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과 알 - 138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가와카미 미에코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수첩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  난자는 난세포라고 불러야 옳다.
 
 
  도발적인 첫 문장에, 다음 문장으로 자연스레 시선을 옮겼다. 아직 초경을 접하기 전의 미도리코는 생리를 하게 되면,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존재가 된다는 것, 어른이 된다는 것이 싫다. 어머니 마키코는 39살의 호스티스. 아이를 낳고 말라버린 가슴확대수술을 위해 정보를 모으고, 도쿄에서 수술을 하고 싶어한다. 마키코의 동생인 나는 도쿄에서 생활하고 미혼이다. 반 년간 서로 소리내어 대화하지 않은 모녀는 미도리코가 종이에 글을 써 의사소통을 한다. 사흘간의 휴가를 얻어 마키코 모녀는 도쿄에 머물게 되는데...
 
  미도리코가 말을 하지 않는 이유와 마키코가 가슴확대수술을 하려는 이유가 궁금했다. 절반은 책을 통해 알 수 있고, 절반은 짐작으로 대신해야 한다. 호스티스인 어머니의 모습을 친구들이 놀리는 모습과 매일 열심히 일을 하지만, 가난한 삶을 벗어나지 못하는 마키코의 모습에 미도리코는 돈을 벌어 도와주고 싶지만, 방법을 찾지 못한다. 초경을 하게 되면, 아이를 낳을 수 있고, 어른이 되어가는 그 과정은 어머니의 삶을 닮아가는 것 같아 두렵고 싫다. 두 모녀의 대화의 단절의 배경에는 친구들의 놀림, 호스티스에 대한 편견, 생계를 위해 아이와 함께 할 시간의 여유가 없는 구조적인 모순과 자식과 대화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마키코의 상황이 맞물린다.
 
  가슴 수술을 하고 싶어하는 여성과 가슴 수술은 남성의 이데올로기 때문이라 주장하는 여성과의 묘한 설전에서 일본 사회에서 가슴확대에 대한 인식을 알 수 있었다. 일본에서는 거유라고 해서, 특히 여성의 큰 가슴에 대한 로망이 있다고 하던데, 사회의 풍경과 여성성에 대한 인식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마키코의 나이에서 조금 지나게 되면, 완경이 다가올 시기라 자신의 여성성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기 마련이라 생각한다. 부모자식 사이에 벌어질 수 있는 사소한 오해가 어떻게 발전하게 되는지, 그리고 파격적인 해결의 반전이 인상적이었다. 절대 풀리지 않을 것 같은 등을 돌린 관계도 소통의 작은 힘 만으로도 다시 가까운 관계가 될 수 있다는 것,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작은 실로 연결되어 자꾸 살피면서 놓지 않으려 노력해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의 초경에 큰 파티를 열어주고, 여성이 되었음을 축해해주는 분위기가 일본사회에 만연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생리'라고 이야기하면 부끄럽고,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기 곤란한 사회적 분위기가 큰 한국사회에서는 좀 부러운 분위기라고 할까. 여성이 됨을 존중하는 분위기에서, 생리에 대한 공포와 불안감이 등장하는 케이스는 파격이라 할 수 있지만, 한국적 분위기는 '생리'에 대한 인식이 아직은 말하기 민망한, 내적인 금기의 분위기가 남아있다 생각한다. 문화적 차이를 고려하며 읽는다면 더욱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생각한다.
 
  여성에 대한 로망이 지나치게 강한 남성에게는 목욕탕의 대화라던지, 생리에 대한 거침없는 묘사에 신비감이 확 깨지는 면도 있을 것이다. 남성이 목욕탕에서 다른 사람들의 신체부위에 대해 의식하는 것처럼, 여성들도 다르지 않구나, 그 정도에서 멈추는 것이 좋다 생각한다. 남성은 몸짱과 식스팩 등 강하고 남성답다고 인식되는 몸매가 멋지다고, 여성은 S라인과 굴곡있는 몸매 등을 매력있다고 인식되는 분위기에서 살고 있다. 이런 사고의 밑바탕에는 자신의 몸매를 스스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의식이 있다.
 
  건강에 큰 무리가 가지 않는다면, 조금 말랐던지, 조금 통통하던지에 관계없이, 그 사람의 그 모습을 인정해주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기를 원한다. 그런 사회적 배경이 주류인 사회라면, 자신의 의지로 성형수술을 하는 것은, 자신의 매력을 키우기 위한, 자기만족을 위한 선택이니 우려하거나 걱정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성형수술을 무조건 찬성하기에는, 인간이 관상식물과 어항 속 보기 좋은 열대어가 되어가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젖과 알>에서는 모녀의 도쿄 체류기라는 짧은 사건을 소통의 부재와 공포의 해소라는 측면에서 흥미롭게 이야기를 끌어냈고, 〈당신들의 연애는 빈사〉에서는 화장을 열심히 하는데도 남성에게 데이트 신청을 받지 못하는 여성이, 우연히 만나서 함께 사랑을 나누는 로망을 꿈꾸고, 이를 거리에서 화장지를 나눠주는 사내에게 데이트를 신청하는 이야기와 반전이 흥미롭게 전해진다. 등장 인물의 심리에 대한 섬세한 묘사에 빠져들다 보면, 그 뒤의 사회적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다.
 
  원서에는 표준어인 동경어가 아닌 오사카 사투리가 채워져 있고, 한 문장이 반쪽에서 두 쪽까지 달하고, 쉼표는 예측불허이다. 번역자의 내공에 힘입어 단문과 세련된 문장으로 바뀌었다. 원서로 읽는다면, 제주도 방언으로 쓰인, 한 문단이 한 문장인 책이라고 할까. 일본인에게, 독자에게 불친절한 책으로 인식되는 책을,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건 번역자가 열심히 문맥에 맞게 공들여 언어를 옮겼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번역자가 오래 고생한만큼, 독자는 편하게 쉽게 책과 대면할 수 있다. 권위를 인정받는 상에 이런 불친절한 책이 선정되었다는 점을 통해 일본문학의 숨은내공이 전해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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