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모퉁이의 중국식당
허수경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태어나서 자란 곳을 떠나 살고 있는 이들의 마음에는 어떤 아픔이 남아 있을까. 돌아가고 싶어도, 혹은 돌아갈 수 있어도 돌아가지 않는 그 숨겨진 의지에는 어떤 그리움이 병이 되어 있을까. 허수경의 이번 산문집을 읽으면서, 이건 그녀의 시집으로서의 또다른 모습이다 여기면서 그녀가 애써 숨기려 하는 깊은 병을 엿보았다. 어쩌면 그 병이 내게도 아주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의심하면서. 작가는 지금 독일에서 고고학을 공부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시인이 무슨 이유로 고고학을 공부하는 것일까 의문이 생길 수도 있겠으나 그 공부로 인하여 나는 그녀가 더 넓고 더 깊은 시들을 쓸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이번 산문집만 보더라 해도 일상적인 삶 속에서는 건질 수 없을 것 같은 귀한 느낌들이 알알이 담겨 있었으므로.

길을 떠난 시인, 길을 나선 지는 오래라고 하는데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시인. 마음은 어지럽고 사랑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고 지나간 어느 인연 하나에서도 놓여 나지 못하는 사람. 아니라고 아니라고 하지만 가슴이 뜨거워서 마음이 여려서 끝내 눈 감고 돌아서지 못하는 사람. 나는 왜 자꾸만 그녀를 닮으려고 하는 나 자신을 나무라고 있는지 모르겠다. 닮으라는 것인지, 닮지 말라는 것인지 그조차 모르겠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시처럼 편지처럼 시인의 마음이 펼쳐져 있다. 더러는 마음 반 쯤 가려 놓고 있기도 하다. 그것을 펼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시인의 마음을 열 수 있는 사람이라야 한다. 멀리, 내가 살고 있는 이 땅과 내가 지금 살아 있는 이 시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그녀의 마음을 열고서야 읽을 수 있다. (y에서 옮김200304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빅 포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25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우열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푸아로의 친구인 헤이스팅스가 남미에서 런던으로 돌아와 함께 사건을 풀어 나가는 이야기다. 헤이스팅스는 결혼을 하고 아내를 남미에 두고 온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이것이 후에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하고.

 

빅 포. 네 명의 거물을 뜻한다. 그것도 세계 각지를 기반으로 하는. 1인자 중국인, 2인자 미국인, 3인자 프랑스인, 4인자는 영국인. 이 넷이 세계를 지배하는 꿈을 실현하고자 하는데 푸아로가 막아낸다는 이야기다. 작가는 이번 이야기에서 거대한 배경을 그리고 싶었던 모양이다. 읽는 내 입장에서는 좀 엉성하기도 했고 맥빠지는 기분이 자주 들었지만. 비슷한 영화를 이미 많이 봤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보다 이 책을 먼저 봤더라면 감탄했을 수도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  

 

시작하는 쪽에서는 늘 부족한 면을 품고 있게 마련일 것이다. 완전한 작품으로 가는 길목을 먼저 열어 주는 셈이니까. 푸아로의 회색 뇌세포를 움직이는 활동력이나 헤이스팅스의 순수한 용기는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근사했지만 빅 포의 넷에 대한 과장된 묘사는 억지스러운 면이 더러 있었다. 이 중에 4인자에 해당하는 영국인의 활약만 유독 돋보였고 남은 셋은 말만 엄청난 듯 했지 실제로 보여 주는 면은 거의 없다시피 했으니까.

 

영화나 소설로 상상해 보는 일이지만 정말 세계를 지배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까? 거기에 실행까지 도모해 보는 사람은? 혼자서는 힘들 테니, 돈 많은 이와 기술 높은 이와 행동 빠른 이가 뜻을 모은다면, 그런데 그러려고 해도 또 그 안에서 힘의 차이가 생기는 건 아닐까? 그러다가 또 자기들끼리 싸우고? 원래 권력욕이라는 게 그런 속성을 품고 있는 것이니까. 우선은 내가 갖고 싶어 힘을 합쳤다가도 내 것을 더 크게 키우기 위해서는 배신도 쉽게 할 수 있는..... 이 소설에서는 여기까지 나아가지도 못하고 푸아로에게 다 잡히고 말지만.

 

이런 배경을 가진 영화나 소설이 계속 등장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인간의 욕망 한 곳에 소유욕이나 지배욕이라는 것이 깊이 있게 자리잡혀 있다는 뜻이겠다. 저마다 품고 있는 크기가 다를 뿐, 없을 수는 없겠지. 그래도 자신과 이웃을 망치게 만드는 욕망만큼은 키우지 않도록 할 수는 없을까, 생각해 봐도 이대로 영영 그런 건 없을 것 같아 책 읽은 뒷맛이 쓰다. (y에서 옮김2020070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 문학과지성 시인선 309
허수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떤 시가, 혹은 시의 구절이 좋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상황 때문에 그럴 수도 있고 순전히 시 자체의 말맛이 좋아 그럴 수도 있다. 이 작가의 시는 내 마음을 좀 복합적으로 흔든다.


이 시집을 산 것은 꽤 오래 전인데, 그 즈음에 내가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던 것을 보면, 당시에는 무슨 말을 남길 만큼 시가 내게 다가오지 않았던 모양이다. 나 또한 굳이 가고 싶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다. 고고학적 자리라는 둥, 전쟁 속 소용돌이라는 둥, 살짝 물리치고 싶다는 느낌의 기억은 난다.


이번에 서울 가는 길에 다시 집어 들고 펼쳤다. 예전에 내가 몇 군데 줄을 그어 놓은 곳이 있었고, 새삼스럽게 머무르고 싶은 구절을 좀 더 찾아보고 싶었다. 작가의 어떤 말에 내가 끌리고 있는지.


저 구절들이 왜 좋으냐고 누가 묻는다면, 나는 무어라고 답할 수 있을까. ‘그냥’은 분명히 아닌데, 망설이는, 슬픈 모습으로 망설이고 있는 화자 혹은 작가가, 오래 전 캠퍼스에서 봤던 그 젊은 날의 작가의 아담하고 쓸쓸한 모습이 떠오르면서, 도무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의 얕은 회오리 속으로 빨려들어가고만 있는 것 같아서, 내가 그때 그곳으로 돌아가 있는 것만 같아서 좋다고 말하면, 적어도 작가의 시를 다치게 만드는 잘못을 저지르지나 않았으면 좋겠다.


이 작가의 시가 더 낮은 곳으로, 더 어두운 곳으로, 더 험한 곳으로, 더 아픈 곳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내 마음이 속상하다. (y에서 옮김2010122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곽재식의 아파트 생물학 - 소나무부터 코로나바이러스까지 비인간 생물들과의 기묘한 동거
곽재식 지음 / 북트리거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유쾌하고 기발하면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어 내가 좋아하는 작가.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생물들의 세계를 보여 준다고 해서 신청한 책이다. 이번에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려나. 얼마나 신기하려나. 신기하기는 했다. 이런 생물들의 세계를, 우리가 살고 있는 가까운 환경 안에서 만났으니.


첫 주인공 '소나무'부터 읽어 나가는데, 어째 내가 예상했던 방향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나 혼자 기대했던 게 있었음을 곧 알게 되었다. 소설도 에세이도 아닌, 과학 책이라는 것을, 생물학이라고 책 제목에 딱 내놓았음에도, 내멋대로 내용을 추측하고 말았던 탓. 이렇게 또 의외의 책을 읽게 되기도 한다.


책은 주제에 따라 총 3장으로 나누어져 있고 각 장마다 4종의 생물을 소개하는 형식을 갖추고 있다. 작가는 각 대상에 대해 조사한 것들을 엄청 진지하고 성실하게 서술한다. 소설에서 종종 봤던 발랄한 문체가 보이지 않아 아쉽기는 했지만 이 아쉬움은 이어지는 박학다식에 금방 지워졌다. 아는 게 이렇게도 많다니, 어느 특수한 사항을 조사하기 위해서는 전조사 단계에서 이미 알고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그것마저 다 알고 있는 듯해서, 한 사람이 갖고 있는 지식의 영역이 이렇게도 넓을 수 있는 것일까 의심과 감탄을 번갈아가며 했으니.


과학, 생물학에 대해 이야기한다면서 작가가 제시하는 자료들의 종류가 너무도 다양한 것에 내내 놀라워하며 글을 읽었다. 이만큼 다 알고 살다 보면 머릿속이 터지려는 순간이 생기지는 않을까, 평소에는 기억 창고에 푹 넣어 두었다가 필요할 때만 꺼내어 쓰는 건가 하는 내 수준의 쓸데없는 생각도 해 보고. 


정보라는 게 양면의 특성을 갖고 있다. 하나는 살아가는 데 필요해서 당장 꼭 알아야 하는 정보들. 다른 하나는 사는 데에 꼭 필요하지는 않지만 그래서 몰라도 살 수 있지만 알고 나면 이전과는 다르게 보이는 것들이 생겨나도록 해 줌으로써 삶의 수준을 올려 주기도 하는 정보들. 이 책의 정보들은 대체로 후자에 속한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아파트에 사는 이들이 엘리베이터 문을 드나들 때마다 새삼스러운 생각을 해 보도록 기회를 줄 것 같다.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이제는 이 책 속의 생물들에 대해 알고 말았으니 몰랐던 때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 이렇게 알게 된 것들로 때때로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든다. (y에서 옮김20210919)


Y 리뷰어클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목사관의 살인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24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지현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목사가 살고 있는 공간에서 살인이 일어난다. 목사는 어떻게 할 수 있는가 혹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작가의 의도에 하도 많이 속아 와서 이번에는 제목 자체에 의심을 품었는데 그게 또 속히는 결과가 되고 말았다. 목사는 정녕 목사다운 인물로 등장했으니까.

 

마플 양이 나온다. 이 작품이 본격적으로 활약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이 작가의 작품을 순서대로 읽는 게 아니라서 내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저 마을 사람들을 내내 지켜보고 자세히 관찰하면서 추리와 추측으로 범인을 찾아내는 마플 양의 활약에 감탄만 해도 충분하다. 실제로 마을에 이런 사람이 있다면, 어쩐지 으스스할 것 같기도 하다. 감추고 싶어도 감출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 테니까.  

 

나이든 여자들의 참견과 호기심은 나라나 시기와 관계없이 발휘되는 일일까. 이 때문에 문제거리가 발생하기도 하지만 이 덕분에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를 얻기도 한다. 우리 사회에서도 나이든 여자들의 무리에서 때때로 크나큰 사건이 일어나곤 하는데, 사람 마음에 대해 탐구하는 작가의 집착이 한편으로는 이해가 된다. 죽이고 싶다는 마음부터 마침내 죽이는 행동을 하게 되기까지의 범인의 심리에 어쩌다가 이렇게나 깊이 빠져들게 되었던 것인지. 이 또한 인간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편이라고 해도 평범하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주변 사람을 깊이 관찰하는 일, 어쩌면 퍽 흥미로운 일일 수도 있겠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아니고. (y에서 옮김2019102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