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착각 - 허수경 유고 산문
허수경 지음 / 난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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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의 정의를 내리는 것부터 시작되는 글이다. 착각해서, 좋을 때도 있고 그렇지 못할 때도 있다. 시인은 원하는 만큼 착각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일까. 그 착각이 아름다움을 입고 시로 탄생하는 것일까. 모두 8편의 글, 한 편 한 편은 짧지 않은데 책은 짧게만 느껴진다. 아쉬워서, 더 이상 읽을 수 없다는 마음에, 더 짧고 얕게 느껴지는 분량인지도 모르겠다.

읽기는 좋은데 마냥 쉽게 읽혀지는 글은 아니다. 산문이라고는 하지만 시가 곳곳에 스며 들어 있다. 둘을 구별하는 것은 의미가 없겠으나 구별할 줄 모르면 글을 읽는 재미와 보람이 확 줄어들 것 같다. 모호한 듯, 착각하며 읽어도 좋은, 나는 자꾸만 시인이 권하는 착각의 길로 들어선다. 이런 착각이라면, 이렇게 따뜻하고 이렇게 애틋하고 이렇게 그리운 착각이라면 오래오래 머물러 있고 싶다.

작가가 시인이니 다른 시인의 시도 많이 읽었겠지. 이 작가의 글에서 인용되고 있는 시들은, 평소 내가 즐겨 읽는 취향의 글은 아닌 것으로 보이는데, 이 책이 아니었더라면 이 작가가 가져온 글이 아니었더라면 유심히 볼 것 같지는 않은 글들인데, 나는 아껴아껴 조목조목 읽었다. 작가는 어떤 마음으로 이런 시들을 찾아내어 따로 적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추측을 해 보면서. 이렇게 이중으로 읽는 방법도 경우에 따라서는 좋은 독서가 된다. 내가 좀더 수준이 높아진 듯한 착각을 할 수 있으니.

우리나라를 떠나 독일에서 살다가 독일에서 떠난 시인이다. 독일에 있으면서도 우리나라에 대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 여럿이다. 떠나서 살 수밖에 없었을 작가만의 인연이 있었을 게다. 궁금증을 해결할 방법은 이제 없고 남아 있는 글들로 그녀가 남긴 서늘한 아름다움만을 느낄 수밖에.

마음의 안에서 밖으로 빈 바람이 지나갈 때 읽어 보면 또 좋아지리라 싶다. (y에서 옮김2021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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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젊은 날의 숲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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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더 그의 글이 좋아진다. 더 좋아질 것 같다. 그래서 좋다.

내가 어렸다면, 많이 어렸다면, 그래서 글을 잘 써 보겠다고 연습할 시간이 넉넉할 만큼 어렸다면, 어쩌면 작가가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을 만큼 어렸다면, 그런 때에 이 책을 보고 이 작가의 글을 읽었다면, 나는 그의 글을 천천히 옮겨 적었으리라. 스무 살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소설가는 소설을 쓸 수 있을 만큼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경험을 얻어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 왔다. 둘 중에서도 더 좋은 것은 직접 경험일 것이고, 간접 경험은 아무래도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간접 경험은 곧 글을 쓰는 사람의 상상력과 창의력의 크기와 깊이를 수반해야 하는 것일 테니, 기억력보다 더 큰 힘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나는 어느 부분 기억력보다 상상력을 더 무게 있게 여기나 보다. 은연 중에 그렇게 여겨 왔던 것도 같다.)

이 작가는 내가 생각하는 상상력의 힘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다. 겪지도 않았을 텐데(이건 순전히 나의 짐작이지만, 실제로 겪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내가 믿고 싶은 대로 짐작할 것이니까) 어떻게 이렇게 그려낼 수 있는지. 마치 작가는 자신의 눈 안으로 들어오는 모든 풍경을 이야기로 바꾸어 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산을 보면 산 속에서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숲을 보면 숲 속에서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지나가는 사람을 봐도 그 사람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가만히 서 있는 나무를 봐도 그 나무에 담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사람, 이 작가.

쓸쓸했고 하염없이 잠겨들었다. 이 계절에 이 글을 읽어서 좋았고, 좋은 만큼 서글펐다. 세상에는 정열적으로, 하루하루를 아낌없이 살아가는 사람들만의 세상은 아닌 것이라는 것을 보는 일은 즐겁지는 않았으나 내게 위로가 되는 것이었다. 어쩌면 이렇게 하루하루를 견디는 심정으로, 그저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내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많을지도 모를 일이다. 방송이나 책으로 마치 오늘만 살아도 좋을 만큼 열심히 살고 있는 사람들만의 이야기를 접하다가 이 책 속의 인물들을 만나고 있자니, 그런 기분이 들었다. 어쩔 수 없이 살아가야 하는 생.

열심히 살고 싶어지게 만든다기보다는 그저 지금 살아있다는 것을 느껴보라고 하는 것 같은 소설. 살아있으니 살라고 하는 것 같은 소설. 살기 힘들다고 굳이 죽어보겠다는 심정 따위는 건드리지 말고, 남보란 듯이 화려하고 열정적으로 보람 있게 살아보라는 것도 아니고, 계절이 지나가는 것처럼 바람이 지나가는 것처럼 나무가 자라는 것처럼 꽃이 피었다가 지는 것처럼 그렇게... 내 젊은 날의 어느 한때가 그러했던 것처럼... (y에서 옮김2010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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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인류 - 메타버스 시대, 게임 지능을 장착하라
김상균 지음 / 몽스북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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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 시대의 특성을 알아보기 위해 찾다가 만난 책이다. 제목만으로도 작가가 말하는 바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아들을 수 있었고 내용을 살펴보면서 구체적으로 확인했다. 그렇지, 이 방향으로 가는 게 맞는 일인 거지, 미처 모르는 이들이 옛 가치관에 사로잡혀 막무가내로 부인하고 있는 것일 테지, 마치 내가 어렸을 때는 만화가 아이들을 망친다고 했던 것처럼. 그때 만화를 보는 어른들의 시각이 좀더 빨리 열렸더라면 우리의 애니메이션 문화도 지금보다 훨씬 나아졌을 텐데. 그러니 이 책을 보고 게임에 대한 마음과 태도를 바꿀 어른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는데 작가의 바람만큼이나 내 기대도 간절하다.

책 안에 게임 인류 레벨 테스트가 있다. 총 5단계로 나뉘어져 있다. 15개의 문항을 보고 해당하는 개수를 합해서 레벨을 정하는데 나는 10개의 문항에 Yes라고 답했다. 레벨 4, 게임을 이해하는 호모 사피엔스에 해당된단다. 5단계의 호모 루덴스가 되려면 3개의 항목을 Yes로 바꿀 수 있어야 한다는데 두고 볼 일이다. 지금으로도 꽤 만족하고 있는 상태라서.

이제 게임은 단순한 놀이가 아닌 시대다. 인터넷 게임 하나를 조금만 들여다보아도 그 안에 인간이 쌓아온 문화와 기술이 종합적으로 담겨 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게다가 이게 시장과 직업으로도 이어져 있다. 따라서 게임이라는 것을 완전히 모른 채로 살아가는 일은 자연인으로 살겠다는 말과도 같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이 또한 삶의 선택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내가 게임의 세상을 받아들이느냐 받아들이지 않느냐 하는 것. 둘 중 받아들이는 쪽을 택하겠다고 한다면 그 순간부터 공부를 해야 하겠지. 게임을 공부하는 게 곧 미래를 공부하는 하나의 길이 될 것이므로.

책은 잘 읽히고 흥미롭다. 알면 알수록 나는 끄덕이고 있었다. 벗어날 수 없다면 기꺼이 익히겠다는 내 마음가짐이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몇 개의 게임을 더 편하고 흥미진진하게 느끼면서 할 수 있겠다. (y에서 옮김2021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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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어서, 그리운 것들 오롯하여라
박미경 지음 / 봄날의책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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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책 편집인에 관한 기사를 보고 검색해서 빌려 본 책이다. 에세이로 분류되어 있는데 나는 여행 카테고리로 넣는다. 책을 읽는 내내 책 속 모든 섬들을 여행하는 기분이었으로. 고단했고 팍팍했고 그래도 더 많이 아늑하고 흐뭇한 여정이었으므로.

사람이 태어나 자라기 시작하는 곳은 태어나는 운명만큼이나 운명적인 조건이 아닐까 싶다. 어떤 부모에게서 태어나는가, 그리고 그 부모가 어디에 살고 있는가 하는 문제. 아니, 둘은 따로 나뉘어지는 게 아니라 서로 이어져 있는 것인가? 내가 지금의 나로 살고 있는 건 내 부모의 그런그런 배경과 부모님이 선택해서 가정을 꾸린 공간의 영향이 내 삶의 절대적인 조건이 된 것처럼.

섬에서 태어나 섬에서 자라고 섬에서 나이들어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때로는 결혼으로 섬 생활을 시작하고 이후 죽 섬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섬이라는 배경이 누군가에게는 좋게 받아들여졌을 수도 또 그렇지 않을 수도 있었겠지만 어쨌든 섬을 지키고 사는 이들의 이야기. 남들은 쉽게쉽게 버리고 떠나는 것들을 오롯이 품어 안고 사는 이들의 마음은 얼마나 애틋한지. 살아본 적도 없으면서, 아니 살아본 적이 없어서 더더욱 나는 이런 사람들이 대단하고 소중하게만 느껴진다. 자신의 터전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는 뜻일 것이니.

섬이라고 몇몇 유명한 곳은 다녀와 본 적이 있다. 얕은 구경의 목적이라 기억에 남은 게 없다. 이 책의 내용은 섬을 구경한 게 아니다. 한 편 한 편 짧은 분량이지만 작가의 짧은 삶과 섬사람의 긴 생이 담겨 있다. 이런 인터뷰는 마음이 통하지 않는 이들 사이에서는 이루어지지 않으리라고 생각된다. 서로의 삶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나오지 않을 이야기들이므로.

섬에 사는 사람들도 나날이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충분히 짐작되는 바다. 육지든 섬이든 젊은이들이 살지 않는 곳은 어디나 그러한 형편이니. 많은 사람들이 편리하게 살 수 있도록 도시를 개발하고 유지하는 것도 중요한 정책이겠지만 적은 수의 사람들이 불편을 덜 느끼며 살 수 있도록 지방을 지켜주는 정책도 신경을 써 주었으면 좋으련만. 책은 끝내 이 씁쓸한 맛을 남겨 놓고 떠난다. (y에서 옮김2021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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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볼타 사건의 진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4
에두아르도 멘도사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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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과연 드러날까? 저절로 드러나는 경우도 있을까? 기어코 밝혀내야만 하는 것이 진실일까? 모르는 채로 숨겨진 채로 묻혀 흐르는 진실이 세상에는 더 많은 것이 아닐까? 마치 그게 세상사의 흔한 이치이기나 한 것처럼. 어쩌면 그래서 소설에 더 기대는 것은 아닐지. 현실에서는 너무도 멀고 아득하기만 한 진실의 모습을 소설 속에서나마 짧은 시간 안에 분명하게 마주하는 게 고맙고 안심이 되어서.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때의 스페인 바르셀로나가 배경이다. 인물과 사건들과 세세한 소설적 요소들이 내 취향이 전혀 아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계속 읽힌다. 마음에 안 드는 장면들을 이렇게 계속 보고 있다니, 나는 읽는 나에게 놀라고 작가의 솜씨에 놀란다. 구성 덕분일까, 인물들에 대한 동정심을 느낀 것일까, 진실이 어떤 형태로 드러날 것인지 그게 궁금했던 것일까, 몽땅이었을까.


바르셀로나도 그냥 그런 도시였구나, 스페인도 그냥 그런 나라였구나, 전쟁을 이용하여 무기를 팔면서 부자가 되는 사람은 늘 그렇게 있었구나, 사랑은 그 안에서도 끊임없이 피어나는구나, 찌질한 사랑이든 숭고한 사랑이든 이기적인 사랑이든 상투적인 사랑이든. 하찮은 생은 있을 수 있어도 하찮은 사랑은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구나. 아니다, 하찮은 생, 하찮은 사람은 없겠다, 사랑을 할 줄 알기만 하다면.


주요 화자이자 주인공인 미란다라는 인물이 예사롭지 않았다. 위대한 개츠비의 서술자인 '닉'이 잠깐 떠오르기는 했지만. 미란다는 닉보다는 훨씬 중심이 되는 인물로 여겨졌다. 마지막에는 그의 길고도 고난스러웠던 생에 응원하는 마음마저 들었으니 이런 것이 인간애인가 싶을 정도였다. 잘 버텨 주어서 고마웠소, 같은.   


작가의 이름과 출판사에 대한 신뢰를 확인한다. 이것은 이것대로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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