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들은, 읽기에 재미없었다. 영, 아주 재미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계속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정도는 아닌, 작가의 이름을 확인한 뒤에 다른 작품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는 아닌, 그럼에도 읽어야 할 것 같은 의무감만 살짝 전하는 정도의 재미로, 읽었다. 정말 겨우 읽었다.
책 제목의 '2011'처럼, 연도가 붙는 소설집이 한창 재미있을 때가 있었다. 제목 연도의 이전 해에 발표된 작품들 가운데 편집 의도에 맞추어 모은 소설들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그 한 해를 소설로 돌아보는 재미가 쏠쏠했었던 기억이 있다. 좋았던 일은 좋았던 대로, 불쾌했던 일은 불쾌했던 대로, 유쾌한 사건은 유쾌한 대로, 우울한 사건은 우울했던 대로, 그랬구나 하면서 한 해를 짚어보곤 했는데.
언제부턴가 우리 사는 모양새가 남보기에는 그럴 듯해도 속사정은 예전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갖추어 놓고 사는 물건들은 과학기술의 힘을 얻어 나아졌을지 모르겠으나, 사람 사이, 사람을 생각하는 정도는 예전보다 훨씬 각박해진 것이다. 각박하다 못해 보기만 해도 지긋지긋하고 지겹고 짜증날 정도인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하루하루가 힘들다고 느껴질 수는 없는 일이다.
소설은 모두 우울했다. 물속에 잠긴 소설이라고, 물속에 잠겨 허우적거리는 인생을 그리고 있다고도 하는데, 어느 한 편 산뜻하게 와 닿는 글이 없어서 사실 나는 할 말이 없다고 해야겠다. 그다지 마음에 들지도 않는 소설들을 대상으로 느낌을 잡아보려고 하니, 내 느낌마저 물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것만 같다. 그것도 탁하고 우중충한 물속에서.
그러나 어쩌겠는가. 2011년이, 혹은 2010년이, 오늘날의 우리 현실이 그러하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바로 그렇게 물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는데. 어느 한 사람 빼 놓지 않고 소설을 쓰는 젊은 작가 모두가 이 시대를 그렇게 바라보고 있다는데. 힘들다는데. 온통 얼룩진 세상에서, 그 막막하고 팍팍한 세상을 바라보는 슬픔을 가누지 못하고 출구없는 벽 앞에서 눈물 없이 울고만 있다는데.
우리는 어찌하여 살고 있는 것인지, 왜 살고 있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이 물음에 대해 소설이 명확하게 답을 준 적은 없겠지만, 물음을 더욱 물음답게 되살리기는 했다. 살아야 한다고. 뭐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그래도 살아야 한다고. 너처럼 고민하고 고민하는 사람들이 바로 네 옆에 또 있다고, 그 사람도 너랑 똑같이 아프고 힘들다고, 그러니 마음 모아 살아보라고, 살아야 한다고 빙빙 돌려서 무지무지 멀리멀리 돌아서 전해오는 격려, 보이지 않는 힘이 되려고 했던 소설의 몫.
나는, 이제 오십을 바라보는 나는, 이십 대 때, 내가 오십 쯤 되었을 때의 이십 대 청년들은 그저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적어도 우리가 겪었던 고통은 다 없어졌을 것이고, 별 어려움 없이 그들의 밝고 환한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세상이 되었을 것이라고. 우리가 지나온 시절이 그러했으므로, 그때가 그렇게 어려웠으므로, 어려웠다고 느꼈으므로, 역사 이래 가장 어려운 시대를 건너는 중이라고 생각했으므로. 우리가 지나온 뒤에는 우리만큼의 어려움을 겪는 후손은 없을 것이라고 믿었으므로.
소설은 잘 읽히지도 않고, 재미도 없고, 그런데 상념은 길고 깊다. 2010년과 2011년에 대해 무어라고 할 말이 없다. 어찌 이리도 민망한지. 소설을 쓴 지 10년쯤 된 작가들이 쓴 글을 모아 놓은 것이라는데, 그 중에 잘된 작품들만 모아 놓은 것이라는데, 2010년이든지 2011년이든지 즐겨 나누고 싶은 이야기거리가 없다. 지긋지긋해서, 아무런 희망이 없어서, 그저 잊어버리고만 싶은 시절들이다. 그래서 그런가, 물 속에 어둠 속에 빠뜨려버린 소설들. 찾아도, 찾아서 읽어도 쉬이 빛이 보이지 않는 나날들의 넋두리 같은.
누구에게 이 소설집을 건네 주어야 한다는 말인가. (y에서 옮김20110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