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로 쓰기 - 김훈 산문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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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동안 내가 얻은 세 가지 주제어 : 참혹과 참담, 70세, 젊은이의 키스. 고마운 마음으로 하나씩 써 보려 한다.  

 

1. 참혹과 참담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 본 뜻은 다음과 같다.

참혹 비참하고 끔찍함

참담 끔찍하고 절망적임

 

내가 참 좋아하지 않는, 도저히 좋아할 수 없는 단어들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이 단어들에 마음을 완전히 빼앗겼다. 이 책이라서, 이 작가라서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다른 사람이 쓴 글에서는 이런 적이 없었으니까. 참혹한 일과 참담한 마음을 어쩌자고 이토록 절절하게 그려 놓았는지 모르겠다. 

 

글은 대체로 무겁다. 작가가 바라보는 대상이 가벼울 수 없어서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현재와 과거와 미래를 헤아리는 작가의 시선이 차가웠다가 따스해졌다가 몇 번을 반복하는데 이렇게 바뀌는 온도에 마음이 울렁이기를 몇 차례, 나는 점점 더 빠져들었다.     

 

이순신을 부르는 작가의 말에서는 내 몸이 굳었다. 세월호를 부르는 작가의 말에서는 내 영혼이 떨렸다. 이국종을 부르는 작가의 말에서는 내 눈이 감겼다. 이승복을 이용한 권력은 한탄스러웠고, 그 권력 뒤에 숨은 권력자들에게는 화가 일어났다. 옛날이고 지금이고 그 권력 때문에 참혹에 빠지는 백성의 처지가 참담했다. 나는 도무지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은 마음으로 읽었다. 참혹과 참담을 애써 멀리 하고자 했던 이유가 여기 있었던 모양이다. 남의 것이 아니었던 것, 내 것이었던 참혹과 참담이었다. 피하려고만 해 온 내가 무척 괘씸했다. 꽤 오래 시달릴 듯하다. 그래도 작가의 마음과 다르지 않아 다행스러웠고 또 한편으로는 깊이 서글펐다.       

 

2. 70

작가의 나이다. 벌써 이렇게 되셨구나. 내가 먹은 나이는 고려하지도 않고 작가의 나이에만 놀란다. 작가가 보여 주는 70세의 정신, 강렬하게 본받고 싶다. 

 

작가는 늙어서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할 일과 하면 안 될 일을 말해 준다. 내가 앞으로 70세에 이르기까지 어떤 일이 생길지는 모르겠으나 나이를 먹을수록 부끄러울 일은 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몸으로도 태도로도 젊은이들에게 민폐를 끼치거나 해를 입히는 사람이 되지는 말아야 한다. 그러려면 정확하게 보고 정확하게 판단하고 정확하게 표현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쉽지 않을 것이다.      

  

3. 젊은이의 키스

작가는 글에서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키스하는 모습을 찬양한다. 처음에는 의외라고 여겼는데 글을 읽다 보니 점점 같은 마음이 되어 가는 자신을 느꼈다. 내가 이 대목에서 얼마나 고루한 사람이었던가. 길이나 공공장소에서 서로 끌어안고 있는 젊은이들을 볼 때면 괜히 삐죽이고 눈흘기고 그랬는데. 아마도 내가 못해 봐서 심술이 났던 것이겠지.  

 

우리의 젊은이들에 대한 작가의 건강한 기대가 좋아 보였다. 기대하는 이 태도는 배워야 할 일이다. 청춘을 나무라고 무시해서 좋을 게 뭐가 있겠나. 아무리 어려워도 아무리 고달파도 청춘은 살아서 우리 기성세대가 걸어온 길을 걸을 것이다. 그들이 하고 싶은 대로. 오라고 하는 대로 오지 않는다고 나무란다면 그 또한 기성세대의 오만이고 착각이다. 청춘은 결코 어리석지 않다. 문제는 늘 기성세대 쪽에 더 많아 보였다. 어린 사람들을 향한 작가의 눈부심이 고스란히 읽혀서 좋았다.        

 

책을 다 읽고 나니 경건해지고 무거워지고 쓸쓸해진다.  (y에서 옮김2019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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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행의 순례자 캐드펠 수사 시리즈 10
엘리스 피터스 지음, 김훈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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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갖고 있지 않지만 종교의 원리나 종교인의 양심에 대해서는 의심을 하지 않는다. 종교를 믿는 사람들 중에 덜 떨어진 사람이 있을 뿐, 악에 유혹되는 가여운 영혼이 있을 뿐. 사람이 문제인 것이지 과학처럼 종교에는 잘못이 없는 것일 테니까. 


중세 잉글랜드의 수도원이 배경. 나이 들어서 수도사가 된 주인공이 활약하는 소설. 실제 역사를 배경으로 당시 살았을 사람들의 삶과 갈등과 사랑과 용서를 상상으로 재구성하여 보여 주는 소설이다. 아주 재미있다. 시리즈를 이어갈수록 더 재미있다. 등장인물들이 고리에 고리를 물고 인연을 쌓아가는 장면을 확인하는 일도 사건이 해결되는 과정만큼이나 흥미롭다. 각 권에서는 독립된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지만 인물들의 관계를 고려하면 순서대로 읽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번 권에서는 고행의 순례자가 중심 인물로 등장한다. 왜 고행을 하면서 순례를 하려는 것인가. 순례 자체에 종교적 관심이 전혀 없는 나로서는 더더욱 의아한 장면인데 캐드펠 수사가 위험을 무릅쓰고 끝내 밝혀낸다. 그 이유를 알고 난 후에도 내가 순례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종교인이 될 자질은 아주 없는 게 분명하고. 그게 뭐지? 그런 것이 자신의 죄를 용서받는 길이 된다고? 아무리 종교가 마음을 진정시키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는 해도... 소설은 재미있게 읽고 있으면서 종교 대목에서는 계속 삐딱해져 있는 채로. 


스티븐 왕과 마틸다 황후가 왕권을 잡기 위해 싸우는 내전 중인 잉글랜드. 스티븐 왕의 부인 이름도 마틸다라 마틸다 왕후와 대비하여 부인은 왕비 마틸다로 부른다. 나는 소설을 읽다 말고 자꾸 이 시기의 역사를 살핀다. 실제와 허구가 어떻게 맞물려 펼쳐지고 있는지를 짚어보고 작가의 역량에 계속 감탄하면서. 


글의 맨 마지막에서 캐드펠이 휴 베링어에게 건네는 진실이 대담하다. 출생의 비밀이란 이야기라는 장르에서 중요한 요소로 작용될 수밖에 없는 듯하다. 이 대목만큼은 너그럽게 이해한다. 나는 이야기를 좋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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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봄 2022 소설 보다
김병운.위수정.이주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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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세 편이 실려 있는 아담한 소설집이다. 모처럼이지 싶다. 세 편 모두 집중해서 읽을 수 있었고 다 내 마음에 들었다는 게. 세 편밖에 없는데도 다 마음에 드는 경우가 좀처럼 없었던 것만 같아서 자꾸만 다 마음에 드는구나, 그렇구나 읊조리게 된다. 섭섭하고 안타깝기도 하지만 드문 일이다. 소설가와 독자 서로가 딱 맞춰지는 순간, 그때부터 소설은 새로 생명을 얻게 된다. 내가 많이 바라는 순간이다. 


무엇보다 세 작품의 서술방식이, 화자의 전달력이, 작가의 문체가 내게 좋은 느낌을 갖도록 했다. 특별하지 않아서, 평범해서, 그럼에도 무겁고 세밀하고 느려서, 또 그럼에도 하고 싶은 말을 힘들여 전하고 있는 것 같아서, 세 작품이 어느 하나 모자라지 않게 내 읽기를 북돋우고 있어서 좋았다. 


요즘 우리 사회의 문제에 이런 요소들이 있구나. 뉴스보다 영화보다 다큐멘터리보다 소설 쪽에서 이와 같은 정보를 얻기를 더 바라는 나로서는, 소설의 사회적 책무에 큰 무게를 두는 독자인 나로서는, 이 책에 실린 세 편에 많이 일렁였다.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어느 하나도 하찮게 취급할 수가 없는 탓이다. 그래서는 안 되는데도 현실에서는 사람이 사람을 함부로 다루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세 작품 속 화자의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는 자신을 향한 연민의 시선. 사랑이라고도 책임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자기 자신을 위한 마음쓰임이 애달팠다. 나 또한 이들과 다를 게 없기도 하고, 그래서 더 가까이 다가서고 싶었을 것이다. 약자로 살아야 하는 세상, 세상에 나와 약자이기를 원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을 텐데 약자일 수밖에 없게 되고 만 세상에서 같이 울어 주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퍽 서글프다.    


세 작가의 이름을 오래 기억해야 할 텐데. (y에서 옮김2022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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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프로스트의 내면의 삶
폴 오스터 지음, 김경식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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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는 내 느낌이 책을 읽기 전의 내 기대와 많이 다를 때면, 리뷰를 올리기 전에 다른 사람의 리뷰와 책에 대한 안내문을 먼저 읽어 보게 된다. 내가 왜 이렇게 읽었나 하는 의문도 생기고, 뭔가 잘못 생각한 게 아닌가 의심도 생기는 탓이다. 이 책도 그 과정을 거쳤다. 바꾸어 말하면, 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뜻이 된다. 


무엇보다 낯설다. 낯선 게 신선한 게 아니라 실망스러워진다. 책이 잘못된 걸까, 번역이 잘못된 걸까, 내가 잘 읽지 못한 것일까 오락가락했다. 시나리오를 읽은 횟수가 너무 적다 보니 내 자신의 이해력이 부족한 탓이 가장 크겠지만, 그렇더라도 이건 좀 섭섭하다. 분량이 적은 것도 내 이해력을 탓하도록 만들고 말았다. 


재미없었다. 환상의 책을 읽는 중에 분량이 적어서 후다닥 보겠다는 마음으로 잠깐 펼친 것인데, 환상의 책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데, 모르겠다. 환상의 책을 읽고 나면 이 마음이 다시 바뀌게 될지.

 

* 별 세 개를 줄 수 밖에 없는 책에 대해서는 리뷰를 쓰지 않는 편인데, 이 책은 혹시라도 뒤에 마음이 바뀔까 하여 남겨둔다. (y에서 옮김2010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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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가을 2021 소설 보다
구소현.권혜영.이주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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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유에서든, 어떤 상황에서든 행복하지 못한 이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은 힘들다. 현실이 아니라 소설이라도. 작가의 마음이, 작가의 시선이, 작가의 의도가 어떤 과정을 거쳐 이 글에 이르게 되었을지를, 다 알아내지는 못하더라도, 지극히 일부만 짐작할 수 있을 뿐일지라도 힘들고 아픈 건 분명하다. 왜 이렇게 사는 게 힘들까, 힘들어도 살기는 살아야 하는 건데, 살기 위해 이러는 것일 텐데, 작품 속 인물들의 고단한 목소리에 내내 맥빠지고 만다. 



세 편의 단편소설. 가벼운 가을 분위기에 맞춰 읽기로는 많이 무겁다. 그렇다면 추운 겨울에 읽으면 나을까? 아마 더 춥겠지? 봄은? 여름은? 아니, 계절 탓을 해서는 안 되겠다. 살기 어렵다는 이야기는 어느 계절에 읽든 상관없이 힘겨울 테니까. 게으른 것도 아니고 얍삽한 것도 아니고 남을 속이거나 사기를 쳐서 한탕 벌겠다는 것도 아닌데 어째 다들 이러한 상황에 놓이는 것인지. 막막해서 한숨만 난다.  



비슷한 주제를 다룬 듯 해도 세 작품이 각각의 특징을 보여 준다고 생각했다. '시트론 호러'에서는 유령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것, '당신이 기대하는 건 여기에 없다'에서는 비현실적인 시간과 공간을 배경으로 삼았다는 것, '위해'에서는 제목에서부터 다양하게 상상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는 것.  



소설 속 인물의 삶은 곧 그 시대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살기 참 고달프다. (y에서 옮김2021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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