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소도시에 내려와보니 별의별 게 다 있다. 전문대도 있으며, 평생교육원도 있고, 일반인들을 대상으로하는 저렴한 교양수업들도 제법 된다. 교양수업의 내용을 보니 외국어 강좌, 컴퓨터 강좌, 도자기 만들기, 스포츠 마사지, 경혈요법, 약초학, 기타 등등 숱하게 많은 종류가 1년에 두 번씩 개설된다. 벌써 십 년도 넘게 운영되고 있으나 매번 높은 신청률을 보여서 개설한 주최측에서도 매번 깜짝 놀란다고 한다. 비슷한 종류의 수업을 다른 타도시에서도 개설을 해봤으나, 이삼년이 넘어가면 시들해져서 개설취소된 곳이 많다고 하는데 유독 이 시골소도시의 경우는 해를 거듭할수록 신청자가 많아진다고 한다. 한 과목을 이수한 사람이 다음 번엔 다른 과목을 신청하기도 하고, 주위 친구나 남편이 같이 듣기도 하는 등의 이유로 신청자는 꾸준이 늘어나고 수업의 수준은 갈수록 높아진다고 한다. 이 기이한 현상은 아마 이 시골소도시가 교육열이 높은 공간에 속한다는 이유도 있을 것이고, 타도시보다 월등히 많은 수의 공무원, 교직원, 숱한 학원교습소 선생님들, 그리고 높은 교육수준의 자영업자들 때문일 것이다.  

올 봄에 나는 옥경 언니와 스포츠마사지를 선택했는데 스물몇살의 젊은 아가씨도 있었고, 오십몇살의 아저씨도 있었으며, 앞을 못 보시는 맹인 아저씨도 있었다. 다들 나름대로 수강을 한 목적이 있었고, 이타적인 수업과목답게 대부분 타인을 위한 목적이었다. 어떤 사람은 지병으로 운신을 못하시는 노모를 위해 배우기도 했고, 부부간에 서로 마사지해주자는 이유도 있었고, 자격증을 얻어서 샵을 개설하자는 이유도 있었고, 사람 많은 곳에 와서 애인을 구하고자 하는 소 키우는 농촌 총각도 있었다. 나의 경우는 젊어서 숱한 고생을 한 덕에 몸이 많이 부실해진 엄마를 위한 것이 한 이유이고, 또 다른 이유가 하나더 있다.

첫 수업은 무난히 따라갔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기교가 복잡해질수록 내 머리로 접수가 조금씩 힘이 들어갔다. 일주일에 한 번 수업이어서 배우고나면 집에가서 연습을 해봐야하나, 매일 피곤하게 퇴근하는 내 상태인지라 한동안 연습할 엄두도 못 냈더니 어느새 진도는 저만치 멀리가있고, 나는 머리로, 몸으로, 기억나는 게 없는 것이다. 이래서는 안되겠다싶어 작년에 이어 재수강하는 실력 좋으신 분(총무오빠)을 초빙해서 개인적으로 수업을 받았다. 옥경 언니가 마사지샵을 하는데 그 공간에서 같이 추가수업을 받기로 한 것이다. 마루타를 해줄 사람이 필요한 관계로 엄마와 언니를 꼬셔서 눕혀놓고 수업을 받았는데 2주에 걸쳐 두 번의 마사지수업을 받았다. 총무오빠가 엄마를 맡아서 전체적인 마사지를 했고, 그 옆에서 옥경언니는 울언니를 맡아서 강사분의 동작을 따라서했고, 나는 눈으로 총무오빠의 몸동작을 익히면서 아이폰으로 전과정을 찍었다.  자리보전중인 엄마의 간병을 위해 수강을 신청했다는 총무오빠는 당신어머니에게 하듯이 꼭같이 울엄마에게 해주셨는데 그 정성스런 동작을 보는 것만으로 나는 뭔가 뭉클해졌다. 두번의 수업을 받고, 동영상으로 반복해서 과정을 보면서 마사지에 대한 어떤 감각이 내 속에서 깨어나는 느낌을 받았다. 마사지도 역시나 정성이었다. 손으로 해당부위를 정확한 자세로 마사지하는게 중요한게 아니고, '이 사람이 나았으면 좋겠다' 라는 마음이 같이 들어가야 된다는 걸 이해했다.

해마다 가을이면 지역에서는 사과마라톤대회를 하는데 거기에 이 수업 수강생들이 가서 스트레칭을 해준단다. 그때는 수업에서 배운 전체과정을 해주진 않고, 요약해서 20분 가량 해당되는 마사지를 해주는데 그 마사지수업을 이번주에 배웠다. 옥경언니가 새로 장만한 스마트폰으로 교수님의 수업내용을 찍었고, 각자 자리에 돌아온 우리는 동영상을 재생하면서 그대로 따라했다. 눈으로 교수님의 동작만 보고 자리에서 돌아와 연습할 때는 순서가 기억이 안나서 매번 힘들었는데 이렇게 동영상을 같이 보면서 따라하니 훨씬 쉬웠다. 마구 웃으며 좋아하는 우리에게 경험많은 총무오빠가 한마디 해준다. "동영상을 보고 따라하면 처음엔 좋다 싶으나 계속 그거만 보고 따라하면 나중에는 동영상 안 틀면 순서를 모른다. 그러니 동영상은 몇 번 보는데 그쳐야하고 몸으로 계속 익히는 연습을 해야한다." 역시나 경험많은 총무오빠는 게으른 우리들의 경향까지 파악한다. 나는 내 속마음이 들킨 듯해서 뜨끔했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서 엄마에게 동영상없이 복습을 해야겠다, 마음먹었다. 

집에 와서 엄마를 보니 또 아프다고 누워계신다. 아까의 마음먹음에도 불구하고 아, 피곤한데 그냥 모른 척 할까..란 생각이 슬며시 깨어난다. 에잇. 안돼. 피곤해도 아까 마음먹은데로 하자! "엄마, 오늘 수업 재미있는거 했어. 내가 엄마한테 마사지 오늘 제대로 해줄께~"  해주다보니 엄마의 옷이 꺼끌거려 불편했다. 맨살에 해주는 마사지가 최고라는 말을 기억해낸 나는 엄마에게 속옷까지 벗으라고 했고 맨살에 해주는 마사지는 기이한 느낌을 내게 주었다. 상징적인 엄마의 이미지가 손으로 잡히는 현실의 감각으로 느껴지는 기분 같은거라 할까. 그 감각은 어릴적 엄마가 아이였던 내 머리를 이쁘게 묶어줄 때 내 머리카락에서 느껴지던 엄마의 손길을 순간적으로 떠올리게 했다.  목 뒤쪽을 마사지해주는데 엄마가 마사지 자리를 교정해주신다. "그때 그 총각이 해주던 자리는 거기가 아니고 여기야. 여기 이 부분을 결따라 해야하고, 세게 하지말고 부드럽게 해줘야 해." 헉..센스만점인 엄마는 마사지를 고작 두번 받으면서 몸으로 죄다 기억을 하신거다. 엄마의 조언을 들으면서 나는 자리교정을 했고 마사지를 끝냈다.  

마사지까지 하고나니 피곤하다고 침대에 드러누워있는 나를 툭툭 치면서 엄마가 말씀하신다.  "엄마가 우리 딸내미 피곤할테니 나도 마사지해줄께. 자~누워볼래?" 엄마의 손길이 그렇게 부드러울 수가 없다. "엄마, 엄마가 아파서 내가 마사지해줬는데 엄마가 다시 나에게 해주면 엄마가 도로 아플까봐 걱정돼."  "괜찮아. 딸내미에게 해주는 건 하나도 안 힘들어."  "엄마. 기가 서로 맞는 사람들은 맛사지해주고나서 서로가 좋은데 기가 안 맞는 사람들은 맛사지해주고나면 그렇게 몸이 안좋대. 엄마랑 나랑은 기가 잘 맞을까?"  "당연하지. 엄마딸인데 기가 잘 맞지. 이렇게 예쁜 내 새끼인데, 안 맞을리 없어."  "엄마, 엄마가 마사지해주는 게 너무나 따뜻해." 엄마는 한 학기 내도록 수업 배운 나보다 더 마사지를 잘했고, 엄마의 부드러운 손길에 나는 왈칵 눈물이 나오려는 걸 참느라 고생했다. 늦은 밤 엄마와 딸내미는 그렇게 서로를 마사지해주며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웠다.  

사람이 손으로 누군가를 어루만지는 마사지. 참 따뜻한 느낌이다. 언젠가 배가 아팠을 때, 귀찮아하지 않고 몇 시간이고 내 배를 만져줬던 그 사람의 손 역시 그렇게 따뜻했더랬다. 손바닥을 통해서 상대방의 마음이, 기운이 내 속으로 들어오는 느낌은 내게 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정체없고 근거없는 이름모를 그 향수는 내게 미지의 것에 대한 불안을 가라앉히며 평안을 준다. 사람에게 평안과 안정을 주는 건 늘 이렇게 형체없고 내용없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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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창 2011-05-29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다가 울컥, 했습니다.

달사르 2011-05-30 12:45   좋아요 0 | URL
아유..고맙습니다. ^^
저는..일주일에 한번이라도 엄마에게 마사지를 해줘야겠다, 생각했어요. 히.

2011-05-30 2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5-31 0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