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프랑스의 유명한 블랙 유머 작가이자 연출가인 '장 루이 푸르니에'가 자신의 자식들에 대한 이야기를 쓴 책이다. 위의 글로 독자들은 짐작을 했겠지만, 장애를 가진 두아들을 둔 아버지의 아들들에 대한 기록과도 같은 이야기이다.
사랑하는 아들, 마튜와 토마.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 정신적, 신체적 장애를..... 앞을 볼 수도 없고, 부서지기 쉬운 뼈,두발은 뒤틀리고, 등도 굽었으며, 귀도 들리지 않는다. 그나마 조금 똑똑한 토마는 자동차를 타면 묻는다. 어눌한 발음으로 '아빠 어디가' '집에 간단다.' 1분후에 또 '아빠, 어디가.' 그리고, 또. 또. 또. 100번쯤이라고 해야할까.....
두 장애인의 아버지로 그들을 키우기 위해서는 천사와 마음이 필요했고, 천사의 인내가 필요했다. 그러나, 그들의 아빠인 '장 루이 푸르니에'는 천사가 아니었다. 그래서 책으로 하지 못한 말을 남긴 것이다. 그것도, 그들이 태어난지 약 40여 년이 지난후에. 그의 첫번째 아들인 마튜는 이미 15살의 나이로 멀리 떠나간 후에.
'두 장애인 아들의 이야기'라는 민감하고 심각한 주제를 가지고, 유머가 넘치는 '장 루이 푸르니에'가 어떻게 표현했을까?
이 책은 너무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다. 이 책이 출간된 당시에 관련기사를 보면 '적절한 톤으로 그려낸 유머와 감동의 작품'이라는 평을 받았으며, 수많은 독자들이 '마튜'의 죽음에 대한 표현마저도 절망과 웃음을 적절하게 배합했다는 표현과 함께 수많은 격려 편지가 쏟아졌다고 한다.
확실히 '장 루이 푸르니에'의 장애인 자식들에 대한 표현과 글들은 시중에 나온 많은 이런 류의 작품들과는 큰 차별화를 느낄 수 있다.
자식의 장애를 힘겹게 받아들이면서 순응하는 표현이거나, 그 힘겨움을 극복한 표현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비해서, 이 책은 자식의 장애를 표현하는 방법에 있어서 독자들이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아니 생각했다고 하더라도 차마 표현을 하지 못했던 그런 류의 표현을 서슴치 않고 글로 써 내려가고 있다.
장애아나, 그들의 부모에 대한 편견, 그들을 보는 시선이 '장 루이 푸르니에'만의 독특한 표현으로 쓰여졌다. 그의 글을 읽다보면, 너무 지나치거나 심하게 표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글들이 많이 나오기는 하지만, 그것이 바로 장애 자녀를 둔 솔직한 심정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이며, 다만 그런 생각들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마음속으로만 간직하고 글로는, 입으로는 뺃어내지 못했을 것이라는 공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작가 역시도 이 문제에 있어서 '적절한 톤'이 어디까지 일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글을 썼다고 한다. 이 작품에 대한 평에는 대부분 '푸르니에'의 유머가 장애 자식들에 대한 글에 적절하게 배합되었다고 하지만, 글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재치와 유머의 표현은 어찌 보면 더 큰 슬픔을 승화시키기 위한 하나의 장치라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장애아를 보는 아버지의 마음이 너무 잘 표현되어 있어서 그것까지도 눈물겹게 느껴지는 것이다. 자식에게서 느끼는 마음을 아무런 거리낌없이 있는 그대로, 느끼는 그 마음을 보태지도 빼지도 않고 그대로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처음 이 책을 읽기 시작할 때는 '아니, 아버지가 이렇게 말해도 되는것일까?' 하는 의아심이 들다가도 차츰 차츰 그의 글들에 익숙해지면서, 그것이 바로 장애 아들을 둔 아버지의 솔직한 심정이며, 차마 그 누구도 과감하게 표현하지 못한 말들을 이렇게 뺃어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것이 진정으로 장애 아들들을 사랑하는 마음이고, 표현이라는 생각에 눈물겨워지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사람의 행복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읽을 수 있었다. 99개를 가진 사람들이 100개를 채우기 위해서 안달을 하면서, 그 1개가 없어서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이 얼마나 슬픈 현실인가. 왜 그런 우(遇)를 범하는 것일까?
내가 이 세상을 볼 수 있음을.... 내가 이 세상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음을....
내가 걸을 수 있음을.... 그 모든 것에 감사할 줄 알아야 되지 않을까......
자녀들이 부모들의 기대치에 도달하지 못한다고 해서 힘들어 한다면 그것은 너무도 큰 사치가 아닐까.....
'장 루이 푸르니에'의 입장이 되어 본다면, 이 세상의 모든 불평과 불만은 아침의 이슬처럼 사라질 것이다.
푸르른 5월에. 가족들이 함께 할 수 있음만으로도 행복을 느낄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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