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는 기억한다 ㅣ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59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근희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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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있었던 일은 과거로 여기고 그냥 흘려 보내야 한다는 의견에는 동의하지 못하겠다. 과거에 있었던 일이라고 해도 그 일은 어떤 식으로든 현재와 연결되어 있고 해결되지 못한 과거의 앙금은 미래의 삶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니까. 과거의 역사가 남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을 때 현재 어떤 일을 마주하게 되는지 이미 확실하게 보고 있기도 하고.

코끼리가 기억을 잘 하는 동물이던가. 이번 책에서는 이 말을 중심으로 사건을 전개한다. 아니, 사건이 일어난 건 아니다. 과거에 있었던 일을 다시 조사하는 일을 한다. 푸아로 경감이 등장하는데 경감의 친구인 소설가 올리버 부인이 사건을 의뢰하면서 시작된다. 오래 전에 공식적으로 덮인 사건을 다시 조사하는 일, 할 만한 일이고, 해야 할 일이다. 과거의 그 사람들은 모두 세상을 떠났어도 남은 자녀들은 그 사건의 진실을 알아야만 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으니.

모처럼 살인 사건보다 기억이라는 인간의 정신 활동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보게 해 준 책이다. 이 작가의 사고 영역은 얼마나 넓고 깊은지, 읽고만 있는데도 숨가쁜 느낌이 든다. 무엇을 기억하는가, 어떻게 기억하는가. 기억은 나를 어떻게 살게 하는가. 기억에 대한 이론들을 더러 읽어 보기도 했지만 이번만큼 강렬하고 불안하게 다뤄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완전히 믿을 수도 없는 것, 그렇다고 믿지 않을 수도 없는 것, 기억, 내 생의 지난 날들, 함께 했던 사람들과의 시간과 공간들. 그건 정녕 있었던 일이었을까?

사소한 기억들은 사소한 정도로만 현재와 미래에 영향을 줄 것이다. 그러나 어떤 기억은, 또 과거의 어떤 진실은 남은 사람들의 삶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용기를 발휘해야 할 때가 바로 이런 경우일 것이다. 기억을 숨기고 조작해서 다른 이의 행복을 빼앗아 제것으로 삼는 사람들은 혼을 내야 한다는 것, 어떤 식으로든 벌을 받게 해야 한다는 것, 코끼리는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알림으로써. (y에서 옮김2020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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