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발걸음 - 풍경, 정체성, 기억 사이를 흐르는 아일랜드 여행
리베카 솔닛 지음, 김정아 옮김 / 반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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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하면서, 여행하는 글을 읽으면서 무언가를 꼭 배워야 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래도 떠도는 중에 배우고 익히고 깨닫는 게 있다면 그 또한 좋을 일이다. 이 여행책은 참 좋다. 작가가 워낙 훌륭한 사람이라 기대를 하며 읽기도 했고, 내 기대를 훨씬 넘어설 만큼 만족스러워서 며칠 품고 있었다. 나는 고작 책 한 권을 읽었으나 몰랐던 세상 하나를 통째로 얻은 느낌? 근사하다.


아일랜드. 코로나 19로 여행이 막히기 전만 해도 언젠가 한번 가 보고 싶다고 찍어 둔 곳이다. 지금은 이 책만으로 충분하다. 내가 간다고 해서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지금의 나를 더 넓게 깊게 하다못해 여유롭게 만들어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괜히 쓸데없는 자랑질만 하나 더 늘어나게 될지도. 그럴 바에는 이 책을 한번 더 보는 게 여러 모로 나을 듯하다. 작가가 나무라고 있는 그릇된 우월감의 실체를 되새기면서.  


글은 무거우나 경쾌하다. 글을 따라 걷는 내 눈의 걸음도 무거운 한편 즐거웠다. 같은 여행을 해도 사람마다 이렇게 다르게 보고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이용하는구나. 나는 참 겉만 보고 있었구나, 아니, 어쩌면 겉도 제대로 못 본 채 살아오고 있었구나. 잘못 살았다는 건 아니지만, 무언가 좀 덜 누리며 살아온 듯 내 하찮은 능력에 억울해지는 기분이다. 그렇다고 작가만큼의 능력을 갖고 싶은 바람이 있다는 말도 아니다. 이건 좀 많이 벅차다. 이 정도를 다스리고 살자면 큰 인물이 되고 말 텐데 나는 전혀 그럴 만한 그릇이 못되므로. 그냥 좀 더 진실을 잘 파악할 줄 아는 힘, 거짓에 저항하는 힘, 오염된 생각에서 빠져 나올 줄 아는 힘, 좋은 것을 좋은 사람들과 나눌 줄 아는 방법들을 지금보다 조금만 더 얻었으면 싶다. 이 책이 내게 준 생각의 선물이다.


아일랜드는 멀다. 멀고 척박하고 고난의 역사에 시달렸던 땅. 지금은 관광지로 더 알려져 있지만 작가는 관광이라는 말에 대해서도 새롭게 생각해 보게 해 주었다. 볼거리를 파는 산업, 그 땅에 사는 사람과 그 땅을 구경하러 오는 사람과의 차이. 무엇보다 냉혹한 자본의 논리. 게다가 아일랜드의 역사, 그리고 영국과의 관계. 작가는 아일랜드 땅의 길을 걸으면서 이 모든 것들을 아주 친절하게 말해 준다. 남의 이야기임에도 읽고 있으면 저절로 분노가 일고 한탄하는 마음이 생긴다. 인간의 본성이라든가 강자의 논리라든가 제국주의의 폐해라든가 마침내 인류가 권력의 명분으로 저지르는 악행이나 어리석은 행동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이야기의 세상이다.   


최근에 본 여행 책으로는 단연 으뜸이다. 다른 책이 떠오르지 않는다. (y에서 옮김20221011)

새도 되고 싶고 나무도 되고 싶다, 떠돌고도 싶고 머물고도 싶다, 뿌리를 내리고도 싶고 날아가고도 싶다, 머물러 있을 때는 어디론가 날아가고만 싶고, 떠돌고 있을 때는 한곳에 뿌리를 내리고만 싶다, 그런 소망이었다. - P79

세상을 좋게 만들기 위해 애쓰는 우리는 세상의 좋은 것을 맛보면 안 되는 것일까? 혁명가들과 활동가들이 줄곧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는 질문이다. - P104

기대 자체가 큰 기쁨이고, 계획은 기대의 기쁨을 누리는 좋은 방법이다. - P155

어딘가로 가고 있을 때는 시간이 버려진다는 느낌보다는 시간이 채워진다는 느낌, 시간의 흐름이 공간의 리듬을 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 P157

무언가를 안다는 것은 그 대상을 나의 내면이라는 보이지 않는 세계에 머물게 한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나라는 존재의 일부가 되게 한다는 것이다. - P212

자연 풍광 앞에서 열광하는 취향은 18세기에 영국에서 만들어졌는데, 지금 우리가 관광tourism이라고 알고 있는 것이 바로 그 취향의 결과물이다. - P232

내가 거슬려하는 것은 그들이 취하는 해법이다. 그들의 해법은 정신의 관광객이 되는 것, 몰랐던 문화, 또는 몰랐던 시대로 불쑥 들어가서 스냅사진을 찍고 기념품을 사듯 남의 의미들, 또는 남의 정체성들을 챙겨오는 것이다.(여기서 관광객이란 말은 비하의 의미로 쓰였다.) 그들을 길러낸 문화의 심각한 해악으로는 신속한 만족을 추구한다는 것, 모종의 세계화를 통해 다른 문화들을 지배한다는 것, 정치를 정신으로부터 격리한다는 것 등을 꼽을 수 있는데, 그들이 대안을 추구하는 방식 그 자체가 바로 그런 해악들을 체화하고 있다. 그들이 추구하는 ‘알아차림’은 상당한 ‘못 알아차림’을 체화하고 있다. - P235

남의 가정집에 묵는다는 것은 가장 작은 규모의 식민지를 가장 예의 바른 방식으로 마련하는 일인 것 같기도 하다. - P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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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훔쳐라
박성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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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구한 이유는 단순했다. 수능특강 언어영역 문제집에 '댈러웨이의 창'이라는 작품이 실려 있는데 전문을 보고 싶었다. 그래서 구해 읽었다. 문제집에 실려 있는 작품 중, 내가 안 읽었는데 작품 전문이 실린 책이 절판되었다고 뜨면 참 난감해진다.(그럴 때 내 마음은-어쩌라고, 어떻게 수업하라고? 모르면서 아는 척 하라고? 에이!!! 하는 심정이 된다.) 다행히도 이 책은 2000년에 출간되었으면서도 여전히 살아 남아 있고, 아직 이 작가의 작품을 한 편도 안 읽은 사람으로서 좀 미안함도 느꼈다가 읽으면서 주목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문제집이라고 하는 계기가 없었다면 내가 이 작가를 끝내 몰랐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내용으로 봐서는 그동안 내가 즐겨 봐 왔던 작품 세계가 아니어서 다른 경로로 읽었더라면 마음에 두지 않았을 수도 있는데, 의외로 꽂힌 작품집이라고 해야겠다. 최근에 알게 된 우리 작가들의 SF 영역에 이끌려 들어간 것도 한몫 했고.

 

유쾌하거나 단순하게 읽히는 글이 아니다. 좀 기괴하다고 할 수 있다. 뭘 이런 상상을? 뜬금없다 싶을 수도 있는데, 해 볼 법도 한 상상의 세계를 그려 내고 있다. 재미있다고 하기보다는 좀 섬뜩하고 좀 혼란스럽다. 이게 뭐지? 내가 보는 게 맞나? 내가 알고 있던 게 진실이었나? 진실과 거짓을 구별할 수 있기는 한 세상인가? 하다못해 나는 나 자신에게 진실하기는 한가? 등등     

 

2000년이면 지금으로부터 17년이나 이전의 날들이었을 텐데, 작가가 작품을 쓰기로는 그때보다 더 이전이었을 텐데, 그때도 소설 속 세상과 같았다면, 같은 문제를 안고 있었다면, 세상 참 바뀌지 않는 거다, 세상은 예나 지금이나 살기에 무서운 곳이다, 이렇게밖에 말할 수가 없다. 어떻게 여전히 속으면서 살아야 한다는 말인지. 아니다, 이제는 속으면서도 속은 줄 모를 정도로 더 철저해졌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악은, 불의는 선이나 정의보다 더 빨리 더 강하게 더 무섭게 자랄 수 있는 속성을 가진 건 아닐까?

 

편한 독서는 아니었지만 이대로 고개를 돌리고 싶지는 않다. 작가의 최근 작품을 좀더 봐야겠다. (y에서 옮김2017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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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의 위로 - 다친 마음을 치유할 레시피 여행
에밀리 넌 지음, 이리나 옮김 / 마음산책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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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음식과 관련된 글을 자꾸 찾아서 읽다 보니, 여기에도 내 취향이 생겨나오는 것 같다. 똑같이 음식을 다루고 있는 글인데 잘 읽히면서 좋은 글을 본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는가 하면 하나마나한 말들을 어쩌자고 늘어 놓고 있는 것인지 지겨운 느낌이 들 때도 있으니까. (이제는 좋은 느낌을 받은 글에 대해서만 리뷰를 쓰고 있고 그렇지 못한 경우의 글은 리뷰를 쓰지 않고 제목만 남기기로 했으니 내 하찮은 기억에 대한 장치는 마련해 둔 셈이다.) 이 책은 요즘에 본 산문집 가운데 단연 좋았다고 쓴다. 


나를 위로하는 좋은 방법 중에 하나는 다른 사람을 위한 일을 해 보는 것이 있겠다.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본 내용인데, 어느 연구에 따르면 12분만에 행복을 느끼는 방법으로 다른 사람의 행복을 빌어 주는 게 있다고 한다. 어쩌면 이 말과도 통할 것 같다. 나를 위로하자고 하면서도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위한 요리를 해 보는 일, 그리고 내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기쁜 마음을 느끼는 일, 여러 모로 권할 만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안타까운 게 나로서는 이쪽 저쪽 다 소질이 없다는 게 좀 그렇긴 하지만.  


책을 쓴 작가,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단순하게 보면 어떤 문제를 갖지 않아도 괜찮을 정도로 재주도 있고 요리도 잘 하고 사람들과도 두루두루 잘 친하게 지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남들이 보는 것과는 달리 혼자만의 길고긴 아픔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산다. 평범하지 않았다는 부모님도 그렇고 원만하지 않았다는 가정 환경도 그렇고 어른 다 되어서 맞닥뜨린 오빠의 자살도 그렇고 보통 사람들이 겪지 못할 어려움을 겪은 것은 맞는데 이걸 이겨 내지 못해 혹독한 시련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것이다. 알콜 중독과 가장 가까운 이들과의 이별과 이로 인한 혼란과 정처 없이 떠도는 방황의 시간들.    


책은 단순한 주제로 정리되어 있지 않다. 이런 어려움을 겪었으나 이렇게 이겨 냈다라는 내용이 아닌 것이다. 책 마지막까지 '이렇게 애쓰고 있음에도 사는 건 여전히 어렵습니다'라고 한다. 잘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별한 사람들과는 멀어졌어도 지켜 주고 함께 시간을 해 부는 사람들이 있어 괜찮은 것처럼 보이는데, 요리도 잘해서 함께 만든 요리로 다른 사람들과 즐겁게 먹고 놀기도 하는데, 음식으로 위로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한다는 것을 알아듣겠는데, 만만치 않은 삶의 무게와 시간의 압박감을 고스란히 전해 받게 된다.


그러나 묘하게도 이 부담이 나쁘지가 않다. 끄덕여진다. 그래, 힘들겠구나, 요리를 해도, 나누어 먹어도, 그순간은 좋아도, 여전히 우리 앞에는 풀지 못한 삶의 과제가 놓여 있고, 문제가 흩어져 있고, 꼬여 있는 인간 관계가 있고, 원망스러운 가족이 있고, 모른 척 하고 싶은 인연이 있고, 돈을 벌어야 하고, 살 곳이 있어야 하고..... 


음식으로 위로받을 수 있다면서 작가는 무수한 레시피를 남겨 놓았다. 정말 단 하나도 내가 해서 먹어 볼 만한 건 없었다.(재료도 요리 방법도 우리와 다른 점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니고, 그냥 내 입맛과 식욕의 문제일 뿐.) 그래도 읽는 동안 하나도 아쉽지 않았다. 음식은 하나도 맛을 볼 수 없었지만, 각각의 요리에 쏟는 작가의 정성과 의도는 충분히 받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삶에 대한 의지와 희망 그 자체만으로도 감동이었다. 


소울 푸드라는 말들 흔히 한다. 누가 언제 해 주었다는 음식을, 내가 힘들 때 먹으면 힘이 난다는 식으로.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내겐 그런 게 없기는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 본다면 이 책에서 다루는 음식들은 하나같이 다 소울 푸드라고 할 수 있겠다. 소울 푸드라고 먹었는데도 그 힘이 오래 가지 않는 것 같아 보여 좀 안타깝기는 했지만. 그래도 거듭거듭 해 먹고 또 해  먹는 작가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사는 일이 결국 다 이 모습이 아닌가 생각했다. 먹는 게 이토록 소중하고 절대적인 일이란 말이지. 먹기 위해 산다는 말이 괜히 나온 건 아니겠다. 


이제부터 나도 막 먹어 보아야겠다는, 이런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음식으로 서로의 영혼을 위로한다는 말의 의미를 한층 가깝게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만드는 평범한 저녁 식사의 뜻을, 가족이 함께 먹는 시간의 소중하고 경건함을 이제서야 알아차렸다고 해야 하나. 음식으로 위로를 주고받았다는 작가의 글로 위로를 받은 사람이 멀리 이 땅에도 있다는 것을 작가가 알고 있을지. 잘 지내기를 빌어 주고 싶다. (y에서 옮김20210129)   



마음의 문을 열고 뭔가 받아들이려 손을 뻗으면, 인생의 단맛이 이런저런 형태로 다가온다는 것을. - P62

직접 물어보기 전에는 무엇이 한 사람에게 위로를 줄지 진정으로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남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 P71

위로 음식은 외부의 영향, 현재의 마음 상태 또는 단순한 변덕에 좌우되기 쉽다. 종신 계약을 체결할 필요도 없고 어떤 규율에 근거하지도 않는다. 또 어떤 음식이 누구에겐 위로를 주지만 다른 사람한텐 진저리치게 할 수도 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을 위로하려고 살 때는 적합한지 아닌지를 두고 유연성을 발휘해야 한다. - P72

위로 음식이 반드시 과거에 대한 향수를 동반해야 할까?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음식이나 집이 기분을 나쁘게 하거나 하물며 부끄러움을 갖게 해서는 안 된다. 세상 모든 사람은, 설혹 경험하지 않았더라도 집과 위로 음식이 주는 위안을 동경한다. - P83

가정 요리는 분명 어떤 현실을 부드럽게 만들고 불완전한 가정에서도 좋은 추억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래서 중요하다. - P115

자신이 사랑하는 음식이라면 인내심을 갖고 레시피대로 잘 따라 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 P273

이곳에 와서 나는 잊고 있던 가치의 세계로 나를 되돌려놓음으로써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법을 배웠다. 삶은 진전이자 전환이고, 파동이며 입자다. 그리고 사람은 포기하든 어떤 허세를 부리든 간에, 사랑과 상실, 평화와 격변, 삶과 죽음처럼 세상에 내재된 이중성을 절대 피할 수 없다. 삶은 살아내야 하는 대상이다. - P279

남이 기대하는 바에 맞추거나 그렇게 해주기를 바라지 않고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는 것. 그리고 완벽해야 한다는 이상한 목표가 없어야 좋아하는 사람들을 한데 모이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완벽은 사람을 지치게 하고, 결점 지닌 훌륭한 사람들이 가득한 세상에서 자신을 소외시킨다. 그리고 완벽은 애초에 가능하지도 않다. 완벽을 추구하는 건 헛고생이다. - P295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눈 추억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음식의 힘이 필요하다는 걸. - P300

우리는 이 광대한 세상에서 작디작은 부분만 알게 될 것이고, 그 안에서 짧디짧은 시간만 살다 갈 터이다. 그러니 부디 잘 지내라! - P340

언제든 사람들은 가진 조건 아래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한다. 그때 그때 맞는 일을 한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들보다 그런 것에 더 능하다. - P354

모든 삶이 가치 있음을 알고, 사람은 누구나 특히 자기 가족에게서 용서와 지지를 받을 가치가 있음을 안다. 그러나 끝내 용서나 지지를 못 받는 경우도 있다. 세상살이가 다 그렇다. - P355

믿음이 없을 때조차 음식은 우리에게 길을 보여주고, 놀라움을 안겨주며, 우리를 달라지게 하고, 강하게 만들어준다. 당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열린 마음으로 나눠 먹으라. 그러면 똑같은 선물로 되돌아오는 경험을 할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그리고 위로받았다. - P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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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자서전 - 김혜순 죽음 트릴로지 ㅣ 틂 창작문고 1
김혜순 지음 / 문학실험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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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은 왜 늘 아픈가.(86)' 이 책에서 얻은 한 줄이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해야 할지, 이것만 얻어서 섭섭하다고 해야 할지 글을 쓰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쉽게 와 닿지 않았다. 마치 죽음처럼. 내게는 여전히 먼 내 죽음처럼. 딱 남들이 겪는 죽음처럼만 읽혔다. 그만큼의 거리와 그만큼의 상실과 그만큼의 안타까움과 그만큼의 절망으로. 이래서야 공감도 연대도 없는 셈인데, 글자로만 읽히는 죽음의 낱낱과 이미지는 또다른 삶만큼이나 어려운 과제를 던지는 듯했다.

 

죽는다. 죽을 것이다. 죽기 전까지는 모른다. 그걸 알아차렸다고 말하는 시인. 살았는데도 죽었다고 말하는 시인. 산 사람의 입으로 전해 받는 죽음. 모를 일이다. 정녕 죽어도 모를 일이다. 내가 그런 경지에 이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아무리 많은 죽음을 보아도 아무리 지독한 죽음을 보아도, 나는 살아 있고, 나의 살아 있음에 다행이라고 느낄 것이고,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만다. 

 

적어도 모른 척 하고 살아서는 안 된다는, 양심의 가책을 받을 일이 두려워 이 시집을 읽었다. 그다지 나아진 것 같지는 않다. 자연스러운 죽음만이 축복인 세상이다. (y에서 옮김2019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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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질문 - What is Your Wish?
오나리 유코 글.그림, 김미대 옮김 / 북극곰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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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시간에 보는 책이지만 오랜 시간 머금게 되는 내용이다. 읽고 바로 남편에게 권했다. 남편도 금세 읽는다. 읽으면서 되묻는다. 나에게도 자신에게도. 쑥스러운 답을 주고받으며 우리는 웃는다. 달리 따질 게 없다. 질문 놀이를 따라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나 어때?' 물어 보고, '지금 그대로 괜찮아'라는 답을 들을 수 있다면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나를 위해 당신이 바뀌어 주었으면, 혹은 당신을 위해 내가 바꾸어야 한다면, 이건 좀 슬프고 아득한 일이다. 어린 시절 나도 한때는 이런 생각을 강하게 한 적이 있다. 사랑이라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내가 기꺼이 그를 위해 바뀌어 보겠노라고. 힘들더라도, 어렵더라도, 사랑하는 사람이 원하는 일이라면 내가 바뀌는 게 마땅한 노릇이라고 강하게 믿던 시절이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본성을 거슬러야 한다는 건 사랑의 본질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천천히 알게 되었지만. 


내 모습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누가 되도록 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려면 내가 나를 존중해야 한다. 그렇게 나를 소중하게 여기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까지 소중하게 대하게 되면 함부로 저지를 일은 없을 것이다. 함부로 요구하는 일도 없을 것이고 함부로 윽박지르는 일도 없을 것이고 함부로 무시하는 일도 없을 것이고. 그때 묻는 행복에는 더 이상 의구심이 담겨 있지 않을 것이다.  


행복도 아는 사람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인 것 같다. (y에서 옮김2019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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