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의 위로 - 다친 마음을 치유할 레시피 여행
에밀리 넌 지음, 이리나 옮김 / 마음산책 / 2020년 5월
평점 :
절판


음식과 관련된 글을 자꾸 찾아서 읽다 보니, 여기에도 내 취향이 생겨나오는 것 같다. 똑같이 음식을 다루고 있는 글인데 잘 읽히면서 좋은 글을 본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는가 하면 하나마나한 말들을 어쩌자고 늘어 놓고 있는 것인지 지겨운 느낌이 들 때도 있으니까. (이제는 좋은 느낌을 받은 글에 대해서만 리뷰를 쓰고 있고 그렇지 못한 경우의 글은 리뷰를 쓰지 않고 제목만 남기기로 했으니 내 하찮은 기억에 대한 장치는 마련해 둔 셈이다.) 이 책은 요즘에 본 산문집 가운데 단연 좋았다고 쓴다. 


나를 위로하는 좋은 방법 중에 하나는 다른 사람을 위한 일을 해 보는 것이 있겠다.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본 내용인데, 어느 연구에 따르면 12분만에 행복을 느끼는 방법으로 다른 사람의 행복을 빌어 주는 게 있다고 한다. 어쩌면 이 말과도 통할 것 같다. 나를 위로하자고 하면서도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위한 요리를 해 보는 일, 그리고 내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기쁜 마음을 느끼는 일, 여러 모로 권할 만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안타까운 게 나로서는 이쪽 저쪽 다 소질이 없다는 게 좀 그렇긴 하지만.  


책을 쓴 작가,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단순하게 보면 어떤 문제를 갖지 않아도 괜찮을 정도로 재주도 있고 요리도 잘 하고 사람들과도 두루두루 잘 친하게 지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남들이 보는 것과는 달리 혼자만의 길고긴 아픔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산다. 평범하지 않았다는 부모님도 그렇고 원만하지 않았다는 가정 환경도 그렇고 어른 다 되어서 맞닥뜨린 오빠의 자살도 그렇고 보통 사람들이 겪지 못할 어려움을 겪은 것은 맞는데 이걸 이겨 내지 못해 혹독한 시련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것이다. 알콜 중독과 가장 가까운 이들과의 이별과 이로 인한 혼란과 정처 없이 떠도는 방황의 시간들.    


책은 단순한 주제로 정리되어 있지 않다. 이런 어려움을 겪었으나 이렇게 이겨 냈다라는 내용이 아닌 것이다. 책 마지막까지 '이렇게 애쓰고 있음에도 사는 건 여전히 어렵습니다'라고 한다. 잘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별한 사람들과는 멀어졌어도 지켜 주고 함께 시간을 해 부는 사람들이 있어 괜찮은 것처럼 보이는데, 요리도 잘해서 함께 만든 요리로 다른 사람들과 즐겁게 먹고 놀기도 하는데, 음식으로 위로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한다는 것을 알아듣겠는데, 만만치 않은 삶의 무게와 시간의 압박감을 고스란히 전해 받게 된다.


그러나 묘하게도 이 부담이 나쁘지가 않다. 끄덕여진다. 그래, 힘들겠구나, 요리를 해도, 나누어 먹어도, 그순간은 좋아도, 여전히 우리 앞에는 풀지 못한 삶의 과제가 놓여 있고, 문제가 흩어져 있고, 꼬여 있는 인간 관계가 있고, 원망스러운 가족이 있고, 모른 척 하고 싶은 인연이 있고, 돈을 벌어야 하고, 살 곳이 있어야 하고..... 


음식으로 위로받을 수 있다면서 작가는 무수한 레시피를 남겨 놓았다. 정말 단 하나도 내가 해서 먹어 볼 만한 건 없었다.(재료도 요리 방법도 우리와 다른 점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니고, 그냥 내 입맛과 식욕의 문제일 뿐.) 그래도 읽는 동안 하나도 아쉽지 않았다. 음식은 하나도 맛을 볼 수 없었지만, 각각의 요리에 쏟는 작가의 정성과 의도는 충분히 받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삶에 대한 의지와 희망 그 자체만으로도 감동이었다. 


소울 푸드라는 말들 흔히 한다. 누가 언제 해 주었다는 음식을, 내가 힘들 때 먹으면 힘이 난다는 식으로.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내겐 그런 게 없기는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 본다면 이 책에서 다루는 음식들은 하나같이 다 소울 푸드라고 할 수 있겠다. 소울 푸드라고 먹었는데도 그 힘이 오래 가지 않는 것 같아 보여 좀 안타깝기는 했지만. 그래도 거듭거듭 해 먹고 또 해  먹는 작가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사는 일이 결국 다 이 모습이 아닌가 생각했다. 먹는 게 이토록 소중하고 절대적인 일이란 말이지. 먹기 위해 산다는 말이 괜히 나온 건 아니겠다. 


이제부터 나도 막 먹어 보아야겠다는, 이런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음식으로 서로의 영혼을 위로한다는 말의 의미를 한층 가깝게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만드는 평범한 저녁 식사의 뜻을, 가족이 함께 먹는 시간의 소중하고 경건함을 이제서야 알아차렸다고 해야 하나. 음식으로 위로를 주고받았다는 작가의 글로 위로를 받은 사람이 멀리 이 땅에도 있다는 것을 작가가 알고 있을지. 잘 지내기를 빌어 주고 싶다. (y에서 옮김20210129)   



마음의 문을 열고 뭔가 받아들이려 손을 뻗으면, 인생의 단맛이 이런저런 형태로 다가온다는 것을. - P62

직접 물어보기 전에는 무엇이 한 사람에게 위로를 줄지 진정으로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남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 P71

위로 음식은 외부의 영향, 현재의 마음 상태 또는 단순한 변덕에 좌우되기 쉽다. 종신 계약을 체결할 필요도 없고 어떤 규율에 근거하지도 않는다. 또 어떤 음식이 누구에겐 위로를 주지만 다른 사람한텐 진저리치게 할 수도 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을 위로하려고 살 때는 적합한지 아닌지를 두고 유연성을 발휘해야 한다. - P72

위로 음식이 반드시 과거에 대한 향수를 동반해야 할까?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음식이나 집이 기분을 나쁘게 하거나 하물며 부끄러움을 갖게 해서는 안 된다. 세상 모든 사람은, 설혹 경험하지 않았더라도 집과 위로 음식이 주는 위안을 동경한다. - P83

가정 요리는 분명 어떤 현실을 부드럽게 만들고 불완전한 가정에서도 좋은 추억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래서 중요하다. - P115

자신이 사랑하는 음식이라면 인내심을 갖고 레시피대로 잘 따라 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 P273

이곳에 와서 나는 잊고 있던 가치의 세계로 나를 되돌려놓음으로써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법을 배웠다. 삶은 진전이자 전환이고, 파동이며 입자다. 그리고 사람은 포기하든 어떤 허세를 부리든 간에, 사랑과 상실, 평화와 격변, 삶과 죽음처럼 세상에 내재된 이중성을 절대 피할 수 없다. 삶은 살아내야 하는 대상이다. - P279

남이 기대하는 바에 맞추거나 그렇게 해주기를 바라지 않고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는 것. 그리고 완벽해야 한다는 이상한 목표가 없어야 좋아하는 사람들을 한데 모이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완벽은 사람을 지치게 하고, 결점 지닌 훌륭한 사람들이 가득한 세상에서 자신을 소외시킨다. 그리고 완벽은 애초에 가능하지도 않다. 완벽을 추구하는 건 헛고생이다. - P295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눈 추억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음식의 힘이 필요하다는 걸. - P300

우리는 이 광대한 세상에서 작디작은 부분만 알게 될 것이고, 그 안에서 짧디짧은 시간만 살다 갈 터이다. 그러니 부디 잘 지내라! - P340

언제든 사람들은 가진 조건 아래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한다. 그때 그때 맞는 일을 한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들보다 그런 것에 더 능하다. - P354

모든 삶이 가치 있음을 알고, 사람은 누구나 특히 자기 가족에게서 용서와 지지를 받을 가치가 있음을 안다. 그러나 끝내 용서나 지지를 못 받는 경우도 있다. 세상살이가 다 그렇다. - P355

믿음이 없을 때조차 음식은 우리에게 길을 보여주고, 놀라움을 안겨주며, 우리를 달라지게 하고, 강하게 만들어준다. 당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열린 마음으로 나눠 먹으라. 그러면 똑같은 선물로 되돌아오는 경험을 할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그리고 위로받았다. - P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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