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니시에인션 러브>를 리뷰해주세요.
이니시에이션 러브
이누이 구루미 지음, 서수지 옮김 / 북스피어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  서투르고, 마음이 앞섰던 첫 사랑의 추억.
 
 
  어렸을 때, 가졌던 생각이 치기일 수도 있고, 극복하기도 하는 마음이 가능할 때, 아이는 어른이 된다. 자신이 가지고 있다는 신념이 절대가 아니라, 다른 선택도 가능하다는 것을 배울 때, 세상 사람들에 대해, 타인의 행동에 대해 여유로워진다. 연애와 사랑, 관계는 한 사람이 잘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둘이 함께 빚어내는 도자기처럼 호흡이 중요하다.
 
  『이니시에이션 러브』, 원시부족에서 성인이 되기 위해 꼭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가 이니시에션 러브이다. 열정적인 사랑과 미성숙한 사랑, 두 가지가 함께 떠올렸다. 첫 사랑이 마음에 오래 남는 이유는 처음 숟가락을 들고 밥을 먹을 때처럼, 서투르고 내 뜻대로만 되지 않고 서로를 잘 알지 못하면서 잘 안다고 착각하기 십상이다. 다음 사랑을 경험하며, 이전의 사랑을 돌아보게 되기에, 아쉬움과 다시 할 수 없다 생각되는 열정이 가슴 속에서 다시 타오른다. 식어버린 화로라서 온기를 느낄 수 없지만, 그 속에는 불씨가 내재되어 있는 모습이랄까. 마음 속에 숨겨져 있는 불씨보며, 활활 타오르던 때를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다.
 
   
#  처음은 이야기의 흡입력에 빠져,
     
     두 번째는 작품 속에 숨겨진 복선의 보물찾기의 재미로 읽게 되는 책.
 
 
  1980년대 중반 일본의 거품경제가 활성일 때, 한국으로 말하자면 IMF 직전의 경기 호황의 시절이 배경이다. 대학 4학년 여름방학에 친구의 소개팅 대타로 나간 스즈키(유키)는 치위생사인 마유코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스즈키에게 적극적으로 호감을 보이는 그녀에게 스즈키는 사랑을 빠지게 된다. 8월부터 시작된 그들의 사랑 이야기는 12월 크리스마스에 호텔 레스토랑의 창가석에서 함께 식사하며, 선물을 교환하는 것으로 절정에 이르게 된다. 레코드와 카세트의 A, B면처럼, 이야기는 두 개의 구조로 되어 있다. 두번째 이야기는 시즈오카에서 사랑을 약속했던 스즈키가 회사의 파견근무결정으로 2-3년간 도쿄로 떠나게 되었을 때의 이야기이다. 장거리 연애를 자동차 운전으로 극복하는 그들의 연애에, 매력적이고 적극적인 회사동료 미야코가 끼여드는데...
 
  처음 읽었을 때는 첫 사랑을 경험하는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생생히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상대의 반응에 고민하고 가슴 떨리는 순간, 공통점을 찾아가려는 노력, 서툴러서 더욱 매력적인 데이트까지. 조금씩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편해지는 과정을 볼 수 있었다고 할까. SIDE B에서 나오는 삼각관계 역시, 사랑을 하다보면 누구에게나 경험할 수 있는 요소이기에 흥미로웠다. 스즈키의 선택도, 미유코의 선택도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할까. 사랑을 통해, 조금 성숙해지는 그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누구에게나 같은 상황 안에서, 다른 생각으로 자신의 사랑이야기를 쓰고 있는 과정이 눈에 보였다.
 
  일본 문화를 모르는 이에게는 TV 프로그램이나, 노래제목, 시대의 변화상의 힌트를 알 수 없지만, 주의깊게 읽다보면 잘 눈에 보이지 않는 적잖은 트릭들이 정교하게 짜여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민한 독자는 처음 읽었을 때, 작가와의 심리게임을 시작할 수도 있다. 
 
  스토리의 재미에 빠져든 이는 마지막 페이지의 예상치 못한 반전을 경험하고, 책을 처음부터 다시 읽게 된다. 그냥 지나쳤던 책이 SIDE A와 SIDE B로 나누어진 이유와 왜 CD가 아니라 레코드와 카세트가 표지에 실려있는지, 한국에서 인기있었던 <남자셋 여자셋>, <논스톱>등의 드라마처럼, 일본의 80년대 세대들이라면 기억하는 복선들이 의미하는 바를 생각하다 보면, 깊은 작가의 의도가 숨겨져 있음이 느껴진다. 반드시 두 번 읽고 싶어지는 소설이라는 홍보문구의 연유를 자연스레 깨닫게 된다.
 
  최근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 이야기』을 읽었다. 한시의 매력은 말하지 않고서 하고 픈 말을 한다는 점이다. 한시의 구절에 화자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직설적인 표현은 없다. 하지만 사물과 풍경이 소개된 연유를 헤아리다 보면, 화자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드러내지 않고도 생생히 느낄 수 있다. 『이니시에이션 러브』역시, 작품 속의 복선을 헤아리다 보면, 그 상황에서의 스즈키의 마음과 마유코의 마음상태를 더욱 강하게 느낄 수 있다. 어쩌면 인간은 사실로 무언가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보려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확인하기도 한다.
 
  현실의 일상을 살아가다 마음 속에 숨겨두었던 첫 사랑의 기억을 다시 떠올려보게 하는 소설이다. 묘한 여운의 매력이 그득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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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처음 읽었을 때는 흥미로, 두 번째는 마지막 반전의 의미를 곱씹으면서 읽을 수 있다. 

  가독성과 촘촘히 읽기의 매력, 첫사랑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옵션)
 

   도착의 론도 - 서술추리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방안에서 뒹굴면서 로맨틱한 사랑을 꿈꾸는 청소년. 

   사랑 후에 남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소녀.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질투와 독점욕을 갖는다는건 상대에게 집착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절대란 말은 없다고 ... 그것을 알고 나서야 비로소 어른이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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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과 알 - 138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가와카미 미에코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수첩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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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  난자는 난세포라고 불러야 옳다.
 
 
  도발적인 첫 문장에, 다음 문장으로 자연스레 시선을 옮겼다. 아직 초경을 접하기 전의 미도리코는 생리를 하게 되면,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존재가 된다는 것, 어른이 된다는 것이 싫다. 어머니 마키코는 39살의 호스티스. 아이를 낳고 말라버린 가슴확대수술을 위해 정보를 모으고, 도쿄에서 수술을 하고 싶어한다. 마키코의 동생인 나는 도쿄에서 생활하고 미혼이다. 반 년간 서로 소리내어 대화하지 않은 모녀는 미도리코가 종이에 글을 써 의사소통을 한다. 사흘간의 휴가를 얻어 마키코 모녀는 도쿄에 머물게 되는데...
 
  미도리코가 말을 하지 않는 이유와 마키코가 가슴확대수술을 하려는 이유가 궁금했다. 절반은 책을 통해 알 수 있고, 절반은 짐작으로 대신해야 한다. 호스티스인 어머니의 모습을 친구들이 놀리는 모습과 매일 열심히 일을 하지만, 가난한 삶을 벗어나지 못하는 마키코의 모습에 미도리코는 돈을 벌어 도와주고 싶지만, 방법을 찾지 못한다. 초경을 하게 되면, 아이를 낳을 수 있고, 어른이 되어가는 그 과정은 어머니의 삶을 닮아가는 것 같아 두렵고 싫다. 두 모녀의 대화의 단절의 배경에는 친구들의 놀림, 호스티스에 대한 편견, 생계를 위해 아이와 함께 할 시간의 여유가 없는 구조적인 모순과 자식과 대화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마키코의 상황이 맞물린다.
 
  가슴 수술을 하고 싶어하는 여성과 가슴 수술은 남성의 이데올로기 때문이라 주장하는 여성과의 묘한 설전에서 일본 사회에서 가슴확대에 대한 인식을 알 수 있었다. 일본에서는 거유라고 해서, 특히 여성의 큰 가슴에 대한 로망이 있다고 하던데, 사회의 풍경과 여성성에 대한 인식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마키코의 나이에서 조금 지나게 되면, 완경이 다가올 시기라 자신의 여성성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기 마련이라 생각한다. 부모자식 사이에 벌어질 수 있는 사소한 오해가 어떻게 발전하게 되는지, 그리고 파격적인 해결의 반전이 인상적이었다. 절대 풀리지 않을 것 같은 등을 돌린 관계도 소통의 작은 힘 만으로도 다시 가까운 관계가 될 수 있다는 것,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작은 실로 연결되어 자꾸 살피면서 놓지 않으려 노력해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의 초경에 큰 파티를 열어주고, 여성이 되었음을 축해해주는 분위기가 일본사회에 만연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생리'라고 이야기하면 부끄럽고,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기 곤란한 사회적 분위기가 큰 한국사회에서는 좀 부러운 분위기라고 할까. 여성이 됨을 존중하는 분위기에서, 생리에 대한 공포와 불안감이 등장하는 케이스는 파격이라 할 수 있지만, 한국적 분위기는 '생리'에 대한 인식이 아직은 말하기 민망한, 내적인 금기의 분위기가 남아있다 생각한다. 문화적 차이를 고려하며 읽는다면 더욱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생각한다.
 
  여성에 대한 로망이 지나치게 강한 남성에게는 목욕탕의 대화라던지, 생리에 대한 거침없는 묘사에 신비감이 확 깨지는 면도 있을 것이다. 남성이 목욕탕에서 다른 사람들의 신체부위에 대해 의식하는 것처럼, 여성들도 다르지 않구나, 그 정도에서 멈추는 것이 좋다 생각한다. 남성은 몸짱과 식스팩 등 강하고 남성답다고 인식되는 몸매가 멋지다고, 여성은 S라인과 굴곡있는 몸매 등을 매력있다고 인식되는 분위기에서 살고 있다. 이런 사고의 밑바탕에는 자신의 몸매를 스스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의식이 있다.
 
  건강에 큰 무리가 가지 않는다면, 조금 말랐던지, 조금 통통하던지에 관계없이, 그 사람의 그 모습을 인정해주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기를 원한다. 그런 사회적 배경이 주류인 사회라면, 자신의 의지로 성형수술을 하는 것은, 자신의 매력을 키우기 위한, 자기만족을 위한 선택이니 우려하거나 걱정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성형수술을 무조건 찬성하기에는, 인간이 관상식물과 어항 속 보기 좋은 열대어가 되어가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젖과 알>에서는 모녀의 도쿄 체류기라는 짧은 사건을 소통의 부재와 공포의 해소라는 측면에서 흥미롭게 이야기를 끌어냈고, 〈당신들의 연애는 빈사〉에서는 화장을 열심히 하는데도 남성에게 데이트 신청을 받지 못하는 여성이, 우연히 만나서 함께 사랑을 나누는 로망을 꿈꾸고, 이를 거리에서 화장지를 나눠주는 사내에게 데이트를 신청하는 이야기와 반전이 흥미롭게 전해진다. 등장 인물의 심리에 대한 섬세한 묘사에 빠져들다 보면, 그 뒤의 사회적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다.
 
  원서에는 표준어인 동경어가 아닌 오사카 사투리가 채워져 있고, 한 문장이 반쪽에서 두 쪽까지 달하고, 쉼표는 예측불허이다. 번역자의 내공에 힘입어 단문과 세련된 문장으로 바뀌었다. 원서로 읽는다면, 제주도 방언으로 쓰인, 한 문단이 한 문장인 책이라고 할까. 일본인에게, 독자에게 불친절한 책으로 인식되는 책을,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건 번역자가 열심히 문맥에 맞게 공들여 언어를 옮겼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번역자가 오래 고생한만큼, 독자는 편하게 쉽게 책과 대면할 수 있다. 권위를 인정받는 상에 이런 불친절한 책이 선정되었다는 점을 통해 일본문학의 숨은내공이 전해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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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의 편지 - 유목여행자 박동식 산문집
박동식 글.사진 / 북하우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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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 떠나고 싶었다.
 
 
  가끔은 일상에서 일탈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관계에 지치고, 자유롭고 싶을 때,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아지트에서 잠시 숨을 쉬곤 한다. 이렇게 잠깐 현실에서 멀어지는 도피가 아닌, 꾸준하게 일정한 거처를 옮기는 여행은, 일상의 쳇바퀴를 느낄 수 없기에 매력적이다. 대신 익숙한 공간이 아닌, 낯설고 다른 문화에 적응해야 하는 숙제가 있다. 얻는게 있으면 잃는게 있다고 할까. 나만을 위한 공간과 시간과 서비스가 존재하지 않듯이, 떠난다는 것 역시 안락한 한 곳에서 누리는 즐거움을 포기하는 대신에 얻는 급부라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다.
 
  떠나고 싶지만, 일상의 늪에서 헤어나기 힘들 때, 떠났던 이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대리만족을 한다. 나를 잊어버리고, 그가 보여주는 풍경과 이야기에 몰입하다 보면, 상상이라는 마차를 타고, 여기저기 떠나는 느낌이다. 그래, 떠나고 싶었다.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노을의 풍경, 다르다는 것은 알지만, 눈으로 몸으로 체험하지 못하기에 낯선 사람들, 지구라는 공간에서 똑같은 아침과 낮을 보내는 사람들의 다른 삶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 따스한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좋았던 책.
 
 
  여행에세이는, 누가 무엇을 어떻게 보느냐에 승부가 갈린다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낯설고 먼 이방인인 외국인도, 외국이 매우 적은 타지에서는, 말이 잘 통하지 않더라도  쉽게 친구가 되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바디랭귀지등을 이용해서 천천히 즐겁게 관계를 이어갈 수 있다. 손가락이 석류처럼 패인 아이의 손가락을 보고 눈물짓고, 학교에 가기 위해 등교전에도 일을 해야 하는 아이의 생활과 짝짝이 슬리퍼와 고된 일을 슬퍼하며, 함께 수레를 밀어주고 함께 비를 맞아주는, 마음 따듯한 시선을 가진 저자의 글에서 나오는 감수성이 마음에 고스란히 전해졌다.
 
  일상에서의 탈출을 통해, 특별한 날을 기억하는 일의 의미와 죽음, 인연 등 다양한 주제들이 여행중의 에피소드와 함께 깊이있게 다가온다. 여행이라는 이름으로 익숙하게 살았던 곳의 차이와 풍경을 보여주기보다는, 같은 지구 안에서 다른 생활을 살고 있는, 하지만 인간적인 교류가 가능한 그들의 삶의 풍경속에 들어간 이의 따스한 글이 묻어 있어 좋았던 책이었다. 여행에세이를 너머, 인간과 인간 사이의 살뜰하고 도타운 정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화려하고 세련된 차를 가진 이가 가난하고 허름한 여행자를 도와주기보다는 가난하고 잃을게 없는 힘겨운 삶을 사는 이들이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눌 줄 아는 모습은 한국 역시, 다르지 않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돈과 물질이 자신의 삶을 채우는 그 크기만큼,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는 마음의 공간까지 차지해서 나눔을 힘들게 한다.  유목여행자만이 느낄 수 있는 여행의 즐거움과 슬픔, 단상들이 5개의 테마로 나뉘어, 41편의 편지의 이름으로 담겨있었다.
 
  여행을 꼭 떠나야만 한다는 글귀는 없지만, 지금 숨쉬고 있는 이곳에서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여행자는 하루 식사와 숙소, 만남마저 불확실하기 때문에 일상에서 당연하게 느껴지는 여유의 틈 대신, 긴장과 감수성이 극대화된다. 익숙한 것을 다르게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는 여행, 경험임을 에세이를 통해 다시 확인하게 된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무언가를 보기 위해 가는 것을 만남이라 하고, 이별하기 위해 그 장소를 벗어나는 것을 떠남이라 한다. 저자는 여행을 현지인과 현지풍경을 만나러 가는 것이라 생각하기 보다는, 익숙해진 풍경들과 작별하는, 헤어지기에 슬프지만, 다른 풍경을 만날 수 있고, 버릴 수 있기에 행복한 마음을 동시에 가질 수 있는 마음이 풍성해지는 일이라 이야기한다. 현실에 메인 이는 일상 속에서 안도와 행복을 찾지만, 떠날 수 있는 이는 떠났기에 자유로워질 수 있고, 떠남으로서 더욱 정착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고 생각한다. 다시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여행, 일정한 시기를 두고 떠남으로써, 떠남의 행위에 안주하는 삶, 다양한 여행의 풍경 중, 내가 택하고 싶은 여행의 스타일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여행 프로그램으로 많은 이들이 가보고 싶은 곳이 아닌, 내 스스로 결정하고 테마를 정해 떠나는 여행. 시행착오도 많지만, 정보도 부족해서 곤란함을 겪을 수도 있지만, 그런 여행을 원한다. 훌쩍 떠난 후, 현지에서 엽서를 쓰고, 지인들에게 마음을 담아 우표를 붙여 보내는 일,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다. 저자의 글과 함께 담겨진 사진은, 글로 만나는 상상속의 공간을 세부적으로 꾸밀 수 있는 힘을 불어주었다. 사진 덕분에 에세이를 통해 여행을 떠났다는 일이 생생해졌다. 살아숨쉬는 듯한 사진과 마음을 움직이는 글, 저자라는 이름의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여행을 함께 다녀온 기분,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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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타라
조정은 지음 / 에세이스트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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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혹적인 수필의 세계.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길 뒤 편에 솟아있는 험난한 봉우리.
 
 
  학창시절에 읽었던 수필들이 떠오른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읽으며 맑고 향기로운 마음을 배웠고, 피천득님의 『인연』을 통해 소박하고 꾸밈없는 순박한 마음과 일상 속 아름답게 빛나는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윤오영님의 수필에 스며있는 한문학의 빼어난 지식과 철학의 깊이가 묘하게 어우러진 품격도 기억에 남는다. 깊이 있는 수필들도 있었지만, 일상의 소소한 경험들이 묶인 에세이도 많았다. 쓸 수 있다면 누구나 쉽게 그 길을 걸을 수 있지만,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평범한 속의 비범이라는 높은 봉우리에 올라서야 한다. 인터넷의 인터넷 만화가와 비슷하다. 누구나 인터넷만화를 그려 자신의 공간에 올릴 수 있지만, 주목받고 인기있는 만화가는 소수에 불과하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창작지원금을 받고, 3년의 마감을 꼬박 채운 책이다. 저자의 글에서 그는 파택을 이야기한다. 자신의 생각이 구축하던 관념의 집을 허물기 위해 글을 쓰고, 과거의 기억들에 대한 천도제의 의미로 에세이를 완성했다 한다. 소중했던 어머니, 아버지와의 추억을 떠올리기도 하고, 인생의 험난했던 시기를 지나온 과정이 생생히 살아있기도 하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깊이와 흥미를 만족시키는 에세이이다. 평소에 읽던 수필과 다른 스타일의 글쓰기가 더욱 흥미를 끌었던, 읽고 난 뒤, 묵직하게 다가오는 생각거리가 진한 여운이 인상적이었다.
 
 
#  마음의 변화의 순간을 포착하는 글쓰기.
 
 
  부도가 났지만, 이겨낼 수 있다며 힘을 실어주는 남편이 새벽 3시에 피우던 담배와 관련된 에피소드, 부도로 인한 설움을 감추다 결국 어머니께 고백했을 때, 호통과 한탄할 거라는 예상과 달랐던 어머니의 이야기, 청소부 일을 나갔을 때 겪은 청소부들의 오해, 고가의 보석을 파는 일과 팍팍한 일상사이의 괴리감, 고통과 험난함으로 원망이 극한까지 차올랐을 때, 하늘에 내리는 눈을 보며 생각한 마음의 변화 등 일상에서의 격변의 순간, 마음이 변화하는 과정이 생생한 이야기의 힘이 실려 전해져 온다. 한 편의 소설이라 하기에는, 개인의 경험과 철학이 깊이 반영되어 있고 수필의 문법을 지키고 있다.
 
  누가 이야기를 하는가와 어떤 이야기를 하는가. 수필에 끌리는 매력을 두 가지로 생각한다면, 소재와 소재를 바라보는 관점이 먼저 떠오른다. 유년시절의 경험과 가족들 사이에 일어난 에피소드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소재가 많기에 흔하다. 흔한 이야기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수필의 깊이가 달라진다 생각한다. 서울 지하철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걸인과의 에피소드, 쉽게 지나칠 수 있는 타인의 호의(비 오는 날, 받은 우산 선물)에서도 작가는 그들을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일상 속의 또다른 삶의 이면에 대해 돌아보게 한다. 인간에 대한 따스한 애정을 지닌 작가의 시선이 독자의 마음까지 따스하게 만들었다.
 
  부모라면 누구나 한 번은 겪게마련인 자식과의 갈등에서도, 자신의 판단이 옳다고 자식을 계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식의 유년시절의 에피소드를 회상을 통해, 애틋한 마음이 생생히 드러난다. 저자의 고민을 통해, 우리사회의 모순이 드러나고, 모순을 알면서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부모의 마음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해답이 없는 관계의 문제에서 저자의 고민에 공감할 수 있었다고 할까. 저자의 순박하다 못해 바보처럼 보이는 따스한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독자들도, 그녀가 바라보는 시각을 통해, 세상을 사는 이들이 바라보는 생의 다양한 관점을 곱씹어 보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을 가치는 충분했다. 글을 풀어가는 독특한 형식과 후반부의 반전이 살아있는 구성, 독자와 같은 걸음에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친근함 등 내겐 배울점이 많은 책이었다.
 
  학창시절에 읽었던 수필 이외에는 읽을만한 수필이 없다 생각했었다. 저자의 에세이집을 읽고나니, 매력적인 수필을 찾으려는 충분한 노력을 하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소설과 여행기 등 주목받는 장르와 달리, 수필은 큰관심이라는 조명과 거리가 먼 장르라 생각한다. 많은 이들이 높고 푸른 나무를 쳐다볼 때, 발밑 낮은 자리에서 작은 풀잎들이 꾸준히 오랜 세월동안 자신들만의 꽃을 피우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많은 이가 관심을 가지지 않아도 야생의 힘으로 홀로 살아내는 수필의 세계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저자의 나이대인 50대에게는 공감의 힘을, 젊은 세대에게는 평범하지만 비범한 생을 산 이가 겪어낸 삶의 진주같은 생각의 덩어리를 느낄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한다. 읽은 시간이 아깝지 않았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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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9-03-01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님, 반가운 리뷰에요.
저와 같은 동인의 작가라서 더욱요. 저도 저 책을 구입했지요.
글맛이 상당한 작가라고 생각해요.

쿨앤피스 2009-03-05 03:54   좋아요 0 | URL
앗! 네, 글을 읽다보면 이야기의 힘에 푹 빠져버리는 책이였습니다. 같은 동인의 작가라니. 인연이 이렇게 닿기도 하네요. 작가님께 책 잘 보았다고 대신 안부 전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댓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
 
위험한 독서
김경욱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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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점에서 한 권의 책을 만나는 일은, 소개팅을 하는 일과 닮아있다.
 
 
  수 많은 책이 놓여있는 서점 속의 많은 책무더기 사이에서 한 권의 책을 고른다. 제목에 끌려, 책 디자인, 작가의 이름에 끌리기도 하고, 지인들이 추천했기에 고르기도 한다. 수많은 우연들이 겹쳐 한 권의 책을 만나고, 구매해서 서가에 놓이는 데에도 많은 우연과 고민, 결심이 필요하다. 어쩌면 소개팅에서 이성을 만나 인연을 이어가는 일처럼, 한 권의 책을 고르는 일은 한 인간을 대면하는 일과 닮아있다.
 
  지인이 열변을 토하며 칭찬한 책이다. 이 책을 만나기 전 저자의 단편소설인 『나가사키, 내 사랑』에서는 무능력한 청년인 내가, 재정을 지원해주는 연상의 유부녀인 그녀와 그녀의 아이와 함께 떠나는 밀월여행 중의 불안과 사랑이 팽팽한 긴장감을 지닌 채 잘 묘사되어 있었다. 흔해빠진, 이야기도 어떤 작가가 쓰느냐에 따라 이야기의 힘이 달라지는구나라고 생각했지만, 그의 책을 읽고싶다는 생각까지는 들지 않았다. 망설이고, 외면하기를 1년이 지나고, 그의 신간이 나왔음을 알게되었다. 또 한 동안 미루다가 한 해를 넘기고, 그의 소설집 『위험한 독서』을 조우하였다.
 
 
#  상상력의 힘이 넘치는, 맛있는 글쓰기를 하는 작가의 매력적인 단편들.
 
 
  당신이 읽었던 책을 이야기 한다면, 당신이 어떤 책인지 말해주겠다는 독서치료사인 나에게, 7년동안 사귀었던 남친의 배신을 고통없이 잊기 위해 풍만한 몸매의 한 여인이 찾아왔다. 자존감이 없던 그녀, 도서카드에 담긴 책의 목록만으로 어떤 사람인지 짐작하기 힘든 그녀와 책을 고르고 이야기를 하면서, 독서치료사는 점점 그녀의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위험한 독서」에서는 독서치료사와 의뢰인과의 책을 통한 자존감 회복기와 독서치료사의 짝사랑이 함께 등장한다.
 
  독서의 매력 대신, 일상을 찍고, 드라마를 보면서 자신의 문장을 내 보이는, 책들이 많아지는 현대사회의 풍경이 잘 보인다. 책을 통해 어떻게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지, 독서치료사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독서의 매력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게 된다. 다양한 대사와 음성, 비주얼을 통해 눈길을 끄는 영화, 드라마와 사진등의 매체와 달리 책은 활자로만 독자와 소통하기에, 비주얼을 넘어선 상상력으로 독자를 압도할 수 있다 생각한다. 상상력을 잘 활용할 줄 아는 작가의 단편이라서,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보다 더욱 흥미진진하고,  곰곰히 생각해 볼 화두도 찾을 수 있는, 재미와 생각거리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단편이었다.
  
  총 8편의 단편을 읽는 내내, 지루하거나 읽다가 멈추고픈 단편이 없었다. 등단한지 16년차, 9권의 책을 낸 소설가의 원숙함이 잘 묻어난 책이다. 「맥도날드 사수 대작전」을 통해서는 신자유주의의 구조적인 모순으로 가정이 파괴된 20대 젊은이가 자신의 값어치를 위해 맥도날드에 취직했다가, 보이지 않는 테러 위협에 대비하다가 점점 더 맥도날드화 되어가는 과정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우리가 사는 풍경을 한 편의 즐거운 이야기를 통해 곱씹을 수 있다는 점,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는 점이 독서의 또 다른 매력이다.
 
「천년여왕」에서는 새로 쓴 소설이, 이제까지 세상에 나왔던 소설과 다른 이야기를 쓸 수 있는지에 대해, 「게임의 규칙」에서는 비범한 천재와 금서목록이 등장했던 억압된 시대와의 불편한 조우를,「공중관람차 타는 여자」에서는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결혼했던 여성이 자신의 사랑을 돌이켜보는 과정과 그들의 안타까운 첫사랑 이야기를, 「달팽이를 삼킨 사나이」는 대리모 문제를,「고독을 빌려드립니다」에서는 기러기 아빠의 고독과 대여시스템을, 「황홀한 사춘기」에서는 88년 서울올림픽과 재수 기숙학원에 생활하는 젊은이와 '사랑'에 전부를 걸었지만 모든 걸 잃고마는 그의 아버지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사랑을 하게 될수록 더욱 고독해진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사랑을 하게 되면 자신을 더욱 잘 발견하게 된다. 관계의 끈이 자신의 의지만으로 되지 않기에 불안과 두려움이라는 요소를 안으면서 관계를 맺을 수 밖에 없다. 일상에 매몰되어, 자신을 돌아볼 틈이 없어진 현대인과, 현대인을 불안하게 만드는 사회의 풍경, 그리고 불완전한 사랑을 생각해 보게 된다. 첫 글의 신선함과 마지막 글의 반전, 탄탄한 구조의 세 가지 매력을 모두 가진 작가를 만나는 일은 흔치 않다.

  그가 만들어낸 상상의 세계는 쉽게 이해하기 힘들지만, 그가 이야기하는 방식을 따라가다 보면, 그럴수도 있겠구나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야기를 풀어내는 힘이, 달인의 경지에 올랐다고 할까. 그가 고민했던 과거의 책들이, 그가 앞으로 풀어낼 다음 책들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깃털처럼 가볍지만, 그만큼 자유로운 상상력이 매력적인 일본작가에 비해, 한국 작가들은 무겁거나 너무 지적인 테마에 천착해왔다 생각한다. 최근 3년이내에 재미와 감각을 갖춘 읽어보고 싶은 작가들의 작품이 조금씩 등장하고 있다. 신진 작가는 아니지만, 나이가들수록 퇴보하는 것이 아닌, 아직도 매력을 잘 유지하는 작가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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