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제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김애란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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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들은, 읽기에 재미없었다. 영, 아주 재미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계속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정도는 아닌, 작가의 이름을 확인한 뒤에 다른 작품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는 아닌, 그럼에도 읽어야 할 것 같은 의무감만 살짝 전하는 정도의 재미로, 읽었다. 정말 겨우 읽었다.

책 제목의 '2011'처럼, 연도가 붙는 소설집이 한창 재미있을 때가 있었다. 제목 연도의 이전 해에 발표된 작품들 가운데 편집 의도에 맞추어 모은 소설들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그 한 해를 소설로 돌아보는 재미가 쏠쏠했었던 기억이 있다. 좋았던 일은 좋았던 대로, 불쾌했던 일은 불쾌했던 대로, 유쾌한 사건은 유쾌한 대로, 우울한 사건은 우울했던 대로, 그랬구나 하면서 한 해를 짚어보곤 했는데.

언제부턴가 우리 사는 모양새가 남보기에는 그럴 듯해도 속사정은 예전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갖추어 놓고 사는 물건들은 과학기술의 힘을 얻어 나아졌을지 모르겠으나, 사람 사이, 사람을 생각하는 정도는 예전보다 훨씬 각박해진 것이다. 각박하다 못해 보기만 해도 지긋지긋하고 지겹고 짜증날 정도인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하루하루가 힘들다고 느껴질 수는 없는 일이다.

소설은 모두 우울했다. 물속에 잠긴 소설이라고, 물속에 잠겨 허우적거리는 인생을 그리고 있다고도 하는데, 어느 한 편 산뜻하게 와 닿는 글이 없어서 사실 나는 할 말이 없다고 해야겠다. 그다지 마음에 들지도 않는 소설들을 대상으로 느낌을 잡아보려고 하니, 내 느낌마저 물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것만 같다. 그것도 탁하고 우중충한 물속에서.

그러나 어쩌겠는가. 2011년이, 혹은 2010년이, 오늘날의 우리 현실이 그러하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바로 그렇게 물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는데. 어느 한 사람 빼 놓지 않고 소설을 쓰는 젊은 작가 모두가 이 시대를 그렇게 바라보고 있다는데. 힘들다는데. 온통 얼룩진 세상에서, 그 막막하고 팍팍한 세상을 바라보는 슬픔을 가누지 못하고 출구없는 벽 앞에서 눈물 없이 울고만 있다는데.

우리는 어찌하여 살고 있는 것인지, 왜 살고 있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이 물음에 대해 소설이 명확하게 답을 준 적은 없겠지만, 물음을 더욱 물음답게 되살리기는 했다. 살아야 한다고. 뭐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그래도 살아야 한다고. 너처럼 고민하고 고민하는 사람들이 바로 네 옆에 또 있다고, 그 사람도 너랑 똑같이 아프고 힘들다고, 그러니 마음 모아 살아보라고, 살아야 한다고 빙빙 돌려서 무지무지 멀리멀리 돌아서 전해오는 격려, 보이지 않는 힘이 되려고 했던 소설의 몫.    

나는, 이제 오십을 바라보는 나는, 이십 대 때, 내가 오십 쯤 되었을 때의 이십 대 청년들은 그저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적어도 우리가 겪었던 고통은 다 없어졌을 것이고, 별 어려움 없이 그들의 밝고 환한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세상이 되었을 것이라고. 우리가 지나온 시절이 그러했으므로, 그때가 그렇게 어려웠으므로, 어려웠다고 느꼈으므로, 역사 이래 가장 어려운 시대를 건너는 중이라고 생각했으므로. 우리가 지나온 뒤에는 우리만큼의 어려움을 겪는 후손은 없을 것이라고 믿었으므로.

소설은 잘 읽히지도 않고, 재미도 없고, 그런데 상념은 길고 깊다. 2010년과 2011년에 대해 무어라고 할 말이 없다. 어찌 이리도 민망한지. 소설을 쓴 지 10년쯤 된 작가들이 쓴 글을 모아 놓은 것이라는데, 그 중에 잘된 작품들만 모아 놓은 것이라는데, 2010년이든지 2011년이든지 즐겨 나누고 싶은 이야기거리가 없다. 지긋지긋해서, 아무런 희망이 없어서, 그저 잊어버리고만 싶은 시절들이다. 그래서 그런가, 물 속에 어둠 속에 빠뜨려버린 소설들. 찾아도, 찾아서 읽어도 쉬이 빛이 보이지 않는 나날들의 넋두리 같은.

누구에게 이 소설집을 건네 주어야 한다는 말인가. (y에서 옮김2011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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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자의 상속녀 캐드펠 수사 시리즈 16
엘리스 피터스 지음, 손성경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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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를 갖고 있지 않은 탓에 이단이라는 말이나 의미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믿음의 뿌리가 다르다고, 믿는 대상이 다르다고, 또 다르게 뭐라고 뭐라고 하든 내게는 그저 다른 생각을 뜻할 뿐인 것인데. 종교의 영역에서는 이것이 죽고사는 일만큼의 무게를 갖고 있다 하니 이 또한 내가 종교에 너그럽지 못한 요인이 되겠다.


그리하여 이번 책은 무거운 마음으로 읽을 수밖에 없었다. 소설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그 시절 그곳에서 이단자로 취급되면 어떤 결과를 맞게 되는지 대략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내 조마조마했다. 주인공으로 나온 일레이브가 어떤 고난과 시련에 시달리게 될 것인지 몰라서. 결말이야 모두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올 것을 믿고 있었지만, 작가가 당연히 그렇게 썼겠지만, 긴장감을 느끼면서도 안이하지 않게 심심하지 않게 어떻게 전개시켰을 것인가. 그래서 보기 드물게 주인공들이 상당히 위험한 처지에 이르는 과정까지 포함시켰던 것 같고.  


한 가지 더. 물건에 대한 집착력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도 새삼 알았다. 그래서 다들 명품을, 명화를, 보석을 갈구하는 것일까(이런 것들은 비싸니까 이유가 되겠다). 갖고 싶다는 것. 귀하거나 비싸거나 아니면 유일하거나 등등의 가치를 가진 것들에. 누군가에게는 아무런 가치가 없을 것이나 누군가에게는 엄청나게 중요한 그런 것들도. 나로서는 도무지 모를 경지다. 가진 게 없어서 그런가? 


사랑은 이번에도 달콤하게 이루어진다. 캐드펠 수사 곁에서 이루어진 사랑의 커플이 얼마나 되는 셈인가. 한 권에 하나 이상의 커플? 휴 부부를 시작으로 참 끊임없이 이어진다. 읽는 재미가 늘어나도록. 


이제 5권 남았다. 섭섭함을 얹어서 헤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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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이야기 - 2015년 제39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이상문학상 작품집
김숨 외 지음 / 문학사상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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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새해 무렵 이 작품집이 나오기만을 기다린 적도 있었으나, 이제는 지나고 난 후에 어쩌다 구해 보는 책이 되고 말았다. 책에 대한 아쉬움인지 내 취향에 대한 안타까움인지 모를 빈 공간이 나를 가끔 끌어당겨 주저앉히곤 한다. 오늘처럼.

 

이 글은 리뷰라기보다는 메모다. 수상작은 잘 읽히지 않았고, 읽히지 않아도 마음에 걸리는 건 없었다. 그게 도로 거슬렸다. 이제 내 취향이 아닌 글은 억지로 읽으려고 하지 않는 내 안의 타협이 이대로 괜찮은 건가 싶어서.

 

조경란의 글이 좋아서 이 리뷰를 올린다. 이렇게 남기지 않으면 기억력이 형편없는 나는 이 책을 안 펼쳤다고 생각할 것이고, 또 읽어야 하나 고민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다 읽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봤고, 조경란의 글을 보면서 이 작가의 글을 더 찾아서 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고, 10년쯤 전에도 마음에 든다는 내 리뷰를 확인했으며, 그동안 왜 이 작가의 글을 안 본 건가 하는 반성도 했다. 

 

이미 알고 있는 전성태, 윤성희, 손홍규의 글은 무난하게 내 취향을 만족시켜 주었다. 내게는 아직 낯선 이름인 이평재, 한유주, 이장욱의 글은 아직 내게로 와 닿지 못했다. 아니, 내가 가 닿지 못했다고 하는 게 더 솔직한 말이겠다. 한 사람의 작가와 독자로서 마음이 찡하도록 닿으려면 어떤 장치가 있어야 하는 걸까? 중얼거리면서 경계에 잠시 서 본다.    

 

'노인'. 점점 무거운 존재가 되고 있다. 이른바 노인 문제라고 할 수 있는 것들. 치매, 요양원, 부양, 가족 파괴, 죽음...... 2014년에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이 문제는 계속 우리를 괴롭힐 것이다. 어떻게 늙어야 하는지,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 혼자 살다 혼자 죽어야 하는지, 같이 살면서 같이 힘들어야 하는지...... 이제까지 한번도 겪어 본 적이 없는 인간의 긴 수명에 전 세계가 당황하고 있는 것만 같다. 나는 이미 이 안에 들어 서 있고. 이제는 편한 날이 있을까 싶다.  (y에서 옮김2019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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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지음 / 난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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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글을 읽으면 알 수 있다. 이 책이 내 취향일지 아닐지. 문장이 좋은 작가라는 말을 들었는데 어떤 경로로 그 말을 알게 되었는지 기억에 없다. 왜 지금까지 몰랐던 것일까, 진작 알았더라면 이렇게 좋은 글을 더 일찍부터 읽을 수 있었을 것인데. 작가의 생각과 문장 표현에 동시에 감탄하기는 쉽지 않은 일인데 만족스러워하며 한 편 한 편 읽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불문학자 김현 교수도 종종 떠올렸다. 오래 전, 꽤 찾아 읽었던 작가인데 두 사람 간에도 인연이 있는 모양이다. 불문학자이면서 국문학에 대해서도 멋진 글을 보여 주는 학자들, 우리 사회가 이런 분들이 사소한 걱정 없이 학문 활동을 하는 문화를 조성해 주는 국가였으면 좋겠는데 독자로서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도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 책이 작가의 첫 산문집이라고 한다. 문학비평서가 있는 모양이다. 내 의식의 품을 넓히고 채울 수 있도록 이 작가의 책을 더 읽고 새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y에서 옮김20160218) 

어떤 사람에게는 눈앞의 보자기만한 시간이 현재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조선 시대에 노비들이 당했던 고통도 현재다. 미학적이건 정치적이건 한 사람이 지닌 감수성의 질은 그 사람의 현재가 얼마나 두터우냐에 따라 가름될 것만 같다. - P12

도시 사람들은 자연을 그리워한다. 그러나 자연보다 더 두려워하는 것도 없다. 도시민들은 늘 ‘자연산’을 구하지만 벌레 먹은 소채에 손을 내밀지는 않는다. 자연에는 삶과 함께 죽음이 깃들어 있다. 도시민들은 그 죽음을 견디지 못한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거처에서 죽음의 그림자를 철저하게 막아내려 한다. 그러나 죽음을 끌어안지 않는 삶은 없기에, 죽음을 막다 보면 결과적으로 삶까지도 막아버린다. 죽음을 견디지 못하는 곳에는 죽음만 남는다. - P21

이 유례없는 경쟁 사회에서 우리는 조금씩 지쳐 있다. 그렇더라도 마음이 무거워져야 할 때 그 무거운 마음을 나누어 짊어지는 것도 우리의 의무다. 엄마가 아이를 키우듯이, 나라 잃은 백성이 독립운동하듯이. - P54

이런저런 사건들이 늘 ‘어느 날 갑자기’의 형식으로 찾아오는 곳에서, 사람들의 생각이 변덕스럽지 않기는 어렵다. ‘어느 날 갑자기’ 앞에서 놀라지 않게 하는 일은 인문학이 늘 내세우는 일이고, 사실 내세워야 할 일이다. 그렇다고 인문학이 미래학을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지금 이 자리를 모면하기 위해서만 필요한 것이 아닌 일, 언제 어디에 소용될지 모르는 일에도 전념하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는 말이다. - P57

바닷가의 갯바위에는 이상한 이끼가 있다. 썰물일 때 뜨거운 햇볕 아래서는 줄기와 뿌리가 죽어 있는 마른풀처럼 보이지만, 밀려 온 바닷물에 다시 적시면 순식간에 푸른 풀처럼 살아난다. 지금 서울시는 서울을 디자인하느라고 바쁘다. 그 디자인이 기억의 땅을 백지로 만들고 통속적인 그림을 그려 넣는 일이 아니기를 바란다. 마른 기억의 이끼를 싱싱한 풀로 일으켜 세우는 밀물이길 바란다. - P60

허진호 감독의 <봄날은 간다>는 잘 만들어진 실패담이다. 성장통과 실패담은 다르다. 두 번 다시 저지르지 말아야 할 일이 있고, 늘 다시 시작해야 할 일이 있다. 어떤 아름답고 거룩한 일에 제힘을 다 바쳐 실패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그 일에 뛰어드는 것을 만류하지 않는다. 그 실패담이 제 능력을 극한까지 발휘하였다는 승리의 서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봄날은 허망하게 가지 않는다. "바람에 머물 수 없던" 아름다운 것들은 조금 늦어지더라도 반드시 찾아오라고 말하면서 간다. - P88

문제는 잔인함이 아니라 그것을 생각해 내고 설득력 있는 영상으로 옮겨 놓을 수 있는 상상력의 튼실함일 것이다. 잔인성이건 다른 것이건 간에, 우리 안에 자신의 것으로 인정하기 어려운 어떤 괴물이 웅크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을 끌어내어 보여 줄 수 있는 능력이 바로 주체의 역량이기도 하다. - P90

저 높은 크레인 위에 한 인간을 1년이 다 되도록 세워둔 것이나, 그 일에 항의하는 사람을 감옥에 가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모든 아이들을 성적순으로 줄 세우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면서도 너는 앞자리에 서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폭력이다. 의심스러운 것을 믿으라고 말하는 것도 폭력이며, 세상에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살아가는 것도 따지고 보면 폭력이다. 어떤 값을 치르더라도 폭력이 폭력인 것을 깨닫고, 깨닫게 하는 것이 학교 폭력에 대한 지속적인 처방이다. - P115

국제 외교나 통상에서 그때그때마다 현행의 잣대에만 매달리다 보면 우리 같은 처지의 국가들은 늘 한 걸음 뒤지게 마련이다. 그 잣대의 향방을 예견하기 위해서는 역사를 파악하고 그 고향을 아는 일이 중요하다. 우리가 ‘구미 제국’을 공부할 때, 그 고대와 중세를 더듬어 그 잔뿌리까지 남김없이 캐내야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기도 하겠다. - P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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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베네딕토회 : 캐드펠 수사의 등장 캐드펠 수사 시리즈 21
엘리스 피터스 지음, 박슬라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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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의 책을 순서대로 읽어 나가고 있는 중인데 어그러졌다. 빌려 읽게 되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기회가 왔을 때 빌려 읽어야 하니. 


모두 3편이 실려 있다. 책이 얇아서 먼저 마음에 안 들었고 실린 편수도 적어 또 불만이 생겼다. 많이 읽고 싶은데 어쩌겠는가, 독자로서 내가 참아야지, 이렇게라도 한 권 더 읽을 수 있다면. 


캐드펠 수사가 등장하게 되는 배경 이야기가 첫 이야기다. 그래그래, 그래서 이렇게 수도원으로 들어오게 되었군. 앞서 읽은 책들에서 캐드펠 수사가 수도원에 들어오게 된 배경을 알 수 있도록 작가가 세심하게 말해 놓고 있었지만 이렇게 완전한 형태의 이야기를 따로 읽으니 이것대로 또 다른 읽는 맛이 난다. 마음에 드니까 무엇이든 다 마음에 들게 되는 현상, 나는 이 시리즈에서 또 겪는다. 좋아하는 현상이다. 


다른 두 편에서도 짤막하나마 캐드펠 수사의 활약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행정장관이 정확하게 누구인지 잘 모르는 상태, 수도원에서 캐드펠 수사와 함께 지내고 있는 낯선 수사들의 등장, 그럼에도 익숙한 이름과 캐드펠의 약초 작업과 이제는 많이 낯익은 종교 의식들. 짧았다, 알고 있었지만.  


남아 있는 책들이 천천히 나에게 오기를, 아니 어서 오기를. 오락가락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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