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의 루시 - 루시 바턴 시리즈 ㅣ 루시 바턴 시리즈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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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 바턴 시리즈가 있었나 보다. 이 책보다 앞서 세 권이 출간되어 있다는 것을 늦게서야 알았다. 이렇게 되면 시간을 거슬러 거꾸로 읽을 수밖에. 


루시와 윌리엄은 예전에 부부였다. 헤어지고 다른 사람과 결혼을 했다가 각각 짝을 잃고 다시 만나는 노년의 한 쌍. 내 정서로는 참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쪽 나라에서는 그렇게들 잘 사는 모양이니까 그런가 보다 여긴다. 


배경이 흥미롭다. 팬데믹으로 일상이 무너져 내리던 시절, 윌리엄은 전처였던 루시를 데리고 위험한 뉴욕을 떠나 메인의 시골 마을로 간다. 각자의 배우자를 잃은 상황에 선택한 결정이라 뭐라고 따질 일은 아니고 또 둘 사이에는 이미 아이들이 있으니 완전 남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하지만 그래도 그것 참, 싶었다. 아무리 팬데믹이라지만, 위험하다지만, 옛 남편 옛 아내가 한 공간에서 다시 살 수가 있을까? 상상이 잘 안 되는데 둘은 같이 산다. 한번 더 그것 참.


두 사람 사이의 사연은 앞에 나온 세 권에 자세히 나와 있나 보다. 이 책에서는 요약처럼 정보를 흘리는데 그 내용이 어떠한지 궁금하다기보다는 작가가 어떤 형태로 서술해 놓았는지 더 알고 싶어졌다. 여자와 남자가 만나 사랑하고 헤어지고 또 사랑하고 헤어지는 일이야 공공연히 있는 일이고, 그 과정을 보여 주는 방법에 작가의 역량이 담겨 있을 테니. 


루시라는 인물이 단연 돋보인다. 올리버 키트리지와는 또 다른 매력을 갖고 있다. 소설을 읽는 독자인 나로서는 소설 속 인물에서 나 자신과 아주 닮은 점, 아주 다른 점을 만나는 즐거움을 얻게 되는데 이 작가의 글에서 내가 특히 흥미를 느끼는 이유가 될 듯하다. 루시도 나의 어떤 면과 닮아 있고 올리버도 그러했고, 그러니 나는 이 소설의 어떤 영역에서 그들과 함께 살고 있는 것만 같고. 심지어 이 소설 안에서는 같은 마을에 살고 있다며 올리버가 언급되기도 한다. 마치 한 마을에 두 명의 화자를 키우고 있는 것처럼. 한 권을 읽으면서 다른 책을 또 찾아 읽도록 다짐을 하게 만들면서.     


소설이기는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이 미국에서는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일부 알 수 있었다. 땅이 넓으니 사람이 많은 도시를 떠나 한적한 시골로 가면 나았던 것 같고, 그렇게 떠나 새로 머물 집이 바로 생기는 것도 신기했다. 물론 윌리엄이 부자였으니까 그럴 수 있었겠지만.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은 여기나 거기나 어쩔 수 없이 온몸으로 막아야 하는 현실이었을 테고. 이 책은 팬데믹 소설로도 자리잡게 될 것 같다.  


젊은 루시와 윌리엄을 찾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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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27 15: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3-30 18: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미스터 모노레일
김중혁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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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상상력이 기발하다고 느끼는 것이 내 정신 나이를 증명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1971년생이라니 작가의 나이도 이제 만만치 않아 보이건만, 이런 상상력은 스무 살 무렵에 발휘하는 것인 줄로만 알았으니. 나이 들어가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노년도 거부감 없이 맞이하겠다고 하면서도 나는 이렇게 이율배반적인 느낌에 잡힌다.(이 소설의 상상력에 멈칫 하는 스스로에게 도리어 멈칫 하는 낯선 반응) 


잘 읽힌다. 재미도 있었다. 다만 후반부로 가면서 고갑수 쪽으로 쏠린 갈등 해결 방안이 거슬렸다. 내가 거슬림을 느낀다고 해서 문제될 것은 없겠으나, 발랄함이라는 분위기가 생뚱맞음으로 바뀌어서 다소 실망했다고나 할까. 모노의 입장에서 마무리되었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아쉬움 남겨 놓고. 


이 작가의 산문집을 한 권 더 봐야겠다. 소설보다 산문을 보고 싶다는 것은 작가에 대한 호기심이 남아 있다는 뜻일 테고, 산문으로 인간성을 짐작한 후에 긍정적이라면 다시 그의 소설을 찾게 되겠지.(이것도 내가 나이 들었다는 증거일까, 소설을 소설로 보기 전에 작가의 인간성 판단에 근거해서 읽겠다고 생각하는 태도. 흐흐흐, 나는 어쩔 수 없는 기성세대가 되었군.) 


개인적으로 게임을 즐기지 않는 편이라 요즘의 게임 세대에 대해 이해가 부족하다. 다른 사람과 대놓고 겨룬다는 게 영 못마땅한 나로서는(은근히 숨기면서 겨루는 것은 좋아하는 나, 도대체 무슨 내숭인가.) 게임을 소재로 소설을 펼쳐 놓고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그럴 듯하기도 했다. 그래서 게임 좋아하는 딸에게 이 소설을 권하기는 했는데, 괜히 내가 궁금하다. 뭐라고 반응할지.    


세계 여행 게임과 세계 여행 소설과 직접적인 세계 여행과 도피적인 삶. 우리네 삶의 범위가 확실히 지구 차원으로 넓어진 것은 맞겠다. 다만 이렇게 넓어졌으면 더 좋다고 더 만족스럽다고 해야 할 텐데, 상대적인 박탈감은 더 커지고 이로 인한 열등감도 많은 사람을 슬프게 한다. 사는 게 원래 만족스럽지 못한 것일까.  (y에서 옮김2013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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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눈썹 -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는 사랑의 순간
김용택 지음 / 마음산책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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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시간, 홀로 행복해지는 방법에는 시를 읽는 일이 있다. 더욱이 그 시의 내용이 사랑이라면, 해도 해도 고프고 목마른 사랑이라면, 이룰 수 있고 없음의 구별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그저 행복해질 수 있다. 아늑하게, 그립게, 좀 서글프더라도. 


김용택의 시를 이미 읽어본 사람이라면, 새로움 없더라도 낯익은 친숙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여전한 사랑이구나 하면서, 사랑이 그래도 아직은 있어야 하는구나 하면서, 사랑만이 오래 붙잡고 있을 수 있는 것이구나 하면서.  


한결같음은 사람마다 장점으로 여겨질 수도 있고 단점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데, 이 시인의 시를 읽느 독자 또한 그렇게 나뉘어지겠다. 여전한 장점으로 아니면 이제 좀 지루한 단점으로. 내게는, 내게는 아직까지는 장점이 더 크게 보인다. 쉽고 간결하고 애절하며 그리운 사랑 표현들. 요즘도 이런 시 구절을 이용하여 연애 편지를 쓰는 사람이 있을까 몰라. 


아직도 사랑을 믿는 사람에게 선물로 주기에 좋은 책이다.  (y에서 옮김20120821) 

반짝이는 나뭇잎 부딪치는 소리 - P53

내 그리움의
그 끝에
당신이 서 있었습니다. - P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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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다다, 삼냥이 - 대한민국 대표 캣맘과 세 고양이가 살아가는 소소한 일상으로의 초대
황인숙 지음, 염성순 그림 / 오픈하우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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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신춘문예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로 등단한 작가의 산문집이다. 고양이를 향한 시인의 마음을 시를 통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 책으로 더 자세하게 확인했다고 할 수 있겠다. 예뻐 보이지 않을 수가 없다는 말, 나는 이제 이해한다. 


세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사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제각기 성격이 다르고 활동 성향도 먹성도 다 다른 세 고양이와의 동거. 두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는 나로서는 80% 정도 그 상황들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닌가, 두 마리와 세 마리는 또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는 것일까. 모르겠지만, 모른대도 더불어 사는 마음만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을 테지, 이렇게 믿고 싶다.


작가인 시인은 함께 사는 고양이만 보살피는 게 아니다.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챙겨 주는 것도 집을 잃은 고양이를 아는 사람들에게 맡기는 일도 정성을 다한다. 이게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더 대단해 보인다. 그러는 중에 고양이를 괴롭히거나 해를 끼치는 인간들의 행패에 대한 글을 읽고 있자니 더 읽어나갈 수가 없을 지경이다. 내가 괴로워서 못 읽겠다. 


고양이와 함께 사는 이들에게는 마치 제 집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는 느낌을 줄 것 같다. 그집 고양이도 그런가요? 우리집 고양이도 그래요, 하면서. 아픈 고양이를 병원에 데리고 다니면서 치료해야 했다는 글을 읽으면서 애가 쓰였다. 우리집 두 녀석은 지금처럼 건강하게 자랐으면 바랄 도리밖에.  (y에서 옮김2021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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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 들어온 너에게 ㅣ 창비시선 401
김용택 지음 / 창비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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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의 시를 읽으면서 문득 든 의문 하나. 요즘의 학생들은, 특히 도시에서 살고 있는 학생들은 시골의 삶을 노래하는 시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하는 것. 시골의 풍경과 시골의 생명과 시골의 소리를 제대로 떠올려 볼 수 있을까 하는 것.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는데, 학생들이 아직도 시를 읽기는 읽는다. 교과서에 나오고 시험에 나오니까. 그런데 시를 시로 읽는다고 하기보다는 문제를 풀기 위한 제시문으로 다루다 보니 자신이 감정이 생길 틈도 없어 넘어가 버리는 경우를 종종 본다. 마음에 드는 시를 찾는 일은 엄두도 못 내고 마음에 드는 한 줄도 채 만나지 못한다고 해야 할까. 혼자 안타까워해 보다가 이것도 부질없지 싶다가 그래도 나는 읽어야지 했다가...

 

'새들의 밤'이 가장 깊이 와 닿는다. 다른 시들에 비해 길고, 내용도 험한 편이다. 새들의 고달프고 험한 생에 왜 내 마음을 빼앗긴 것인지 알 듯도 하고 모를 듯도 하다. 나보다 여리고 약한 것들에 연민을 느꼈다가 스스로 나를 위로하는 길을 잡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춥다, 춥겠다, 추운데 고생하는구나 하면서 내가 그러한 상황이 아니어서 다행이구나 싶은 것인지. 이래서야 시를 읽는 나를 기특하다고 여길 수도 없는데.

 

쉽게 읽힌다. 어떤 시는 싱겁게도 느껴진다. 쉽고 싱거워 보인다고 쓰는 마음까지 그러하지는 않았으리라는 것을 안다. 어렵고 복잡한 마음을 내려놓아야만 얻을 수 있는 표현이리라는 것, 인정하고 품어야만 쓸 수 있는 표현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도 있다.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어서 이 작가의 시를 계속 읽을 수 있는 것이고. 

 

이 글을 쓰는데 강릉 근처 산불이 잡히지 않고 있다는 뉴스가 들린다. 그 산에 깃든 새들은 이제 또 어떻게 하나, 어디로 가야 하나. (y에서 옮김2017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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