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믿다 - 2008년 제32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이상문학상 작품집
권여선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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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상 수상집을 읽고 난 뒤에 얻는 가장 큰 만족감은 미처 몰랐던 소설가 가운데 내 취향인 소설가를 새로 발견하는 기쁨이다. 


이번 수상작의 주인공인 작가는 나와 같은 나이였다. 나는 그게 너무 마음에 들었다.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아왔고 나와 같이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게 무슨 대단한 위로라도 되는 듯했다. 이유 없이 너그러워지고 그녀의 생각에 공감을 느끼고 그녀의 문체에 감탄하면서 그녀의 글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나이를 제일 먼저 생각하다니, 내가 꽤 늙은 것일까. 


일단 수상자의 작품 둘을 읽고 나니 책을 산 값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가끔 어떤 해의 작품집에서는 내게 만족을 주는 소설가를 끝내 발견하지 못해 아쉬움을 남기는 때도 있었다. 권여선이라는 이름 하나만으로 더 읽고 싶은 책이 몇 권 줄을 이었으니 더 이상 무엇을 바라랴. 


권여선, 그녀의 소설 속의 상황에 맞춰 따라하고 싶은 것이 생겼다. 


하나, 안동소주에 맥주 섞어 마시는 것


둘, 나도 우리 동네에 단골술집을 만들 수 있었으면. 우리집에서 맥주 캔 하나를 사기 위해서는 차를 타고 20분 밖의 읍내까지 가야 하니까. 걸어서 홀로 들어가 술 반 병에 따뜻한 안주 한 상 받아 보았으면.(실현 불가능한 꿈)  


정영문의 소설 속 깊고깊은 바닥에 잠기는 기분도 괜찮았고, 김종광과 윤성희의 기발한 상상력은 나를 꽤나 유쾌하게 해 주었다. 올해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은 아주 만족스러웠다. (y에서 옮김2008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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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 손가락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10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권도희 옮김 / 황금가지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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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게 사람의 본성이다. 특히 나쁜 쪽에서는 더 그런 것처럼 보인다. 지구 위 사람 사는 곳 그 어디에나 나쁜 사람들이 있다는 것, 나쁜 유혹에 빠져들고 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제 욕심을 차리겠다고 가까운 사람을 해치는 영혼들이 꼭 있다는 것. 정녕 인간은 완전한 평화를 실현시킬 수 없는 존재인 것일까.


영국의 어느 시골 마을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다. 희한하게도 우리나라의 어느 시골 마을에서 일어난 사건이. 라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진짜, 언젠가, 우리나라의 어느 곳에서 일어났던 사건일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낯설지 않은 상황이다. 영국이나 우리나라나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모습이 다르지 않다는 것으로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이게 우리가 가진 나쁜 본성 중의 하나 때문에 빚어지는 일이라고 보아야 한다면 좀 암담해진다. 


그래도 다행인 건 있다.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는 중에도 사랑은 싹튼다는 점이다. 사랑인 줄도 모르고 챙기고 배려하던 마음이 사랑으로 확인될 때의 당황스러움과 반가움이란. 그 와중에 나는 또 작가의 솜씨에 속아 엉뚱한 사람을 범인으로 오해하고 말았고. 사건이 끝날 때까지 드러나지 않도록 인물들 간의 관계나 사소한 비밀을 감추어 두는 것, 그게 작가의 능력인 셈이다. 그것도 글의 흐름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로.   


읽어도 읽어도 새롭고 재미있다. 올 가을은 확실히 추리 소설의 계절이 되고 말았다. (y에서 옮김2018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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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루인 수사의 고백 캐드펠 수사 시리즈 15
엘리스 피터스 지음, 송은경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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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톨릭의 고해성사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지만 이번 책을 통해 제법 진지하게 들여다보는 기회를 얻었다. 죄를 고백하고 뉘우치고 용서를 받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고. 이 모든 과정이나 과거에 쓰였다는 면죄부라는 형식이 마음에 들지 않아 관심을 갖지 않았는데 말이지. 할루인 수사가 온몸과 마음으로 보여준 참회 역시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사랑이 그런 건가? 소설이라서 가능한가? 이루어지기도 하는 사랑이지만 어긋나기도 하는 게 사랑이다. 사랑을 얻지 못해 수사나 수녀가 되어야 했을 그 시절의 이야기.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에서 살아가면서도 아니 그래서 더더욱 사랑에 매달릴 수 있었던 것일까? 짧아도 좋으니 사랑이라도 제대로 해 보고 살자 같은? 


고행은 또 뭐람? 내가 나에게 내리는 벌이라고? 이것도 마음에 안 들고. 그래서 할루인 수사의 고행길을 전혀 응원하지 못하면서 따라가야만 했는데. 글만 읽는데도 어찌나 춥고 시리고 힘들고 괴롭든지. 나는 종교라는 영역에서는 장점보다 단점에 더 많이 휘둘린다. 아무리 소설이라도, 아무리 지어낸 이야기라도. 종교 자체에 경외심보다는 의심을 더 많이 가질 정도로. 뭘, 왜 그리 믿는다는 것인지.


캐드펠 수사가 가끔씩 딴짓하는 태도가 훨씬 따스하게 다가온다. 엄격한 무엇무엇은 대체로, 특히 종교에서의 엄격함이 영 못마땅하다. 다 하나같이 모자란 인간이면서. 그래서 로버트 부원장이나 제롬 수사가 더 밉상으로 여겨지기도 하고. 


캐드펠 수사는 고행하겠다는 할루인 수사를 따라나섰다가 여러 모로 곤란한 처지에 놓인다. 그럼에도 자신의 역할을 훌륭하게 처리해 나간다. 이 시원한 맛에 소설을 읽는 재미는 충분했다. 젊은이들의 사랑은 매번 어찌 이리도 캐드펠 수사의 도움을 얻게 되는 것인지. 이쯤 되면 수사를 사랑의 전도사라고 해도 될 듯.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내 영혼이 참 순수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절로 한다. 이기적이고 냉정하고 무심하기만 한. 쓴맛이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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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꾸었다고 말했다 - 2018년 제42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이상문학상 작품집
손홍규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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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이어 올해의 작품집도 구해 읽는다. 한동안 못 본 척 했던 것 같은데 이번 작품집도 좋았다. 잘 구해 읽었구나 싶다. 글을 읽겠다고 한다면 읽어야 하는 글, 읽어 두면 좋을 글, 읽을 필요가 있다고 여겨지는 글, 읽었노라 다소 자랑스럽게 말할 수도 있는 글, 이 작품집에 대해 갖고 있는 내 생각이다. 그해의 작품집으로 그해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다고.


이런 생각으로 책을 읽으면서 내가 더듬어 본 2017년은 우울했다. 이상문학상 작품집이 대체로 그런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편이라고 생각해 오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작품을 옮겨 읽을 때마다 더 진한 우울함이 전해 왔다. 아프다 싶을 정도로. 나을 방법이 보이지 않는 아픔,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도 되지 못하는 관계들, 끝이 짐작되지 않는 불안과 절망의 거울들. 이렇게 계속 살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암담함 가득한 소설들. 


전에는 이런 글을 읽기 힘들어 했는데, 그래서 조금 읽다가 포기하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그런 기분을 조금 이겨 내면서 읽고 있는 자신을 느꼈다. 뭐랄까, 나 스스로 조금 단단해졌다고 할까, 아니면 불편한 현실에 내성이 생긴 듯하다고나 할까, 도망가지 말고 부딪히고 싶다는 기분 같은, 그래서 싸울 수 있으면 싸우고 싶은 걸 하는 정도까지 이르는 기분. 단지 소설을 읽는다는 게 무슨 힘이 되랴마는, 한 시절의 아픔을 고스란히 담아 놓은 소설을 읽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세상의 누군가에게는 자그마한 힘을 보태 주는 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낭만적인 기대까지 하면서.


수상자인 손홍규라는 작가는 모르고 있었다. 내가 우리 소설가들의 글을 많이 읽지 않았다는 뜻일 테다. 괜히 미안해지면서 남의 나라, 남의 문화에만 관심을 두지 말고 이제 내 쪽으로도 시선을 붙잡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올해는 집중하는 대상을 먼 곳에서 찾지 말고 가까운 곳, 내 주변의 사람들, 우리의 것, 내 안의 생명력에서 만나 보려고 한다. 이 작품집이 나의 이런 생각을 좀더 단단하게 해 주었다.  (y에서 옮김2018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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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뭐 먹지? - 권여선 음식 산문집
권여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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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이야기를 한다고 다 맛있게 들리는 건 아니다. 먹방이라고 다 맛있게 보이는 게 아닌 것처럼. 이 책을 만나려고 그동안 별로 맛없는 책들을 그렇게 봤던 모양이다. 그 맛없던 책들까지 모두 용서하겠다.

소설가인데, 이 소설가가 쓴 소설을 읽은 것 같은데(내 리뷰를 못 찾아 봄), 소설에 대한 감흥은 남아 있는 게 없고 나는 또 이렇게 이 산문집에 빠져 든다. 먹는 이야기가 왜 이리 매혹적이란 말인가.

작가는 제목에 '안주'가 빠져 있는 셈이라고 했다. 술을 어지간히 좋아한다는 거지. 술안주로 해장으로 뭘 먹는 게 좋은 건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어떤 음식을 먹어 왔고 어른이 되면서 술과 더불어 어떤 음식들을 먹고 있는지 세세하게 풀어 놓고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일상까지 구별해 놓고 있어서 때에 맞춰 먹는 일이 더 즐겁게 보인다. 한마디로 딱 먹고 싶다. 그것도 술 한 잔과 함께.

물론 나는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할 것이다. 책을 읽다가 음식을 만들거나 음식을 먹거나 술을 마시거나 하지는 않는다. 이건 내 스타일이 아니다. 나는 오로지 책만으로 먹고 마시고 배부름을 느끼고 취한다. 상당히 경제적인 것인데 한때는 섭섭했으나 이제는 즐기기로 했다. 후유증도 없고 책 덮으면 산뜻한 포만감은 남아 있으니까.

먹는 이야기에 내가 왜 이리 빠져 드는 건지 잠깐 생각해 본다. 결핍일지도 모르겠다. 난 어려서부터 뭘 잘 먹는 아이는 아니었고, 잘 먹을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음을 너무 일찍 알아차리고는 스스로 식욕을 닫았던 건지도 모르겠다. 이후 성장기 때도 비슷한 과정을 거치면서 많이 안 먹는 쪽으로 취향을 정해 버린 게 아니었는지. 많이 먹어 생기는 부작용에 더 민감해진 것도 있고. 대신 이렇게 글이나 만화나 사진으로 만족하고 있는 셈인데, 이 과식과 과음은 크게 해로울 게 없어(책값 정도?) 그만둘 생각이 없다.

작가의 소설을 좀 찾아봐야겠다.(y에서 옮김2018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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