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번의 연애
성석제 지음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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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너무 더워서 '사랑'도 지겨웠던 것일까. 온통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이유만 떠오르려고 한다.

 

성석제의 글을 무척 좋아한다고 생각했으나, 이 소설은 안 읽혔다. 하도 안 읽혀서 왜 그런가 따져 보고 싶은 심정이다.

 

사랑, 더 이상 애절하지도 간절하지도 낭만적이지도 않다. 아마 이게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사랑에 매달리지 않는 나이가 되어 버린 것, 운명적인 사랑이라는 말에 슬쩍 웃고 마는 정서가 되어 버린 것, 사랑보다 더 귀하고 간절한 게 많다는 것을 알아 버린 것. 그러니 주인공 '이세길'의 일편단심이 그저그렇게 여겨질 수밖에.

 

'고래'도 내게는 매력적인 소재가 못된다. 이전에 읽은 작품들 가운데 '고래' 이야기도 대체로 실패했다는 기억이다. 고래, 그게 뭐라고, 그러니 잇따르는 모든 것들조차 연쇄적으로 매력을 잃을 수밖에. 고래 사냥도, 고래 고기도, 고래가 산다는 먼먼 태평양도, 이 더위에는 그리고 나에게는 그저 물고기의 하나일 뿐 별스러운 상징으로 살아나지 못한다. 내 상상의 한계일 수도 있고.

 

아니, 어쩌면 이게 가장 큰 이유가 될지 모르겠다. 작가의 젊은 날이 내 젊은 날과 겹치면서, 그때, 80년대 그때, 격동기의 그 혼란스러우면서도 끓어넘쳤던 시대, 그 시대의 사랑이어서 거북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때 그 세월의 갈피갈피, 부끄러웠거나 숨기고 싶었거나 외면하고 싶었던 내 크고 작은 잘못과 실수들, 채 성숙하지 못해 저질렀던 무수한 낭패들이 이 소설 속에서 비슷하게 살아 떠올랐던 것. 어찌하여 내 이십 대는 시간이 갈수록 회한으로 떠오르는 것인지.  

 

연애, 언젠가부터 더 이상은 재미가 없구나. (y에서 옮김20130715)

우리가 인생에서 느끼는 기쁨의 구십구 퍼센트는 첫 경험에서 나와. 노래나 영화는 옛날 들었던 원곡, 원작이 좋고 도시는 고향이, 집은 자기가 태어나 자란 곳이 최고지. 어떤 이야기든 처음 들었을 때 감동이 크잖아. 과거에 대해서 인간은 늘 긍정적으로 기억하게 되어 있어. 설령 그 기억이 잘못된 것이라도. 우리의 뇌가 설탕처럼 좋아하는 게 바로 그거니까. 어린 시절, 사춘기 또는 청춘 시절에 좋아하던 음악, 영화, 유행, 제품, 음식, 모든 것에 대한 취향은 평생을 가. 그 느낌을 불러일으켜서 돈을 쓰게 만드는 게 현재 기업에서 소비자에게 하는 일이야. 그냥 지나가는 건 없어. 자연스러워 보일수록 의심하라고. - P31

고통과 슬픔은 즐거움이나 기쁨보다 기억의 밭을 훨씬 더 깊게 갈아붙인다. 그건 존재를 위협할 수 있는 외부의 공격, 내면의 교란을 경고한다. 고통과 슬픔을 완화시키기 위해 뇌에서 분비되는 천연의 엔도르핀은 중독성을 가지고 있다. 고통과 슬픔을 위무하고 남은 엔도르핀은 마약과 비슷한 쾌감을 준다. - P59

작은 가게가 많이 남았다는 건 그 지역공동체가 건강하다는 뜻이지. 그 가게들 주인이 자식 낳아서 학교 보내고 지방세 내고 자치회도 한단 말이지. 대자본이 침투하고 시작지배력이 강화되면 지역 전체가 죽어. 주민들의 삶이 활기차고 건강한 생태계는 일급수 같아서 다양한 소자본 사업체, 관계망이 발달한 곳이지. -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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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이 참 희망적이네 ㅣ 문학동네 시인선 113
유강희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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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하게 읽은 시집이 아니다. 쓰여 있는 시어들 중 많은 것들에 걸려 비틀거렸다. 날것의 말, 험한 말, 센 말, 가시로 다가오는 낱말들, 문장들. 나는 아무래도 여리고 약하고 동글동글한 시어들을 좋아하는 데에 멈춰 있는 것 같다. 나아가지도 깊어지지도 못한다. 어쩔 수 없다.  

희망을 별로 못 봤다. 시집의 제목들이 대체로 역설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가끔 기대하다가 그러면 그렇지, 확인하게 된다. 세상에 어떤 고백이 희망을 전할 것인가, 고백이라는 말 자체에 이미 고민과 주저와 두려움이 담겨 있는 것을. 그럼에도 해야 해서, 마지못해, 억지로라도, 끝내는 살아야 해서 하는 말이 고백인 것을. 

내가 즐겨 읽는 취향의 구절을 몇몇 얻었다. 덜 힘들었다. (y에서 옮김20241022)


<지난해 겨울 평산책방에서 구한 시집>

까치 혼롓날을 알려줄 꿀벌은

언제쯤 바람의 페달을 밟고 날아오나 - P13

도토리 귀를 슬쩍 잡아당기면

숲의 가장 안쪽 물결이 인다 - P19

그늘보다 그늘 아래 물보다

낮은 목소리로 속삭여줘 - P37

어떤 저녁은 겸재의 그림처럼 한 산이 한 산을 껴안고 간다 - P66

라일락, 구름의 주소가 많은 스무 살

저 나무는 어디를 건너왔나

땀방울이 몽글몽글 피어났네

향기가 수치가 되는 날들 지나왔네

지치지도 않은 절망,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처럼

햇볕의 상처를 보여주는

모서리 딛고 네가 걸어오네

내 앞에서 한번 웃어주지 않겠니?

내가 열 수 없었던 눈물의 섬들

봄비가 대지의 틈을 꿰매듯

라일락, 너무 많은 모음과 자음

나는 어떻게 저 위를 지나가나 - P102

아버지의 단단한 눅은 마음결이

밤의 흰 속살을 밀고 가는

작은 칼의 굳은 입매를,

그 빛나는 밤의 종교를

나는 또 얼마나 닮고 싶은

것일까 - 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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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안에 담은 것들 - 걷다 떠오르다 새기다
이원 지음 / 세종(세종서적)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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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새삼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뜻을 찾아본다. '휴식을 취하거나 건강을 위해서 천천히 걷는 일'로 나온다. 그렇구나, 소풍(휴식을 취하기 위해서 야외에 나갔다 오는 일)과는 아주 조금 다른 뜻을 지니고 있다. 두 낱말 다 한자말이고 순우리말로는 적당한 낱말을 찾지 못했다. 이것도 우리의 문화와 관련이 있는 것일까? 우리 조상들이 산책이나 소풍을 딱히 하지 않았던 듯한, 그래서 필요가 없었던 듯한.(굳이 더 자세히 알아볼 사항은 아니고) 


산책, 좋아한다. 많이 좋아하는 편이다. 이래저래 산책이라는 것을 할 때마다 생각했던 건데, 산책을 하고 있는 내가, 내 처지가 퍽 다행스럽고 고맙게 여겨지곤 했다. 사느라 바빠서, 여유가 없어서, 건강이 나빠서, 이것마저 하지 못하고 살아야 한다면... 하는 생각은, 생각만으로도 막막하고 먹먹하다. 지금도, 앞으로도 이 산책만큼은 오래오래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어쩌면 이걸 남은 생의 주요 목표로 삼아야 할지도 모르는데. 산책을 할 수 있어야 사소한 다른 일도 해낼 수 있을 것이므로. 


이 책을 비롯하여 이전에 읽은 시인들의 산문집에서 비슷하게 느낀 공통점이 있다. 시와 산문의 언저리에서 맴돌고 있는 듯한 문장들. 시를 읽는 것 같기도 하고 산문을 읽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문제를 느끼는 것이 이게 좋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로 나뉘어진다는 점이다. 좋을 때는 시 구절로 이어지는 우아한 산문을 읽는 기분이 들어서 잔잔한 흔들림과 설렘을 오래 누리게 된다. 그게 아닐 때는? 실망만이 남는다. 놀림을 받은 듯한 기분마저 들어서. 


작가는 서울에서 사는 사람이다. 산책한 곳도 대부분 서울이다. 평소 서울을 외국처럼 여기고 있던 터라 익숙한 지명이라도 한 겹만 들어가면 내게는 낯선 곳이 된다. 홍대에서도 골목길에서도 시장에서도 작가의 산책은 구체적이지 않았고 좀 몽롱했다. 이 부분은 읽는 이의 처지에 따라 다르게 읽힐 것 같다. 요즘의 나는 골목골목을 남의 글따라 총총 걸어보고 싶은데(몸은 게으르니 마음만으로), 작가에 기대어 그걸 예상했는데, 글은 산책의 이미지들로 가득했다. 다른 시절 다른 상황에서 읽었다면 이 작가의 시집으로까지 이어졌을 산책길이 되었으련만. 


몇 장면의 일러스트레이션, 상당히 인상에 남는다. (y에서 옮김2022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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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개의 푸른 돌
은모든 지음 / 안온북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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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난감한 리뷰. 시작할 때는 촘촘하게 읽었는데 어느 새 설렁설렁 넘기고 말았다는. 화자가 바뀌는 형식도 각 화자의 인물됨도 딱히 내 주의를 끌지 못했다. 내 취향이 아니었던 작품인 것으로 남긴다. 작가가 쓴 '애주가의 결심'에 깊은 호감을 느껴 이 책에 이르렀는데 여기는 아닌 듯하다.


마음에 드는 글을 마음에 든다고 쓸 때는 할 말이 생기는데 마음에 들지 않는 이유를 적으려고 하니 난감하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고. 안 써 두자니 내 빈약한 기억력이 다시 이 책을 잡게 할 것 같고(이런 적이 하도 많아서). 순전히 내 독서의 편의성을 위해 메모처럼 남긴다.


제일 큰 이유는 등장인물들이 나를 사로잡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루미도 현도 이들의 부모도. 이들의 관계를 설정하기 위해 가져온 심청전과 가믄장애기 설화도. 힘든 처지의 이야기라고 다 읽기 힘든 것은 아닌데 읽기 힘들었다, 마음이. 내가 왜 지금 이렇게 힘든 이야기를 힘들게 읽고 있어야 하나, 딱 그런 기분. 이해도 동정도 수락도 공감도 하지 못하여. 책이 문제가 아니라 내게 문제가 있는 상황인 것으로 결론짓고 싶다. 


그래도 계속 읽을 일이다. 우리의 소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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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수수밭 ㅣ 창비시선 122
천양희 지음 / 창비 / 199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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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밭을 이미지로 찾아 본다. 많이 본 듯한 풍경이지만 아마 실제로 내가 본 적은 없을 것이다. 봤더라도 그게 수수밭인지 몰랐을 테니, 못 본 것이나 다름이 없고. 마음에 수수밭이 있다면, 혹은 마음에 수수밭을 가꾸고 있다면, 그 마음은 어떠할까. 수수밭을 모르니 마음까지는 더 모르겠고. 그럼에도 시집 제목과 같은 첫시는 뭔지 모를 스산함으로 마음을 때리고. 


시인은 1942년생, 내가 지금 보고 있는 이 책은 1994년판이다. 꽤 오래 전 책인데, 내가 사 놓고 정리를 안 한 건지, 선물로 받은 책인지 알 수가 없다. 개정판이 나와 있으니 아직도 사람들에게 다가서고 있는 시집인 모양이다. 이 시집이 나올 때쯤의 시인 나이가 지금의 내 나이와 비슷하다. 그래서 막 구한 기분으로 시집을 읽었다. 


전체 4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에 있는 시들이 좋다. 15편인데 고르게 나를 울린다. 이렇게 계속 좋으면 어떻게 하지 싶었는데 2부로 넘어가면서는 덜해졌다. 시를 읽는 마음의 간격이 커져 버려 내가 더 당황스러웠다. 안 읽히는 이유를 대느라 고민하지 말고 잘 읽혀서 와 닿는 시들을 더 생각해 보기로 했다. 


나는 길 위에 서 있는 시의 화자를 동경하는 마음이 큰 듯하다. 1부의 시들이 대체로 그러하다. 어딘가로 가는 길 위에 있다. 구체적인 지명을 향한 길도 있고 막연하게 꿈꾸는 길도 보인다. 길을 가는 생 앞에 서서 망설였다가 걷고 머뭇거렸다가 내딛는 화자의 의지가 애틋하다. 비슷한 나이 탓인지도 모르겠다. 요즘 내가 이러고 있었던 것 같아서. 


반백년을 넘게 살아도, 어른이 된지 한참이 지났다 싶어도, 여전히 생의 길은 첫길이다. (y에서 옮김20201225)

가지 않은 길 하나씩 품고 있는 한줌 기대와 기대 속에 묻힌 한 그루 추억의 푸른 나무 - P13

빠른 길만이 앞선 것은 아니다.

- P16

앞길은 언제나 막막한 것일까. - P24

나는 지상의 모든 책들을 다 읽었노라던 말라르메의 그 말이, 비가 오고 있다. 움직이는 비애를 알고 있느냐던 김수영의 그 말이, 흠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던 랭보의 그 말이, 누가 나를 인간에 포함시켰소라던 브로드스키의 그 말이, 낮의 빛이 밤의 어둠의 깊이를 어떻게 알겠느냐던 니체의 그 말이,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던 발레리의 그 말이…... -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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