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는 사람과 함께 울라 - 윤판사가 보내는 치유와 희망의 메시지
윤재윤 지음 / 좋은생각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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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금 내가 울고 싶다면, 아니 지금 내가 울고 있다면 나와 함께 울어 줄 사람이 있을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눈물, 그 눈물을 같이 흘릴 사람이 있을까?
내 아픔을 함께 울어주는 그런 눈물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내가 우는 사람을 보듬어 줄 수는 있을까?
참회한 사형수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 직전에 자신에 의해서 목숨을 잃은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사죄를 고하고, 자신의 어머니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헬렐루야'를 부를  때에, 또 다른 사형수가 그동안에 새 사람이 되어서 아름다운 나라로 떠남을 기쁘게 생각하며 '할렐루야'를 우렁차게 외치면서 사라질 때에 그들을 지켜보았던 교도관들과 검사, 의사, 신부들이 흘렀던 눈물.....
자신의 딸을 살해한 살인범을 법정에서 용서해 주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심정을 바라보면서 흘렀던 눈물....

물레방아처럼 울어라
네 영혼의 뜰에 푸르른 약초가 돋아나리니
누가 너를 위해 울어 주기를 원한다면
지금 울고 있는 사람과 함께 울어라
내가 누군가에게 사랑받기 원한다면
네 옆의 약한 사람을 먼저 사랑하여라. ( 잘랄 앗 딘 알 루미)   (p4)
저자는 검사시보 시절부터 시작하여 오랜 판사 생활을 하면서 법정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통해서 느꼈던 이야기들을 이 책에 담고 있다. 
  법정이 어떤 곳이던가....
사람들이 일생을 살아가면서 단 한 번도 가보고 싶지 않은 곳. 그 곳에는 항상 다툼이 있고, 분쟁이 있고, 미움이 있고, 비리가 있고, 부정이 있고, 아픔이 있는 곳이다. 그렇기에 그곳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이야기도 있는 것이다. 저자는 가장 아픈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그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낼 수도 있었던 것이고, 그들의 삶을 통해서 삶의 해답도 찾아 낼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저자는 법정 실화를 통한 아픔의 치유뿐만아니라, 문학 작품속의 작가나, 작품을 통해서 삶의 지혜를 일깨워준다.
그가 좋아하는 작품중에 '죽음의 수용소'의 내용이 여러번 인용된다. 이 작품은 나도 읽어보고 참 많은 생각들을 하게 했던 '빅터 프랭클'의 자전적 체험 수기이다.
정신과 의사였던 '빅터 프랭클'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친지들을 잃어가면서 강제노동과 추위, 굶주림 속에서 죽음의 공포를 어떻게 이겨냈으며 그 속에서 삶의 의미를 잃지 않았던 경험을 가졌던 사람인데, 그의 방에 걸린 액자의 글이 그가 겪었던 삶의 모든 것을 이야기해주는 듯하다.
아무 것도 헛된 것은 없어라, 우리가 사랑했던 것, 우리가 싸워냈던 것, 우리가 괴로움을 당했던 것, 그 아무 것도 헛됨은 없어라. (p32)
아마도 생과사가 엇갈리던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이야기가 삶을 의미를 깨닫게 해주었는지, 프리모 레버가 쓴 '이것이 인간인가'의 글중에도 그가 처음 그 곳에 가던 날, 그 죽음의 수용소에서 그에게 따뜻하게 몇 마디의 말을 건네주었던 16세 소년 '슐로메'와의 짧은 포옹이 수용소 기억중에 가장 소중하다고 쓰고 있다.
사람은 가장 극한 상황에서 '삶, 삶의 목적, 죽음. 인간의 존재'등으 느끼게 되는 것인가 보다. 이런 생각을 나타낸 글중에 스티브 잡스의 스탠포드 대학 졸업식 연설문이 소개된다. 나도 이미 '스티브 잡스의 프리젠테이션의 비밀'에서 읽은 내용인데, 요약하면 죽음을 생각하면 삶의 목적이 명확해진다는 것이다.
하루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언젠가는 바른 길에 서 있을 것입니다. 또한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자신이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명심하면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죠. 외부의 기대, 여러가지 자부심과 자만심, 수치스러움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들은 죽음에 직면해서는 모두 떨어져 나가고, 오직 진실로 중요한 것들만 남기 때문입니다. (p100)
하루하루를 인생의마지막 날처럼 산다는 것은 '완벽한 하루'를 이야기하는 것일까?
'완벽한 하루'는 무엇을 얻어야 가능한 것이 아니라, 무언가 버려야 가능하다고 한다. 몸에 걸친 것이 없이 가벼워져야 마음껏 춤을 출 수 있는 것처럼.....
'마음을 비워라', '몸을 낮추어라'. '무언가 버려라'  - 이런 문장들은 여러 책들을 통해서 많이 접하는 구절들이지만 아직도 먼나라이야기처럼 우리의 실생활에서는 멀게만 느껴지고 버리기보다는 얻기 위해서 안달이 나 있는 것은 아닐까.
'욕심을 버리자' '마음을 비우자'
나를 다시 한 번 되돌아 보게 만들어 준다. 가장 낮은 곳에 있었다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부터, 사랑으로 충만한 사람들의 이야기, 남을 배려하고 관용을 베풀었던 사람들의 이야기,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보였던 사람들의 이야기......
이런 이야기들이 모여서 삶의 의미를 새롭게 일깨워주고 잔잔한 기쁨이 피어나게 만들어 준다.
저자는 법관 생활을 하면서, 정의와 공평을 법의 잣대로 결정하는데 있어서 재판이 삶의 진실에 얼마나 가까웠는지를 생각하게 해주었고, 재판의 판결이 버거웠음을 토로한다. 그 속에서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라는 답을 3가지로 정리해 준다.
'인간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인간은 약한 존재이다', '인간은 방향을 결정하여 과정을 살아가는 존재이다.'

삶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고통을 받게 되고, 이 고통의 강약이 사람들에게 느끼는 정도가 다른 것은 사실이지만, 그 고통을.... 그 아픔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대처하며 치유하여 나가는지에 따라서 그 사람의 삶의 모습이 결정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장 아픈 사람들 곁에서 함께 울어주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그만큼 삶의 소중함을 알고 있는 사람이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 가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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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대사 일본탐정기
박덕규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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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92년부터 약 7년 동안에 걸쳐, 조선의 백성들을 도륙하고 아름다운 산야를 피폐하게 만들었던 임진왜란. 그 끔찍한 전쟁에 얽힌 이야기는 참으로 많고도 많다. 침략국인 왜와의 이야기. 그리고 조선을 도와준다고 왔던 명나라와의 이야기. 그 전쟁중의 영웅들도 여럿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신나고 흥미로운 이야기는 스님의 신분으로 큰 활약을 거두었던 서산대사와 사명대사의 이야기일 것이다. 그런데, 스님들의 활약상은 신화나 전설속의 이야기처럼 부풀려져서 쓰여졌기에 아동들의 책속에서 많이 접할 수 있었다. 워낙, 스님이 전쟁에 참여한다는 것이 살생을 금하는 불교의 교리에 맞지 않기에 그렇게 미화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정작 스님들의 자세한 행적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이다.
임진왜란이 끝난후, 대마도는 일본 본토보다는 조선에 의지하여 살아 왔기에 조선과 일본의 수교가 단절되면 생활의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래서, 대마도를 선도로 일본은 문호개방을 원하게 된다. 하지만, 조선의 입장에서는 침략국인 일본의 본의를 알 수 없는지라, 일본의 정세 및 재침우려의 상황 등을 타진할 임무를 띤 사람을 파견하게 되는데, 여기에 발탁된 인물이 사명대사이다.
그 시절엔 아주 할아버지에 대상하는 환갑을 지난 사명대사가 그 임무를 잘 할 수 있을까?
국서도 없고, 관직도 없고, 그가 가야 할 곳은 대마도에서 시작하여 당시 일본의 실세인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만나러 오사카를 거쳐서 교토까지 가야 한다.

  

삶이란 한 조각 구름이 일어나는 것.
죽음이란 한 조각 구름이 스러지는 것.
구름은 본시 실체가 없으니
죽고 살고 오고 감이 모두 그와 같도다. (p25)

내가 가는 길은 깜깜한 밤입니다. 그 밤에 멀리 희미한 것이 기웃거리는데, 그게 별이라는 것입니다. 온 우주가 깜깜한데, 오직 희미한 별 하나가 있지요, 내 여생에서 하는 일이란 점 별 아래를 간다는 것일 뿐, 다른 집착도 집념도 없습니다. 온 우주가 깜깜한데 저 멀리 별 하나 떠 있고, 다만 그 별 아래 가는 것이 내 일이요, 내 길입니다. (p118)
이런 이야기가 주축이 되어서 '사명대사 일본 탐정기'는 시작되는 것이다.
 

사명대사는 스승인 서산대사의 법통을 이어 받았고, 임진왜란에서 의승장으로 활약을 보여 전투및 뛰어난 외교술로도 유명한 스님이다. 임진왜란이 끝난지 6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속세에 남아 국가의 일에 참여하는 것이 부처의 뜻을 거스르는 일은 아닐까 하는 우려도 만만하지 않다. 그러나, 그를 따르는 기생, 항왜, 상인.... 그리고 대만도에서 만나는 조선 옹주, 유학자, 승려 등등.... 그 결과 얻어지는 것은 조선 피로 삼천 명의 송환, 그리고 약 300년간 한일평화외교협정.
이 소설의 작가인 박덕규는 5년여에 걸쳐서 수 백종의 관련 자료를 모으고 분석하고, 일본도 여러차례에 걸쳐서 방문하면서 소설을 구성하고 썼다고 한다.
우리들에게 가까우면서도 먼나라인 일본은 그당시, 임진왜란의 침략자인 도요도미 히데요시의 사망과 함께 일본의 정치체제의 변화가 이루어졌고, 그런 역사적 사실을 알아야만 이 소설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고, 텐노, 쇼군, 번주 등의 관계도 일본의 정세를 알지 못하면 이해가 불가능할 수도 있는 것이다. 임진왜란시 끌려간 조선피로들의 이야기, 끌려간 유학자들에 의한 일본에 주자학 전래, 도공들이 만든 막사발을 보고 경탄을 하는 일본인들.
잠깐 막사발 이야기를 하자면, 도공들이 마구 기교를 부리지 않고, 마구 구워낸 듯한 그 막사발에서 풍기던 기품, 그것이 오늘날 세계적인 일본의 도예기술의 밑바탕이라고 한다. 그외에도 사명대사 일해의 일본 탐정이 이후에 조선 통신사의 시효가 되었다고도 한다.
이렇게 이 소설은 작고 사소하고 단편적인 일화들이 많이 소개된다. 그런 이야기들 중의 일정부분은 사실에 입각한 것이기도 하지만, 탐정단의 일원인 기생 홍주이야기나 대마도에서 만나는 기생 홍주이야기 등은 픽션인 것이다.
사명대사의 일본 탐정이라는 커다란 틀에 사실적 일화와 허구가 어우러져서 이야기가 구성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 소설을 읽으면서 느끼게 되는 것은 이 작품의 장르에 대한 의문점이 들게 되는 것이다. 작가가 너무도 친절하게 역사적 사실들을 이야기해 주려는 의도가 짙다보니, 소설속의 글중에 '뒷날의 일이지만, 사명대사의 고향 밀양에는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켜 큰 공을 세운 서산대사 휴정, 사명대사 유정, 기허대사 영규 등 세 선사를 모신 표충사(表忠詞)와 표충서원이 세워진다. 현종 때(1839) 천유화상이 그 사당과 사원을 이곳 영정사로 이건하면서 절 이름도 표충사(表忠寺)로 바뀌게 된다. (p173)
이런 문장들이 여러 곳에서 등장하게 되고, 역사적 사실도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주다보니, 소설이라는 생각보다는 '사명대사'라는 인물평전이나 역사속 일화의 나열과 같은 느낌마저 들게 되는 것이다. 소설이 가져야하는 구성요소들도 적절하게 들어가지 않아서, 소설이 가지는 심리묘사, 배경묘사, 절정, 극적 반전 등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책날개글에 보면,

이 장편소설은 당대 가장 존경받던 승려이자 외침을 당해 멸망의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한 의승장으로, 뛰어난 문인학자아 교류하며 무수한 시문을 남긴 문예학술자이자 일본에서 강화협정과 삼천 피로의 송환을 이루어낸 외교관으로 활약한 사명대사를 입체적으로 조명한 거의 최조의 작품이다. (책날개글중에서)
이처럼, 너무나 많은 것을 담으려는 의도에서 과욕을 넘치다 보니, 장편소설이, 장편소설이 아닌, 픽션이 가미된 역사서(?)의 형태를 가지게 된 것이 아닐까 한다.

비록 소설적 흥미는 반감되었다고 하더라도, 이 책을 통하여 사명대사의 활약상을, 그리고 임진왜란후에 우리의 이야기를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었다는 것은 독자들에게도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한데 세상에 이 무렵의 벚꽃보다 더 슬픈게 있을까 싶습니다. 이토록 흐드러지게 피었다가 눈꽃으로 화려하게 떨어지고 나면 어느새 지리멸렬한 몰골로 바닥에 흩어져 있게 되지요. 저는 벚꽃의 마지막 절정을 볼 때마다 장렬하게 죽어간 무수한 사무라이들을 보는 듯합니다. 내 운명도 저와 다를 바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지요." 사명대사 유정의 입에서 절로 "나무관세음 보살"이라는 속삭임이 새어나왔다. (...)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만개한 벚꽃에서 무수히 죽어간 사무라이의 운명을 느꼈다면 유정은 이 벚꽃에서 일본의 운명과 슬픔 같은 것이 느껴진다고 말하고 싶었다. (p35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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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
김인숙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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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의는 아름다우나 위험한 것이기도 하지요, 아무도 너무 끝까지 믿지는 마소서

-255쪽

조선인 포로들이 모여 농사지으며 살고 있는 곳에 이르러서야 세자가 말을 멈추었다. 노예시장에서 개나 돼지처럼 팔려나가던 조선인들을 세자가 그곳에 모아 농사짓게 만들었다. 제 땅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자들이 그곳에서 대신 제 땅의 꿈을 키웠다. (...) 그곳이 세자의 작은 나라였다. 작고도 작은 나라였다. 그러나 세자가 원손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그 작은 나라의 비루함이 아니었다. 비루함의 너머에 있는 것. 혹은 그 중심에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언젠가는 이루어져야만 할 꿈이었다. '내가 저들의 세자이다.' (...) 그리고 네가 저들의 원손이다.

-208쪽

그러나 내가 조선의 세자, 임금의 아들이다. 미천함과 부족함을 논할 자리에 있지 않으나, 나의 유일함을 세상에 떨칠 날이 있으리라. 그러한 날이 오리라.
-328쪽

강물이 거슬러 흘러 그의 발목을 적시게 되더라도 다만 그에게 변하지 않는 것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그가 생각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세자와 나란히 서서 같은 곳을 바라보던 기억들.... 그때 고요히 흘러 넘치던 세자의 고독을 .... 드러낼 수 없어 더욱 깊은 외로움이 자신의 몸으로 전해지던 것을 그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333~3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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뿡! 방귀 뀌는 나무 어린이 자연 학교 1
리오넬 이냐르 외 글, 얀 르브리 그림, 김보경 옮김 / 청어람주니어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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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자주 가는 산책길에 얼마전부터 노란꽃들이 무리지어 피어있다. 작년에도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서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애기똥풀'이란다. 작고 소박한 느낌의 꽃. 그런데, 꽃의 한 가운데는 가느다랗고 긴 꼬투리가 달려 있고, 그것은 열매로 변하여 무르익으면 그 속에는 씨가 들어있다가 살며시 터져서 점점 그 영역을 넓혀간다. 화려하고 큼직한 꽃은 아니지만, 차라리 풀꽃이라고 하는 것이 맞는 말이겠지만 무리지어 노랗게 핀 꽃들이 바람에 살랑거리는 모습은 너무도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그런데, 참 궁금했던 것은 왜 하필이면 그 많고 많은 이름중에 '애기똥풀'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풀꽃들은 그 이름이 기이한 것이 많기는 하지만.... 며느리밑씻개. 쥐오줌풀, 털쥐손이, 노루오줌풀, 며느리밥풀꽃 등....
그런데, 오늘에야 그 의문이 풀렸다. '뿡! 방귀 뀌는 나무'의 첫 페이지에 '애기똥풀'이 소개된 것이다. '애기똥풀'의 가느다란 줄기를 꺾으면 진노랑의 유액이 흘러나오고 그 냄새가 불쾌하고 독성이 있다고 한다. 뿌리쪽으로 갈수록 유액은 붉은 빛을 띤다고 하니 '애기똥풀'은 아마도 아기들의 똥을 연상해서 지은 이름인가보다.
  '뿡! 방귀 뀌는 나무'에는 이처럼 산과 들에 이름도 알 수 없고, 별로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지도 않는 잡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27가지의 식물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상한 식물들이라고 해야 할까....
 
 

뚝뚝! 피를 흘리는 식물,  킁킁!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식물,
끈적끈적, 끈적이는 식물, 뿡뿡 ! 방귀 뀌는 식물,
퉤퉤! 침뱉는 식물, 주르륵! 눈물 흘리는 식물,
찰삭! 달라붙는 식물, 따끔따끔! 찌르는 식물,
싸악! 할퀴는 식물, 깊은 상처를 내는 식물, 또 다른 식물.
의성어, 의태어와 함께 어우러져서 표현된 식물의 특징이 재미있게 느껴지면서 그 식물들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게 만들어주는 이야기들이다.
자연계의 식물들은 이처럼 특이한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다. 식물들이 고약한 냄새를 풍기거나, 달라붙거나,찌르거나 하는 이 모든 몸짓들은 식물들이 자신을 초식동물로 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하는 행동일 수도 있고, 툭툭 터져서 3m 가 넘겨 튀어 나가는 것은 씨앗을 옮기기 위한 몸짓이며, 그것은 곧 식물들의 번식을 위한 행동인 것이다.
  '포도나무의 눈물'이라고 말하는 포도나무의 가지를 쳐줄 때에 짧게 쳐주면 그나무들이 눈물을 흘린단다. 물론, 아름답게 표현한 수식어이겠지만.... 가지에서 흘러나오는 투명한 방울이 바로 '포도나무의 눈물'인데, 눈물을 많이 흘리면 흘릴수록 포도송이가 많이 달린다고 하니 얼마나 재미있는 이야기이며, 포도농사를 짓는 농부들의 오랜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풀밭지치라고 하는 식물, 일명 독사초는 척박한 황무지나 모래흙에서 자라는데, 처음의 분홍색 꽃이 짙은 보랏빛 꽃으로 변하고, 그 꽃은 독사를 연상하는 하게 하는 붉고 길게 늘어진 꽃 수술이 뱀의 혀처럼 두 갈래로 갈라져 있다니 참 기이한 식물이 아닌가....

 
 
우리들이 생활속에서 그냥 스쳐 지나가던 식물들에 이런 특이한 모습이, 색다른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 줄은 몰랐다. 식물들의 이름의 유래, 쓰임, 특징, 용도, 약효 그리고 '알고 있나요?'를 통해서 식물들의 생태를 알 수 있게 해주어서 참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어린이 자연 학교' 시리즈로 구성된 책인 것같은데, 다른 이야기들은 어떤 이야기들이 있는지 궁금해진다.
오늘부터 산책길에 마주치는 식물들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을 것 같다. 이 책에서 알게 된 식물들을 잘 눈여겨 보았다가 주변에서 찾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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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어디 가?
장 루이 푸르니에 지음, 강미란 옮김 / 열림원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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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마튜는 멀리로 던진 공을 찾으러 떠나고 없어. 더 이상 우리가 마튜를 도와 공을 찾아 줄 수 없는 그런 곳으로 가버렸지. 그리고 아직 이 세상에 남아있는 토마는 점점 더 멍하니 자신만의 세계로 빠져들고 있구나, 그런 지금 그대로 아빠는 너희들에게 책 한 권을 선물하려 한단다. 내 아들들을 위해 아빠가 쓰는 책이야. 우리 모두가 너희들을 기억하기 위해서 쓰는 책이요, 너희 들이 그저 장애인 증명서에 붙여진 사진으로만 남지 않도록 하기 위해 쓰는 책이란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하지 못한 말들을 적는 그런 책..... (p8)
이 책은 프랑스의 유명한 블랙 유머 작가이자 연출가인 '장 루이 푸르니에'가 자신의 자식들에 대한 이야기를 쓴 책이다. 위의 글로 독자들은 짐작을 했겠지만, 장애를 가진 두아들을 둔 아버지의 아들들에 대한 기록과도 같은 이야기이다.
사랑하는 아들, 마튜와 토마.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 정신적, 신체적 장애를..... 앞을 볼 수도 없고, 부서지기 쉬운 뼈,두발은 뒤틀리고, 등도 굽었으며, 귀도 들리지 않는다. 그나마 조금 똑똑한 토마는 자동차를 타면 묻는다. 어눌한 발음으로 '아빠 어디가'  '집에 간단다.' 1분후에 또 '아빠, 어디가.' 그리고, 또. 또. 또.     100번쯤이라고 해야할까.....
    
두 장애인의 아버지로 그들을 키우기 위해서는 천사와 마음이 필요했고, 천사의 인내가 필요했다. 그러나, 그들의 아빠인 '장 루이 푸르니에'는 천사가 아니었다. 그래서 책으로 하지 못한 말을 남긴 것이다. 그것도, 그들이 태어난지 약 40여 년이 지난후에. 그의 첫번째 아들인 마튜는 이미 15살의 나이로 멀리 떠나간 후에.
'두 장애인 아들의 이야기'라는 민감하고 심각한 주제를 가지고, 유머가 넘치는 '장 루이 푸르니에'가  어떻게 표현했을까?
우리집 가족 앨범은 넙치만큼이나 얇다. 토마와 마튜의사진은 별로 없으며, 또 아이들의 사진을 보여주고 싶지도 않다. 원래 정상적인 아이들의 사진은 정성들여 찍는 법이다. 온갖 포즈를 다 찍고,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찍어댄다. 첫돌 사진,  (...)그리고 찍어 놓은 아이의 모습을 지긋한 눈길로 바라본다. 조금씩 아이가 성장하는 것이 보인다. 하지만, 장애아는 다르다.... 난, 아이가 조금씩 퇴보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얼마 되지도 않는 마튜의 사진을 볼 때면, 우리 마튜가 참 못났었구나 인정하게 된다. 정상아가 아니라는 사실이 한 눈에 보인다. 하지만 아내와 나는 (...) 그걸 보지 못했다. (p61~62)
이 책은 너무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다. 이 책이 출간된 당시에 관련기사를 보면 '적절한 톤으로 그려낸 유머와 감동의 작품'이라는 평을 받았으며, 수많은 독자들이 '마튜'의 죽음에 대한 표현마저도 절망과 웃음을 적절하게 배합했다는 표현과 함께 수많은 격려 편지가 쏟아졌다고 한다.
확실히 '장 루이 푸르니에'의 장애인 자식들에 대한 표현과 글들은 시중에 나온 많은 이런 류의 작품들과는 큰 차별화를 느낄 수 있다.
자식의 장애를 힘겹게 받아들이면서 순응하는 표현이거나, 그 힘겨움을 극복한 표현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비해서, 이 책은 자식의 장애를 표현하는 방법에 있어서 독자들이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아니 생각했다고 하더라도 차마 표현을 하지 못했던 그런 류의 표현을 서슴치 않고 글로 써 내려가고 있다.
장애아나, 그들의 부모에 대한 편견, 그들을 보는 시선이 '장 루이 푸르니에'만의 독특한 표현으로 쓰여졌다. 그의 글을 읽다보면, 너무 지나치거나 심하게 표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글들이 많이 나오기는 하지만, 그것이 바로 장애 자녀를 둔 솔직한 심정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이며, 다만 그런 생각들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마음속으로만 간직하고 글로는, 입으로는 뺃어내지 못했을 것이라는 공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 좀 심한 것이 아닌가. 이건 좀 과하다 싶은 표현과 단어들 앞에서 마음이 불편할 수도 있을 것이다. 동정을 불러일으키고, 눈시울을 적시고, 안타까운 마음에 가슴을 쳐야 할 얘기를 정말이지 아무렇지도 않게 털어내는, 심지어 죄없는 아이들을 놀려대는 듯한 아버지의 마음에 충격을 받을 수도 있를 것이다. (p207- 옮긴이의 글 중에서)
작가 역시도 이 문제에 있어서 '적절한 톤'이 어디까지 일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글을 썼다고 한다. 이 작품에 대한 평에는 대부분 '푸르니에'의 유머가 장애 자식들에 대한 글에 적절하게 배합되었다고 하지만, 글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재치와 유머의 표현은 어찌 보면 더 큰 슬픔을 승화시키기 위한 하나의 장치라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장애아를 보는 아버지의 마음이 너무 잘 표현되어 있어서 그것까지도 눈물겹게 느껴지는 것이다. 자식에게서 느끼는 마음을 아무런 거리낌없이 있는 그대로, 느끼는 그 마음을 보태지도 빼지도 않고 그대로 표현한 것이다.
장애아의 아빠는 항상 우울한 표정이어야 한다. 십자가를 지고, 고통의 마스크를 써야 한다. 농담을 하거나, 장난을 쳐서도 아니된다. 장애아의 아빠는 웃을 자격이 없다. 웃는다는 것은 최고로 눈치없는 행동일테니까 말이다. 장애아를 둘이나 가진 아빠에게는 이 모든 조건이 곱빼기가 된다. 장애아를 둘이나 가지 아빠는 곱빼기로 슬픈 모습을 보여야 한다. 운이 없는 사람은 운이 없는 모습을 해야 하며, 또 불행한 표정을 지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살아가는 지혜이다. (p46~47)
그래서, 처음 이 책을 읽기 시작할 때는 '아니, 아버지가 이렇게 말해도 되는것일까?' 하는 의아심이 들다가도 차츰 차츰 그의 글들에 익숙해지면서, 그것이 바로 장애 아들을 둔 아버지의 솔직한 심정이며, 차마 그 누구도 과감하게 표현하지 못한 말들을 이렇게 뺃어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것이 진정으로 장애 아들들을 사랑하는 마음이고, 표현이라는 생각에 눈물겨워지는 것이다.
 

너희들이 어렸을 때, 난 성탄이 되면 왠지 너희에게 책을 선물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곤 했었단다. 이를테면 만화 『탱탱』 같은 것 말이야. 나중에 그 책에 대해서 너희들과 얘기를 나눌 수도 있었겠지. 아빠는 『탱탱』을 속속들이 다 꿰고 있단다. 앨범이 나오는 족족 다 읽었거든. 그것도 여러 번이나 말이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너희들에게 책을 선물하진 않았지.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까. 너희들은 글을 읽을 줄 몰랐거든. 그리고 앞으로도 영영 글을 읽을 수 없겠지. 그러니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너희들이 받을 성탄선물은 오직 장난감 나무토막이나 장난감 자동차일 뿐…… (p7)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사람의 행복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읽을 수 있었다. 99개를 가진 사람들이 100개를 채우기 위해서 안달을 하면서, 그 1개가 없어서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이 얼마나 슬픈 현실인가. 왜 그런 우(遇)를 범하는 것일까?
내가 이 세상을 볼 수 있음을.... 내가 이 세상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음을....
내가  걸을 수 있음을.... 그 모든 것에 감사할 줄 알아야 되지 않을까......
자녀들이 부모들의 기대치에 도달하지 못한다고 해서 힘들어 한다면 그것은 너무도 큰 사치가 아닐까.....
'장 루이 푸르니에'의 입장이 되어 본다면, 이 세상의 모든 불평과 불만은 아침의 이슬처럼 사라질 것이다.
푸르른 5월에. 가족들이 함께 할 수 있음만으로도 행복을 느낄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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