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독스 13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 / 재인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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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나 전개 과정은 그다지 신선한 게 아니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사람들이 모두 사라져 버리고 나만 혹은 나를 포함한 몇몇만 남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가정해 보는 일. 소설은 이 내용을 담고 있다. SF라는 게 약간 의아하기는 했지만. 이전에 지구에 핵폭발이 있고 난 후 모든 인간이 사라지고 난 다음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한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때의 장면들이나 '나는 전설이다', '월 E' 같은 비슷한 배경을 가진 영화 장면이 소설과 함께 떠오르면서 상상하는 데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물론 물리학적인 장치로 13초의 시간 개념을 설정하고는 있었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얼마나 가능성이 있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가정해 보았다가도 이후의 대책이 서지 않아 그만 상상을 중단하고 마는 그런 상황이기는 하다. 이성을 발휘하려고 해도 본능이 앞서는 무서운 상황, 당장 먹어야만 살아 남을 수 있으니, 내가 살아야만 생명을 논할 수 있으니 그 앞에서라면 지금의 선악 개념과 달라지기도 할 테지. 상상 안에서는 생각할 거리가 꽤 담겨 있는 내용이다.


인류의 역사에 대해 길고 긴 통찰력을 가져보게 한다. 어떻게 흘러 왔을까, 어떻게 이어 왔을까, 내게 주어진 사명은 무엇일까, 내가 이 생에서 완수해야 할 몫은 무엇일까, 나는 그걸 알아내고 해낼 수 있을까......  살짝 긴장하게도 한다.


흥미 위주의 소설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한 가지 이상의 생각할 거리를 전해 주니 나로서는 마음에 드는 독서를 한 셈이다. 그러고 보면 내 기억에 남아 있지 않아서 모르는 거지, 나도 목숨이 왔다 갔다 했던 과거의 어느 순간에 다른 차원에 다녀온 것은 아니었을까. (y에서 옮김2014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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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이름은
조남주 지음 / 다산책방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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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고 가벼운 형식에 무거운 주제를 담아 놓은 글들이다. 주제가 보통 무거운 것들이 아니어서 일부러 가볍게 보이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도록 했다. 82년생 김지영처럼. 작가의 의도가 어떠하였든 마음은 확실하게 무거워진다. 더 이상 물러서지 말고 마주해서 부딪혀 나가야 한다는 것을 무려 28명의 이름으로 격려하고 있음을 알았으니.

 

이 작가의 책은 세 번째다. 앞서 읽은 두 권은 <82년생 김지영>과 <고마네치를 위하여>였다. 이 책은 <82년생 김지영>을 잇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고마네치를 위하여>를 기대했는데. 소설과 현실 사이의 내 거리 감각이 작가와 많이 다른 것 같다는 느낌이다. 소설 같은 현실이고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현실이라고는 해도, 나는 아직 소설을 소설로 읽고 싶다고나 할까. 

 

그녀들의 이름, 부르기에 당연히 무거웠다. 무거운 이름들만 골라 놓은 건지, 이제는 온통 무거워져 버린 건지, 쓰리고 따갑고 부끄럽고 불편하고 아프고 화나고 속터지는 상황에 처한 이들의 이름들. 행복이라는 느낌은 주변 사람들 중 단 한 사람만이라도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면 얻을 수 없는 것이라고 믿는다. 아픔 또한 마찬가지다. 한 사람이라도 아픈 상황이라면 아프지 않은 사람들조차 마음 편할 수가 없다. 이 책은 그래서 중요하고 또 무겁다. (y에서 옮김2019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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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게임의 이름은 유괴 (개정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일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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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읽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결말이 궁금했고 읽는 내내 조급했고 반전은 기대가 되었고 예상을 하지 못하는 결말에 감탄했다. 나는 아직도 이 작가의 작품을 좀 더 오랫동안 읽을 수 있겠다. 


사실이 아니겠지만, 실제로 이런 일이 있지도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는 한다. 범죄라는 게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일어날 수도 있고, 우리가 믿는 것보다 범인을 훨씬 못 잡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정녕 잡히는 범인이 어리석은 것인지, 잡지 못하는 경찰력에 한계가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추리 소설을 읽고 있는 동안에는 범인의 교묘한 트릭이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물론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경찰이나 탐정 역할의 인물이 더 대단해 보이기는 하지만.(결국 작가의 구성 솜씨에 감탄하는 것인가?)   


소설에 감정이입이 되다 보면 이런 추리소설의 경우 범인 편으로 저절로 다가가는 마음을 느끼기도 한다. 잡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잡히기는 할 텐데 잡히더라도 마음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죽했으면 이런 범죄를 저지를까, 그래서는 안 된다는 도덕적 판단을 무색하게 만들어 버리는 동정과 공감에 쓴웃음마저 지으면서. 


히가시노 게이고가 소설을 통해 경고하는 마음 속 악의 모습에 대한 징계는 나도 적극 지지한다. 일본인의 경우이겠지만 보편적 현상으로 보더라도 벌 받아 마땅한 죄니까. 그래서 내가 그의 글을 즐겨 읽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확실히 벌을 내리는 작가. (y에서 옮김2015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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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d : 고양이와 함께한 날의 기적 ㅣ 베스트 세계 걸작 그림책 55
샘 어셔 지음, 이상희 옮김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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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이라는 말은 묘하게 나를 붙잡는다. 기적이라는 게 말만큼 쉽게 와 주는 게 아님에도 와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강렬할 때가 종종 있어서 그런 것 같다. 기적처럼, 기적이 일어났어, 기적같은 일이야, 등등. 이루어지기 힘든 무엇에 대하여, 이루어지기 어려운 줄 알면서도,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 가득 담아서.


책의 원제는 'wild'이다. 우리말로는 '야생'으로 번역하는데 더 풀면 '자연 그대로 자라는'이라는 뜻이 될 것 같다. 이 제목을 우리말로 바꾸면서 기적이라는 말을 넣은 편집자의 의도는 무엇일까에 대해서도 괜히 궁리해 본다. 마치 이게 이 책이 품고 있는 수수께끼 같은 주제라도 되는 듯.


이 책의 서평단에 신청했던 이유는 고양이 때문이었다. 고양이가 뭔가 기적을 가져다주는 내용이리라 짐작했던 것이다. 맞는 내용이기는 했다. 고양이가 기적이 일어나는 길로 우리를 데려갔으니까. 그곳, 야생의 공간에 이르면 기적을 만날 수 있다는 걸 알게 해 주었으니까.


그런데, 뭐지? 이 야릇한 의문은? 돌본다는 게 어떤 의미란 말인가? 우리가 고양이를 기른다고 하거나 반려동물을 키운다고 하는 일 등을 고양이나 반려동물 쪽에서 본다면? 돌보는 게 아니라 저들을 귀찮게 하는 일이었나? 야생의 본성을 지켜주는 게 돌보는 의미인가? 작가는 이 예쁜 그림 세상 속에서 내가 아닌 상대의 입장을 헤아려보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었나?


고양이가 제멋대로 뛰어다니는 그림들을 보면서, 우리집에 있는 두 마리의 고양이를 떠올리면서, 고양이를, 상대를, 다른 이와 함께 있을 때의 나 자신을 짚어 보았다. 기적이 쉽게 와 주지 않는 건 알지만, 너무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기적을 꿈꾸고 있어야 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은 가시지 않는다. 편견 없이 읽을 아이의 마음이 부럽기만 하다. (y에서 옮김20210804)



Y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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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숫가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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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마음이란 건 얼마만큼 자라고 어디까지 뻗어갈 수 있는 걸까. 핑계나 이유야 얼마든지 있겠지. 욕심이든 아니든 누군가의 희생을 바탕으로 하는 의도로 저지르는 일이라면 용서를 바랄 수 없을 것인데, 그런 경우 용서 자체를 기대하지 않기 때문에 저지를 수 있게 되는 걸까. 소설을 읽으면서 내내 가진 의문이다.

일본의 교육적 상황 중 어떤 부분은 우리와 너무 닮아서 놀랍다. 그게 좋은 쪽보다 나쁜 쪽에 해당할 경우 더 놀랍고 기막힌다. 이 소설의 배경이 그러하다. 아이들의 교육 문제나 부부의 문제, 출세지향주의나 학벌, 학연으로 생기는 문제, 남녀 간의 어긋난 윤리 문제 등 나쁜 상황들만 모아서 소설로 써 놓은 것 같다. 결말까지 어찌 이리도 나쁘기만 한 건지. 그런데 이런 상황이 바로 납득이 된다는 게 더 기막힌 일이다. 마치 악의가 일상이 되기라도 한 것처럼.

이 작가의 글을 많이 읽은 편인데 더러 빠진 책이 있음을 발견하고 보는 재미가 있다. 분량도 많지 않았고 e북으로 읽는 것도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추리소설은 e북으로 읽기에 퍽 적당하다는 생각, 또 해 본다.

주인공들처럼 죄를 품고 살면, 정말 살아갈 수 있을까? 제대로 살기 힘들어서 나쁜 마음도 더 많이 갖고 나쁜 일도 더 많이 저지르는 것일까? 앞의 나쁜 짓을 그 다음의 나쁜 짓으로 덮으려고 더 철저해지면서? 이 작가가 그려 내는 나쁜 마음들은 정말 섬뜩하기만 하다. (y에서 옮김2018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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