계속 줄기차게 비가 내리고 있다. 약국의 커다란 창으로 비 내리는 바깥 풍경을 내다보며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는 것도 비 오는 날의 즐거움이고,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손님들의 수다를 듣는 것도, 차를 기다리는 엄마와 아이들의 장난을 보는 것도 한 즐거움이다. 그러나 유독 비가 오는 날 좋지 않은 게 약국가에 딱 하나 있으니, 바로 눅눅해지는 소아가루약이다. 소아과 처방에 기본으로 깔아주는 약 중에 뮤테란과립이 있다. 아세틸시스테인이라는 성분으로 목 안의 가래를 녹여주는 진해거담제인데 소아가 복용하기 쉽도록 분홍색 과립으로 되어 있다. 이 제제는 비 오는 날이면 습기를 빨아들이는 성질이 강해져서 조제에 애를 먹는다. 보통의 약국에서 쓰는 일반 약포지를 쓸 경우 약을 받아간 다음날이면 뮤테란과립이 약포지에 들러붙어 찐득거리는 덩어리가 되기 때문이다. 냉장고에 보관하라고 말을 하지만 그래도 갓 만들어 약을 받았을 때와는 많이 달라져버린다.
이런 애로사항을 개선하려고 약국가는 많은 노력을 가했고 어떤 약사님의 획기적인 아이템 개발로 소아가루약 전용 약포지가 작년에 새로 나왔다. 얇은 비닐포장으로 투명하게 되어 있어서 내용물을 훤히 볼 수도 있으며, 스틱 타입이어서 한 쪽만 잘라서 시럽통에 부으면 가루약을 전혀 흘리지 않고 아이에게 약을 먹일 수 있다. 새로운 약포지는 물론 습기에도 강해서 뮤테란과립을 넣고 오래 놔둬도 전혀 찐득거리지 않는다. 문제는 가루로 만든 약을 약포지에 하나하나 균일한 양으로 넣어주는 일인데(이걸 분포라고 한다) 이게 생각보다 힘이 든다. 나는 스틱형약포지를 구매하면서 자동으로 분포해주는 기계는 구매하지 않았다. 장소가 협소한 이유도 있었지만 기계로 균일한 분포가 가능할지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일이 손으로 분포를 하는데 처음에는 무척 애를 먹었다. 기존의 약칼로 하는 분배야 도가 터서 약사발에 약을 갈아 한번만 탁탁 쳐도 약포지에 가루약이 고르게 들어가는데, 소아가루약전용 약칼은 면적이 좁아져서 손으로 탁탁 쳐서 분배할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약수저를 이용해서 분배를 대충 하고 여러 번에 걸쳐서 고르게 만든 다음 약포지에 가루를 넣는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담아도가루의 높이가 달라서 약수저를 스틱약포지 바닥까지 넣어 재조정을 해야했다. 그렇게 여러번의 과정을 거쳐서야 비로소 비슷한 높이의 가루약을 만들 수 있었고, 찍쇄에 찍어서 밀봉을 하면 이제 조제실을 나와 매대로 가는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이렇게 한 것은 아니고 갖가지 다양한 실수를 겪었다. 이제는 어느 정도 감이 잡혀가는 상황에서 내가 사지 않았던 기계를 가지고 분배하는 사람은 나보다 쉽게 할까, 그리고 손으로 분포하는 사람은 또 어떤 곤란을 겪고 있을까 등의 생각을 했는데 오늘 스틱형약포지로 인해 시비에 말린 약사님의 기사를 읽었다. 조제받은 스틱형약포지의 약 높낮이가 다른 것에 엄마가 민원을 넣어 보건소에서 실사가 나왔다는 것이다. 보건소 관계자 입회 하에 각각의 스틱형약포지 속 가루약의 그람을 재었고, 대부분이 1.3그람이었으나 하나가 1.5그람이었다. 0.2그람. 많다면 많고 작다면 작은 용량이다. 스틱형약포지의 좁은 입구로 인해 외관상 차이가 많이 나 보였으나 실지로 0.2그람밖에 차이가 나지 않자 엄마는 수그러졌다고 하지만, 보건소에 이미 민원이 접수되었기 때문에 해당 약국에 대한 처분이 불가하다는 쪽으로 난 모양이다. 이에 대해 소아과 조제를 하는 약국가는 의견이 분분하며 뒤숭숭한 마음들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앞서 설명처럼 소아의 원활한 약 복용을 위해 기존의 약포지보다 더 비싼 스틱약포지를 썼다는 것 부터가 해당약국의 선진적인 마인드를 보여주는 것인데, 이번에 이런 사태가 발생해 다들 난감하다는 표정이다. 아예 이런 시비를 피해서 기존의 넓적한 약포지로 회귀하는 쪽도 생길 것이다. 기존의 넓적한 약포지로는 1.3그람이나 1.5그람의 용량은 거의 같은 걸로 보이므로 이런 시비에 말릴 우려가 없다.
좀더 잘 하려고 한 일이 어떤 실수로 인해 이전만 못하게 되는 일은 살다보면 종종 만나게 된다. 이런 경우 우리는 어떡해야할까. 이전으로 회귀해서 시비거리를 없애는 게 맞을까. 아니면 실수를 겸허하게 인정하고, 반성하고, 이런 일 생기지 않도록 좀더 조심해야할까. 세상은 점점 각박해져서 이런 일로도 보건소에 신고하는 세상이 이미 되어버렸고, 우린 이런 세상에 적응해야한다. 물론 단골일수도 있는 그 어머니에게 서운하겠지만, 보건소 신고하기 전에 약국에 먼저 들러 항의를 했더라면 수긍하고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의 사건이었겠지만 말이다. 각박하다면 각박하고, 정확하다면 정확하다고 할 수 있는 이런 변화된 세상 속에서 여전히 중요한 건, 소아가 비오는 여름날에 눅눅한 뮤테란과립을 먹지 않고 뽀송뽀송한 뮤테란과립을 먹을 수 있게 되는 것일테다. 이 커다란 원칙이 유지된다면 소아의 엄마와도, 보건소와도 합의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