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대사 일본탐정기
박덕규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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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92년부터 약 7년 동안에 걸쳐, 조선의 백성들을 도륙하고 아름다운 산야를 피폐하게 만들었던 임진왜란. 그 끔찍한 전쟁에 얽힌 이야기는 참으로 많고도 많다. 침략국인 왜와의 이야기. 그리고 조선을 도와준다고 왔던 명나라와의 이야기. 그 전쟁중의 영웅들도 여럿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신나고 흥미로운 이야기는 스님의 신분으로 큰 활약을 거두었던 서산대사와 사명대사의 이야기일 것이다. 그런데, 스님들의 활약상은 신화나 전설속의 이야기처럼 부풀려져서 쓰여졌기에 아동들의 책속에서 많이 접할 수 있었다. 워낙, 스님이 전쟁에 참여한다는 것이 살생을 금하는 불교의 교리에 맞지 않기에 그렇게 미화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정작 스님들의 자세한 행적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이다.
임진왜란이 끝난후, 대마도는 일본 본토보다는 조선에 의지하여 살아 왔기에 조선과 일본의 수교가 단절되면 생활의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래서, 대마도를 선도로 일본은 문호개방을 원하게 된다. 하지만, 조선의 입장에서는 침략국인 일본의 본의를 알 수 없는지라, 일본의 정세 및 재침우려의 상황 등을 타진할 임무를 띤 사람을 파견하게 되는데, 여기에 발탁된 인물이 사명대사이다.
그 시절엔 아주 할아버지에 대상하는 환갑을 지난 사명대사가 그 임무를 잘 할 수 있을까?
국서도 없고, 관직도 없고, 그가 가야 할 곳은 대마도에서 시작하여 당시 일본의 실세인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만나러 오사카를 거쳐서 교토까지 가야 한다.

  

삶이란 한 조각 구름이 일어나는 것.
죽음이란 한 조각 구름이 스러지는 것.
구름은 본시 실체가 없으니
죽고 살고 오고 감이 모두 그와 같도다. (p25)

내가 가는 길은 깜깜한 밤입니다. 그 밤에 멀리 희미한 것이 기웃거리는데, 그게 별이라는 것입니다. 온 우주가 깜깜한데, 오직 희미한 별 하나가 있지요, 내 여생에서 하는 일이란 점 별 아래를 간다는 것일 뿐, 다른 집착도 집념도 없습니다. 온 우주가 깜깜한데 저 멀리 별 하나 떠 있고, 다만 그 별 아래 가는 것이 내 일이요, 내 길입니다. (p118)
이런 이야기가 주축이 되어서 '사명대사 일본 탐정기'는 시작되는 것이다.
 

사명대사는 스승인 서산대사의 법통을 이어 받았고, 임진왜란에서 의승장으로 활약을 보여 전투및 뛰어난 외교술로도 유명한 스님이다. 임진왜란이 끝난지 6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속세에 남아 국가의 일에 참여하는 것이 부처의 뜻을 거스르는 일은 아닐까 하는 우려도 만만하지 않다. 그러나, 그를 따르는 기생, 항왜, 상인.... 그리고 대만도에서 만나는 조선 옹주, 유학자, 승려 등등.... 그 결과 얻어지는 것은 조선 피로 삼천 명의 송환, 그리고 약 300년간 한일평화외교협정.
이 소설의 작가인 박덕규는 5년여에 걸쳐서 수 백종의 관련 자료를 모으고 분석하고, 일본도 여러차례에 걸쳐서 방문하면서 소설을 구성하고 썼다고 한다.
우리들에게 가까우면서도 먼나라인 일본은 그당시, 임진왜란의 침략자인 도요도미 히데요시의 사망과 함께 일본의 정치체제의 변화가 이루어졌고, 그런 역사적 사실을 알아야만 이 소설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고, 텐노, 쇼군, 번주 등의 관계도 일본의 정세를 알지 못하면 이해가 불가능할 수도 있는 것이다. 임진왜란시 끌려간 조선피로들의 이야기, 끌려간 유학자들에 의한 일본에 주자학 전래, 도공들이 만든 막사발을 보고 경탄을 하는 일본인들.
잠깐 막사발 이야기를 하자면, 도공들이 마구 기교를 부리지 않고, 마구 구워낸 듯한 그 막사발에서 풍기던 기품, 그것이 오늘날 세계적인 일본의 도예기술의 밑바탕이라고 한다. 그외에도 사명대사 일해의 일본 탐정이 이후에 조선 통신사의 시효가 되었다고도 한다.
이렇게 이 소설은 작고 사소하고 단편적인 일화들이 많이 소개된다. 그런 이야기들 중의 일정부분은 사실에 입각한 것이기도 하지만, 탐정단의 일원인 기생 홍주이야기나 대마도에서 만나는 기생 홍주이야기 등은 픽션인 것이다.
사명대사의 일본 탐정이라는 커다란 틀에 사실적 일화와 허구가 어우러져서 이야기가 구성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 소설을 읽으면서 느끼게 되는 것은 이 작품의 장르에 대한 의문점이 들게 되는 것이다. 작가가 너무도 친절하게 역사적 사실들을 이야기해 주려는 의도가 짙다보니, 소설속의 글중에 '뒷날의 일이지만, 사명대사의 고향 밀양에는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켜 큰 공을 세운 서산대사 휴정, 사명대사 유정, 기허대사 영규 등 세 선사를 모신 표충사(表忠詞)와 표충서원이 세워진다. 현종 때(1839) 천유화상이 그 사당과 사원을 이곳 영정사로 이건하면서 절 이름도 표충사(表忠寺)로 바뀌게 된다. (p173)
이런 문장들이 여러 곳에서 등장하게 되고, 역사적 사실도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주다보니, 소설이라는 생각보다는 '사명대사'라는 인물평전이나 역사속 일화의 나열과 같은 느낌마저 들게 되는 것이다. 소설이 가져야하는 구성요소들도 적절하게 들어가지 않아서, 소설이 가지는 심리묘사, 배경묘사, 절정, 극적 반전 등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책날개글에 보면,

이 장편소설은 당대 가장 존경받던 승려이자 외침을 당해 멸망의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한 의승장으로, 뛰어난 문인학자아 교류하며 무수한 시문을 남긴 문예학술자이자 일본에서 강화협정과 삼천 피로의 송환을 이루어낸 외교관으로 활약한 사명대사를 입체적으로 조명한 거의 최조의 작품이다. (책날개글중에서)
이처럼, 너무나 많은 것을 담으려는 의도에서 과욕을 넘치다 보니, 장편소설이, 장편소설이 아닌, 픽션이 가미된 역사서(?)의 형태를 가지게 된 것이 아닐까 한다.

비록 소설적 흥미는 반감되었다고 하더라도, 이 책을 통하여 사명대사의 활약상을, 그리고 임진왜란후에 우리의 이야기를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었다는 것은 독자들에게도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한데 세상에 이 무렵의 벚꽃보다 더 슬픈게 있을까 싶습니다. 이토록 흐드러지게 피었다가 눈꽃으로 화려하게 떨어지고 나면 어느새 지리멸렬한 몰골로 바닥에 흩어져 있게 되지요. 저는 벚꽃의 마지막 절정을 볼 때마다 장렬하게 죽어간 무수한 사무라이들을 보는 듯합니다. 내 운명도 저와 다를 바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지요." 사명대사 유정의 입에서 절로 "나무관세음 보살"이라는 속삭임이 새어나왔다. (...)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만개한 벚꽃에서 무수히 죽어간 사무라이의 운명을 느꼈다면 유정은 이 벚꽃에서 일본의 운명과 슬픔 같은 것이 느껴진다고 말하고 싶었다. (p35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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