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연령 60세 사와무라 씨 댁에 밥이 슬슬 익어갑니다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잊고 있었던 온갖 것들이 제 몫의 가치를 드러내는 시절이다. 공기, 물, 시간, 관계 등등. 너무 무심했거나 너무 지나쳤거나 잘난 인간이라고 여기고 저질렀던 오만을 자연이 경고하고 있는 것 같다. 이쯤에서 지구 차원에서 돌아봐야 하는 거 아니냐고. 너나 할 것 없이, 특히 잘 산다는 쪽, 많이 가지고 있다는 쪽에서 더더욱. 

 

만화는 앞선 작품들과 특별히 달라진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다. 40대의 직장인 미혼 여성이 70대의 부모와 함께 살면서 겪는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이야기. 특별한 게 없어서 더 돋보이는 평범한 삶의 가치. 어릴 때야 저마다 큰 꿈을 안고 세계를 정복하거나 인류 역사에 길이 이름을 남길 업적을 세우겠노라고 다짐하면서 크지만 커 보면 곧 알게 된다. 평범하게 사는 것조차 쉽지 않다는 것을. 그러니 이 만화에서 보여 주는 삶의 이야기만 해도 누군가에게는 동경이 될 수 있겠다. 

 

나이 드신 부모님이 건강하시다는 것,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게 뭔가 삶의 과제 하나를 안 한 듯하지만 그래도 또 그런 대로 괜찮게 받아들일 나이로 산다는 것, 비슷한 처지에 비슷한 고민을 나누면서 일상을 나눌 동료가 있다는 것, 비싸고 거창한 건 아니지만 맛있게 사 먹을 음식이 가까이 있다는 것, 변하고는 있으나 조금씩 남아 있는 과거의 추억을 되살려 주는 거리를 산책할 여유가 있다는 것.

 

사는 게 참 별것 없다 싶다가도 사는 게 이토록 대단한 건가 하는 마음이 하루에도 몇 차례 오가는 요즘, 지금 내가 갖고 있고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떠올리자니 갑자기 눈물이 맺힌다. 이만해도 고마운 일이다. (y에서 옮김2020031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4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송태욱 옮김 / 비채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는 일은 아름다운 일이다. 아름답지 않은 삶이 있기는 하겠지만 살겠다는 숭고한 의지로 꾸려 가는 삶이라면 아름답지 않을 수가 없다. 남에게는 평범하고 하찮아 보여도 삶의 당사자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목숨으로 하나밖에 없을 삶을 누리고 있는 것일 테니까. 살아 있는 우리가 겸손해야 하는 한편 살아서 좋다는 자부심을 가져도 되는 이유다.


홋카이도의 가상 마을 에다루. 할머니에서 손자까지 3대의 가족 이야기. 이들과 같이 살았던 홋카이도견 4마리까지. 염상섭의 삼대가 떠오르기는 하지만 분위기는 아주 다르다. 인물들이 살던 사회의 모습보다는 가족 개개인의 삶에 더 집중하는, 삶의 세밀한 모습들을 고요하고 순조롭게 보여주는 아주 내 취향인 소설이었다. 


일단 물어뜯고 싸우는 내용이 없다. 인물 간, 가족 간에 갈등이 있기는 하지만 사람 사는 곳에 흔하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이렇게도 소설이 되는구나, 지극히 심심하게 보일 수도 있는 것을 작가의 문장력으로 살려 놓는다. 이야기를 읽고 싶다는 마음도 크지만 문장을 계속 읽고 싶다는 욕망이 사라지지 않는 독서였다.


앞서 읽은 이 작가의 책도 배경이 홋카이도였는데, 이 소설도 홋카이도다. 가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썩이도록. 가상의 마을이라 현실에는 없는 배경이지만 이름이라도 알고 있는 삿포로라도 아사히카와라도 하코다테라도. 도쿄는 아닌데 홋카이도는 나를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는 땅이란 말이지.


아무 땅 아무 집 사정이라도 이 작가의 손을 거치고 글로 바뀌면 소설이 될 것만 같다. 여자와 남자가 만나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몇 낳고, 그 아이 중 몇은 결혼을 해서 다시 아이를 낳고, 몇은 결혼하지 않은 채 나이 들면서 각각 살아가는 모습의 전부를 모은 이야기. 세상에 먼저 나온 순서대로 세상을 떠나는 게 아니라서 더 슬프고 아프고 그럼에도 남은 사람은 또 살아가는 이야기. 재미와 감동과 위안과 힘을 전해 받는다.


요즘 들어 막연하게 두려운 상황이 떠오른다. 내 가족과 내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몇 번째로 세상을 떠나게 될까 하는 것. 첫 번째로 떠난다고 해도 기막힐 듯하고 마지막까지 홀로 남는다면 그 또한 기막힐 노릇일 텐데. 하지메가 혼자 나이 든 부모와 고모들을 돌보는 장면을 보고 있자니 먹먹하기만 해서... 


이 책을 읽고 모처럼 평온해졌다. 시끄러운 세상을 만들어 시끄럽게 살고 있는 이들이 나에게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 책 덕분에 알게 되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6-07-12 10: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7-12 11: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고마네치를 위하여 - 제2회 황산벌청년문학상 수상작
조남주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82년생 김지영'에 그리 감동을 얻지 못한 탓에 이 작가의 글을 찾아 읽지는 않는 중이었다. 영화를 만든다고 하고 다 만들었다고 하고 상영한다고 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반응들이 쏟아지는 것을 보면서 내가 그 소설을 제대로 못 읽었던가 잠시 의문을 가졌다. 그렇지만 책을 다시 읽겠다거나 영화를 보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고(짜증도 감동도 회한도 얻고 싶지 않았으므로) 이 작가의 다른 글을 읽어 봐야겠구나 싶어 빌린 책이다. 결과적으로 성공한 독서였다.

 

이 책을 안 봤더라면 많이 후회할 뻔했다. 작가에 대한 관심을 확실하게 갖게 해 준 책이다. '82년생 김지영'에서의 느낌과 확연히 다르다. 좋은 쪽으로. 이건 내가 소설의 형식에 큰 영향을 받는다는 뜻이다. 이 책은 이야기 그 자체다. 쉬지 않고 풀어 내는, 발랄하고 수다스럽고 아프고 처절하고 가슴 뛰는 이야기. 이 글을 먼저 읽고 작가의 이름을 안 뒤에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더라면 쓸데없는 편견을 갖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

 

어린 여자 아이가 화자로 등장하는 소설은 앞서 몇몇 있었다. 당장 양귀자와 은희경이 떠오른다. 이런 익숙한 느낌에 대해 책 뒤 심사평에서도 언급해 놓기는 했다. 기시감이라고. 그럼에도 글은 잘 읽힌다. 어린 화자에게 몰입도 잘 된다. 어른이 된 후의 화자에게도 동정심이 든다. 그래, 어쩔 수 없다. 내 입장에서는 이만큼의 동정심이 다일 수밖에 없다. 

 

최근 386세대를 향한 반성을 촉구하는 글을 본 적이 있다. 해당 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뜨끔하는 부분이 많다. 요즘의 젊은이들이 겪는 어려움의 원인 중 많은 부분을 책임져야 하는 세대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도 관련되는 내용이 구석구석 등장한다. 아이를 키우는 방법이나 태도, 부동산으로 재산을 늘리는 방법, 사회의 공정성을 해치거나 미루면서 제 이익을 챙겨 간 방법 등등. 그러지 말았어야 할 일들을, 그러면 안 된다고 외쳤던 젊은 날들의 구호가 부끄럽게도 더하면 더했지 모자라지는 않았을 이기적인 일들을 하고 만 이제는 어른인 세대. 그로 인한 불평등의 결과나 피해를 받은 인물들의 사정을 그때를 배경으로 삼은 소설로 읽고 있자니 얼마나 불편한 마음이 그득하던지. 들켜서 그만 시원해졌을 정도다.    

 

생각해 보니 내 생은, 내 주위의 비슷한 친구들의 생 또한 지금까지 참 평탄했다고 생각한다. 어려서는 대체로 다들 가난한 편이었으나 조금만 열심히 하면 곧 괜찮게 살 정도로는 되었다. 대학을 가면 금방 취직이 되었고 직장을 바꾸기도 어렵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결혼도 그랬다. 가진 것 없이도 시작할 수 있었고 둘이 잘 모으면 모으는 보람을 얻을 수 있는 시절이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처럼 앞이 막막한 때는 그다지 없었던 것이다(나와 내 주변이 그러했다는 말이다). 그러니 어찌 이 젊음을 이해한다고 할 수 있으랴. 그저 못난 능력 탓일 것이라고 함부로 비난이나 하고 있는 것이겠지. 이 세대 차이는 진정 극복할 수 있게 될까? 

 

열심히 해도 안 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아는 일만 해도 쉽지 않은데. 인생에 성공이라는 게 과연 무엇인지 어떤 상태인지 모르겠지만, 다들 성공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느라 현재의 생을 지나치고 마는 잘못을 저지른다고도 하는데 이 소설은 참 여러 모로 생각을 많이 해 보게 한다. 정녕 잘 못 살려고 하는 사람은 없는 건데 말이다. 어쩌자고 삶은 이리도 오락가락하는 건지, 어느 날은 살 만하다가 또 어느 날은 이렇게도 지독한가 싶고. 소설은 좋았다. (y에서 옮김201911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평균 연령 60세 사와무라 씨 댁의 행복한 수다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수다는 좋다. 나이와 상관없이 뜻이 맞고 형편에 어울리는 이들과의 나른하고 즐겁고 유쾌한 수다. 이번 책의 주제는 수다라고 해도 좋겠다. 40세의 미혼여성인 히토미가 친구들과 나누는 수다, 69세로 히토미의 엄마인 노리에가 이웃들과 나누는 수다, 그리고 히토미의 아버지인 70세 히로가 아내와 딸과 함께 나누는 가족 간의 수다. 그리하여 어느 하나 빠뜨리는 영역 없이 골고루 나누게 되는 수다. 


좋은 일에는 좋아서 기쁘다고, 좋지 않은 일에는 서로 달래며 괜찮다고, 아무리 오래 함께 지내온 듯해도 모르는 점은 또 생겨나서 새롭고 익숙한 일에는 안심이 되어 정답고. 수다가 이런 것이다. 만나서 수다를 떨고 있을 때는 대수롭지 않은 듯 여겨졌다가도 헤어질 때쯤에는 그동안 나눈 수다로 생기를 얻게 되었음을 깨닫게 해 주는 것. 그래서 또 만나기를 기대하고 다음의 수다를 미리 그리워하게 되는 것. 


한가로운 기분으로 간결한 그림에 마음을 빼앗기며 읽는다. 이 또한 수다다. 작가와 내가 나누는 한계 없는 수다. 히토미와 노리에의 중간 쯤에 자리잡은 내 나이, 친구들과의 수다도 가족과의 수다도 모두 소중한 것임을 알겠다. 이만큼을 바라는 것도 넘치는 소원일까, 이런 바람도 조심스러운 시절이다. (y에서 옮김2022040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악수도 없이 헤어졌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69
피천득 지음 / 민음사 / 202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수집하는 취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어떤 책은 갖고 있으면서 또 구하고 싶어진다. 이 책처럼. 읽겠다도 아니고 그저 갖겠다는 욕심으로. 앞서 나온 '인연'이라는 제목보다 이번 책 제목이 훨씬 마음에 든다. 오래 전부터 글 '인연'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려 있는 글들은 낯익고 또 낯설다. 다시 읽어도 은근히 멋진 글들이 많다. 처음 읽는 것처럼 여겨지는 글들도 있다. 한 번 읽었다고 다 기억하는 것은 아니니 처음처럼 본들 또 어떨까 싶다. 한편 몇몇 작품은 아주 많이 읽어서 외운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 글을 한창 읽고 있었을 그때, 나는 몇 살이었던가, 어디에 있었던가, 기억을 더듬어보는 일 자체가 추억이 된다. 


시작은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였을 것이다. '인연'을 가르치셨던 나의 국어 선생님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이 또한 내게는 인연이었던 것인데. 


이번 책에는 아들 수영이에게 보내는 몇 편의 편지도 담겨 있다. 작가의 딸인 서영이에 대해서만 알고 있다가 두 아들에 대해 새로 알게 된 점도 신선했다. 수필의 역사, 개인의 역사, 한 가정의 역사,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더없이 소중한 삶을 만난 기분이 된다. 위대하고 거창하지 않아서 오히려 더 위대한 것만 같은.


'플루트 플레이어'를 내가 좋아하는 이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