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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309
허수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10월
평점 :
어떤 시가, 혹은 시의 구절이 좋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상황 때문에 그럴 수도 있고 순전히 시 자체의 말맛이 좋아 그럴 수도 있다. 이 작가의 시는 내 마음을 좀 복합적으로 흔든다.
이 시집을 산 것은 꽤 오래 전인데, 그 즈음에 내가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던 것을 보면, 당시에는 무슨 말을 남길 만큼 시가 내게 다가오지 않았던 모양이다. 나 또한 굳이 가고 싶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다. 고고학적 자리라는 둥, 전쟁 속 소용돌이라는 둥, 살짝 물리치고 싶다는 느낌의 기억은 난다.
이번에 서울 가는 길에 다시 집어 들고 펼쳤다. 예전에 내가 몇 군데 줄을 그어 놓은 곳이 있었고, 새삼스럽게 머무르고 싶은 구절을 좀 더 찾아보고 싶었다. 작가의 어떤 말에 내가 끌리고 있는지.
저 구절들이 왜 좋으냐고 누가 묻는다면, 나는 무어라고 답할 수 있을까. ‘그냥’은 분명히 아닌데, 망설이는, 슬픈 모습으로 망설이고 있는 화자 혹은 작가가, 오래 전 캠퍼스에서 봤던 그 젊은 날의 작가의 아담하고 쓸쓸한 모습이 떠오르면서, 도무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의 얕은 회오리 속으로 빨려들어가고만 있는 것 같아서, 내가 그때 그곳으로 돌아가 있는 것만 같아서 좋다고 말하면, 적어도 작가의 시를 다치게 만드는 잘못을 저지르지나 않았으면 좋겠다.
이 작가의 시가 더 낮은 곳으로, 더 어두운 곳으로, 더 험한 곳으로, 더 아픈 곳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내 마음이 속상하다. (y에서 옮김2010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