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스커레이드 호텔 ㅣ 매스커레이드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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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또는 당신이 갖고 있는 욕망은 무엇인가. 재미있는 물음이기도 하고 낯부끄러워지는 물음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의 욕망을 탐색하는 일에는 필연코 내 욕망과 만나야 할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추리소설이라고 하지만, 소재도 주제도 만만치 않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준다. 이렇게 나는 이 작가에게 빠져들고 있나 보다. 


시간을 집중시켜 보내기에 딱 적절한 소설이다. 몇 차례 이 작가의 작품을 읽어 본 바로는 앞으로도 실망을 시킬 것 같지는 않다. 이제라도 이 소설가를 알게 된 게 좋고, 아직도 읽을 책이 많이 남아 있어서 그게 더 좋다. 적어도 올해는 심심하지 않을 수 있을 테니까. 


호텔을 배경으로 일어나지 않은 살인을 예방하기 위하여 제 몫을 다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고 있자니, 어쩐지 우리 현실과는 거리감이 느껴진다. 일본은, 일본 사람들은 실제로도 이 소설 속 사람들처럼 살고 있는 것일까. 호텔리어도 형사도 소설 속 인물들만큼 사명감과 책임감으로 일을 수행하고 있을까. 소설을 소설로 끝내지 못하고,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떨까를 궁리하다 보니 좀 서글퍼졌다. 어지간히 못 믿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는 것이, 총체적 불신이라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한낱 소설로 확인하게 되다니. 


그만큼 인물들이 존경스러울 정도로 그려져 있다는 뜻이다. 호텔리어 나오미도 형사 닛타도 실제 인물이라면 대단히 매력적인 사람들이다. 한번 보기나 했으면 싶을 정도로 철저한 직업 정신을 갖고 있으며, 그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들. 내용은 다를지라도 나도 내 직업에서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순진한 각오까지 갖도록 해 주는 사람들이라고 할 만큼. 작가가 그만큼 매력적인 사람을 창조해낼 수 있다는 뜻이겠지.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삶의 교훈을 얻는다는 게 약간 지나친 호감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그러고 싶다. 조금 더 기운을 내서 열심히 살고 싶다. 내가 있는 이 자리에서 조금 더 열심히. (y에서 옮김2014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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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게트 : 근 손실은 곧 빵 손실이니까 ㅣ 띵 시리즈 24
정연주 지음 / 세미콜론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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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게트를 먹어 봐야 하나 어쩌나, 고민해 보게 한 글이니까 내 취향이다. 읽는 동안에는 먹고 싶은 생각이 막 들었는데, 다 읽고 나니 스르륵 사라진다. 그 길쭉하고 큰 빵을 내가 어떻게 먹지? 샌드위치도 딱히 좋아하지 않고 잘라서 구워 먹는다고 해도 나로서는 한계가 있을 텐데, 그러면 시간이 흐르고 금방 마를 텐데, 다시 촉촉하게 해 먹는 방법 따위 시도하고 싶지도 않은데, 아, 귀찮은 빵이겠구나, 바게트. 


글은 무척 맛있었으나 내 현실과는 먼 빵이다. 그러면 이렇게 읽고 배부른 느낌만으로 충분하겠다. 프랑스 요리 전문가라는 작가의 글힘에 빠져들었던 시간만으로도. 맛있어 보인다고 다 먹을 수도 없겠고, 막상 먹는 일에는 의욕이 별로 없고, 여러 모로 서운한 체질이다. 


이 책 시리즈를 알게 된 것만도 다행이다. 맛있게 먹는 상상, 배부른 상상, 입맛 생생한 상상, 바게트를 종이봉투에 담아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는 상상, 싱싱한 야채를 얹어 소스를 뿌리고 먹는 상상, 아, 흐뭇하다. 작가가 나를 충분하게 도와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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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거기는 작고 나의 여기는 커서 우리들은 헤어지는 중입니다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536
김민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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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섭하다. 첫마디가 이 말이라 내가 더 섭섭하다. 좋았다고, 마음에 들었다고, 마음을 붙잡는 글귀와 표현이 많았다고 쓸 수 있다면 내가 더 좋으련만. 세상의 모든 글을, 세상의 모든 시를, 내가 다 좋아할 수는 없는 거다, 그런 것이다, 라고 쓰고 나니 섭섭한 마음이 줄어드는 것도 같다.

 

이만큼 섭섭했으면 리뷰를 안 쓰는 것이 도리일 수도 있겠는데, 그건 또 아니다. 뭐라고 적어 놓아야겠다는 생각은 있다. 어쩌면 이 다음에 내 정서가 더 넓어져 지금 받아들이지 못한 것을 그때는 너그럽게 받아안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아예 저버리고 싶지는 않은 시집, 아예 모른 채 밀치고 싶지는 않은 시인. 그래서 내게 지금 아니라고 여기는 이유 몇 가지는 남겨 두기로 한다.

 

먼저, 긴 호흡. 이걸 읽어내는 게 어렵고 좀 귀찮다. 내 호흡의 길이가 짧은 탓이 주된 이유이겠지만 참고 들여다보게 되지 않는다. 다음은, 다소 거칠게 다룬 시어 몇몇. 나는 아무래도 곱고 아름다운 시어에 자주 반하게 된다. 시든 소설이든, 꼭 그 맥락에서 그 말이 쓰여야 한다고 해도, 굳이 그러해야 한다면 내 쪽에서 안 읽고 안 보는 것으로. 

 

그래도 좋은 건 시인이 이 시집에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뿍 담아 놓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의 방식대로 표현을 한 것이라 내가 다 못 느끼는 것일 뿐, 사람에 대한, 사람을 향한 마음만큼은 알아보겠다. 그래서 내가 기대를 놓지 못하는 것이기도 하고. 내 읽기의 폭이 더 넓어지기를 기다리며. (y에서 옮김2020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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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독스 13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 / 재인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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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나 전개 과정은 그다지 신선한 게 아니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사람들이 모두 사라져 버리고 나만 혹은 나를 포함한 몇몇만 남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가정해 보는 일. 소설은 이 내용을 담고 있다. SF라는 게 약간 의아하기는 했지만. 이전에 지구에 핵폭발이 있고 난 후 모든 인간이 사라지고 난 다음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한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때의 장면들이나 '나는 전설이다', '월 E' 같은 비슷한 배경을 가진 영화 장면이 소설과 함께 떠오르면서 상상하는 데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물론 물리학적인 장치로 13초의 시간 개념을 설정하고는 있었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얼마나 가능성이 있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가정해 보았다가도 이후의 대책이 서지 않아 그만 상상을 중단하고 마는 그런 상황이기는 하다. 이성을 발휘하려고 해도 본능이 앞서는 무서운 상황, 당장 먹어야만 살아 남을 수 있으니, 내가 살아야만 생명을 논할 수 있으니 그 앞에서라면 지금의 선악 개념과 달라지기도 할 테지. 상상 안에서는 생각할 거리가 꽤 담겨 있는 내용이다.


인류의 역사에 대해 길고 긴 통찰력을 가져보게 한다. 어떻게 흘러 왔을까, 어떻게 이어 왔을까, 내게 주어진 사명은 무엇일까, 내가 이 생에서 완수해야 할 몫은 무엇일까, 나는 그걸 알아내고 해낼 수 있을까......  살짝 긴장하게도 한다.


흥미 위주의 소설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한 가지 이상의 생각할 거리를 전해 주니 나로서는 마음에 드는 독서를 한 셈이다. 그러고 보면 내 기억에 남아 있지 않아서 모르는 거지, 나도 목숨이 왔다 갔다 했던 과거의 어느 순간에 다른 차원에 다녀온 것은 아니었을까. (y에서 옮김2014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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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이름은
조남주 지음 / 다산책방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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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짧고 가벼운 형식에 무거운 주제를 담아 놓은 글들이다. 주제가 보통 무거운 것들이 아니어서 일부러 가볍게 보이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도록 했다. 82년생 김지영처럼. 작가의 의도가 어떠하였든 마음은 확실하게 무거워진다. 더 이상 물러서지 말고 마주해서 부딪혀 나가야 한다는 것을 무려 28명의 이름으로 격려하고 있음을 알았으니.

 

이 작가의 책은 세 번째다. 앞서 읽은 두 권은 <82년생 김지영>과 <고마네치를 위하여>였다. 이 책은 <82년생 김지영>을 잇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고마네치를 위하여>를 기대했는데. 소설과 현실 사이의 내 거리 감각이 작가와 많이 다른 것 같다는 느낌이다. 소설 같은 현실이고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현실이라고는 해도, 나는 아직 소설을 소설로 읽고 싶다고나 할까. 

 

그녀들의 이름, 부르기에 당연히 무거웠다. 무거운 이름들만 골라 놓은 건지, 이제는 온통 무거워져 버린 건지, 쓰리고 따갑고 부끄럽고 불편하고 아프고 화나고 속터지는 상황에 처한 이들의 이름들. 행복이라는 느낌은 주변 사람들 중 단 한 사람만이라도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면 얻을 수 없는 것이라고 믿는다. 아픔 또한 마찬가지다. 한 사람이라도 아픈 상황이라면 아프지 않은 사람들조차 마음 편할 수가 없다. 이 책은 그래서 중요하고 또 무겁다. (y에서 옮김2019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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