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만왕국 유산 시리즈 1
N. K. 제미신 지음, 박슬라 옮김 / 황금가지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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퍽 재미있고 유쾌하게 읽고 있다. 유산 시리즈의 첫권. 세 권이 남아 있다. 신이 있다고도 없다고도 생각하지 않는 내게 이 소설은 더할 수 없이 재미있는 이야기다.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갈지 모르겠으나 생명의 근원을 궁금해 하는 사람들에게 무척 재미있는 독서가 될 것 같다.

신이나 인간이나 다 그렇고 그렇지, 어디 하나 번듯한 쪽이 없어서 믿지도 기대하지도 않는다. 완전하지 않은 존재는 완전하지 않아서 괜찮았다가 딱했다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기를 반복할 뿐. 한번 살고 한번 죽고 영원히 살고 영원히 죽고. 그래 보았자 시간 앞에서는 모든 게 순간인 것을. 나는 길고 짧음에 엄청 둔감해졌다. 어느 시점에서 보는가, 이 기준이 내 시야를 확장시킨다. 부질없어지는 게 아니라 더 애틋해져서, 내 삶이 한결 소중해져서 만족스러워진다. 이 책에서 얻은 선물이다.

이 작가의 상상력은 넓고도 깊다. 그러면서 인간적이다. 신이 인간보다 못하다는 관점이나 신들을 인간이 부린다는 생각 자체가 신기했다. 그럴 수도 있겠구나, 난 막혀 있던 생각의 통로 하나가 열리는 것을 느낀다. 좀처럼 반대로 생각할 줄 모르는 나의 편협된 사고 체계가 흔들리고 뚫렸다가 가라앉는다. 길 하나가 열려서 앞으로 책을 읽는 재미를 더 키울 수 있겠다.

신과 인간, 인간과 신. 우리는 어떤 존재인 것일까. 우리가 우리 이야기를 하고 살고 있으니 중심이 우리인 것은 알겠다. 우리를 중심으로 돌고 있는 다른 존재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누가 먼저 어떻게 연결시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가 하는 데에 소설가의 역할과 능력이 발휘되는 것일 테지. 이 책을 통해 만난 신들은 대체로 재미없고 한심하고 구차해 보였는데 주인공인 인간이 신들을 살려 낸다. 인간이 희생하여 신을 구한다니 신이라서 무슨 할 말이 있으랴. 작가의 인간을 향한 믿음과 사랑이 그지없이 다정하게 느껴진다.

14일 후에, 6일 후에, 내가 죽을 것을 예상하며 사는 날들은 어떨까? 신이고 인간이고 사랑이고 복수고 다 귀찮을 것 같은데 주인공 예이네는 참 성실하고 대담하게 산다. 하긴 그 상황에 두려울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배우고 싶은 태도는 아니고, 감탄하며 봐 주고 싶다. 2권은 어떻게 이어지려나? (y에서 옮김2025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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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관 1~3 세트 - 전3권 - 2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2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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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에는 로마와 이탈리아가 같은 의미로 다루어진 게 아니라는 것을 자꾸 잊는다. 그러니 읽으면서 자꾸 갸웃거리다가 3권에 이르러서야 좀 잡힌 셈인데, 잡히자마자 세트가 끝나는 느낌이다.(지금 쓰는 이 리뷰는 3권에 해당하는 것인데, 세트로 구입했더니 권마다 올리는 리뷰에 대해서는 포인트가 주어지지 않는다. 뭐, 좀 섭섭하고 억울한 느낌도 들지만 책이 워낙 재미있어서 물러나기로 한다.)

황금을 생각한다. 탐욕과 부도덕을 일으키는 원천으로서의 황금, 그 절대적인 매력. 요즘 시대만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이지. 그렇다면 이 매력은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게 되는 것일까. 매력을 느끼지 않는 게 정신 건강에 좋다는 호소는 설득력이 있는 것일까. 아무리 도를 닦아도 정신 수양을 해도, 황금을 갖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도도 수양도 필요 없고 그저 황금을 갖겠다고 한다면, 황금을 갖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하겠다고 한다면, 그 시절 미트리다테스나 목숨을 걸었던 로마의 집정관들처럼 한몫 잡는 데 생을 걸겠다고 한다면, 그러지 말라고 과연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인간 의지의 한계가 아닌가 싶은데, 내 마음이 이렇게나 흔들리는 것을 다른 누구를 탓하랴.

사람들이 가진 의식을 다 이해하는 건 아니지만 부분적으로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서양이든 동양이든 관계없는 상황이었던 것 같다. 조금 더하고 조금 덜한 정도의 차이가 있었을지는 모르겠지만. 내 편이 아니면 죽여 버렸던 단호함. 심지어 왕의 명령을 따른 후 왕의 비밀을 알고 있었다는 이유로 죽여 버렸던 지배자들. 민중은 하찮은가, 하찮기만 한 목숨들이었던가. 이렇게 하찮은 목숨 중의 하나일 나로서는 분노가 인다. 특히 올바르지 않으면서 어떻게 어떻게 지배층에 속하게 되었을 무수한 인간들이 괘씸하다. 하찮게 여겨질 민중들이 썩은 지배층을 대상으로 무얼 할 수 있을지, 무얼 해야 하는지 책을 읽으면서 끝없이 궁리하고 실천으로 옮겨야 할 테지만.

합법적 절차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된다. 이미 정해 놓은 법, 그 법을 따르는 절차, 법대로의 시행. 마리우스와 술라의 마지막 갈등이 안타깝지만 두 사람 말대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권력이 정점에 달하면 개인의 무게가 달라져야 하는 것은 당연할 것 같고, 각자의 무게를 감당하고 상대의 무게를 인정해야 할 텐데 그걸 서로 거부하게 되면 한쪽이 한쪽을 무너뜨릴 수밖에 없을 테고.

긴 역사에는 긴 삶이 있고 긴 삶 사이에는 짧디짧은 삶도 있다. 어떤 삶은 역사의 기억에 남고 어떤 삶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일 텐데, 애닯다, 우리는 전보다 더 나은 삶을 얻을 수 있기는 한 걸까? 누구나 살다가 죽는 것이겠지만 허망하기도 하다. (y에서 옮김2017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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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SF게임 - 건너편의 세계로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아무튼 시리즈 69
김초엽 지음 / 위고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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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작가가 쓴 산문을 읽으면 그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자신의 작품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는지 조금은 알 수 있다. 작가 쪽에서도 이런 효과를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쓴 소설을 읽는 독자가 산문을 통해 자신의 의도를 조금 더 잘 알아 달라는 생각을 품고 있지 않을까 하는. 허구와 사실과 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읽기의 세계 안에서.

내가 SF 소설을 읽게 된 것은 얼마 안 되었고, SF 게임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할 수 있겠다. 이 책 안에 나오는 SF 게임 중에 내가 하는 것은 스타듀 밸리가 유일한데 이 경험만으로도 작가가 설명하는 내용을 많이 이해할 수 있었으니 신기했다. 책을 읽고도 SF 게임에 대해 모르는 바가 여전히 많은 상태이기는 하지만 이것은 기본적으로 내가 게임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봐야겠다.

현재의 나로서는 게임과 SF 게임의 차이에 대해 모르는 상태다. 막연하게 게임이라면 다 SF가 아니었던가 하는 정도로 짐작한다. SF 소설을 읽을 때도 SF 요소를 챙기며 읽는 게 아니라서, 또 굳이 구분할 이유가 없어서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러니 이 책을 '아무튼, 게임' 정도로 읽은 게 적절하겠다. 아니면 또 어때서?

게임을 하지 않는 이유가 몇 있다. 내가 즐기지 못하는 이유와도 같다. 무엇보다 전투를 한다는 것, 적을 죽여야 한다는 것, 끊임없이 아이템을 구해야 한다는 것, 구해서 본 캐릭터의 모습을 바꿔야 한다는 것, 여기에 돈이 들기도 한다는 것... 이런 특징을 갖지 않는 게임 몇 가지는 할 줄도 알고 가끔 하기도 한다. 이 경험만으로 이 책을 읽었는데도 흥미로웠다. 알게 된 만큼만.

전혀 모르는 영역이지만 게임에 대한 글을 나누는 곳도 있나 보다. 게임 방송이 있는 것을 보면 게임 비평도 있을 것이고 게임 연구도 있을 것 같다. 물론 결론은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게임으로 향하자'이겠지만.

게임이라는 속성 자체가 돈을 들여서 노는 일이다. 나는 돈을 들이기 직전까지만 간다. 그 선을 넘지 않는다. 아닌가, 게임을 하나라도 구입했다면 이미 넘어선 것인가? 선택이다, 여기도. 어디까지 들어설 것인가.

게임과 삶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한 작가의 말이 맴돈다. 나, 이미 누군가의 게임 안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y에서 옮김2025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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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관 2 - 2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2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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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의지력이라는 게 참 대단할 수도 있고 아주 하찮을 수도 있고. 뭔가를 이루어낸 사람의 일생을 보면 어찌 그렇게 해 냈을까 싶은데, 또 그렇지 못한 사람을 보면 어찌 저렇게밖에 못 살았던 걸까 싶기도 하니.

이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경험을 했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인물임에도 매력적일 수 있다는 것, 이른바 나쁜 남자에 빠져 드는 형국이랄까, 이해도 안 되고 거부감이 들고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음에도 궁금해지는 사람. '술라'

이미 나와 있는 결론에, 이미 알고 있는 줄거리에, 그럼에도 또 읽을 수 있게 하는 힘은 이야기를 구성하는 데 있는 것이겠지. 역사적 사실과 그 사실을 전하기 위해 적절히 엮었을 가상의 이야기가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펼쳐지는 속에서 느끼는 재미가 상당하기도 하고. 복잡하게 되풀이되는 이름들이 헷갈려도, 헷갈려서 채 구별이 안 되어도 읽어 나가는 속도에는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신기한 경험까지.

연달아 읽는 게 아니다. 사이사이 다른 책을 읽고 있어서 앞서 전편을 읽었던 느낌이 완전히 기억나지 않는데, 이게 또 그렇게 나쁘지 않다. 큰 줄거리는 기억에 있고, 세세한 줄거리는 잊었어도 다시 이어 나가는 데 무리 없이 곧 살아나고, 인물들의 삶은 여전한 모습으로 계속되고, 이 계속되는 생이 나의 생에까지 이어지는 듯 싶어 그 다르지 않음이 신기하고. 거듭거듭 같은 생각이 반복되는 것을 느끼면서 위로라고나 할까, 내 고단한 생을 이들의 지나간 생이 어루만져주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할지. 사는 게, 살아 남든지 그렇지 못하든지, 그게 그리 대수롭지 않을 수 있으니 하루하루에 너무 연연해 하지 말라고 하는 듯도 하고.

남자는 남자대로 사는 무게가 있고, 여자는 여자대로 사는 무게가 있었다. 그때 그곳에서는 그들대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는 또 우리들처럼, 마냥 어려울 것도 마냥 쉬울 것도 없는 게 인생이고, 일생이라면, 그게 온전히 내 힘으로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라면 불평이나 투정보다는 수용이나 포용이 더 지혜로운 방법이 될 것이다. 정말 삶이라는 건 누군가 나에게 줄 수 있는 형태가 아니니까 말이다.

다른 성별로 태어나서 남자로 자라는 것과 여자로 자라는 것이 다르고, 신분에 따라 누구랑 결혼하느냐 하는 것도 남은 생의 방향을 결정짓게 되고, 한쪽의 마음이 변해 배신하느냐 배신당하느냐 하는 것도 누군가의 생에는 큰 변화의 계기가 되고, 그럼에도 누군가는 끈질기게 살아 남고 누군가는 어이없이 죽어서 끝을 맺고.

전쟁, 참으로 한숨 나는 말이다. 죽였어야 한다는 거다. 꼭 죽였어야 하는가 물어볼 것도 없이 몽땅 죽여야 그 전쟁을 끝낼 수 있었던 시절의 이야기. 지금 돌아보면 허무하기만 했을 상황인데, 그때는 또 그때대로 그렇게 생을 마감하는 선택을 했더라는 것이지. 어쩌면 지금의 우리도 역사의 거대한 흐름 안에서 그와 비슷한 허무한 몸부림을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권력도 사랑도 야망도 부귀도 한낱 꿈 같은 것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럼에도 살아 있는 동안에는 목숨을 걸 만한 가치가 되는 것이다. 아니라고 해도, 부질없는 노릇이라고 해도, 허황된 욕망이라고 해도, 그걸 갖고 싶은 사람은 갖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바람직한 동의가 될지 모르겠지만 모처럼 그런 사람의 욕망을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이 모든 게 '술라' 때문이다. 3권은 나를 어디까지 데려갈 것인지. (y에서 옮김2017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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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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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번이 읽고 묻고 한탄하게 되는데, 우리 인간은 나아질 수 있을까? 오래오래 전, 인간이기 시작한 이래로, 우리는 나아지고 있는 것일까? 이 물음은 나의 의심이고 나의 불만이라 답이 오지 않는다. 나는 언젠가부터 우리 자신에 대해 믿지도 않고 기대하지도 않는다. 유일한 낙관은 절망도 하지 않는다는 것. 인간이 그렇지, 뭐, 나도 이런 것을.

소설가는 끝없이 성장을 이야기하고 소설을 읽는 나는 작가를 따라 끝없이 성장을 꿈꾸지만 매번 처박히는 느낌이다. 어디를 감히 오르려고? 어렸을 때는 어려서 그런가 했는데 나이가 들어도 점점 더 나이를 먹어도 나아지지 않는다. 기억에서도 현실에서도. 이 책을 이런 마음으로 읽어야 해서 나는 내내 서글펐다. 나만 이런 게 아니란 것을 아는 게 내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도 있다는 것까지.

작가가 소설집을 낼 때는 이전에 쓴 작품을 모아야 할 테니 읽는 쪽에서는 이미 읽은 글을 다시 만나기도 한다. 띄엄띄엄 읽으면 기억에 남아 있지 않아 다시 읽어도 새로울 수 있겠지만 한 작가의 글을 계속 읽게 되면 겹친다. 얼마 전에 봤구나, 어째 좀 손해 보는 느낌인데? 싶은. 한 편이라도. 마음에 들 경우 더 그렇게 된다.

이 작가의 글에서는 유독 배경이 돋보인다는 생각을 한다. 그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일산의 원미우동집, 부산 영도, 가파도, 초전의 들판 같은 곳들. 가서 내 청춘을 돌아보겠다는 것은 아닌데, 가서 내 노후를 계획하겠다는 것은 더욱 아닌데, 나를 떠나 나를 돌보는 지점으로 삼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어찌 이리 한심한가 하다가도 이만큼이나 살아 왔으니 잘했네, 그래 주고 싶은 마음이어서. 작가도 내게 이렇게 말해 주고 있었으니까.

마음결을 읽는 데에는 여유가 필요하다. 시간도 공간도 내 처지도. 나는 지금 소설가가 써 놓은 마음결을 읽을 여유를 갖고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여긴다. 이토록 안팎으로 곤궁한 시절임에도.(y에서 옮김2025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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