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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 속 아이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24년 12월
평점 :
프랑스 작가 기욤 뮈소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이다. 그의 소설은 예측할 수 없는 결말을 대하면서 '역시!'라는 감탄사를 말하게 된다. 작가의 소설들이 나올 때마다 '따라 읽기'를 하다가 최근의 몇 작품을 읽지 않고 넘어갔다. 기존의 소설들에 비해서 몇 % 모자라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인터넷 서점에서 베스트셀러 작품들을 검색하다가 최근작인 <미로 속 아이>를 접하게 됐다. " 기욤 뮈소 데뷔 20주년 기념작'이라는 타이틀이 눈에 들어 왔기 때문이다. 소설가는 " <미로 속 아이>는 내가 지난 20년 동안 구성해온 작품이다" 라고 작품 설명을 한다.
소설은 이탈리아, 프랑스 등을 넘나들면서 전개된다. 주인공인 오리아나는 이탈리아 기업가의 상속녀이다. 종군기자로 활약을 한, 겉으로 보기에는 활동적이고 강인한 성격의 소유자이다.그녀에게는 아픈 경험이 있는데, 6살 때에 학교 수업을 마친 오리아나는 엄마와 함께 아버지가 있는 스키장으로 가던 중에 자동차 사고로 엄마를 잃게 된다. 엄마는 오리아나에게 운전 중에는 고양이가 들어 있는 상자를 열지 말라고 한다. " 절대 고양이 상자을 열면 안돼"
그러나 어린 오리아나는 살짝 고양이 상자의 문을 열게 되고, 튀어 나온 고양이는 운전하는 엄마에게 달려 들어 사고가 난 것이다. 마음 속에만 간직하고 있던 엄마의 죽음에 대한 진실....이 일로 오리아나는 심리치료를 받기도 한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그 날의 이야기는 오리아나의 마음 속에 트라우마로 남았을 것이다.
어느날 아버지의 죽음으로 30억 유로라는 상속을 받은 오리아나는 프랑스 남부 휴양지에 정박 중인 요트에서 괴한의 습격을 받고 혼수상태에 빠지게 되나 열흘만에 잠깐 의식을 찾고 짤막한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다.
난황에 부딪혀 1년 동안 지지부진하던 수사는 범행에 사용했던 쇠꼬챙이가 발견되면서 다시 수사가 활발하게 진행된다. 유력한 범인은 그녀의 남편인 아드리앙....
그러나 기욤 뮈소가 이렇게 싱겁게 범인을 알려줄 리가 없다는 것은 그의 독자들이라면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소설은 4명의 화자가 있다. 살해된 오리아나, 그녀의 남편인 아드리앙. 그리고 오리아나가 자신이 뇌종양 교모세포종 4기로 2개월 정도의 생 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남편의 연인을 만들어 주게 되는데 그 여자가 아델,
그리고 오리아나 살해 사건을 담당한 여자 경찰 쥐스틴.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 가는 과정을 통해 독자들은 범인을 찾게 되는데....
기욤 뮈소 데뷔 20주년 작품인 <미로 속 아이>는 흥미진진한 스릴러의 한계를 뛰어 넘어 강력한 메시지를 남긴다. 주변에 그런 인물이 없으면 전혀 생각하지도 않는 희귀병인 '해리성 정체 장애'를 끄집어 낸다.
'내 안에 또 다른 나', '다중인격' , '가스라이팅' 등 범죄 현장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인격 장애에 대한 생각을 소설을 읽으면서 한 번쯤 심각하게 생각하게 해 준다.
<미로 속 아이>를 다 읽고 책을 덮으면서 '기욤 뮈소'의 2010년 작품인 <종이 여자>가 생각났다.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생각하다가 오래 전에 쓴 리뷰를 찾아 봤다. 2011년에 읽은 <종이 여자>는 책표지부터 마음에 들었었다. 산뜻한 책표지는 소설 속의 종이여자 느낌이었다. 그런데 2023년에 개정판이 나왔다. 책표지는 <미로 속 아이>와 같은 느낌이다. 예전 책표지가 훨씬 맘에 든다. <종이 여자>의 리뷰를 읽다가 '기욤 뮈소'는 한국을 좋아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이 여자>에도 대한민국, 박이슬이란 내용이 살짝 나온다고 하는데 <미로 속 아이>에도 서울에서 공연을 하는 아드리앙의 이야기, 한옥 마을이 살짝 등장한다. 앞으로도 '기욤 뮈소'의 소설이 출간되면 읽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2011년에 쓴 <종이 여자>의 리뷰도 함께 올린다.
<종이 여자>리뷰
우리나라 여성독자들에게 각광을 받는 프랑스 작가라고 하면 서슴치 않고 '기욤뮈소'라고 대답할 것이다.
'기욤 뮈소'는 그동안 <사랑하기때문에> <구해줘>를 통해서 사랑을 이야기하였는데, 작가 특유의 기발한 상상력과 함께 감각적이고 스피디한 문체를 보여주었다.
작가의 이전 작품들이 테마를 위주로한 이야기를 보여 주었다면, <종이 여자>는 캐릭터에 색다름을 주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을 펼치기 전부터 궁금한 점은 '종이 여자'라는 책 제목에서 느껴지는 분위기일 것이다.
어릴적에 가지고 놀던 종이 인형?
종이와 여자가 합쳐지는 느낌은 갸냘픔이나 연약함. 그런 느낌들인데.....
프롤로그를 읽을 때까지도 독자들은 어떤 확실한 실체를 잡을 수가 없을 것이다.
프롤로그는 <천사 3부작>이라는 작품의 2권까지를 출간하면서 혜성처럼 나타난 유명 작가 톰 보이드의 이야기가 뉴스 매체를 통해서 소개되는 기사들과 그가 받은 메일들을 소개해 하는 기사 내용들이 소개된다.
그리고 또 뉴스 매체의 기사는 미모의 피아니스트 오로르 발랑꾸르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런데, 어느새 톰과 오로르는 연인사이로 발전하게 되고.... 곧 이어 톰은 오로르에게 버림을 받게 된다. 그 결과, 형편없이 무너지는 톰 보이드.폭행, 과속 운전, 마약.... 도저히 재기를 할 수 없는 형편없는 모습으로 변해 가게 된다.
<천사 3부작>의 마지막 3권은 앞으로 세 달후에 출간예정이지만 톰의 머리 속은 백지상태이다. 굳어져 버린 머리. 컴퓨터 화면을 열면 구토를 느낄 정도로 무기력하게 변해 버린것이다.
이때 나타난 여인, 빌리.
톰의 <천사의 3부작>중의 스페셜판이 인쇄상의 문제로 266 페이지까지만 인쇄된 책들이 나오게 된 것이다.
"그가 그녀의 어깨를 세게 밀쳤다. 그녀는 바닥에 나가 떨어지면서"까지 인쇄가 된 그 책에서 빌리는 떨어져 나왔다고 한다.
책 속에서 떨어져 나온 빌리.
그녀는 이 책이 완성되어야만 다시 책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여기서 독자들은 어리둥절하게 될 것이다.
'기욤 뮈소'의 판타지 소설?
베스트셀러 작가와 그가 끝맺지 못한 <천사 3부작>의 등장인물 중의 한 여인인 빌리가 펼치는 이야기이니까.
이 작품 속에는 톰, 캐롤, 밀로의 우정과 사랑도 강한 감동을 준다.
세 사람은 미국의 한 빈민촌 출신들이다. 가난하기만 한 것이 아닌, 몸과 마음에 상처를 담고 있는 세 친구.
밀로는 톰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면서 그의 매니지먼트 역할을 하지만, 청소년기에는 갱단에 가입했던 사람.
그리고, 캐롤은 치유 불가능한 고통 속에서 나날을 보내야 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톰은 매일 캐롤을 위해서 <천사 3부작>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마법같은 세계를 만들어 주었기에 그녀가 삶을 포기하지 않게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그러니, 톰이 나중에 <천사 3부작>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인 것이다.
소설도 쓰지 못하는데다가 밀로의 펀드 실패로 무일푼이 된 톰과 그의 책에서 나왔다는 종이 여자 빌이 펼치는 모험에 가까운 이야기들.
그리고, 어느새 사랑을 느끼게 된 톰과 빌리의 이야기.
빌리는 톰에게
또한 청소년 시절에 톰, 캐롤, 밀로에게 있었던 가슴 아픈 이야기들.
이런 이야기들이 <종이 여자>를 통해서 펼쳐진다.
기욤 뮈소가 젊은 작가인 만큼 그가 써 내려가는 이야기들도 젊고 상큼함이 있다.
빌리의 발랄하고 재치있고, 통통 튀는 캐릭터는 읽는내내 신선함이 있다.
소설가는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나드는 아찔하고 위험한 순간들과 수시로 맞닥뜨리"(p117)는 존재임을 기욤 뮈소는 자신의 책 속에서 이야기한다.
그래서 <종이 여자>는 그의 소설이기도 하지만, 작가의 이야기이기도 한 것이다.
창작력의 부재, 작가의 백지 공포증...
이런 것들이 작가들이 느끼는 것들 중의 일부분일 수도 있을 것이다.
현실 속에 살면서도 허구의 세계를 만들어내고, 허구의 세계를 만들어 내면서도 현실 속에서 살아야 하는 작가의 일상이 곧 <종이 여자>에 나타나는 작가의 창작 활동의 일부분일 수도 있는 것이다.
단 한 권 남은 파본을 찾기 위해서 말리부에서 샌프란시스코, 그리고 대서양을 건너서 로마, 다시 한국, 그리고 맨해튼, 이런 긴 여정을 거쳐서 한 권의 책은 프랑스의 센 강에서 퉁퉁 물에 젖은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 책의 향방을 쫒는 이야기는 분명 모험 이야기이지만.
이처럼 작가가 <감사의 말>을 통해서 이야기한 것처럼 "삶은 한 편의 소설이죠"(P483)
이 말을 대변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종이 여자>의 이야기처럼 인생은 픽션과 현실 사이에 놓인 마술 거울을 통해서 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기욤 뮈소의 소설에서 느낄 수 있듯이 <종이 여자>도 탄탄하고 섬세한 구성, 그리고 기발한 아이디어, 작가의 감성과 취향이 잘 나타난 작품이다.
또한, 마지막 반전은 허를 찌를 것같은 느낌을 강하게 받으면서도 사랑스럽다.
빌리가 픽션 속의 인물이지만, 현실 속에 살아 있는 듯 한 느낌이 드는 이유는 책을 덮을때까지 한 치의 방심도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사랑의 이야기를~~ 판타스틱한 이야기를~~ 모험의 이야기를~~
모두 원한다면 <종이 여자>가 제 격이 아닐까 한다.
또한, 세계적인 작가들의 한국 사랑은 <종이 여자>에서도 한 몫을 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카산드라의 거울>에서 한국 청년을 주인공으로 했듯이.
<종이 여자>에서도 '대한민국'이란 단어들과 박이슬이란 여대생이 살짝 등장한다.
역시, 우리나라 국민들의 독서 수준도 그 어느 나라 못지 않음을 일깨워주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