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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아직 따뜻하다 ㅣ 창비시선 174
이상국 지음 / 창비 / 1998년 5월
평점 :
나는 평소에 촌스러움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느끼고 있다. 이 말은 내가 도시스럽다거나 세련된 사람이라는 뜻은 절대 아니다. 어쩌면 나처럼 촌스러운 사람도 드물 정도로 난 어눌한 편이라고 해야 한다. 그럼에도 촌스러움이 좋다고 느끼는 것, 나는 사람이 촌스럽다는 것과 촌스러움을 좋아하는 일과는 전혀 별개의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거다.
지방의 소도시에서 태어나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살았던 나는 흙마당이 있는 집에서는 한번도 살아본 적이 없었으므로 어떤 식물이나 동물도 키워 본 경험이 없다. 그렇다고 시설 좋은 아파트 단지에서 살았던 것도 아니므로 내 어린 시절은 참 삭막했다고 할 수도 있다. 내가 놀 수 있었던 곳은 고작 학교 운동장일 뿐이었으며 어떠한 풀이나 곤충과도 친구가 되어 본 적은 없었다. 촌스러움도 전혀 모르고 그렇다고 도시생활의 혜택을 누리지도 못했던 내 어린 시절.
언젠가부터 그 촌스러움에 대해 무지할 수밖에 없었던 내 어린 시절의 환경에 대해 억울한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꽃 이름 하나, 풀이름 하나, 곤충 이름 하나도 변변하게 아는 게 없었고,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다른 생명체에게 해로운 것인지 이로운 것인지도 모르고, 하다 못해 나 아닌 생명에 대한 관심조차 없이 살아왔던 것에 대해 누구에겐지 모를 원망의 마음이 생겨났던 것이다. 나는 그 동안 정말 무엇을 보고 무엇을 배웠던 것일까.
그러다가 이상국의 이 시집을 보면서 나는 내 속에 숨겨져 있던 촌스러움의 갈망을 찾아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이전까지는 일부러 찾아 읽어도 내 눈에 들어오지 않던 시의 그림들이 이 시집 속에서 천천히 살아나고 있었던 것이다.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집'이 본래 우리에게 그런 것이 아닐까. 제 속에 들어앉아 있으면서 들어있음을 채 알지 못하는, 그러면서도 언젠가는 그 속을 깨닫게 되는 그런 것. '문을 닫지 못하고 다시 건너오는 어둠을 바라보고 있'(65p)는 언제나 따뜻한 '집'처럼. 이제는 내 속에서 늘 따뜻할 나의 촌스러움처럼. 지극히 촌스러워서 더욱 따뜻한 이 시집처럼. (y에서 옮김20011101)
[인상깊은구절]
슬픔도 꽃도 지천인데
산 내다버리고 오는 물처럼
누가 다시는 세상과 싸우지 않겠다며
늙은 소 같은 어둠 앞세우고 돌아오는데
다 안다 다 안다 하며
물소리가 따라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