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밭 걷기 문학동네 시인선 214
안희연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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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텔레비전의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 작가를 보았다. 시와 문학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누군지 모른 채 이야기를 듣다가 시인인 걸 알았고 그 덕분에 이 시집을 빌렸다. 말하는 내용으로 어떤 시를 쓰는지 짐작해 보았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읽기가 수월하지 않았다고 남겨 둔다. 그렇지만 한 권을 더 보아야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온전한 한 편으로 내 마음까지 다가온 시는 없었다. 나는 읽는 내내 헤맸고 부딪혀서 넘어졌고 어쩌다 목마르다 얻은 샘물처럼 몇 줄씩 만났다. 앞뒤로 이어짐이 없이 건져 올린 구절들은 본 편의 시와 떨어져 나온 채로 내 노래가 되어 주었다. 이만큼이라도 얼마나 다행스러웠나 싶다. 작가가 전하고자 한 의도를 1%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은 아닌지. 

어렵다는 느낌보다 거리가 멀구나 여겼다. 비유도 상징도 헤아려 내지 못하고 넘겼다. 아닌 것은 아닌 것이고 모르는 바는 모르는 것이다. 아는 척도 안 되고 궁금한 게 무엇인지 스스로도 잡히지 않으니 어쩔 방법이 없었다. 이런 경우 아주 난감하다. 좋아하는 구절은 곳곳에서 발견되는데 내가 무엇을 읽었는지 말할 수 없을 때, 좋은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 구별이 안 될 때.   

시가 많이 담긴 넉넉한 시집이다. 내 마음을 나도 모르겠구나 싶을 때 이 시집을 펼쳐 보면 어느 한 쪽은 알게 되지 않을까?  (y에서 옮김20250408)

한 사람을 구하는 일은

한 사람 안에 포개진 두 사람을 구하는 일이라는 거

계속 계속 우산을 사는 사람은 지킬 것이 많은 사람이라는 거 - P38

내일은 다를 거라 믿고 싶을 때

너무 오래는 말고 한 사나흘만

나를 좀 갖다 버렸으면 싶을 때 - P52

물빛은 물과 빛의 포개짐이지만

물은 물에게로, 빛은 빛에게로 돌아갈 뿐이죠. - P59

창밖을 보려면 창문에 비친 나부터 보아야 하는 시간입니다 - P68

어떻게 살 거냐고 묻지 마세요

어떻게 살아 있을 거냐고 물으세요 - P121

누군가 두고 간 안부를 화분에 옮겨 심는다

- P123

물을 마시는 일이 물의 슬픔을 마시는 일로 느껴진다면

- P124

둘레석은 무덤을 에워싼 돌을 말한다

둥글 수도 각질 수도 있으나 무덤보다 높을 수는 없다

무덤보다 낮은 돌은 무덤보다 낮은 돌의 일을 한다

흩어지더라도 천천히 흩어지도록 둘레의 일을 한다 - P129

해결되지 않은 마음을 우후죽순 밀어올리는 계절,

봄이라 했다 - P130

겨우, 기껏, 고작, 간신히, 가까스로……

내가 사랑하는 부사들을 연달아 적으며

그것들의 겨움을 또한 생각한다 - P132

절대로, 도무지, 결단코, 기어이, 마침내, 결국……

그런 말들은 다독여 재우고


여름아, 이제 나는 먼 것을 멀리 두는 사람으로 살고 싶어

내가 나인 것을 인정하는 사람으로

- P133

거리를 걷는데 마음을 걸어요

마음이 길이구나

마음이 놀이터고 전봇대고 표지판이구나

알게 되는 날이 있어요 가지 끝에 매달린 노란 종 같은

- P138

떠나지 않는 사람이 된다는 것

내겐 그것이 중요하다 - P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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