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데없이 눈부신 게 세상에는 있어요 ㅣ 문학동네 시인선 244
안도현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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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읽고 있으면, 글을 떠나 내 세상으로 나가는 나를 만나곤 한다. 글은 글대로 나는 나대로가 되어 한편으로는 엉뚱한 읽기가 될 수도 있는데, 나는 이런 과정을 꽤 좋아한다. 좋아하는 글을 읽는 것도 좋고 글로 인해 이리저리 헤매는 나를 만나는 것도 좋으니까. 


어떻게 된 것이 이 시집을 읽고 있으니 편지를 쓰고 싶어졌다. 받을 사람이 하나둘 떠오른다. 그러나 내가 어떤 편지도 쓰지 않을 것을 안다. 그럼에도 중얼거린다, 받을 사람을 생각하면서, 하고 싶은 말을 툭툭 전하면서, 시집 속 구절들에 살짝 얹은 내 마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챙기면서. 


겨울 분위기에 젖은 시들이 특별히 와 닿는다. 내가 시를 읽는 이 시기와 겹치면서 추위에 시달리고 있는 마음이 위로를 얻은 것일 테다. 시골 분위기를 살려 내고 있는 글도 반갑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와 겹치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가 글을 읽고 시를 쓰면서 살고 있다는 예천과 멀지 않은 곳에서 살았던 나의 시간들이 떠오른다. 남의 것도 내 것도 가끔은 주인을 잃고 모두의 것이 되는 듯한 착각을 맛본다. 부자가 된 기분이라 떨치고 싶지 않다.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와 아직 살아계신 어머니가 시집을 펼친 자락마다 자리하고 계신다. 그리운 이름들이 많아지는 것은 좋아지는 현상일까, 반대의 경우일까. 어렸을 때 믿었던 사랑이 점점 커지고 둥글어지는 것에 마음이 놓인다. 더 중얼거리고 싶다.



그 누구도 기억해주지 않아서 좋은 단어들 - P13

자꾸 물어도 좋은 질문이 세상에는 많네 - P21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니 정말 무척이나 편안해졌다 - P25

창틈에서 손을 빼지 못하는 바람의 마음이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끼의 마음이나 바위 속에 식솔들 재워두고 세상 구경 나온 마애불의 마음이나 - P26

나는 쓸모없는 걱정을 하다가 가장 쓸모없는 일이 가장 귀한 일이라는 생각도 한다 - P37

꽃이 피는 소리는 들을 수 없었지만 꽃이 피는 순간에 꽃그늘에 들었다는 건 무진장 신통한 일이었습니다 - P68

쓸모없는 것을 기억하는 것도 쓸모없는 일이라고
기억할 줄 아는 사람만 아픈 거지 - P91

아버지가 마당에서 싸리비로 눈을 쓰는 동안 부엌에서 뭇국이 끓었던가 냄비 속에도 눈이 내려 길이 자욱했던가 - 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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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없는 양들의 축연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최고은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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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대했던 '고전부'와 같은 이야기가 아니었다. 단순히 살인이라는 소재를 이용하여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악의 근원을 보여 주려는 것 같다. 내 취향은 아니었으나, 끝내 오싹거리고 말았으나, 읽기를 멈출 수는 없었다. 작가 특유의 반전은, 독자로서 안심하게 되는 반전이 아니었다.

 

내게도 이런 속성이 있을까.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흥분하지도 않고 들뜨지도 않으면서 차분하게 최대한 낮은 자리에서 복수를 준비하는 주인공을 동경하는 마음. 분명히 일을 저지를 줄 알면서도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 쪽을 응원하고 있는 내 모습. 가해자가 될 수밖에 없도록 앞서 죄를 지었던 피해자에게 복수를 하고 성공하는 모습을 은근히 기다리면서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 할 정도로 몰입하기도 했다. 남 이야기가 아닌 듯이 여겨지도록 하는 게 이 작가의 작품의 특징이라고 여겨진다.

 

독서 클럽이라는 소재가 중요한 연결고리로 등장한다. 현실에서 이런 독서 클럽이 운영된다면 위험하지 않을까 싶을 지경이다. 지능적인 범죄의 온상이 된다고나 할까. 똑똑하면서 냉정한 사람이 모여 나쁜 일을 꾸미기 시작한다면 얼마나 무서운 일이 일어날 것인지. 왜 그런 마음이 생길까 하는 의문 자체가 아무 소용이 없는 본성을 가진 사람들의 범죄란.    

 

이런 게 엽기적이라는 것일 테다. 영화보다 더 무섭고 끔찍하다.  (y에서 옮김2016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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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현장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소설
이청준 외 지음 / 현대문학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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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류의 소설집을 읽으면 막연한 사명감이 생겨난다. 마치 내가 이 시대의 무언가를 알고 있어야 하는 것처럼. 이번 2007년에 나온 이 책은 작년 여름부터 올봄까지 1년 동안 발표된 소설 중에 뽑아서 담아 놓은 것이다. 이 책을 잘 살펴 읽으면 2006년 여름부터 2007년 봄까지의 우리나라 얼굴을 들여다볼 수 있다고나 해야 할까. 


책의 시작은 그리 거창한 의도가 아니었다. 그냥 윤대녕의 소설이 눈에 띄어 읽기 시작했다. 나는 그의 소설에 중독되어 있다. 이유를 말할 수도 없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 읽고 있는 시간이 행복할 따름이다. 그가 쓴 글에서 내 마음이 닿는 구절을 옮겨 적고 있는 것이 즐거울 따름이다. 소설 '보리'도 그렇게 읽었다. 무조건 좋아하는 마음으로. 이 소설이 담긴 소설집이 나오기만을 기다린다. 


윤대녕의 소설을 읽고 나니 그제야 다른 작가들의 이름이 눈에 들어온다. 이청준의 소설을 읽는다. 여전하시다. 무거운 듯 무겁지만 않게, 그렇지만 절대로 가볍지 않게, 우리 자신과 우리 시대와 우리 역사를 돌아보게 하는 글. 중고등학교 국어 관련 교과서나 문제집에 그의 글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가 있다. 교과서에 실릴 만큼의 모범적인 소설가라는 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어 고종석의 글, 공선옥의 글이 내 눈을 잡는다. 익히 이 분들이 쓴 글을 읽었기에 나만 느낄 수 있는 어떤 맥락을 잡을 듯하다. 역시 잘 살아 계시는구나 싶은 마음.   


한 해가 가기 전에 이 책과 같은 의도로 출판된 소설집을 읽으면 지난 한 해를 힘들이지 않고 돌아보는 기분이 된다. 적어도 올해는 우리 사회에 어떤 것이 문제였나를 확인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내용을 정리하다 보면 좀 쓸쓸해진다. 사는 게 기쁘지 않다는 느낌이 들게 되는 탓이다. 무엇보다 가족이 부서지고 있는 모습이 확연하게 보인다. 그러면서 외국인들이 밀물처럼 우리의 삶에 끼여들어온다.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삶, 서로서로 거부하는 관계, 그 속에서 우리가 바라고 바라는 '사랑'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y에서 옮김2007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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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의 폐경 - 2005 제5회 황순원 문학상 수상작품집
김훈 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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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상 수상집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점이다. 한 해가 그 속에 담겨 있는 것이다. 언젠가부터 그랬다. 이 수상집을 읽으면서 한 해를 마무리해 왔다. 그래, 올해에는 이런 일이 있었지, 사회적으로도 이런 사건들이 우리와 함께 했었지. 무심코 넘어 갔던 문제들도 소설 속에서 다른 모습으로 되살아나고 있었다.

그렇다면 올해에는 어떤 문제들이 우리 옆에 있었던가. 무엇보다 나이 든 사람들의 삶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한 해라고 생각한다. 노인 문제라고만 말하기에는 너무 단순하거나 무거운 주제-나이가 든 사람들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게 했다. 나도 곧 이른바 나이 든 사람이 될 것이고 그러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 것인가. 그 나이에도 사랑이라는 것을 할지, 자식에게 짐이 되는 것은 아닐지, 무엇으로 살아가게 될지. 이번 수상집에는 직접, 간접적으로 그런 이야기들이 많이 보였던 것이다. 수상작인 언니의 폐경, 소금 가마니,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잃어버린 인간, 탱자, 웨하스로 만든 집 등.

그랬나보다. 내가 노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는 시점에 이르러 이 책을 읽었던 모양이다. 어느 한 작품 간절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나이가 들어서도 이런 책을 계속 읽고 있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새로 생겨나는 날이다. (y에서 옮김2005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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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Incite mill 인사이트 밀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최고은 옮김 / 학산문화사(단행본)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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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의 매력은 반전이다. 독자가 예상하지 못했던 결말로 이끌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독자를 자신의 추리 게임에 끌어들이면서, 독자에게 승리감을 줄 것처럼 모든 장치를 고안하면서, 마침내 독자가 예상한 것이 맞을 것 같은 찰나가 되었을 때에, 아니었던 것으로, 의외의 결말로, 또 작가에게 졌구나, 그래도 유쾌하구나 하는 마음이 들도록 만들어 내는 구성 능력. 추리소설 작가는 늘 이런 게임을 하는 사람인 것 같다.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직접 게임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자신은 하지 않으면서 게임 구경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나는 구경하는 쪽이다. 구경만으로도 충분히 긴장감과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다. 심심풀이로 한다는 보드게임조차 나는 부담을 느끼는 편이다. 이기고 지는 게임을 피하는 일에 필요 이상의 강박관념을 갖게 되었다고나 할까, 어쩌면 이 또한 자라면서 어쩔 수 없이 얻게 된 트라우마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래서 나는 게임을 하지 않는다. 어지간해서는 안 한다. 내기도 안 하고 투자도 안 하고 주식도 안 하고 복권도 안 한다. 바둑도 장기도 심지어 오목도 긴장감을 즐기지 못해서 안 한다. 스릴이 넘친다는 영화는 당연히 못 본다. 내 편으로 여기는 주인공이 꼭 이긴다는 보장이 있는 드라마를 좋아한다. CSI류의 미국 드라마처럼.

 

현실에서는 이런 성향인 나도 추리소설만큼은 받아들인다. 뭔가, 지적 게임이라는 말에 빠져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내 머리를 시험해 보자, 작가의 의도랑 한번 겨뤄 보자, 지면 어때? 읽는 동안 흥미로운 것을. 이 작가의 소설은 이런 내 의도를 충분히 만족시켜 준다. 번번이 지고 말았지만.

 

2인 이상 하는 보드 게임 중에 전략 게임이라는 게 있다. 각종 룰과 각자의 무기나 장점을 갖고 상대와의 거래를 통해 승패를 나누는 게임. 이 소설이 전략 게임 같았다. 열두 명의 인물과 이 인물들이 갇힌 배경, 게임에서의 점수 대신에 돈을 따는 룰까지. 물론 그 안에는 살인이라는 무시무시한 조건이 들어 있기는 하지만.(이 소설은 이러한 룰과 돈 계산도 할 줄 알아야 제대로 읽을 수 있는데 이 계산이 싫었던 나는 대충 파악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좀 무서웠다. 우리 영화 중에 '10억'도 잠깐 떠올랐고. 그래도 소설의 중반 이후부터 작가의 의도가 보이기 시작하니까 덜 무서웠다. 살인이 목적인 게임이 아니라, 추리가 목적이었으므로. 등장인물 12명에 맞춰 12편의 유명한 추리소설 작품을 연결시켜 놓은 것도 인상적이었다.(여기서 잠깐 찾아 보았는데 일본에서는 이미 이 작품을 영화로 상연했다고 한다.)   

 

추리소설과 현실은 얼마만큼의 거리로 떨어져 있을까. 우리가, 내가 추리소설을 즐겨 읽은 이유가 무엇인지 근본적으로 생각해 보게 된다. (y에서 옮김2016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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