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문득 어른이 되었습니다 - 마스다 미리 산문집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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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가벼워지고 상쾌해졌다. 어떤 식의 부담도 느끼지 않게 해 주는 글을 읽는 것도 가끔은 필요하다. 글을 읽는다고 늘 무언가를 고민하고 공유하면서 해결해야 한다고 여긴다면 그 또한 곤란할 테니까. 그저 끄덕끄덕, 가끔 갸웃?, 그래그래, 이런,... 하면서 가볍게 시간을 누릴 수도 있어야 한다고, 이제 나는 여유롭게 받아들이기로 한다.

내 나이보다는 젊지만, 작가 말처럼 젊은이라는 말을 듣지는 못하는 사십대 초반의 아줌마. 아줌마이기 전에 여자. 단순하면서도 진지한 작가의 시선과 생각에 많이 공감한다. 늘 되풀이되는 일상을 지겹다고 여기지 않고 고맙게 받아들이는 태도, 가까운 사람들을 배려하면서 그들과의 관계를 소중하게 이어가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평범한 삶의 진수를 본다. 위로처럼 내 자신에게 건넸던 말, 인생이라는 게 대단한 건 아니지 않겠는가, 오늘이 어제 같기만 하고 내일이 오늘 같기만 하다면 그것으로두 충분히 고마운 것을.

작가가 한 또 다른 말처럼, 실속 없는 수다를 떤다고 닥친 고민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잠시 아픈 고민을 잊어두어도 좋을 때가 있다. 잠시 잊었다가 다시 끄집어내어 생각하면 좀 전보다는 생각할 힘도 더 생기고 해결책도 하나 더 마련할 수 있으니까. 고민만 내리 한다고 해서 나아지지는 않더라는 것을 이미 경험으로도 알고 있고.

화려하지 않고 소탈하고 소박해서 좋다. 마치 내가 사는 평범한 모습을 인정해 주는 것만 같다. 멀리 이웃 나라의 모르는 아주머니가. 대단하지 않은 것들, 그저 그런 것들, 그러나 오래 전부터 전해 오던 모든 것들에 점점 더 매력을 느끼게 된다. (y에서 옮김2014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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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손가락의 아픔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ㅣ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60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홍현숙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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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진진한 영화 또는 드라마를 보고 난 기분이다. 백 년쯤 전에 어찌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놓았던 건지 독자로서 고마울 정도다. 이제까지 읽었던 이 작가의 글과 약간 다른 구성 방식을 취하고 있다. 구성의 다양한 측면에서도 뛰어난 작가였다는 게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인 모양이다.

그림이 있다. 그림 속에는 예쁜 집이 그려져 있다. 주인공은 그림 속의 집을 실제로 본 기억이 있다. 그 집을 찾아간다. 그 과정에 많은 일과 사람들이 엮여 있고 서로 간의 사정은 감춰져 있으며 의문은 끝없이 일어난다. 어떤 일들이 더 일어날 것인지 궁금해진다. 작가의 다른 소설에서는 사건(살인)이 먼저 일어나고 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파고드는 방식이라면 이 소설은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곳을 향하여 자꾸만 빠져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마지막까지 가야만 이제까지 온 길이 다 보인다.

시간을 잊고 이야기에만 빠져 들기에 이 작가의 책만한 게 없다. 틈틈이 다른 책들 사이에 읽는다. 기분 전환용이라고 해도 좋겠다. 무거운 책, 부담스러운 책, 아픈 책, 어려운 책, 죄책감을 남기는 책, 멀고 긴 책들을 읽다 보면 잠깐 벗어나고 싶을 때가 생긴다. 독서에도 여유와 쉼이 있어야 하는 것이니까.

이 소설의 주인공인 부부 탐정이 다른 소설에서도 등장하는지 기다려봐야겠다. (y에서 옮김2019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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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니가 진짜로 궁금했어
마스다 미리.다케다 사테츠 지음, 박정임.이연식 옮김 / 이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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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이런 기획 신선하다. 누구나 생각은 해 보았겠지만 그 생각을 겉으로 드러내고 그림이나 글로 나타내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일 텐데, 이 책을 만들어 내겠다고 참여한 사람들은 해 낸다. 막상 이렇게 만들고 보니 또 그것대로 의미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예상했던 것보다는 조금 더 근사해 보이기도 한다. 어쨌든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인 건 맞는 것 같고.

남녀 간의 성. 참 야릇하고 미묘한 대상이다. 본능이고 일상이라면서도 의식주와는 달리 쉽게 드러내지 못한다. 문화마다 나라마다 다루는 범위에서의 차이도 크고 수준도 다르다. 대체로 금기시하는 부분이 많다는 점은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이 책은 여자 입장에서는 만화로 보여 주고 남자 입장에서는 글로 보여 주는 형식으로 짜여져 있다. 두 작가가 각자의 몫을 이렇게 정했겠지. 나는 마스다 미리 팬인 관계로 내용과 관계없이 무조건 이 책을 구했던 건데 막상 읽고 보니 또 그런 대로 볼 만했다. 마치 성에 대해 이미 다 알고 있는 어른들에게 어린 날, 성에 대해 궁금하게 여기던 그 모든 시절을 선물해 주는 것처럼. 이게 야한 것인지 아닌 것인지 그것조차 제대로 구분이 안 되는데, 그럼에도 또 야한 게 아니라고는 말하지 못할 것 같은 그런 요상한 분위기가 있더란 거지.

그런가, 그 시절, 남자 중학생들은 그런 생각들과 그런 행동들을 했더란 말이지? 우리 여자들은 그 시절에 이 책의 만화에서 보여 주는 만큼도 친구들끼리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었는데. 어쩌면 내가, 내 친구들이, 이런 내용을 좀더 외면하던 사람들이었는지는 모르겠다.

혼자서 피식피식 하면서 본 책이다. 굳이 누군가에게 권할 정도는 못 되겠고, 그것 참 이런 내용으로도 책이 되는구나 이 생각만 계속 했네. (y에서 옮김2018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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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는 기억한다 ㅣ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59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근희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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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있었던 일은 과거로 여기고 그냥 흘려 보내야 한다는 의견에는 동의하지 못하겠다. 과거에 있었던 일이라고 해도 그 일은 어떤 식으로든 현재와 연결되어 있고 해결되지 못한 과거의 앙금은 미래의 삶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니까. 과거의 역사가 남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을 때 현재 어떤 일을 마주하게 되는지 이미 확실하게 보고 있기도 하고.

코끼리가 기억을 잘 하는 동물이던가. 이번 책에서는 이 말을 중심으로 사건을 전개한다. 아니, 사건이 일어난 건 아니다. 과거에 있었던 일을 다시 조사하는 일을 한다. 푸아로 경감이 등장하는데 경감의 친구인 소설가 올리버 부인이 사건을 의뢰하면서 시작된다. 오래 전에 공식적으로 덮인 사건을 다시 조사하는 일, 할 만한 일이고, 해야 할 일이다. 과거의 그 사람들은 모두 세상을 떠났어도 남은 자녀들은 그 사건의 진실을 알아야만 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으니.

모처럼 살인 사건보다 기억이라는 인간의 정신 활동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보게 해 준 책이다. 이 작가의 사고 영역은 얼마나 넓고 깊은지, 읽고만 있는데도 숨가쁜 느낌이 든다. 무엇을 기억하는가, 어떻게 기억하는가. 기억은 나를 어떻게 살게 하는가. 기억에 대한 이론들을 더러 읽어 보기도 했지만 이번만큼 강렬하고 불안하게 다뤄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완전히 믿을 수도 없는 것, 그렇다고 믿지 않을 수도 없는 것, 기억, 내 생의 지난 날들, 함께 했던 사람들과의 시간과 공간들. 그건 정녕 있었던 일이었을까?

사소한 기억들은 사소한 정도로만 현재와 미래에 영향을 줄 것이다. 그러나 어떤 기억은, 또 과거의 어떤 진실은 남은 사람들의 삶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용기를 발휘해야 할 때가 바로 이런 경우일 것이다. 기억을 숨기고 조작해서 다른 이의 행복을 빼앗아 제것으로 삼는 사람들은 혼을 내야 한다는 것, 어떤 식으로든 벌을 받게 해야 한다는 것, 코끼리는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알림으로써. (y에서 옮김2020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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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브 해의 미스터리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ㅣ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58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송경아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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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소설의 배경으로 삼는 풍경이 늘 근사해서 새삼스러울 건 없지만, 이번에 읽은 작품의 배경은 좀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카리브 해라, 가 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가 볼 것 같지도 않은 곳, 영화로 흘러 넘기면서 봤던 기억을 되살리며 소설을 읽었다. 그렇다고 내 상상 속의 바다가, 리조트가, 풍경이, 실제 카리브 해 근처의 어느 곳일 것 같지는 않지만, 아무렴 어때?

마플 여사가 모처럼 카리브 해의 휴양지에서 머물고 있던 중에 겪게 되는 사건을 담은 내용이다. 고향인 세인트 메리 미드에 비해 너무 따분하고 지루하다며 불평을 하던 중에 사건 아닌 듯 시작해서 점차 커지는 사건들로 점점 빠져들게 되는 마플 여사. 사건이야 마플 여사가 결국 해결할 것이고, 나는 다양한 인물들이 호텔과 해변에서 즐기는 과정을 따라다니며 가상 체험을 해 보는 재미를 즐겼다. 그 시대에도 이렇게 호화롭게 누리면서 사는 사람들이 있었더란 말이지. 텔레비전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볼 만 했을 것 같다.

카리브 해를 지도에서 찾아 보았다. 카리브 해 주변에 있는 나라의 이름들을 하나하나 확인하면서 새삼스러운 느낌을 받았다. 이 나라가 이 위치에 있었구나, 실제로 살고 있는 사람들과 이곳을 관광지로 휴양지로 다녀가는 사람들은 여러 차이가 있겠구나, 소설 속에 그런 대목이 나오고 있기도 하고.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 눈에 보이는 대로 보는 것과 보이지 않는 속성을 헤아려 봐야 한다는 것, 그 사람의 참과 거짓을 구별해 낼 줄 알아야 한다는 것, 그렇지 못할 경우 내 목숨을 잃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 생긴다면... 사람, 참, 어려운 존재다. (y에서 옮김2021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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