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라클레스의 모험 (완전판) - 헤라클레스의 모험 ㅣ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51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원은주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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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기획이 돋보이는 구성을 갖춘 작품집이다. 푸아로라는 뛰어난 탐정을 주인공으로 삼으려고 했을 때부터 이 구성을 생각해 둔 것이었을까? 푸아로의 이름인 에르퀼이 헤라클레스의 의미를 갖고 있다고 했으니 그럴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독자로서 해 보는 이런 상상마저 신기하다. 답을 몰라도 전혀 상관없이.

이번 책에서는 푸아로가 헤라클레스 신화를 이용한다. 헤라클레스가 해결해야 했다는 12가지 과업처럼 자신이 맡은 사건들을 헤라클레스의 12가지의 과업과 연결시켜 해결해 나가는 것이다. 적절한 건지 어떤 건지 잘 모르겠고 약간 억지스럽다는 느낌을 주는 것도 있었으나 소설 구성을 이렇게도 할 수 있는 것이구나 여겼다. 덕분에 오래 전에 읽었지만 다 잊어버린 헤라클레스의 신화를 다시 찾아볼 수 있었다.

괜히 읽는 시간을 늘였다. 한번에 주욱 연달아 읽어버리고 싶지는 않더라는 것. 하루 한 편씩 읽어 보니 열두 가지 사건이 서로 겹쳐지는 대목 없이 마치 요즘의 범죄수사 드라마 시리즈를 보는 듯했다. 제목과는 달리 각 이야기에 푸아로의 대단한 모험 상황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니었고 사소한 듯 사소하지만은 않은 사건들의 전말이 짧은 분량의 글 속에 재미있게 펼쳐지고 있었다. 마지막 편에서는 좀 많이 섭섭할 정도로.

1940년대에 나온 책이라고 하고, 작가가 글을 쓴 시대 배경도 대략 그 시절이었을 텐데 어째 작품 속 범죄의 형태는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 보이지 않는다. 얼마 전에 007 영화에서 본 소재와 비슷한 장면을 갖고 있는 글을 읽으면서는 약간 놀라기도 했고. 새로움을 만들어내는 방식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종종 던져 주는 작가다. (y에서 옮김2021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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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 마, 잘될 거야 ㅣ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오연정 옮김 / 이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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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하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아무리 사람 사는 이야기가 비슷하다고는 해도 이렇게까지 닮을 줄은 몰랐는데, 이웃 나라에서 나온 만화를 보면서 우리 사정에, 혹은 이 세상의 모든 직장인의 사정에 이렇게 쉽게 공감하게 되다니. 작가의 능력이라고 말하기에 앞서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게 마련인 욕망, 열등감, 피해의식, 경쟁의식 등등을 내 안에서 발견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내가 그랬으니까(내가 그랬으니 남들도 그러리라고 짐작하는 것조차 위험한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그건 또 그것대로 인정하고 싶은 마음까지).

입사 2년 차인 마리코, 입사 12년 차인 마리코, 입사 20년 차인 마리코, 세 사람의 시점을 돌아가면서 보여 준다. 나는 이미 세 단계를 다 거친 후 그곳에서 빠져 나온 입장이라 총괄적으로 바라보는 재미를 느꼈다. 그랬지, 그때는, 그런 마음으로. 돌아보면 그리 매달릴 일도 속상할 일도 추궁할 일도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 시절에는 어려움을 느낄 때마다 절박했을 것이다. 그만두어야 하나, 계속 버텨 나가야 하나. 마치 삶의 계단을 한 칸 한 칸 오르내리는 것처럼. 그 계단 위에 오르면 무엇이 보일지 모른 상태로.

시원한 위로를 주는 만화는 아니다. 그런데 자잘한 위로는 된다. 누구나 나랑 비슷하게 고민하면서 망설이면서 스스로를 격려하면서 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면 기운이 좀 날 듯하다. 불공평한 것처럼 보여도 또 한편으로는 공평한 세상이구나, 저마다의 몫이라는 게 있는 모양이구나, 내 것은 내 것대로 헤쳐 나가면 되는 것이구나 하는 데에까지 이르기만 해도.

나이 먹었다고 괜히 자만하지도 말고, 잘 모르면서 젊은이의 처지를 동정하지도 말고, 꿋꿋하게 그러면서도 맑게 잘 살아 나간다면 모두를 위한 좋은 태도가 아닐까 싶다. 요즘 '좋은 영향'이라는 말을 자주 생각한다. 내가 갖고 싶은 태도여서 그럴 것이다. 크지 않아도 강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럴 수도 없고, 그럼에도 만족할 수 있을 만큼만. 이 만화를 보면서 내가 얻었던 만큼만이라도(그러면 아주 큰 건가?). (y에서 옮김2019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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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한 번만이라도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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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한 번만이라도'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는 일은 쉽겠지만, 이건 이것대도 와 주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이 한 번이라는 것이 영영 얻지 못할 기회이기 십상이다. 이루어질 가능성이 어지간히 있는 경우의 일에 대해서는 이만큼의 간절함을 갖기 어려운 탓이기도 하고. 이왕 딱 한 번만이라도 얻기를 바란다면, 복권처럼 되어 버리고 말 것 같아서다. 그래서 나는 이런 가능성을 아예 기대하지 않고 사는 쪽이지만. 아닌가, 세상의 누군가는 이런 기대만으로도 하루하루 살아갈 힘을 얻을 수도. 그렇다면 내 마음이 너무 각박한 건지도 모르겠다. 


책 제목과 소개하는 내용에 살짝 낚인 느낌이다. 나야 광고와 관계없이 구할 책이므로 얻기는 했는데 읽으면서 기대하는 마음도 있었다. '뜨겁고 뜨겁게 빛날 수 있는 밤을 갖고 싶어'라니. 무슨 생각을 했던 건지. 작가가 모처럼 어른들 이야기를 하려는 건가 그랬는데. 내 속물적인 속성을 가볍게 물리쳐 주면서 펼쳐 보인 뜨겁고 뜨거운 밤의 이야기, 그래, 나이와 상관없이 단 한 번만이라도 갖고 싶을 것 갖기는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렇지만,....


다른 가족이 없는 부유한 친척으로부터 유산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기대, 내 처지에 어울리지 않게도 나에게 반해서 프로포즈를 해 줄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남자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 하찮은 능력 뒤에 숨어 있는 나의 고유한 실력을 알아봐 주고 나를 스카우트해 주는 회사가 있었으면 싶은 소망 등등. 이런 걸 뭐라고 해야 하나, 꿈이라고 해야 하나, 헛된 기대라고 해야 하나. 생각해도 생각해도 한숨만 나올 뿐인 사정인 것을.  


소설은 술술 잘 읽힌다. 손에 잡았다면 한달음에 끝낼 만하다. 무슨 일이 생길 듯하지만, 기대하는 무슨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네 현실의 삶이 그러하듯, 더더구나 자신의 삶이 통째로 흔들리고 바뀔 정도의 거대한 일은. 괜히 헛기대만 했다가 생채기만 얻고 마는 쓸쓸함과 후회라니. 왜 그런 기대를 했던가 싶기만 해서.  


읽고 난 뒤의 마음은 호젓하다. 호젓해서 좋다. 세상이 결코 만만하지는 않지만 이런 세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간절한 목소리가 서로에게 울리고 있는 듯한 느낌을 얻었던 덕분이다. (y에서 옮김2022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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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김훈 지음 / 학고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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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읽기에 쉽지 않았다. 금방 다 읽을 것 같았는데 다 읽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쓰라리는 마음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싶으니까 책장이 넘어가지 않았다. 


하필 눈보라와 추위 속 남한산성의 계절과 같은 시기에 이 책을 읽은 것인지. 따뜻한 방안에서 읽고 있었어도 400년 전 그때의 추위가 내 손과 발에 와 닿는 것만 같았다. 죽고 싶다고 죽어지는 것도 아니고 살고 싶다고 살아지는 것도 아닌 기막힌 목숨들. 나는 도저히 '나라면...'이라고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작가의 글솜씨에 대해서는 내가 말할 바가 못된다. 다만 짐작할 따름이다. 이 한 줄을 쓰면서 혹 눈물 삼키지나 않았는지, 이 한 줄을 쓰면서 혹 잡고 있던 필기구를 부러뜨리지나 않았는지, 이 한 줄을 쓰면서 혹 신음 같은 한탄을 참지나 않았는지. 읽는 내가 이토록 처참하고 처참한데 쓰는 사람은 어떠했을까.


나는 이 책이 400년 전에 있었던 일만을 고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지금도 김상헌의 이름으로, 최명길의 이름으로, 이시백의 이름으로, 김류의 이름으로, 그리고 누구보다 서날쇠의 이름으로 이 땅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올바른 정치가라면, 올바른 지도자라면, 살기 위해 죽음을 택하는 백성들이 더 이상 생기지 않도록 해 주어야 한다.


나는 왜 남한산성에서 여진족과는 한번 싸워 보지도 못하고 추위와 굶주림으로 지쳐 죽어간 이름 모를 백성들의 한이 인조 임금이 칸 앞에 절한 치욕보다 더 크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y에서 옮김2008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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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잊기 좋은 이름
    김애란 지음 / 열림원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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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잊기 좋은 이름이라는 게 있던가, 잊고 싶지 않아도 잊어버리니 그게 문제인 것이지. 한편으로는 잊지 않는다는 게 좋을 일만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잊을 만하면 잊어버리는 게 서로에게 나은 것일 수도 있으니. 아무리 애틋하고 아무리 그립다고 해도. 그래서 날마다 잊고 있어서 우리는 또 낯선 매일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일 테고. 


    최근에 나온 책으로 손석희 아나운서와 주고받는 대화를 유튜브로 보았다. 작가가 인터뷰를 하는 모습을 처음 보았는데 새삼 작가의 사정이 궁금해져서 찾아낸 책이다. 더듬어 살펴보니 이 작가의 글을 내가 꽤나 읽었던 것으로 나온다. 그렇지만 내게는 아직 특별한 작가가 되지 못한 듯하다. 


    정작 인터뷰의 소재가 된 책도 아직 읽지 못했다. 이 책은 나온 지 좀 되었고, 작가의 옛 이야기들, 작가가 되기까지의 사정들, 작가가 되기 시작하면서, 작가가 된 전후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작가에 대한 애정이 깊은 독자라면 벌써 읽었을 책이었겠다.


    인터뷰 때 보여준 말들이 퍽 인상적이었다. 그동안 이 작가의 글에서 내가 놓쳤던 게 있지 않았나 싶어 실린 글들을 주의 깊게 보았다. 특별히 돋보이는 게 없었던 것을 보면 이 작가와 나 사이의 거리가 이만큼 떨어져 있는 것인가 싶어진다. 말과 글은 또 다르니까. 말할 때의 모습과 글로 보여 주는 모습은 다르게 마련이니까.(똑같은 사람이 있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계속 읽어야지.


    작가의 글을 따라 가면서 내 안에 있을 이름들을 불러 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는 생각이 든다. 독자인 나로서는 전문가인 작가의 체험을 통해 내 체험을 환기시켜 보는 일로 일상에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으니. 잊기 좋은 이름 몇몇은 영영 떠오르지 않았다. 이 역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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