샴 쌍둥이 미스터리 엘러리 퀸 컬렉션 Ellery Queen Collection
엘러리 퀸 지음, 배지은 옮김 / 검은숲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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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제목에 나오는 샴 쌍둥이는, 평범한 소재가 아니다. 소설가는, 어떤 추리소설가는, 예사롭지 않은 대상을 만나게 되면 그것을 소설의 소재로 삼고 싶어할 것 같다. 어떻게 펼쳐 보일지 즐거운 고민을 하면서. 


샴 쌍둥이가 나온다. 그 자체로 신비하고 염려스러운. 샴 쌍둥이는 소설 안에서 어떤 일을 저지르나. 샴 쌍둥이 중 한 쪽이 범죄를 저지르면 처벌은 어떻게 해야 하나, 소설은 이런 문제도 제시한다. 이게 상상 속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 현실에서도 볼 수 있는 일이라 관계되는 사람들은 퍽 많은 궁리를 해야 할 듯하다. 몸이 붙은 두 사람을 따로 떼어 내고 둘 다 살리는 일이 아직은 어렵기만 한 시대이기만 하니.


게다가 고립된 산 속 저택 주변으로 산불이 난다. 사람은 살해되고 샴 쌍둥이는 돌아다니고 산불은 집 쪽으로 점점 다가오고 구조 요청을 했으나 불가능하다는 답만 얻고. 그런 가운데에서 퀸 부자 두 사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죽음의 문 앞까지 이르면서. 


주인공인 퀸 부자가 죽지는 않을 것을 알고 있음에도 혹시 싶을 정도로 아슬아슬했다. 어서 결말을 봐야겠다는 조급함에 마지막 부분을 얼마나 급하게 읽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아직도 느긋하게 즐길 줄을 모르는 독자인 모양이다. 이렇게 조마조마할 줄 아는 게 추리소설을 읽는 맛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 시리즈의 남아 있는 이야기들도 곧 만나봐야겠다. (y에서 옮김2023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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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팝니다
미시마 유키오 지음, 최혜수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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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궁리를 하게 된다. 이 소설이 재미없다고, 내 취향이 아니라고 할 이유가 뭘까? 리뷰를 이런 마음으로 올려야 하는 것이 당황스럽다. 읽기는 다 읽었는데, 초반을 넘어서면서 설렁설렁, 읽는 데에 정성을 들이지 않게 되었고 끝내 괜찮은 글을 읽었다는 만족감을 얻지 못했다.


작가의 자료를 찾아본다. 일본에서 아주 유명한 작가였나 보다. 훑어 보았는데 내게 흥미를 일으키는 작가는 아니다. 금각사라는 작품의 제목도 들어 본 적이 있었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굳이 찾아 읽을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일본소설을 좋아하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즐겨 읽는 일본소설과는 거리가 먼 듯하다. 그럴 수도 있겠지.


소설 제목은 신선했다. 하지만 작품 속 화자가 보여 주는 동기에 첫 번째 거북함을 느꼈고 이것이 글 전체에 공감하지 못하는 계기로 이어졌다. 게다가 화자를 찾아와 목숨을 구입하는 사람들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들의 사연도 그들의 처지도 그들의 요구에 응하는 화자의 대응도. 그렇구나, 나는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모조리 마음에 들지 않았구나. 사는 일을 그런 식으로 취급하다니 인물들의 태도에 화도 좀 났던 것 같다. 


소설 속에 있는 괴기한 요소나 장치에 친숙하지 않다. 주제라도 마음에 들면 품을 수 있겠지만 개운하지 않다. 여러 소설을 읽다 보면 이런 만남 또한 어쩔 수 없는 노릇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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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구두 미스터리 엘러리 퀸 컬렉션 Ellery Queen Collection
엘러리 퀸 지음, 정영목 옮김 / 검은숲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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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을 계속 읽다 보니 이 분야 작가들의 이름을 점점 더 많이 알게 된다. 원래도 책이라는 게 한 권을 읽으면 새로 읽고 싶은 책이 5권 이상 늘어난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그런데 작가 이름에 마음을 빼앗기고 나면 읽고 싶은 책의 숫자가 예상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나게 된다. 그 작가의 이름으로 나온 책을 다 읽고 싶어지게 마련이니까. 독자로서는 아주 행복한 고민을 얻는 지점이다. 


엘레리 퀸도 이런 과정에서 알게 되었다. 20세기 초반 미국의 미스터리 장르에서 이름을 알렸다는 작가. 이 이름은 작품 속 탐정의 이름이자 작가들의 필명이다. 작가가 두 사람으로 사촌 형제이며 일찌감치 협업의 가치를 알았던 사람들인 모양이다. 이들이 작가가 된 배경만 살펴봐도 제법 흥미로운데 나로서는 소설 쪽이 훨씬 궁금하다. 이제 한 권.(전에 다른 책 한 권을 읽은 적이 있는 것만 같은데 리뷰를 찾을 수가 없다. 리뷰를 안 쓴 건지 썼는데 책을 못 찾는 건지 모르겠다.) 중고 매장에서 같은 표지 형태의 책을 몇 권 사 놓고 설레는 중이다. 


이 책은 국가 시리즈 중의 하나인데 이 시리즈는 제목에 나라 이름이 들어 있는 형태다. 네덜란드 기념 병원이라는 곳이 사건이 일어나는 배경이고, 끈이 떨어진 구두 한 켤레가 사건 해결에 중요한 소재로 작용한다. 글을 읽는 중에는 좀 밋밋한 느낌이었다. 문장 하나하나는 영국의 추리소설과 달리 촘촘하게 읽는 맛이 있었는데 사건 서술 자체가 꼼꼼하기는 하나 마냥 느릿한 게 이러다가 해결이 되기는 하는 건가, 어떻게 마무리하려는 건가 읽는 내 쪽에서 괜히 걱정될 정도였다. 그러다가 범인을 확인할 즈음, 헉, 이렇게 갑자기 확 밝힌다고? 익숙하지 않은 전개 과정에 멍한 기분이 들고 말았다.


문제는 그 다음의 내 상황이 예전의 독서와 달랐다는 데에 있다. 책은 덮었는데 엘러리 퀸의 사건 추리 과정이 자꾸만 떠오르는 것이다. 범인이 남기고 간 바지와 구두에 그런 뜻이 담겨 있었더란 말이지? 작가가 다 보여 준 증거물을 보면서도 나는 단 하나도 추리를 해낼 수가 없었더란 말이지? 애거서 크리스티의 글에서는 독자에게 미리 알려 주지 않는 정보가 있는 경우가 많아 도무지 추리할 수 없었다고 해도 이 소설에서는 증거들이 다 나와 있었는데 말이지. 내가 무슨 추리를? 내 헛웃음이 하나도 억울하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 뜨겁고 축축한 여름, 나는 추리소설과 만화를 많이 보면서 넘기려 한다. 그저 이 바람뿐, 다른 무엇이 더 없는 시절이다.  (Y에서 옮김2022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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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산 시리즈 세트 - 전4권 유산 시리즈
N. K. 제미신 지음, 박슬라 옮김 / 황금가지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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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빨리 읽어버릴 줄 몰랐다. 다 읽기까지 시간이 걸릴 듯했는데 도중에 다른 책을 잡을 수도 다른 일을 할 수도 없게 했다. 이 작가가 만들어 보여주는 상상의 세계는 내게 퍽 매력적이다. 나는 다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작가가 하는 이야기라면. 세상에는 신도 있고, 신이 인간과도 악마와도 같이 살고 있고, 서로서로 사랑도 하고 질투도 하고 원망도 하고 심지어 죽이기도 하고. 엄밀하게 따지고 보면 신이나 인간이나 악마나 다 거기서 거기인 생명이겠지만(신도 죽으니까). 

1권 2권의 주인공은 인간이었고 3권 4권의 주인공은 신이었다. 나는 인간인지라 1,2권에 더 몰입했고 3,4권에서는 다소 거리를 둔 채 읽고 있다고 여겼는데 다 읽고 나니 4권 마지막에서는 완전 빠져들고 말았다. 신이 인간이 된 것인지 내가 신이 된 것인지, 아무튼 우리는 만났고 함께 했고 함께 마쳤다. 여운이 짙다. 이래서야, 당분간 나는 내 주위에서 신들의 속삭임을 느끼고 있을 것만 같다. 해가 뜨고 해가 지고 달이 뜨고 새벽이 올 때마다. 어린 아이들이 천진난만하게 웃을 때도 장난을 칠 때도, 세상 모든 사람들이 예쁜 사랑을 하고 있을 때도.

재미있었고 중간중간 끔찍하기도 했지만 잘 넘겼다. 철없는 신들이 그렇지, 실망도 했지만 그래서 더 가깝게 느꼈다. 세상에는 영원한 존재, 완전무결한 존재가 없을 것 같다. 변화가 핵심이므로, 모이고 흩어지고 만들어졌다가 부서지고 만났다가 헤어지고 살고 죽고. 그러니 변한다는 것만 영원한 셈이다. 지금은 이 모습으로 다음에는 다른 모습으로. 그리고 우리는 이전의 삶을 모른다. 모르고 살고 모른 채 죽는다. 긴 듯 싶어도 짧고 짧은 듯 싶었는데 한없이 길게 느껴지고. 

내 힘으로는 도저히 나아갈 수 없을 광대한 범위의 배경 안에서 놀랄 만큼 깊고 높은 이야기를 만나 놀다 보니 괜히 내가 크고 넓어진 기분이다. 바깥 세상이 내가 바라는 기대대로 흐르지 않고 있다는 사실조차 더 밖에서 보니 납득이 되기까지 한다. 그래, 누군가에게는 저렇게 누추한 매달림도 생인 것이다. 각자만의 삶이다. 안타깝지만 그렇게 살다가 죽을 수밖에. 내가 나를 안타깝게 여기지 않도록 돌볼 수 있을 뿐. 

맥빠진 채 보낼 것 같았던 올해 2월의 절반을 이 책으로 살았다.  (y에서 옮김2025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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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을 기르기엔 난 너무 게을러
이종산 지음 / 아토포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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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이 있지만 행동으로 옮기기에는 거리가 멀고 또 잘 해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는 대상인 그 무언가를 기르거나 키우는 일. 정작 아이를 낳아 키웠으면서, 그 과정이 아이를 키운 건지 나를 키운 건지 애매하기도 하지만, 그래서 동물이든 식물이든 키우는 일에 더 섣불리 도전하기 힘든 것도 맞는 것 같고. 작가가 말하는 게으름이 아주 이해가 되기도 하고 그런데 이걸 또 게으름이라고 할 수 있는 건가 싶기도 하고.


죽일까 봐 키우지 못하겠다는 마음을 안다. 잘 키워서 보람을 얻고 싶다는 목마른 욕망도 안다. 작가는 식물을 기르기에는 너무 게으르다면서 마침내 식물을 기르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참 성실하게도 썼다. 게으름도 종류가 있는 셈이다. 어떤 일에는 아주 부지런하고 어떤 일에는 영 게으르고. 게으른 상태에 있을 그 어떤 일을 한 번쯤 해 보고 싶기는 하고. 그걸 또 기록으로 남겨 보고 싶고. 하나에 아주 부지런한 사람이라면 다른 하나도 그럴 수 있을 가능성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더구나 관심까지 갖고 있다면. 


식물이든 동물이든 기르다 보면 죽는다. 무심해서 죽이기도 하고 너무 보살펴서 그러기도 하고 때가 되어 자연히 그렇게 되기도 하고. 이 자연스러운 헤어짐이 견디기 힘들어서 함부로 시도하지 못하는 일이 기르는 일 혹은 더불어 사는 일일 텐데, 작가는 세세하게 자신의 경험을 들려 준다. 그 과정에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게 되는 단서도 계속 나온다. 읽는 나와 비슷한 면도 있고 다른 면도 있고 그러니 사람 사는 모습이 다 거기서 거기라는 말도 나오게 되고. 


괜찮은 산문집으로 남겨 둔다. 다정하고 섬세하며 책임감도 강하고 무엇보다 부지런한 사람의 글이라고.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글을 쓸 수는 없다. 작가의 소설을 읽고 확장시킨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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