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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진 이름들 - 제3회 박상륭상 수상작
안윤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1월
평점 :
남을 수 있을까, 과연? 남고 싶을까, 진정으로? 우리는 각자 누군가로부터 태어나서 자라고 살다가 죽는다. 남고 싶나? 남기 위해 애쓰나? 소설 제목은 이 질문을 계속 떠올리게 한다. 나는 좀 지긋지긋해진다.
이 작가의 서술 방식이 내 취향이라서 읽는 내내 흐뭇했다. 문장 안에 머물러 있고 싶고 문장 사이사이에 떠돌고 싶고 문장이 끝날 때마다 아쉬워진다. 금방 다음 문장이 다가와 있음에도 내가 놓친 것은 없는지 돌아보게 된다. 이 책을 만나서 이 여름이 전혀 나쁘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가볍게 반하고 깊이 빠진다.
소설은 두 겹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글을 쓰는 '윤'이 키르기스스탄의 비슈케크에 다녀온 후 그곳에서 온 편지와 공책을 받는다. 공책 안에는 나지라의 글이 있다. 간호사로 간병인으로 살았던 나지라의 삶, 그리고 남은 이야기. 윤은 나지라의 글을 전한다. 남아 있는 이름들과 함께. 이름 하나하나에 나는 질문을 보탠다. 내 이름까지 얹어서.
사람들은 한스러울 때 말하곤 한다.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글로 쓰면 소설책 몇 권이 될 것이라고. 쓰지 못해서 남기지 못하는가. 남기지 못해서 사라지는가. 사라져서 잊는가. 글쎄, 우리 안에는 각자의 삶이, 서로의 삶이, 오래 전 이야기와 지금의 이야기가 함께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알면서 자주 모르는 척 하는 건 아닐까.
남의 삶이, 남의 이야기가, 남의 것으로만 여겨지지 않는 때가 생긴다. 내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내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사람과 삶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슬플 때는 더 절실해진다. 어떻게 살아온 생인데, 어떻게 살아가라고? 나지라는 글로 자신의 생을 전하고 윤은 글로 사람이 가진 몫을 확인시켜 주며 작가는 글로 세상을 채운다. 나는 이 소설을 읽는 것으로 순간의 사명을 다하였다.
다음 작품을 기다리고 있어야지.
사람은 일평생 겨울이나 사진을 통해서만 자기 얼굴을 볼 수 있으니 영영 제 얼굴을 제대로 한번 바라보지 못한 채로 세상을 등지는 것이다. 인간이 자기 자신을 제대로 볼 수 있기는 한 걸까. -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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