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나를 깨운다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90
황인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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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고 있는 시집을 또 샀다. 무엇보다 내 리뷰가 없었고, 읽었다는 기억은 당연히 없고, 그런데 이 시인의 시집을 갖고 싶기는 하고, 사고 다시 보니 이미 책장에 있다. 어떤 사람은 좋아하는 가수의 시디를 여러 장 산다고도 하던데, 이참에 나도 비슷한 기분을 느끼기로 한다. 고작 시집 두 권이라 민망한 마음도 들지만.


리뷰는 없어도 시집은 있으니 오래 전 읽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새로 구한 시집으로 새로 읽는다. 시집의 장점 중 하나가 거듭 읽어도 거듭 새로워진다는 것. 제목처럼 슬플 때는 더더욱.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하찮은 슬픔 몇 조각이 나를 좀 깨워 주기를 감히 바라면서.


시집 초판본은 1990년. 책장에 꽂혀 있는 시집이 초판본이다. 이번에 내가 산 것은 2023년판. 모르고 있다가 숨어 있던 보물을 발견한 기분이다. 그래, 그때 내가 이 시집을 샀구나, 삭막하기만 했던 젊은 어느 날이었을 텐데.



오랜 시간을 건너 새로 읽는 시들은 썩 편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나의 어떤 감정도 건들이지 않았다. 슬픔도 평온함도 무너짐까지도. 이런 날도, 이런 시집도, 이런 생도 있는 것이다. 다 내 마음에 들 수는 없지 않겠나.

나는 아직 무사히 쓸쓸하고
내 쓸쓸함도 무사하다네 - P17

홀연히 너를 만나도 좋겠는데
무연하기만 해라, 우리는.
나는 콧노래를 부른다.
거울을 향해 걷는 듯
끊임없이 나인 듯한 것들이
마주 걸어와
나를 투과한다. - P52

햇빛이 오래 앉았다 간 자리
바람이 오래 만지작거린 하늘 - P60

어디로 갈까, 보고 싶은 사람도 없고
가고 싶은 데도 없다 -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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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연령 60세 사와무라 씨 댁, 오랜만에 여행을 가다 ㅣ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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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들의 나이대가 흥미롭다. 아버지는 70세, 어머니는 69세, 직장에 다니는 딸은 40세. 같이 산다. 부모는 딸에게 결혼을 하라고 더 이상 강요하지 않고 함께 살면서 서로를 챙긴다. 이제는 거북하지 않아 보이는 가족의 한 모습이다.

 

셋이서 여행을 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진 만화로 여겼는데, 여행 에피소드는 가끔 나온다. 노부부의 여행이야기와 딸의 홀로 여행 이야기. 생각만큼 쓸쓸하지 않고 도리어 아늑해 보이는 생활의 한 형태. 큰 듯 작은 듯 이렇게 바뀌어 가나 보다. 가족의 모습에 대해 자꾸 생각하게 된다.

 

코로나19가 기저질환이 있는 노인들에게는 치명적이라는 상황 이후로 우울한 말들을 보고 듣는다. 전세계가 고령 인구 문제로 고민하던 차에 한 가지 해결방법이 되고 있다는 것. 어떤 나라들에서는 일부러 적극적인 치료를 하지 않고 있다는 말까지. 장수가 더 이상 축복이 되지 못한다는 세상에서 마음 퍽 무거워지는 이야기들이다.

 

노인이 된 부모님과 결혼하지 않은 자녀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세상. 우리 현실에서도 낯설지 않은 모습이 곧 될 것이다.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도 쉽지 않고, 내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는 죽음을 두고 나이만 자꾸 먹는 것도 고단하고, 사이에서 부양할 의무만 늘어나는 듯한 기분에 시달리는 청춘도 고달프고. 살 만한 세상에 대한 전망이 필요한 시대다.

 

여행도 이제는 매력이 없어지고 말았다. (y에서 옮김2020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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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와 주목 ㅣ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 3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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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 소설이 아니지만 추리 소설이라고 해도 썩 틀린 말은 아닐 것 같은 구성이다. 도대체 어떤 마음일까를 궁리하지 않고서는 책장을 넘길 수 없는 소설이기에. 제목이 인상적이다. 짧은 시간 피었다 지는 장미나 천 년을 산다는 주목이나 같은 값의 시간을 가진다는 것. 그럴 것 같다. 저마다의 생은 저마다의 시간만큼 귀중할 것이니 짧고 길고는 문제가 아닐지도.

 

이 작가의 글은 재미로만 읽어 나가다가도 금방 내 자신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작품 속 인물 중 한 사람이 되기도 하고 그럴 만한 사람이 없으면 관찰자가 되어서라도 '나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할까? 혹은 어떻게 했던가?'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으니까. 시간적인 거리도 공간적인 거리도 아득히 멀기만 한 곳에서 남긴 이야기를 읽으며 골몰해 본다.

 

화자는 사고로 장애인이 된 휴 노리스다. 그의 주변 인물들을 관찰하고 때로 관여하면서 소설은 전개된다. 마음에 들지 않지만 교류하는 존 게이브리얼과 관심을 갖고 지켜 보는 이사벨라. 화자 노리스는 다른 사람들의 행동과 말을 통해 그들과 스스로를 끝없이 탐색한다. 우리 모두 그러면서 살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이해라는 문제가 온다. 이해하는가? 이해할 수 있는가? 이해했는가? 이해한다고 믿었던가? 그때는 이해했으나 지금은 이해가 안 되는가? 이해하는 일이라는 게 이토록 변덕스러운 노릇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서로를 믿고 지낼 수 있는 것일까? 다들 같은 수준이니까 그냥 그러고 사는 것일까? 이해했다가 안 했다가 믿었다가 안 믿었다가 고마웠다가 실망했다가 그렇게? 

 

글쎄, 이 작가의 작품을 거듭 읽으면서 해 본 생각인데 작가는 근본적으로 인간을 선한 존재로 여기지 않고 있는 듯하다. 아니면 선하지 않은, 악한 본성을 더 잘 그려 내었다고 말할 수 있으려나? 범죄에 관한 추리 소설이 주요 작품이다 보니 특별히 범인의 특성에 주목하고자 한 것을 이렇게 생각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번번이 인간의 나쁜 의도에 대한 뛰어난 서술을 읽다 보니 이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정치도 사랑도 이 작품에서는 헛되기만 하다. 헛된 일에 목숨을 거는 이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장미의 순간이나 주목의 순간만큼 내 생의 순간도 나 아닌 이의 순간도 똑같이 귀하고 의미 있다는 말, 깊이 새겨 본다. (y에서 옮김2019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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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은 딸이다 ㅣ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 2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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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김 없이 마음을 드러내 보이는 것도 능력의 하나일 것이다. 나는 남의 마음을 그려 내는 것보다 내 마음을 그려 내는 게 더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추측하는 것과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 둘다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그래도 추측하는 게 좀 덜 힘들 것 같다. 내 마음을 내가 지켜 보는 일, 제대로 한다면 이게 참 곤란하기도 하고 피곤하기도 하다.


작가가 보여 주는 여자의 마음, 이번 책은 엄마와 딸의 마음을 그려 내고 있다. 엄마는 엄마라서, 딸은 딸이라서, 친한 듯 친하지 않을 수도 있는 관계. 나는 이런 사정이 우리에게만 있는 게 아니라는 데 더 놀랐다. 이런 마음의 지도도 인간의 역사에서는 보편적인 모습이었구나, 우리나라나 영국이나 지금이나 옛날이나.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나 엄마와 딸의 관계나 참 묘하게도 신경이 쓰인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이 다는 아니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지만 가까운 가족끼리도 이렇게 엄청난 갈등을 품고 있을 수 있다니. 


질투라는 감정이 보다 근원적인 문제인 것일까. 내가 제일 잘나고 싶은 마음, 내가 제일 먼저이고 싶은 마음, 내가 제일 대접받고 싶은 마음 따위들. 그래서 질투에 사로잡히고 말면 다른 사람은 아무도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일까. 엄마든 딸이든, 혹은 세상의 그 누가 되든. 심지어 어떤 이는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을 질투하기도 하니까.  


사는 게 편하니까, 먹고 살 걱정이 없으니까, 이런 문제로 갈등을 겪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이 작가의 소설 속 인물들은 대체로 가진 쪽 사람들이라 경제적인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지 않는 상황으로 등장한다. 그러니 미묘한 심리 다툼이 가능한 것일 테다. 네가 날 어떻게 여기느냐, 네가 날 어떻게 대하느냐에 온 신경을 기울이면서 그에 맞춰 대응하려고 하니 자연히 힘겨루기가 되는 모양새다. 이 소설의 특징은 이걸 엄마와 딸 사이에 일어나는 감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고. 


나도 한번 생각해 본다. 나의 어머니와 나의 딸을.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 있는 내 처지를. 소설 속 상황과는 거리가 너무 멀어 그런가 공감대를 못 찾겠다. 아니면 먹고 사는 문제가 있어서 우리 사이를 방해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고. 그럼에도 이렇게 적나라하게 인간의 심성을 보여 주는 작가의 글에는 감탄하게 된다. 아무렴, 이럴 수도 있다는 것이다. (y에서 옮김2019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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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연령 60세 사와무라 씨 댁의 이런 하루 ㅣ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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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나날이 그리 대단하지도 벅차지도 않다는 것을, 오히려 그날이 그날같고 내일도 오늘같을 것임을. 그래서 늘 비일상적인 것을 꿈꾸게 되고 이벤트를 마련하려고 하는 것일 테다. 비슷하게 되풀이되는 삶이 마치 지루한 것이기라도 한 것처럼, 지루한 것을 견디는 일은 죄를 짓는 일이기라도 한 것처럼.


그럴 수도 있다. 지루하니까 새로운 무언가를 꿈꾸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늘 비슷비슷한 일상이 잘못된 것은 아닐 테다. 예상치 못한 사건이 생겼을 경우, 해결하기 힘든 어려운 일이 생겼을 경우 우리는 평온한 일상을 얼마나 그리워하게 되던가. 집을 떠나 돌아다니고 싶어하다가도 막상 떠나서는 집으로 일상으로 돌아오고 싶어한 마음은 얼마나 간절했던가.


평범함의 고마움을 안다. 특별하게 살고 싶지 않다고 기도라고 하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나이 드신 부모님과 나이 들어가는 딸이 함께 살아가는 집 이야기. 딸이 결혼적령기를 넘어 선 셈이니 부모로서는 걱정이 되기도 할 테지만, 여전히 결혼을 해야 하지 않느냐고 염려하기도 하지만, 오랜 시간 함께 해 온 가족간의 투닥거림과 토닥임이 정겹게 보이는 책이다. 아쉬운 대로 이렇게 함께 나이 들어 가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작가가 가진 기본 마음가짐이나 생각에 내가 공감을 많이 하는 것 같다. 편하게 볼 수 있어서 좋았다. (y에서 옮김2015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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