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만나다 1 - 헬로 스트레인저 ㅣ 길에서 만나다 1
쥬드 프라이데이 글.그림 / 예담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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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잘 그릴 줄 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지금보다 조금 더 자주, 능숙하게 내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들을 그림으로 색채로 나타낼 수 있다면, 지금보다 좀더 즐거워질 텐데. 그림은 악기를 연주할 줄 아는 것보다 조금 더 간절한 나의 바람 중 하나다.

 

이 만화, 내 취향이다. 풍경 그림이 참 좋다. 서울의 어떤 곳(주로 길)을 사진으로 찍고 그 길을 다시 그림으로 보여 주고. 나는 이 장면들이 이야기의 구조나 대사보다 훨씬 좋았다. 책장을 넘기지 않고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고 싶을 만큼 잔잔하고 소박하고 아늑한 길들. 그 길을 찾아 나도 돌아다녀 보고 싶을 만큼.

 

웹툰이나 젊은 작가들의 책을 보면 그 안에서 어쩔 수 없는 그들의 처지를 읽게 된다. 아직은 정착하지 못한 아슬아슬한 단계, 여전히 헤매고 있다면서도 놓치지 않는 꿈, 좀 불안하지만 그래도 괜찮을 거야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애쓰고 안간힘을 보태는 일상들. 그 시간을 어렵지 않게 지나온 나로서는 안타깝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그러니 내가 그림을 좀 그려 보고 싶다는 소망 따위는 그들에게 사치의 다른 이름일 수밖에 없을지도 모르겠다.

 

딸에게 이 만화책이 좋다는 말을 했더니, 요즘 좋은 웹툰이 아주 많아졌다고 한다. 만화라는 장르에 대한 나도 미처 깨닫지 못한 편견 때문에 좋은 작품을 모르고 있었을 수도 있다. 이 분야의 작가들이 조금 더 마음 편하게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그래서 우리의 출판 영역에서 넉넉한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독자인 한 사람으로서 열심히 읽어주는 것으로 힘을 보태야겠다는 생각, 기특하게 해 본다. (y에서 옮김2013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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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트레버 - 그 시절의 연인들 외 22편 ㅣ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15
윌리엄 트레버 지음, 이선혜 옮김 / 현대문학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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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랜 시간을 이 책 한 권으로 보냈다. 평소 내 습관대로라면 이 책 저 책, 얇거나 가벼운 책을 섞어 가며 동시에 여러 권을 읽는데, 이 책을 붙잡고 있는 동안에는 좀처럼 다른 책이 잡히지 않았다. 좋아하는 소설가의 좋아하는 글이 되리라는 것을 알았지만 이토록 내가 사로잡혀 있을 줄은 미처 몰랐으니. 나는 지금의 이 기분이 아주 낯설면서도 너무 풍성하여 벅차기만 하다. 소설책 한 권을 읽었을 뿐인데 얼마나 많은 사람의 얼마나 많은 생을 경험하였던지.


모두 23편의 소설들. 읽을수록 글이 많은 것이 마음에 들었다. 한 편씩 읽고 넘길 때마다 남은 글이 줄어드는 게 아까웠으니까. 더 읽고 싶고 계속 읽고 싶고 지금까지 읽은 시간보다 더 오래 머물고 싶었다.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아서 더 서운한.


보통의 사람들이 보통으로 겪는 이야기. 특별한 능력도 특별한 조건도 없이 조금씩 모자라거나 조금 넘치거나 그래서 사는 일이 수월하지 않고 좀 고달프고 남을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면서 하루하루를 버티듯 그러나 또 제대로 살아보고 싶다고 마음 다지는 이들의 이야기.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두고 런던을 오가면서 삶의 공간을 바꾸는 이들의 고난까지 담고 있는 이야기. 지금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라고는 할 수 없는데도 우리의 모습이 영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많이 낯익은 이야기들. 불쌍하기도 하고 얄밉기도 하고 야속하기도 하고 원망스럽기도 한, 사랑하고 싶으나 사랑이 안 되는 이들의 이야기.


한 편씩 간단한 문장으로 정리를 하려고 했다, 읽는 동안에는. 그런데 다음 편으로 넘어 가면 앞 이야기를 잊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내 감동의 능력이 부족하여 그런가 싶기도 했으나 잊고 나니 홀가분해지는 기분이 이어졌다. 어느 한 편 아프지 않은 글이 없었던 탓이다. 아픔을 느끼면서도 읽는 일이 기분 좋다니. 내가 이상하게 여겨졌다.  


세상에 더없이 못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에 대한 나의 비난이 줄어들 것 같다. 작가가 창조한 인물과 그들의 다양한 행적 덕분에 못난 이들까지 이해할 수 있을 능력을 얻은 것만 같다. 권력이든 재산이든 명예든 세습이든 아무리 간절한 욕망이라도 나이 들어가는 현상 앞에서는 결국 겸손해질 수밖에 없을 일이니. 


아일랜드는 정녕 동경하게 되는 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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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의 이동 경로
김화진 지음 / 스위밍꿀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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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마음 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SF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남의 마음이나 생각을 읽는 초능력자들을 더러 보여 주곤 하던데 그걸 과연 능력이라고 할 수 있을까? 성가시지 않을까? 남의 마음속 소리들이 막 들린다면. 마구 들리는 게 아니라 듣겠다고 작정하고 듣는다면 그건 또 괜찮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왜 이리 불가능한 조건에 빠져 있는 것인지. 

최근에 좋아하게 된 작가. 다섯 편의 소설. 참 멋진 글이다. 남의 마음이든 내 마음이든 좋은 쪽이든 불편한 쪽이든 이렇게 꼼꼼하고 세밀하게 표현해 놓은 글이라니. 무서운 듯하면서도 마음에 든다. 상대를 너무 잘 알게 된다 싶으면 약간 두려운 기분이 되는 것처럼. 작가에 대해 잘 알게 되었다는 뜻은 아니고 내가 내 주변 사람들에 대한 시선이 깊어질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나처럼 얕게 껍데기만 보는 입장에서는 여간 발전된 상태가 아닐 것이므로. 

친구 관계는 어떤 모습인지, 친구는 어떤 사람을 말하는지, 나는 누구에게 친구로 여겨지는지, 친구를 얼마나 믿는지, 친구가 왜 필요한지... 친구 사이에도 연인 사이만큼이나 복잡한 감정 교류가 있게 마련이고, 친구와 연인 관계가 서로 얽히기라도 하면 이 복잡함은 더 깊어지고 어지러워지기도 한다. 자칫 어느 한 쪽이나 양쪽 모두 깨어질 만큼. 소유욕이든 독점욕이든 사랑이든 질투든. 사람의 본성과 관련된 문제인 것일까. 혼자 살기 어려워서 함께 살려고 하다 보니 선택에 따라 다른 결과를 얻으면서 맞게 되는 갈등 관계로.

다섯 편의 소설은 인물들끼리 이어져 있고 각각의 주인공이 제 마음과 남의 마음을 함께 읽는다. 읽고 추측하고 판단하고 행동한다. 그리고 슬퍼한다. 어느 하나 맞고 틀리고는 없고 다 다른 것은 분명하며 관계는 좋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다. 세상 일이 다 그렇듯이. 누구 하나 버릴 인물이 없는 이야기 다섯 편. 그래서 만인이 소중하게 여겨진다. 약오르게도.  (y에서 옮김2024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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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열정
조은 지음, 정경자 사진 / 마음산책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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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사 놓고 미처 못 읽은 책이 책장 몇 칸에 꽂혀 있다. 금방금방 나오는 새 책을 사 보는 재미에 밀린 책들이다. 버리지도 못하고 안 읽겠노라고 포기하지도 못한 내 애틋한 책들 중의 한 권. 이제서야 이렇게 마무리를 하게 되었다.


시인인 작가의 산문집. 시인의 산문집과 소설가의 산문집은 좀 다른 맛을 풍긴다. 나는 둘 다 좋아하는 편이라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한쪽으로 쏠린다면 그만큼 모자란 세상에 사는 것 같아 섭섭할 것 같기에. 내가 받는 대체로의 인상을 줄여 말하자면, 시인의 산문 속 시인의 삶이 소설가의 그것에 비해 좀 더 우아한 듯하면서도 좀 더 고달프게 보인다는 것. 어쩌면 우아함의 뒷면에 고달픔이 있는 것일까.  


작가의 옛 기억은 퍽 우울하게 그려진다. 예민한 성격이 한층 더 깊은 우울로 만들어냈을지도. 그래서 시인의 숙명을 얻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예술가들 중에 이와 비슷한 숙명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도 하다. 평범하기만 해서는 얻을 수 없는 정신적인 영역을 만나게 되려면. 


비슷한 주제의 산문이라도 내 마음에 애절하게 들어 오는 글이 있고 쉽게 벗어나는 글이 있다. 경계가 뚜렷하지 않아서 글을 읽고 당황스러울 때가 많다. 어떤 우울은 공감에 위로에 격려까지 보태고 싶은데 또 어떤 우울은 고개도 돌리고 싶지 않다. 작가가 자신의 우울을 마주하는 마음가짐, 우울한 기분을 견디고 이겨 내는 태도, 우울한 삶에 던지는 핑계나 변명의 유무, 이런 것들이 내 정서와 얼마나 가까운가에 따라 구분되는 것일 테지. 


다행이다. 이렇게 오랜 시간 떠나 보내지 못한 책을 좋은 마음으로 읽을 수 있어서. 우울했어도 끝내 우울로만 남지 않는 내 독후감. 이 또한 살기 위한 안간힘의 다른 분위기인 것일 테니. 시인의 시를 찾으러 가 보아야겠다. (y에서 옮김20220310)

세상에서 만들어지는 절반 이상의 책이 팔리지 않고, 팔린 책의 절반 이상이 읽히지 않고, 읽힌 책의 절반 이상이 사람들의 의식에 남아 있지 않고, 인간의 의식을 뒤흔들었던 내용의 절반 이상이 그 인간의 삶에 직접적으로 적용되지 않는다는 식의 글을 언젠가 읽은 기억이 난다. 그런들 어떠랴. 과거에 먹었던 좋은 음식들을 내가 다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그 음식물을 통해 이렇게 나의 몸이 형성되어 있는 것을. 책도 그와 같다. 그래서 나는 영양이 풍부한 음식을 가족이나 연인에게도 먹이고 싶은 사람의 마음으로 쓰여져 이 땅에서 책의 형식을 갖는 글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 P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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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을 깨물다 ㅣ 시작시인선 293
이원규 지음 / 천년의시작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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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이 그대로 드러나는 시들이다. 좀 고달프고 좀 누추하고 좀 서럽기도 한 생의 이야기를 노래로 바꾸어 놓았다. 읽는 마음이 편하지 않으면서도 정겹다. 모른 척 고개 돌린 채로 살아가고 있는 내 마음이 그러하고, 그럼에도 마음 따뜻하고 넉넉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에 있어서 또 그러하다. 

 

작가가 남편의 고향 사람이란다. 시에도 경북 방언, 특히 문경의 지방말이 꽤 나온다. 함축적이면서도 재미있는 표현들이 많은데, 이 지방말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썩 반갑고 다정하게 다가올 것 같다. 지방말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라면, 글쎄 낯설 것도 같고 어떤 대목은 외국 시 번역문처럼 보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지방말에는 뜻만으로는 모자란, 이를테면 뉘앙스라는 걸 품고 있게 마련인데 그걸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또 커다란 차이를 낳기도 한다. 남편이 평소에 쓰는 말들로 익혀 둔 표현들을 시어로 만나 보니 특별한 멋이 있다. 사투리의 소중한 역할을 새삼 생각하게 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런 재미들보다 아프다는 느낌을 더 자주 더 많이 느끼게 한다. 아직은 살맛 나는 세상이 못되었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살아서 저마다 살맛 나는 세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 날이 과연 있겠는가 싶기는 한데, 그래도 나날이 심해져만 가는 듯이 보이는 세상을 향한 불평불만의 어느 한 면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좀더 억울한 사람들 편에서, 좀더 고달픈 사람들 편에서, 좀더 말없이 참고 사는 사람들 편에서, 그럼에도 살아 있다는 것에 더 많이 고마워하는 사람들 편에서 내보이는, 길지도 않은 짧은 노래들이 읽는 마음에 걸려 떨린다. 여기 이렇게 살고 있노라고, 외치지 않고 있음에도 생생하게 들리는 노래로 만든 시인의 목소리가.    

 

비유나 상징으로 화려한 치장을 하고 있는 편이 아니어서 읽기에 부담이 없다. 대신 마냥 아름답고 마냥 순수하기만 한 세상을 보이는 게 아니어서 읽는 마음이 편하지 않을 수도 있다. 아픈 사람의 아픔을 같이 느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나는 하는데, 이마저도 내가 비겁한 사람이 되고 마는 형편이라면 변명 없이 받아들이려고 한다. 내 이기심의 그릇을 깨 나가려는 데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 이 시집은 스스로를 들끓게 해 준다. 

 

가을이 오고 있다. 지리산에는 이미 가을이 한창일지도 모르겠다. 시인의 올 가을이 조금은 더 따뜻했으면 좋겠다. (y에서 옮김2019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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