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자의 아침 문학과지성 시인선 437
김소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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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읽는 마음이 평온하지 않다. 시가 불편한 것인지 시를 읽는 시절이 불편한 것인지 내가 부당한 불편을 견디지 못하는 것인지 도무지 가다듬을 수 없는 날들의 연속이다. 이 신랄한 봄에 어쩌자고 불은 자꾸 일어나는지. 

10년도 더 전에 나온 시집이다. 이번에 기회가 닿아 작가 이름을 알았고 작가의 오래 전 글을 찾아 읽는다. 글은 울렸다가 무너졌다가 찔렀다가 막히는 슬픔을 던진다. 받고 싶지 않으나 나는 이미 받아 안고 있다. 시는 친절하지 않고 작가의 호흡은 따스하지 않고 모처럼 불행 안에 쭈그리고 앉아서 시를 읽는다. 시를 읽을 때의 불행을 나는 좀 사랑하는 편이다.

불행도 전염이 되는가. 불행이 늘어나면 나누어져서 줄어드는가, 아니면 더 커져서 모두에게 무거워지는가. 시인은 시를 읽는 이의 불행을 거둬 들이고 싶었을까, 나눠서 지우고 싶었을까. 어떻게 해 봐도 사라지지 않을 것들이라 퉁명스러워지기만 한다. 시간도 쓰다듬어 주지 못할 아침의 불행이여. (y에서 옮김20250324)

모두가 천만다행으로 불행해질 때까지 잘 살아보자던 맹세가 흙마당에서 만개해요. 사월의 마지막 날은 한나절이 덤으로 주어진 괴상한 날이에요. 모두가 공평무사하게 불행해질 때까지 어떻게든 날아보자던 나비들이 날개를 접고 고요히 죽음을 기다리는 봄날이에요. - P11

같은 장소에 다시 찾아왔지만

같은 시간에 다시 찾아가는 방법은 알지 못했다 - P19

나는 소식이 필요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소식 - P62

열어둔다

시간에 조금씩 주름이 잡힌다

시간이 조금씩 허점을 다듬는다 -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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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강물처럼
셸리 리드 지음, 김보람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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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개울물에서 시냇물로 시냇물에서 강물로 강물에서 바다에 이르기까지, 우리네 삶도 과연 이러할까? 글쎄, 확신이 안 선다. 누구는 그렇게 흐를 테지만, 강물처럼 흘러서 바다에 닿겠지만, 바다에서 다시 영광스럽게 되돌아오기도 하겠지만 누구는 흐르지 못할 텐데, 강물이 되기는커녕 물 속 바위에 막혀서 오도가도 못하기도 할 텐데, 글을 읽는 내내 답답했다. 아름다운 풍경이 강조될수록 그 안에 있는 사람의 모습은 더 하찮아 보였다.


17살의 소녀 화자, 빅토리아. 어려서 엄마와 오빠와 이모를 잃고 아버지와 남동생과 이모부와 살면서 집안 살림을 맡아야 했던 빅토리아. 여성으로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오로지 혼자 겪으면서 자라야 했던 빅토리아. 강물처럼 살겠다는 윌을 만나 윌에게 빠져들면서 빅토리아는 자신이 어떤 강물로 들어가고 있다고 여겼을까? 그 강물이 고맙기는 했을까?


소설은 내가 예상하는 대로 흐르지 않았다. 빅토리아도 내가 예상하는 방향으로 살아주지 않았다. 작가가 인물을 다루는 방식이 내가 기대하는 바와 어긋나면서 조금씩 실망을 느꼈다. 배경과 주제를 더 돋보이게 하려는 것인가? 배경이 되는 시대를 묘사하는 솜씨에는 감탄을 했지만 각 인물들의 행동과 의도가 단순하게 처리되고 있는 것만 같아 많이 아쉬웠다. 그렇게 간단하게? 흐르는 강물에 맡겨 버리는 건가?


윌을 처리하는 방식, 빅토리아가 아이를 낳은 후의 상황을 서술하는 대목, 빅토리아와 아버지와 세스가 만나고 헤어지는 장면들, 빅토리아와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 등이 참 명료하게 해결되고 있었다. 복잡하지 않아서 실망할 수도 있구나, 소설이구나, 소설이니 더 복잡해도 좋았을 텐데, 삶도 이렇게 단순해질 수 있는 것일까? 강물에 삶을 맡길 수만 있다면?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두는 태도로?


아쉬워서 투덜거려 본다. 윌이 그렇게나 빨리 사라지지만 않았어도 빅토리아가 아이와 그렇게나 빨리 헤어지지만 않았어도 작가에게 이렇게나 섭섭하지는 않았을 테니. 올 여름 가뭄이 심해서 강에 흐르는 물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삶은 참 예측하기 힘든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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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한잔 인생 한입 1
라즈웰 호소키 지음, 김동욱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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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하여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발견한 만화다. 나오기 시작한 지는 꽤 되었는데 내게 이제야 발견된 책. 비슷한 내용이나 구성을 취한 작품들을 종종 봐 와서 계속 볼까 어쩔까 궁리하면서 책장을 넘겼다. 그리고 정했다. 하나씩 사 모으면서 봐야지. 이런 수집, 내 오랜 즐거움으로 여기면서.  


내용이 만화로만 구성되어 있는 건 아니다. 만화 에피소드를 끝내면 글이 나온다. 이 글만으로도 산문집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충실하다. 처음에는 그림을 보다가 글을 읽으려니 뭔가 성가신 기분이었는데 자꾸만 되풀이해서 읽으니 점차 괜찮아졌다. 가벼운 술 한 잔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진득한 무게감을 느꼈다고나 할까. 그동안 '와카코의 술' 만화로 달래던 술맛을 이 만화책으로도 확장시킬 수 있을 것 같다. 눈으로 봐도 충분히 취할 수 있는 술맛, 근사하도다. 


한 가지 일이든 대상이든 오래 두고 취하고 탐구하고 아끼면서 돌보는 일의 가치를 잘 느끼게 되는 시절이다. 술을 잘 마시는 게 이런 재주와 능력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줄 예전에는 몰랐던 일인데. 한 가지가 아니라 뭐든지 다 잘해야만 되는 줄 알고 뛰어다니던 젊은 시절이었는데. 그러다보니 하나도 제대로 건진 게 없다 싶어 이제서야 슬슬 아쉬워지는데. 그 가운데 하나만이라도 좀더 깊이깊이 두드려볼 걸 하는데. 뭘, 이렇게 한탄하지만 말고 지금부터라도 하나씩 해 보는 거지, 무엇이 되더라도. 아닌 걸 찾았다는 것만 해도 또다른 발견이고. 


먹는 것, 마시는 것은 나로서는 못할 일이로다. 그냥 지금처럼 계속 그림으로 글로 먹고 또 마셔 주겠다. 영영 소화 부담 없는. (y에서 옮김2022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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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마리 여기 있다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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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 작가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고 헛된 독서가 될 것 같지는 않았다. 내 가벼운 기대는 점점 어긋났다. 브릿마리는 조금씩 내 쪽으로 가까워지고 있었고 사람 사는 동네가 왜 다 이 모양인지 한탄했다가 사람 사는 동네라면 모름지기 이러해야지로 바뀌었다. 다 읽고 난 마음은 썩 흐뭇하다. 새미처럼 안타까운 사정을 겪어야 하기는 했지만. 

브릿마리는 할머니다. 까다로운 할머니. 까다로운 데에는 까다로운 이유가 있다는 말을 알겠다. 어쩌면 까다로운 사람일수록 원칙에 철저한 것일지도 모른다. 서로 지키자고 정했으면서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말을 쉽게 용납하지 않는 성격을 가진 사람으로서. 나는 정녕 까다로운 사람이 되고 싶은데 그러지를 못하니 이것도 딱한 노릇이다. 속으로만 끓고 마니까. 그래서 브릿마리가 더욱 존경스러워진다. 이런 사람, 존경을 받아야 된다. 현실이 그러하지 못해서 소설에 더 빠지는 것인가. 나는 또 소설에서 구원을 얻는다.

축구. 축구를 하는 어린이들이 나온다. 쇠락해진 마을 보르그에는 축구하는 어린이들과 코치가 된 브릿마리가 있다.  전 세계의 작은 시골 마을들이 부러워할 만한 사람들이 브로그에 있다. 자칫 사라질 것만 같았던 마을이 새로 살아날 수 있는 계기를 알 것 같다. 까다로운 사람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면 마을도 살아날 수 있겠다는 희망이 보인다. 작가의 희망, 독자의 희망, 인류의 희망, 지구의 희망. 글쎄, 맥이 빠지기는 한다.

긴 시간을 들여서 천천히 읽었다. 슬렁슬렁 넘길 수가 없었다. 작고 사소한 행동이나 말이 가엾은 어린이를 살리고 주변 어른들을 살리는 장면을 계속 보다 보니 속도가 나지 않았다. 브릿마리 할머니도 자꾸만 마음에 들어가고 있었고. 청소와 정리정돈을 잘하는 사람은 정말 괜찮은 사람이란 말이지.

밉상인 켄트. 브릿마리의 남편. 브릿마리가 켄트의 방문을 노크하지 않았던 게 얼마나 다행스럽던지. 나이가 들어서도 철이 안 들고 어리석은 남자가 정말 싫다. 우리나라 남의 나라 할 것 없이.  (y에서 옮김2025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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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진 이름들 - 제3회 박상륭상 수상작
안윤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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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수 있을까, 과연? 남고 싶을까, 진정으로? 우리는 각자 누군가로부터 태어나서 자라고 살다가 죽는다. 남고 싶나? 남기 위해 애쓰나? 소설 제목은 이 질문을 계속 떠올리게 한다. 나는 좀 지긋지긋해진다.


이 작가의 서술 방식이 내 취향이라서 읽는 내내 흐뭇했다. 문장 안에 머물러 있고 싶고 문장 사이사이에 떠돌고 싶고 문장이 끝날 때마다 아쉬워진다. 금방 다음 문장이 다가와 있음에도 내가 놓친 것은 없는지 돌아보게 된다. 이 책을 만나서 이 여름이 전혀 나쁘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가볍게 반하고 깊이 빠진다.


소설은 두 겹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글을 쓰는 '윤'이 키르기스스탄의 비슈케크에 다녀온 후 그곳에서 온 편지와 공책을 받는다. 공책 안에는 나지라의 글이 있다. 간호사로 간병인으로 살았던 나지라의 삶, 그리고 남은 이야기. 윤은 나지라의 글을 전한다. 남아 있는 이름들과 함께. 이름 하나하나에 나는 질문을 보탠다. 내 이름까지 얹어서.


사람들은 한스러울 때 말하곤 한다.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글로 쓰면 소설책 몇 권이 될 것이라고. 쓰지 못해서 남기지 못하는가. 남기지 못해서 사라지는가. 사라져서 잊는가. 글쎄, 우리 안에는 각자의 삶이, 서로의 삶이, 오래 전 이야기와 지금의 이야기가 함께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알면서 자주 모르는 척 하는 건 아닐까. 


남의 삶이, 남의 이야기가, 남의 것으로만 여겨지지 않는 때가 생긴다. 내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내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사람과 삶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슬플 때는 더 절실해진다. 어떻게 살아온 생인데, 어떻게 살아가라고? 나지라는 글로 자신의 생을 전하고 윤은 글로 사람이 가진 몫을 확인시켜 주며 작가는 글로 세상을 채운다. 나는 이 소설을 읽는 것으로 순간의 사명을 다하였다. 


다음 작품을 기다리고 있어야지.

사람은 일평생 겨울이나 사진을 통해서만 자기 얼굴을 볼 수 있으니 영영 제 얼굴을 제대로 한번 바라보지 못한 채로 세상을 등지는 것이다. 인간이 자기 자신을 제대로 볼 수 있기는 한 걸까. -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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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10 21: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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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11 10: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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