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55 (완전판) - 장례식을 마치고 ㅣ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55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원은주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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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원한이나 복수심은 아주 사소한 일에서 비롯될 수도 있는 모양이다. 누구나 당연히 그럴 만하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닌 일에도 어떤 사람은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할 원한으로 느끼는 모양이니까. 사람 마음이 다 같지 않고, 이해하는 정도가 다 다르다고 해도 그 원한 때문에 사람이 사람을 죽일 정도가 되고 보면 우리네 일상의 관계에 대해 섣불리 뭐라고 해서는 안 될 일이 된다.

이 작가는 이런 심리를 참 잘도 붙잡아 내는 것 같다. 읽고 또 읽어도 새롭고 서늘해지고 오싹해진다. 다른 사람이 가진 악의에 대해서도 또 내게 있는 그 악의를 느끼면서도.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마음, 안 들었으면 더 좋겠지만 그래도 마음으로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밉고 싫은 이유야 천차만별이겠지만 죽었으면, 없어졌으면, 보이지 않았으면 싶은 그런 사람이 있으니.(누군가 나를 그렇게 여기지 않도록 바라고는 있지만.)

저택의 주인이 갑자기 죽었다. 장례식이 있었고 그 자리에 참여했던 주인의 여동생이 다음날 살해된다. 두 죽음은 연관되어 있는가 아닌가. 누가 이 죽음을 바라고 기다렸는가. 표면적으로는 주인이 남긴 유산을 두고, 남아 있는 가족들의 갈등이 드러난다. 더 많이 받기 위해서. 유산이라는 것, 어느 날 공짜로 생긴다는 재산이라는 것, 갈등의 요인으로는 소설에서든 현실에서든 이만한 게 없다.

푸아로 경감이 등장해서 사건 해결에 기여한다. 아주 사소한 듯 넘겨지는 대사에 중요한 증거를 담아 놓은 작가의 솜씨, 재미있다. 나는 늘 무심하게 넘긴 뒤에야 발견하고 놀라겠지만. (y에서 옮김2019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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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곁에서 - 주말엔 숲으로, 두번째 이야기 ㅣ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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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이 하는 생각이나 말에 공감을 하다가 마침내 내 마음이 떨리는 경우는 무슨 경우란 말인가.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것? 이런 일은 기쁘고 즐거운 일보다 힘들고 괴로울 때 더 절실해지는데 이건 또 무엇 때문일까. 이 만화를 보면서, 많지도 어렵지도 않은 내용을 쉬엄쉬엄 넘기면서 생각한다. 내 마음은 왜 이렇게 움직이는가 하고.

세 명의 여자 주인공. 한 명은 시골의 숲 가까이에 사는 모양이고 다른 두 명은 도시 생활을 한다. 이 중에 숲 가까이에 사는 주인공이 결혼을 하게 되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다른 두 명은 여전히 미혼인 상태이면서 가끔 시골 친구를 방문하는 설정이다. 그리고 숲 속에 있는 나무로부터 삶의 지혜를 얻는 사람들의 이야기.

사는 일이란 게 누가 누구를 가르쳐줄 수 있는 일인가 싶기도 하다. 그냥 사는 것이고 남들 사는 모습을 보다가 스스로 깨우쳐 제 것으로 만드는 게 삶의 방식이 아닐까. 부모가 자식에게 가르쳐 준다고, 먼저 성공한 친구가 성공을 바라는 친구에게 가르쳐 준다고 그게 의도대로 될까. 사람은 배우고 싶다고 하면서도 바라지 않는 상태에서는 자신을 가르치는 것을 지긋지긋해 하게 마련인데.

군대에 있는 아들이 첫 휴가를 마치고 돌아갔다. 나무의 씨앗은 나무로부터 멀리 떨어져야 새로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만화 안에서) 내게서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아들, 그러나 만화 속 ‘히나’의 엄마처럼 좀처럼 멀리 보내지 못하고 있는 엄마인 나. 내 삶에서 내 곁에 두어야 할 것은 정녕 무엇이란 말인가. (y에서 옮김2016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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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 행복 - 가장 알맞은 시절에 건네는 스물네 번의 다정한 안부
김신지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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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신선했고 표지가 싱그러웠다. 책을 선물해 주겠다는 친구의 요청을 받고 제목을 알려줬다. 나는 정녕 제철의 행복이 궁금하던 차였고 마침 이 책 소개글을 만났던 것이다. 책은 재미있었고 선물해 준 친구가 더없이 고마웠다. 이 절기의 행복이 책 안에서 흘러나왔다.

들어는 봤으나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던 24절기를 새삼 살폈다. 글을 읽으려다 보니 자연스럽게 관심이 생겼다. 먼저 내가 이 책을 읽는 시기에 해당되는 절기를 찾아 그 부분부터 읽었다. 소만이다. 이어 내가 태어난 날이 들어 있는 절기의 글로 들어갔다. 동지다. 다시 소만 다음에 올 망종으로 돌아왔다. 왔다갔다 이끌리는 절기를 따라다니면서 글을 읽었다. 괜찮았다. 이러라고 우리에게 4계절이 있었을 테니. 봄여름가을겨울을 원하는 대로 살아보라고 주어졌을 테니. 24절기가 고루 들어 있는 우리나라의 날씨가, 우리나라의 자연환경이 아주 좋아졌다.

행복이 별 게 아니라는 말들을 많이 한다. 누구는 행복을 누릴 줄 알아야만 얻는다고도 한다. 행복도 사랑만큼이나 개별적인 감정이다. 나의 행복과 너의 행복은 절대 같을 수 없으니. 하나만큼은 확실하다고 여겼다. 행복도 부지런해야만 갖고 느낄 수 있다는 것. 이 책의 작가가 얼마나 부지런한 사람인지, 얼마나 부지런히 행복을 구해 내는 사람인지 아무 절기의 글이라도 한 편만 읽으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다행이다. 난 대체로 게으른 편인데 행복을 추구하고 누리는 쪽에서는 꽤나 부지런하다고 봐 줄 것 같다. 이 책에 나오는 내용을 보고 확인한 바다. 작가처럼 24절기에 맞춰 행복하려고 하는 건 아니고, 매일을 그와 비슷한 기분으로 살고 있으니 이만하면 되었다 싶다. 힘든 일, 어려운 일 사이에도 잠깐의 즐거움과 고마움과 행복들이 늘 내 곁에 머물고 있다는 것도 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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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주의 악마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ㅣ 애거서 크리스티 푸아로 셀렉션 6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김윤정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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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로는 Evil Under the Sun. 우리말로는 백주의 악마. 백주의 뜻은 환하게 밝은 낮. 한낮에 아름다운 여성이 살해를 당한다. 악마는 누구지?

푸아로 경감이 사건을 해결시키는 사람으로 등장하고 배경은 바닷가의 멋진 휴양지다. 작가의 이런 배경 설정은 늘 나를 대리만족시킨다. 가 본 적 없는 멋진 곳에서 푸아로 경감을 따라다니며 사람들과 사건을 구경하는 기분을 충분히 느끼게 해 주니까. 읽어도 읽어도 지루하지 않은, 바로 이 맛에 계속 읽고 있는 것도 있고.

살해당한 여성은 남편이 있는데도 젊은 남자와 데이트를 한다. 누가 죽였을까? 왜 죽였을까? 악마는 누구를 가리키는 것이지? 살해 동기는 대체로 돈이나 질투심 때문인 경우가 많았는데 독자가 빨리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작가는 많은 설정을 해 둔다. 나는 번번이 속고 이번에도 속고 푸아로가 친절하게 설명해 줄 때까지 엉뚱한 추리만 한다. 안 해도 되는 의심까지 하면서.

벌 받아야 할 사람은 벌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마음은 어디까지 진실일까. 또 어떻게 이루어져야 좋을까. 지극히 마땅한 마음인데도 새삼 의심이 든다. 누가 벌을 내릴 수 있다는 말일까. ‘하늘’이라는 말과 같은 순진함은 더 이상 갖고 있지 않고 공정한 판결을 기대하는 마음은 확실한데, 모를 일이다.

나쁜 사람이 나쁜 사람을 해치는 일은 공정한가. 오늘은 이 문제가 나를 붙잡는다. (y에서 옮김2024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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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답게 살고 있습니다 - 수짱의 인생 ㅣ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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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답다는 것,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알고 있는 바의 모습. 남들이 이렇다저렇다 하는 말과 같을 수도 있지만 같지 않을 수도 있는 나의 어떤 영역. 이것이 스스로를 주눅들게 하거나 비참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조금 더 나은 사람으로 인식하게 해 주는 흐뭇한 자각. 약간 자신감이 없을 때도 있어서 흔들리거나 애매한 불안감에 휩싸일 때도 있지만, 그래도 나는 나야~, 하는 든든한 지지.

만화는 늘 그래 왔듯이 잔잔하다. 이제 40세가 된 독신 여성 수짱과 45세가 된 독신 여성 사오코는 나이와 더불어 순간순간의 삶을 매만져 본다. 이대로 괜찮은가 어쩐가, 앞으로도 혼자서 괜찮을까 어쩔까. 이 나이는 많은 건가 적은 건가, 나이는 나를 어떻게 규정지으려고 하는가, 나는 내 나이 앞에서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나... 등등.

신기한 건 이 두 사람과 전혀 다른 조건과 환경임에도 같은 성질의 질문을 내가 나에게 던지고 있다는 거다. 만화 속 인물들과 달리 내가 결혼을 했고 배우자가 있고 자녀가 있고 직업을 가졌다가 은퇴를 했다는 건 이런 질문 앞에서 그다지 힘이 되지 못한다. 결국 우리는 각자 다른 경험을 했다는 것일 뿐, 누군가 못해 본 것을 했다고 내가 더 가진 게 아니었더라는 것이지.

그걸 이제야, 이 만화를 보면서 깨닫는 건가? 아니겠지, 알고 있었어도 모른 척 하고 있었던 것이겠지. 그러면서 뭔가 더 가져 보려고, 남들보다 더 위에 서 보겠다고 용을 써 왔던 것이겠지. 정작 갖고 싶은 그게 무엇인지, 그 위라는 곳이 어디인지도 모른 채로.

인생, 참, 답 없다. 답이 없어서, 제 각각의 답이 다 달라서 각자에게 가치로운 것을. 또 하나, 죽을 때까지도 그 답이라는 것을 찾지 못하는 것이라서 우리는 매일 눈뜨며 일어나는 것에 고마움을 느낄 줄 알아야 하는 거다. 나다운 것, 나에게 그리고 세상에게 고마워할 줄 아는 것. 시절이 수상할수록 더욱더. (y에서 옮김2020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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