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클리어 2 옥스퍼드 시간 여행 시리즈
코니 윌리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아작 / 2019년 2월
평점 :
품절


이 시리즈의 마지막 책이다. 이제까지 다소 가벼운 기분으로, 낄낄대기도 하면서, 투덜대기도 했던 순간들이 살짝 낯붉어질 만큼 감동을 던져 왔다. 이렇게 하려고, 이렇게 맺으려고 그렇게 빙글빙글 소설 속 인물들과 나를 돌리고 또 돌렸던 것이구나. 헤매라고, 헷갈리라고, 정신없으라고, 마치 일부러 그러는 것처럼, 복잡하고 또 복잡하게 만들어 놓았던 이유가.  

 

2060년쯤 되어 시간여행을 하게 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이제 문제가 아니다. 시간여행을 해서 과거로 갈 수 있느냐 없느냐도 문제가 못된다. 그 일을 왜 해 보고 싶어 하는가의 동기를 새삼 살펴봐야 할 때다. 과거로 간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무얼 하러 가고 싶어하는 건지, 가서 바꾸고 싶은 고리라도 있다는 것인지. 그게, 과거에 대한 그 집착이 현재의 내 삶과는 어떻게 이어져 있는 것인지. 그리하여 총체적으로 헤아려 볼 일이다. 

 

소설은 이모저모 생각할 거리를 많이 내놓고 있다. 개인의 운명에서부터 국가 더 나아가서는 인류의 미래에 이르기까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아주 사소한 일 하나, 사소한 만남 하나가 내 생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와 역사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을 소설을 읽는 내내 확인하게 된다. 가끔 설레고 가끔 두려우면서도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에 내가 있다는 게 그저 놀랍고 신기하고 고맙기 그지없기도 하고.

 

이 소설의 시간여행처럼, 내가 만약 저 먼 미래에서 지금 이 시대의 지극히 보통 사람의 삶의 모습을 탐구하기 위해 파견된 미래인이라면. 뭔지 모를 이유로 미래로 돌아갈 길을 잃고 이 시대에 갇혀 살아가게 된 것이라면. 글쎄, 그 혼란을 이겨 내고 살아갈 수 있을까? 또는 그 혼란을 이겨내고 살고 있는데 다시 미래로 돌아갈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때까지의 모든 인연을 끊고 떠날 수 있을까? 삶은, 혼자가 아닌 삶은, 함께 맺는 인연은 저마다의 생에 어떤 배경이 되는 것일까.   

 

전쟁이 일어나면 군인이 아닌 사람들은 어떻게 지내게 될까. 싸움에 직접 참여하지 않는 일반인들은 시시때때로 목숨의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도 삶을 이어간다. 그 처절하고도 애달픈 장면들을 작가는 놀라운 솜씨로 묘사해 놓았다. 작가가 시간여행을 다녀오기라도 한 것처럼. 오로지 살아 남는 일에만 충실했던 이들이 있어서 전쟁 후에도 역사는 계속되는 것일 테다.

 

살아서 지금 내 눈앞의 세상을 보는 일의 가치를 똑똑하게 느낀다. 보라고 느끼라고 살라고, 그게 우리네 생의 몫이라는 생각이다. 2020년 8월 여름의 대한민국을 보는 내 마음, 이것이 그것이다 싶다. (y에서 옮김2020081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최후의 마지막 결말의 끝
곽재식 지음 / 오퍼스프레스 / 2015년 6월
평점 :
품절


상상이라는 게 뭔가. 내가 있는 이곳, 내가 보는 것들을 벗어난 뭔가를 그려 보는 일일 테다. 내 눈앞에서 일어나지 않을 일이므로, 허황될 수도 있고, 불가능한 일일 수도 있고, 그럼에도 아무도 뭐라고 나무라지 않을 머릿속 작업. 그런 상상들이 이 소설에는 무수하게 나온다. 누구나 한번 쯤 해 보았을 만한 상상, 그러나 부질없다 싶어 곧 치워 버리고 말 상상, 그런 낯익은 상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 꼬리를 따라 가면서는 결국 웃을 수밖에 없게 되고-너무도 그럴 듯해서, 너무도 적절해서. 계속 읽는데도 지루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서 괜찮고, 앞으로도 더 읽을 수 있을 것 같고. 소설가의 작품에서 이런 정도의 인상을 받았다면 이건 독자로서도 좋은 일이다. 그만큼 기쁜 공간 하나를 더 얻은 셈이니.  

 

이 작가의 소설에서 내가 왜 거부감을 느낀 적이 없었던가 한번 돌아보았다. 내용이다. 내가 거북하게 느끼는 요소가 보이지 않는다. 먼저 잔인한 성격을 가진 인물이나 그들이 벌이는 사건이 등장하지 않는다. 무수 한 사건들이 꼬리를 물고 등장하고 있음에도 이런 쪽의 묘사가 없으니 읽는 내 마음이 우선 편하다. 나는 영화나 소설을 보면서 이런 쪽의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것을 결코 바라지 않는다. 뒤틀린 인물의 충동적 행동이나 말도 안 되는 오해에서 비롯되는 갈등 구조를 만들어 놓지도 않았다. 이해되지 않는 것을 억지로 이해하면서 읽어야 하는 글은 싫다. 그리고 결말의 독특함이다. 내 예상을 벗어나는 참신한 반전, 작품마다 새로움을 느낄 수 있어 신선했다. 내가 이 작가의 작품을 꾸준히 읽어서 마침내 그의 스타일에 익숙해지는 날이 오게 된다면 그때쯤은 결말을 만들어 내는 방식을 짐작할 수 있게 될까. 그런 날이 왔으면 싶기도 하고, 이대로 오지 않아도 좋으니 작가가 더더욱 새로운 결말을 보여 주었으면 싶기도 하다.

 

작가가 자신의 소설을 통해 보여주는 전체적인 주제는 세상을 향한 낙관적인 방향이 아니다. 오히려 암울하다. 이대로 이렇게만 된다면 정말 살맛 안 나는 세상이 되는 것일 터이다. 그런데 그 암울한 사이사이에 작가의 유머가 담겨 있다. 반짝반짝 웃음을 일으키며 빛났다가 숨었다가 한다. 그게 지금의 세상에서 숨을 쉬게 해 준다. 학생의 입시 스트레스도, 청년의 취업 스트레스도, 미혼의 결혼 스트레스도, 부부의 자녀 교육 스트레스도, 정치인을 향한 혐오 스트레스도, 세계화에 따른 국제 스트레스도, 멀리 우주 밖까지 내다 보는 미래 스트레스까지 모조리 들먹이면서 툭툭 건드린다. 우리 다들 지금 뭐하고 있는 것이냐고. 

 

다음에 새로 그의 책을 읽게 되는 기회가 온다면, 새책을 만나게 된다면, 정리를 좀 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해 둔다. 어떻게 정리해 볼까, 그건 그때 더 궁리하기로 하고. (y에서 옮김2016101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하고 일하고 사랑을 하고 창비시선 472
최지인 지음 / 창비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상은 살 만한가, 살 만하지 못한가. 우리는, 나는 살 만한가, 살기 어려운가. 어떻게 보든, 어느 쪽으로 다짐하든 각자의 몫이겠지만, 가끔은, 때로는, 더 자주는, 마음이 아프다. 내가 잘 살고 있든 그렇지 못하든. 이 시집을 읽고 있는 지금은 더더욱.

이 시대 젊은이의 삶은 왜 이리도 고단한가. 말하는 이들 가운데 사는 게 녹록하지 않다고 하지 않는 이를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괜찮은 이들은 죄다 입을 다물고 사는 탓일 수도 있을 것이다. 본인의 힘이든 부모의 배려든 요행이든 재수든 살 만하다 싶으면 세상 경계에서 뒤로 뒤로 물러나 구경만 하고 있는 듯 여겨지니, 내 자격지심도 깊을 대로 깊어진 것 같고. 

시는, 시들은, 제목에서 알려주는 만큼 고달프고 서글프고 절망스럽다. 30대의 시인이 이런 노래를 읊을 수밖에 없다면 30대를 오래 전에 지나온 기성 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무어라고 변명이나 위로를 할 수 있을 것인가. 아무런 책임도 못 질 것이면서. 이제는 반성하는 마음도 무색하다. 어지간해야 미안해 하고 부끄러워하면서 눈치를 볼 텐데. 막무가내로 뻣뻣해진다. 가장 무서운 일이다. 나는 점점 더 멍텅구리가 되어 가는 느낌이다.

시의 구절들은 아프다. 찌르지도 않는데 한 행 한 행이 읽는 시선을 멈추게 한다. 시인이 의도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누군가를, 이를테면 독자를, 일부러 아프게 하려는 마음은 없었을 것이다. 그저 자신이 아프다고, 좀 많이 아프다고, 좀 많이 서럽고 힘들다고, 삶이 왜 이토록 가혹한 것이냐고 투정하고 원망했을 뿐일 텐데, 읽는 이가 고스란히 전해 받고 말았을 뿐. 그게 작가의 힘이든 독자의 역량이든.      

고운 구절을 골라 내는 일이 쉽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고운 말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내가 딱하다. (y에서 옮김20221004) 

서성이는 슬픔 - P12

잘될 거란 말과 걱정 말라는 말
사이
있으나 마나 한 것이 많다 - P13

작은 모닥불 앞에 둘러앉은 소원들
높고 맑은 마음들 - P20

우리는 우리의 잘못을 해지도록
읽고 또 읽었다 - P27

사실 이 세상에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투성이다 - P36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은
믿음이 안 간다 - P90

나만 괜찮으면 정말 괜찮은 걸까 - P112

우리는 돈이 없고 돈이 없어서 슬프고 슬퍼서 좋아하는 일을 그만둘 것이다 - P151

높은 산을 매일 보고 사는 사람에겐
짜증 같은 것도 사소해질 것 같다 - P16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죽음과의 약속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4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유명우 옮김 / 해문출판사 / 199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익숙한 장치들로 구성된 이야기임에도 도무지 지루하지가 않다. 비슷한 배경, 비슷한 인물, 비슷한 사정, 비슷한 사건(부유한 가족, 유산, 증오와 질투, 사랑, 해외여행 등등)이 이어지는데. 많이 본 듯해도 여전히 흥미롭고 궁금하고 범인에 대한 내 추측은 끝내 맞지 않고. 그러니 신기하기만 하고. 또 이걸 작가의 능력이라고 할 밖에. 

소설을 다 읽고 거꾸로 헤아려본다. 범인부터 사건의 희생자와 용의자들의 모든 형편을. 그리고 이들을 교묘하게 섞어 놓은 작가의 솜씨. 여기서는 심리학적 배경이 유독 돋보이기도 하고. 작가의 서술을 고스란히 따라가서는 범인의 근처에도 못 간다는 것을 알면서도 벗어나지 못하는 내 독서의 한계. 게다가 마지막에 푸아로 경감의 설명을 듣는 동안에는 더더욱 헷갈렸다. 등장인물들조차 헷갈리고 있다는 듯이 표현해 놓았을 정도이니. 이토록 모든 상황을 고려해야 하는 게 수사라면, 그리고 소설이라면, 거 참, 할 수 있고 할 줄 아는 사람은 따로 있는 게 맞는 거다. 이렇게 읽고 즐기기만 해도 되는 내 처지는 또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같은 말, 같은 내용이라도 들려주는 사람의 화법이나 문체에 따라 재미있게 받아들일 수도 있고 따분하게 느낄 수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말이나 글이 다른 이들에게 흥미롭게 다가가기를 기대하겠지만 아무에게나 있는 능력은 아닐 것이다. 능력 있는 사람이 제 능력을 잘 발휘해 주는 걸 보면 이것도 기쁘기는 한데, 괜히 반대의 경우가 떠올라 씁쓸해지기도 한다. 

중고서점에서 발견한 보물 같은 책이다. 이런 맛에 중고서점을 이용하는 것인가 할 정도로. 아직 못 구한 책이나 품절되어 더 이상 나오지 않는 책도 내 눈에 띄었으면 좋겠다. (y에서 옮김2022031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래과거시제
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 202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SF쪽으로 정녕 소질이 없던 내가, 조금이라도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설명이 모자라면 그 대상을 이해하는 것 자체를 거부했던 내가, 말이 안 된다 싶으면 아예 생각도 하지 않던 내가 이만큼 읽고 있으면 이 세계의 세계관을 제법 익힌 셈이 되었을까. 아직도 남들보다야 한참 아래이겠지만 나 자체의 수준 그래프로 따져 본다면. 그렇다고 믿으려고 한다. SF소설을 계속 읽고 싶은 것을 보면, 우리나라 소설가의 것이든 외국 작가의 작품이든. 

이 작가의 글은 놓치지 않고 보려고 하는 중인데 여전히 푹 빠져들지는 못하고 있다. 이 책에 실린 작품도 가려진다. 내 취향, 좀 아닌 취향으로. '접히는 신들'이 아주 좋았다. 이런 상상력은 기발하다 못해 배우고 싶다. 못 배울 걸 아니까. 그리고 또 내용까지 믿고 싶다. 그렇게 되었으면, 이미 그럴 수 있을지도. '인류의 대변자'는 잠깐 많이 웃었다. 이런 유머도 좋아한다. 딱 우리나라의 현실을 건드리면서 딱 웃고 싶은 만큼 비꼬는 태도. 소설이니까 가볍게 대할 수 있으면서도 무게는 오래 남는다. 그래, 우리가 이런 곳에 이런 시절에 살고 있는 것이지. 외계인이 우리의 서울을 방문한다고 하더라도 말이지. '수요곡선의 수호자'는 서글픈 마음으로 읽었다. SF라는 영역 자체가 서글픈 속성을 갖고 있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막상 만나면 새롭게 서글퍼진다. 우리가, 우리 인간이, 우리의 노력이, 우리의 기술이, 고작 이렇게밖에 못 되나, 한탄하게 되면서. 

책 제목으로 쓰인 '미래과거시제'는 앞서 읽은 시간여행을 다루었던 다른 작가의 소설들이 자꾸만 떠올라서 읽기에 방해가 되었다. 내 독서력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같은 소재를 다루더라도 새롭고 다른 인상으로 나를 이끌었으면 좋겠는데 겹치거나 본 적 있는데 싶어지면 그만 관심이 옅어지고 만다. 다른 기억력은 현저히 떨어지면서 이런 인상에 대한 기억은 왜 이리 강하게 남아 있는지 모르겠다. 작가가 오랜 시간 공들여 쓴 작품이라는 '임시 조종사'는 작가가 염려한 대로 읽기 힘들었다. 입말로 된 글이라 글말에 익숙해진 나로서는 읽기가 퍽 어려웠으니까. 판소리 대본을 귀로 듣는 대신 눈으로 보는 게 쉽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아니, 어쩌면, 판소리 자체에 흥미를 못 느끼는 탓이 클 수도 있고. '차카타파의 열망으로'는 실린 글 중에 가장 읽기 어려웠다. 파열음을 낼 수 없다는 소설의 배경을 고려하더라도 자꾸만 맞춤법을 맞추면서 읽으려는 내가 안타까웠으니. 웃음마저도 지우게 될 정도로.   

우리 소설에서 제 몫을 차지하고 있는 작가라는 것을 알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읽는 일밖에 없고, 읽는 것으로 응원할 수밖에 없겠다. (y에서 옮김2023082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