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독서
김경욱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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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점에서 한 권의 책을 만나는 일은, 소개팅을 하는 일과 닮아있다.
 
 
  수 많은 책이 놓여있는 서점 속의 많은 책무더기 사이에서 한 권의 책을 고른다. 제목에 끌려, 책 디자인, 작가의 이름에 끌리기도 하고, 지인들이 추천했기에 고르기도 한다. 수많은 우연들이 겹쳐 한 권의 책을 만나고, 구매해서 서가에 놓이는 데에도 많은 우연과 고민, 결심이 필요하다. 어쩌면 소개팅에서 이성을 만나 인연을 이어가는 일처럼, 한 권의 책을 고르는 일은 한 인간을 대면하는 일과 닮아있다.
 
  지인이 열변을 토하며 칭찬한 책이다. 이 책을 만나기 전 저자의 단편소설인 『나가사키, 내 사랑』에서는 무능력한 청년인 내가, 재정을 지원해주는 연상의 유부녀인 그녀와 그녀의 아이와 함께 떠나는 밀월여행 중의 불안과 사랑이 팽팽한 긴장감을 지닌 채 잘 묘사되어 있었다. 흔해빠진, 이야기도 어떤 작가가 쓰느냐에 따라 이야기의 힘이 달라지는구나라고 생각했지만, 그의 책을 읽고싶다는 생각까지는 들지 않았다. 망설이고, 외면하기를 1년이 지나고, 그의 신간이 나왔음을 알게되었다. 또 한 동안 미루다가 한 해를 넘기고, 그의 소설집 『위험한 독서』을 조우하였다.
 
 
#  상상력의 힘이 넘치는, 맛있는 글쓰기를 하는 작가의 매력적인 단편들.
 
 
  당신이 읽었던 책을 이야기 한다면, 당신이 어떤 책인지 말해주겠다는 독서치료사인 나에게, 7년동안 사귀었던 남친의 배신을 고통없이 잊기 위해 풍만한 몸매의 한 여인이 찾아왔다. 자존감이 없던 그녀, 도서카드에 담긴 책의 목록만으로 어떤 사람인지 짐작하기 힘든 그녀와 책을 고르고 이야기를 하면서, 독서치료사는 점점 그녀의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위험한 독서」에서는 독서치료사와 의뢰인과의 책을 통한 자존감 회복기와 독서치료사의 짝사랑이 함께 등장한다.
 
  독서의 매력 대신, 일상을 찍고, 드라마를 보면서 자신의 문장을 내 보이는, 책들이 많아지는 현대사회의 풍경이 잘 보인다. 책을 통해 어떻게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지, 독서치료사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독서의 매력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게 된다. 다양한 대사와 음성, 비주얼을 통해 눈길을 끄는 영화, 드라마와 사진등의 매체와 달리 책은 활자로만 독자와 소통하기에, 비주얼을 넘어선 상상력으로 독자를 압도할 수 있다 생각한다. 상상력을 잘 활용할 줄 아는 작가의 단편이라서,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보다 더욱 흥미진진하고,  곰곰히 생각해 볼 화두도 찾을 수 있는, 재미와 생각거리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단편이었다.
  
  총 8편의 단편을 읽는 내내, 지루하거나 읽다가 멈추고픈 단편이 없었다. 등단한지 16년차, 9권의 책을 낸 소설가의 원숙함이 잘 묻어난 책이다. 「맥도날드 사수 대작전」을 통해서는 신자유주의의 구조적인 모순으로 가정이 파괴된 20대 젊은이가 자신의 값어치를 위해 맥도날드에 취직했다가, 보이지 않는 테러 위협에 대비하다가 점점 더 맥도날드화 되어가는 과정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우리가 사는 풍경을 한 편의 즐거운 이야기를 통해 곱씹을 수 있다는 점,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는 점이 독서의 또 다른 매력이다.
 
「천년여왕」에서는 새로 쓴 소설이, 이제까지 세상에 나왔던 소설과 다른 이야기를 쓸 수 있는지에 대해, 「게임의 규칙」에서는 비범한 천재와 금서목록이 등장했던 억압된 시대와의 불편한 조우를,「공중관람차 타는 여자」에서는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결혼했던 여성이 자신의 사랑을 돌이켜보는 과정과 그들의 안타까운 첫사랑 이야기를, 「달팽이를 삼킨 사나이」는 대리모 문제를,「고독을 빌려드립니다」에서는 기러기 아빠의 고독과 대여시스템을, 「황홀한 사춘기」에서는 88년 서울올림픽과 재수 기숙학원에 생활하는 젊은이와 '사랑'에 전부를 걸었지만 모든 걸 잃고마는 그의 아버지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사랑을 하게 될수록 더욱 고독해진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사랑을 하게 되면 자신을 더욱 잘 발견하게 된다. 관계의 끈이 자신의 의지만으로 되지 않기에 불안과 두려움이라는 요소를 안으면서 관계를 맺을 수 밖에 없다. 일상에 매몰되어, 자신을 돌아볼 틈이 없어진 현대인과, 현대인을 불안하게 만드는 사회의 풍경, 그리고 불완전한 사랑을 생각해 보게 된다. 첫 글의 신선함과 마지막 글의 반전, 탄탄한 구조의 세 가지 매력을 모두 가진 작가를 만나는 일은 흔치 않다.

  그가 만들어낸 상상의 세계는 쉽게 이해하기 힘들지만, 그가 이야기하는 방식을 따라가다 보면, 그럴수도 있겠구나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야기를 풀어내는 힘이, 달인의 경지에 올랐다고 할까. 그가 고민했던 과거의 책들이, 그가 앞으로 풀어낼 다음 책들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깃털처럼 가볍지만, 그만큼 자유로운 상상력이 매력적인 일본작가에 비해, 한국 작가들은 무겁거나 너무 지적인 테마에 천착해왔다 생각한다. 최근 3년이내에 재미와 감각을 갖춘 읽어보고 싶은 작가들의 작품이 조금씩 등장하고 있다. 신진 작가는 아니지만, 나이가들수록 퇴보하는 것이 아닌, 아직도 매력을 잘 유지하는 작가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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