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TV 프로그램 <명견만리>를 보다가 '김난도'의 에세이가 출간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며칠 전에 문자와 메일을
받았다.
김난도의 두 번째 에세이인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가 출간되기 전에 그 책의 가제본을 읽고 '독자 모니터'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에 '독자 모니터'에게 특별히 감사의 표시가 담긴 책을 선물받았다.
그것이 벌써 3년 전인가 보다. 그때에 고마웠던 '독자 모니터'에게 가장 먼저 이번에 출간되는 책인 <웅크린 시간도 내
삶이니까>의 책의 일부를 발췌한 가제본을 보내 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받은 가제본은 100 페이지가 조금 넘는다.
프롤로그를 읽으면서 많은 생각이 스쳐간다.
" 나는 독한 자기부정의 열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살면서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타인이
아닌 스스로를 의심하는 일임을 깨닫던 때였다. (...)
다시 에세이를 쓸 수 있을까" ( 가제본 프롤로그 중에서)
김난도의 첫 번째 에세이가 나왔을 때에 청춘들은 환호를 했다. 지금까지 청춘들이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던 많은 고민들을 조금이나마 해소해
줄 수 있는 책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베스트셀러에 오를 이 책은 책을 잘 읽지 않는 사람들까지 호기심에 많이 읽었던 것같다. 그들은 힘든데 누구에겐가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조언을 들을 수 있는 어르신, 아니 스승이 없었다.
그러니 답답하기만 했는데, 그래도 그 고민을 함께 생각해 볼 책이라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상은 참 냉혹하다. 서평을 통해서 이 책의 생각을 밝힌다면 그래도 이해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아프니까
청춘이다>, <천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는 책을 폄훼하니, 김난도는 많이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아마도 그런 이유들이 '세
번째 에세이를 쓸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을 해 본다.
이 책들에 대한 청춘들의 반응은 뜨거웠지만 일부에서는 이 책의 제목을 패러디 하기도 하니, 독자의 입장에서도 저자의 마음이
헤아려진다.
그러나 나는 해마다 나오는 '트랜드'관련 책도 챙겨 읽고 TV프로그램인 <명견만리>의 김난도의 출연도 빠짐없이 보곤 한다. 그렇다고 내가
청춘은 아니다, 아들과 조카가 청춘이고 그들의 고민을 조금이나마 느끼기에 김난도의 책들에 관심을 가졌다.
특별 가제본인 <웅크린 시간도 내 삶이니까>는 절망에서 희망을 이야기한다. 많은 사람들이 절망과 좌절 속에 힘든 시간을 보낸다.
어제 TV 뉴스에는 대기업과 금융공기업의 필기시험에 관한 내용이 있었다. 오전, 오후 2군데 시험을 보기 위해서 오토바이를 대기시켜 놓은
취준생들.
그들의 힘겨운 취업전쟁, 그들 중의 상당수는 좌절감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래서 웅크리고 있어야 할 그들,
" 웅크리는 것은 완전히 주저앉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웅크린 것들은 결국 다
일어선다. 하늘을 향해 기지개를 켠다. 지금은 몸과 마음을 꾹꾹 접어두고 있는 나와 당신이 다시 일어설 그날을 기다리며 "
그렇다 이렇게 웅크린 시간도 내 삶의 일부인 것이다. 절망이 아닌 간절하게 앞날을 위해 기다리고 일어설 준비를 하는 시간들도 내 삶의
일부인 것이다.
전체적인 내용은 읽지 못했지만 책 내용을 발췌한 부분 중에 마음에 와닿는 글들을 소개한다.
" 이 책은 내가 웅크리고 있던 시간 동안 연기처럼 자꾸만 갈라지고 흩어지는 삶을 붙들어
내 마음과 일상의 구석구석을 되돌아보면서 써내려간 기록들이다. 삶은 그렇게 끊임없이 피어오르는 화를, 우울을, 절망을 달래고 다스리고 이겨내며
사는 것임을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 대한민국은 '정답사회'다. 누가 법으로 정한 것도 아닌데, '삶의 정답'이 유령처럼
우리 사회를 떠돈다. 복수정답이 나오면 안 된다. 그러고는 그 답을 따르지 않으면 당장 인생이 망할 것처럼 호들갑을 떤다. 이 나라에서 다른
것은 틀린 것이다.
문제는 이런 폭력적 강요가 오랜 기간 지속되다보니 사람들이 그 정체불명의 정답을
내면화함으로써 정작 자기 뜻대로 살고 싶은 욕망을 마주하면 크게 주저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자기만의 고집대로 살아가기는 쉽지
않고, 남의 시선이 내 주관을 압도할 때가 많다. 그러니 일단 다들 하라는 대로 할 밖에. 하지만 정말 그런가? 우리 인생에 정답이 단
하나인가? 아니, 그 정답이라는 것이 도대체 존재하기는 하는가? 우리는 사회가 만들어준 정답을 따라야만 하는가?
"
" 이도 저도 안 될 때 쓰는 최후의 방법은 '웅크리는'것이다. 강력한 천적을 만나
보호색 아래서 잔뜩 웅크린 벌레처럼 마음을 줄이고 줄이고 또 줄인다. 이때 떠올리는 것이 '호두'다. 맛있는 견과 알맹이가 딱딱한 껍데기 속에
숨어 있는 호두. 그랬다. 내 최후의 보루는 호두였다. "
한줌의 희망이 아쉬운 시기다. 누군가 희망 한 상자를 택배로 보내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희망은 착불이란다. 용기와 실천을
수신자부담으로 내지 않으면 희망은 아직 내 것이 아리라고 한다. 불경기로, 취업난으로, 질병으로, 이별로, 인간관계로, 고통의 시간을 감내해야
하는 이들에게 어눌한 인사말이라도 건넨다면 조금은 나아질까? 책을 쓸 때마다 늘 품는 바람이다. 여기 서툰 표현 하나가, 그대가 희망의 상자를
열어볼 용기를 내는데 작은 계기라도 될 수 있기를."
우리 사회에 청춘들과 소통을 할 수 있는 부모, 스승, 어르신은 얼마나 될까?
자신의 마음을 열어 놓고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다소나마 작은 용기를 줄 수 있다면 이 책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