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4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송태욱 옮김 / 비채 / 2021년 4월
평점 :
사는 일은 아름다운 일이다. 아름답지 않은 삶이 있기는 하겠지만 살겠다는 숭고한 의지로 꾸려 가는 삶이라면 아름답지 않을 수가 없다. 남에게는 평범하고 하찮아 보여도 삶의 당사자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목숨으로 하나밖에 없을 삶을 누리고 있는 것일 테니까. 살아 있는 우리가 겸손해야 하는 한편 살아서 좋다는 자부심을 가져도 되는 이유다.
홋카이도의 가상 마을 에다루. 할머니에서 손자까지 3대의 가족 이야기. 이들과 같이 살았던 홋카이도견 4마리까지. 염상섭의 삼대가 떠오르기는 하지만 분위기는 아주 다르다. 인물들이 살던 사회의 모습보다는 가족 개개인의 삶에 더 집중하는, 삶의 세밀한 모습들을 고요하고 순조롭게 보여주는 아주 내 취향인 소설이었다.
일단 물어뜯고 싸우는 내용이 없다. 인물 간, 가족 간에 갈등이 있기는 하지만 사람 사는 곳에 흔하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이렇게도 소설이 되는구나, 지극히 심심하게 보일 수도 있는 것을 작가의 문장력으로 살려 놓는다. 이야기를 읽고 싶다는 마음도 크지만 문장을 계속 읽고 싶다는 욕망이 사라지지 않는 독서였다.
앞서 읽은 이 작가의 책도 배경이 홋카이도였는데, 이 소설도 홋카이도다. 가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썩이도록. 가상의 마을이라 현실에는 없는 배경이지만 이름이라도 알고 있는 삿포로라도 아사히카와라도 하코다테라도. 도쿄는 아닌데 홋카이도는 나를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는 땅이란 말이지.
아무 땅 아무 집 사정이라도 이 작가의 손을 거치고 글로 바뀌면 소설이 될 것만 같다. 여자와 남자가 만나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몇 낳고, 그 아이 중 몇은 결혼을 해서 다시 아이를 낳고, 몇은 결혼하지 않은 채 나이 들면서 각각 살아가는 모습의 전부를 모은 이야기. 세상에 먼저 나온 순서대로 세상을 떠나는 게 아니라서 더 슬프고 아프고 그럼에도 남은 사람은 또 살아가는 이야기. 재미와 감동과 위안과 힘을 전해 받는다.
요즘 들어 막연하게 두려운 상황이 떠오른다. 내 가족과 내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몇 번째로 세상을 떠나게 될까 하는 것. 첫 번째로 떠난다고 해도 기막힐 듯하고 마지막까지 홀로 남는다면 그 또한 기막힐 노릇일 텐데. 하지메가 혼자 나이 든 부모와 고모들을 돌보는 장면을 보고 있자니 먹먹하기만 해서...
이 책을 읽고 모처럼 평온해졌다. 시끄러운 세상을 만들어 시끄럽게 살고 있는 이들이 나에게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 책 덕분에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