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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한잔 인생 한입 1
라즈웰 호소키 지음, 김동욱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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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하여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발견한 만화다. 나오기 시작한 지는 꽤 되었는데 내게 이제야 발견된 책. 비슷한 내용이나 구성을 취한 작품들을 종종 봐 와서 계속 볼까 어쩔까 궁리하면서 책장을 넘겼다. 그리고 정했다. 하나씩 사 모으면서 봐야지. 이런 수집, 내 오랜 즐거움으로 여기면서.  


내용이 만화로만 구성되어 있는 건 아니다. 만화 에피소드를 끝내면 글이 나온다. 이 글만으로도 산문집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충실하다. 처음에는 그림을 보다가 글을 읽으려니 뭔가 성가신 기분이었는데 자꾸만 되풀이해서 읽으니 점차 괜찮아졌다. 가벼운 술 한 잔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진득한 무게감을 느꼈다고나 할까. 그동안 '와카코의 술' 만화로 달래던 술맛을 이 만화책으로도 확장시킬 수 있을 것 같다. 눈으로 봐도 충분히 취할 수 있는 술맛, 근사하도다. 


한 가지 일이든 대상이든 오래 두고 취하고 탐구하고 아끼면서 돌보는 일의 가치를 잘 느끼게 되는 시절이다. 술을 잘 마시는 게 이런 재주와 능력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줄 예전에는 몰랐던 일인데. 한 가지가 아니라 뭐든지 다 잘해야만 되는 줄 알고 뛰어다니던 젊은 시절이었는데. 그러다보니 하나도 제대로 건진 게 없다 싶어 이제서야 슬슬 아쉬워지는데. 그 가운데 하나만이라도 좀더 깊이깊이 두드려볼 걸 하는데. 뭘, 이렇게 한탄하지만 말고 지금부터라도 하나씩 해 보는 거지, 무엇이 되더라도. 아닌 걸 찾았다는 것만 해도 또다른 발견이고. 


먹는 것, 마시는 것은 나로서는 못할 일이로다. 그냥 지금처럼 계속 그림으로 글로 먹고 또 마셔 주겠다. 영영 소화 부담 없는. (y에서 옮김2022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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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마리 여기 있다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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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 작가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고 헛된 독서가 될 것 같지는 않았다. 내 가벼운 기대는 점점 어긋났다. 브릿마리는 조금씩 내 쪽으로 가까워지고 있었고 사람 사는 동네가 왜 다 이 모양인지 한탄했다가 사람 사는 동네라면 모름지기 이러해야지로 바뀌었다. 다 읽고 난 마음은 썩 흐뭇하다. 새미처럼 안타까운 사정을 겪어야 하기는 했지만. 

브릿마리는 할머니다. 까다로운 할머니. 까다로운 데에는 까다로운 이유가 있다는 말을 알겠다. 어쩌면 까다로운 사람일수록 원칙에 철저한 것일지도 모른다. 서로 지키자고 정했으면서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말을 쉽게 용납하지 않는 성격을 가진 사람으로서. 나는 정녕 까다로운 사람이 되고 싶은데 그러지를 못하니 이것도 딱한 노릇이다. 속으로만 끓고 마니까. 그래서 브릿마리가 더욱 존경스러워진다. 이런 사람, 존경을 받아야 된다. 현실이 그러하지 못해서 소설에 더 빠지는 것인가. 나는 또 소설에서 구원을 얻는다.

축구. 축구를 하는 어린이들이 나온다. 쇠락해진 마을 보르그에는 축구하는 어린이들과 코치가 된 브릿마리가 있다.  전 세계의 작은 시골 마을들이 부러워할 만한 사람들이 브로그에 있다. 자칫 사라질 것만 같았던 마을이 새로 살아날 수 있는 계기를 알 것 같다. 까다로운 사람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면 마을도 살아날 수 있겠다는 희망이 보인다. 작가의 희망, 독자의 희망, 인류의 희망, 지구의 희망. 글쎄, 맥이 빠지기는 한다.

긴 시간을 들여서 천천히 읽었다. 슬렁슬렁 넘길 수가 없었다. 작고 사소한 행동이나 말이 가엾은 어린이를 살리고 주변 어른들을 살리는 장면을 계속 보다 보니 속도가 나지 않았다. 브릿마리 할머니도 자꾸만 마음에 들어가고 있었고. 청소와 정리정돈을 잘하는 사람은 정말 괜찮은 사람이란 말이지.

밉상인 켄트. 브릿마리의 남편. 브릿마리가 켄트의 방문을 노크하지 않았던 게 얼마나 다행스럽던지. 나이가 들어서도 철이 안 들고 어리석은 남자가 정말 싫다. 우리나라 남의 나라 할 것 없이.  (y에서 옮김2025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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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진 이름들 - 제3회 박상륭상 수상작
안윤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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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수 있을까, 과연? 남고 싶을까, 진정으로? 우리는 각자 누군가로부터 태어나서 자라고 살다가 죽는다. 남고 싶나? 남기 위해 애쓰나? 소설 제목은 이 질문을 계속 떠올리게 한다. 나는 좀 지긋지긋해진다.


이 작가의 서술 방식이 내 취향이라서 읽는 내내 흐뭇했다. 문장 안에 머물러 있고 싶고 문장 사이사이에 떠돌고 싶고 문장이 끝날 때마다 아쉬워진다. 금방 다음 문장이 다가와 있음에도 내가 놓친 것은 없는지 돌아보게 된다. 이 책을 만나서 이 여름이 전혀 나쁘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가볍게 반하고 깊이 빠진다.


소설은 두 겹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글을 쓰는 '윤'이 키르기스스탄의 비슈케크에 다녀온 후 그곳에서 온 편지와 공책을 받는다. 공책 안에는 나지라의 글이 있다. 간호사로 간병인으로 살았던 나지라의 삶, 그리고 남은 이야기. 윤은 나지라의 글을 전한다. 남아 있는 이름들과 함께. 이름 하나하나에 나는 질문을 보탠다. 내 이름까지 얹어서.


사람들은 한스러울 때 말하곤 한다.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글로 쓰면 소설책 몇 권이 될 것이라고. 쓰지 못해서 남기지 못하는가. 남기지 못해서 사라지는가. 사라져서 잊는가. 글쎄, 우리 안에는 각자의 삶이, 서로의 삶이, 오래 전 이야기와 지금의 이야기가 함께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알면서 자주 모르는 척 하는 건 아닐까. 


남의 삶이, 남의 이야기가, 남의 것으로만 여겨지지 않는 때가 생긴다. 내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내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사람과 삶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슬플 때는 더 절실해진다. 어떻게 살아온 생인데, 어떻게 살아가라고? 나지라는 글로 자신의 생을 전하고 윤은 글로 사람이 가진 몫을 확인시켜 주며 작가는 글로 세상을 채운다. 나는 이 소설을 읽는 것으로 순간의 사명을 다하였다. 


다음 작품을 기다리고 있어야지.

사람은 일평생 겨울이나 사진을 통해서만 자기 얼굴을 볼 수 있으니 영영 제 얼굴을 제대로 한번 바라보지 못한 채로 세상을 등지는 것이다. 인간이 자기 자신을 제대로 볼 수 있기는 한 걸까. -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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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10 2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7-11 10: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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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밭 걷기 문학동네 시인선 214
안희연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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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텔레비전의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 작가를 보았다. 시와 문학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누군지 모른 채 이야기를 듣다가 시인인 걸 알았고 그 덕분에 이 시집을 빌렸다. 말하는 내용으로 어떤 시를 쓰는지 짐작해 보았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읽기가 수월하지 않았다고 남겨 둔다. 그렇지만 한 권을 더 보아야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온전한 한 편으로 내 마음까지 다가온 시는 없었다. 나는 읽는 내내 헤맸고 부딪혀서 넘어졌고 어쩌다 목마르다 얻은 샘물처럼 몇 줄씩 만났다. 앞뒤로 이어짐이 없이 건져 올린 구절들은 본 편의 시와 떨어져 나온 채로 내 노래가 되어 주었다. 이만큼이라도 얼마나 다행스러웠나 싶다. 작가가 전하고자 한 의도를 1%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은 아닌지. 

어렵다는 느낌보다 거리가 멀구나 여겼다. 비유도 상징도 헤아려 내지 못하고 넘겼다. 아닌 것은 아닌 것이고 모르는 바는 모르는 것이다. 아는 척도 안 되고 궁금한 게 무엇인지 스스로도 잡히지 않으니 어쩔 방법이 없었다. 이런 경우 아주 난감하다. 좋아하는 구절은 곳곳에서 발견되는데 내가 무엇을 읽었는지 말할 수 없을 때, 좋은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 구별이 안 될 때.   

시가 많이 담긴 넉넉한 시집이다. 내 마음을 나도 모르겠구나 싶을 때 이 시집을 펼쳐 보면 어느 한 쪽은 알게 되지 않을까?  (y에서 옮김20250408)

한 사람을 구하는 일은

한 사람 안에 포개진 두 사람을 구하는 일이라는 거

계속 계속 우산을 사는 사람은 지킬 것이 많은 사람이라는 거 - P38

내일은 다를 거라 믿고 싶을 때

너무 오래는 말고 한 사나흘만

나를 좀 갖다 버렸으면 싶을 때 - P52

물빛은 물과 빛의 포개짐이지만

물은 물에게로, 빛은 빛에게로 돌아갈 뿐이죠. - P59

창밖을 보려면 창문에 비친 나부터 보아야 하는 시간입니다 - P68

어떻게 살 거냐고 묻지 마세요

어떻게 살아 있을 거냐고 물으세요 - P121

누군가 두고 간 안부를 화분에 옮겨 심는다

- P123

물을 마시는 일이 물의 슬픔을 마시는 일로 느껴진다면

- P124

둘레석은 무덤을 에워싼 돌을 말한다

둥글 수도 각질 수도 있으나 무덤보다 높을 수는 없다

무덤보다 낮은 돌은 무덤보다 낮은 돌의 일을 한다

흩어지더라도 천천히 흩어지도록 둘레의 일을 한다 - P129

해결되지 않은 마음을 우후죽순 밀어올리는 계절,

봄이라 했다 - P130

겨우, 기껏, 고작, 간신히, 가까스로……

내가 사랑하는 부사들을 연달아 적으며

그것들의 겨움을 또한 생각한다 - P132

절대로, 도무지, 결단코, 기어이, 마침내, 결국……

그런 말들은 다독여 재우고


여름아, 이제 나는 먼 것을 멀리 두는 사람으로 살고 싶어

내가 나인 것을 인정하는 사람으로

- P133

거리를 걷는데 마음을 걸어요

마음이 길이구나

마음이 놀이터고 전봇대고 표지판이구나

알게 되는 날이 있어요 가지 끝에 매달린 노란 종 같은

- P138

떠나지 않는 사람이 된다는 것

내겐 그것이 중요하다 - P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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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아, 언젠가 너를 만나고 싶었어 - 대자연과 교감하는 한 인간의 순수한 영혼을 만나다
호시노 미치오 지음, 최종호 옮김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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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지 않은 글, 그리고 사진들. 곰이 있고 곰이 있는 풍경이 있고 풍경 안에 자연의 삶이 있는 책. 이 작가의 책을 펼쳐 들고 있으면 어떤 자연도 무섭지 않게 된다. 설사 자연의 섭리에 목숨을 잃는 경우가 생긴다고 해도, 작가처럼 곰에게 목숨을 빼앗기는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모든 과정이 자연스럽다는 그 말 안에 다 녹아 들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신기하고 벅찬 경험이다.

알래스카의 가을, 이 풍경 어딘가에도 곰이 있을 것이다. 볼 줄 아는 사람에게만 보이겠지. 나에게는 안 보인다. 내가 굳이 저 땅으로 가서 내 발을 딛고 본다고 해도 다 못 볼 풍경을 이렇게 편하게 본다. 사진은 때로 착각하는 방식으로 나를 황홀하게 만들어준다. 해롭지 않은 이 착각을 마음껏 누릴 작정이다.



위험하지만 지극히 사랑하는 대상, 사람마다 한 가지 이상씩 갖고 살지 않을까? 이 작가에게는 곰이었겠지. 특별히 알래스카의 곰. 그래서 알래스카로 갔을 것이고 그곳에서 곰을 만나기 시작했을 것이고 곰을 찾아다녔을 것이고 곰과 함께 생을 누렸을 것이다. 그의 길지 않았던 삶을 누가 뭐라고 말할 수 있으려나. 

지구에서, 지구의 자연 안에서, 내가 지금 이곳에 이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일이 여간 대단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세상 모두의 생명체들에게 경의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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