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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여행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54
자우메 카브레 지음, 권가람 옮김 / 민음사 / 2025년 1월
평점 :
제목에서부터 고단함과 스산함이 풍겨 나온다. 겨울에 여행이라, 겨울 여행자라, 겨울에는 그저 따뜻하고 평온한 집 밖을 나서지 않는 것이 제일 좋은데. 나가야 한다면, 집이 따뜻하지 않아서이든가, 겨울이라도 밖에 나가서 꼭 해야 할 일이 있든가, 게다가 그게 제법 멀리 있는 곳까지 가야만 하는 겨울의 여정이라면 반갑고 설레는 여행이라고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소설 읽는 내내 겨울 안에 머물러 있었으니 나로서는 올 겨울을 이중으로 겪는 셈. 그런데 묘하게도 이 추위가 정겹다.
모두 열네 편. 나는 하루에 한 편 이상은 읽지 않고 몇 날 며칠 동안 이 책을 챙겼다. 지구 저 편 멀리 있는 카탈루냐의 작가라는데 카탈루냐에 대해서도 아는 게 없다 보니 여러 모로 낯설었다. 소설의 주요 소재로 등장하는 음악은 음악대로 그림은 그림대로 알 듯 모를 듯 나를 어지럽게 했다. 내가 알고 읽는 건지 모르고도 읽고 있는 것인지, 읽기를 포기하게 만들지는 않는 이 매력을 무엇이라고 해야 할까.
음악이나 그림이 소재나 주제에 기여하고 한편으로는 갈등의 요소가 되더라도 소설에 부여하는 생명력을 확인할 때마다 나는 서운해진다. 나는 왜 이렇게 음악이나 미술을, 예술을 모를까, 이들과 가까워지는 기회가 좀 더 주어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다면 내 정신의 영역이 지금보다 한껏 풍요로웠을 텐데. 이 소설집을 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을 텐데. 교육이, 환경이, 취미가, 성향이 나를 덜 키웠다는 탓만 하고 싶다. 이 소설집을 읽으면서도 이런 섭섭함은 여전하기만 했으니.
'빵!'이라는 작품이 꽤 인상적이었다. 끝내 내가 웃었던 글이다. 이런 유머를? 되짚어 생각해 보니 이 작가의 유머가 작품 속에 은근히 스며들어 있다. 서글프고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중에도 인간의 마지막 자존심이라는 유머 감각은 지키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의 표현일까? 지극히 슬펐던 '발라드'에서마저 유머로 슬픔을 극대화하였다는 것. 이런 순간 나는 소설가에게 두려움을 느낀다. 얼마나 위대한 종족인 것인지.
서양의 소설가는 자국의 국경을 초월하여 작품을 구상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일까? 카탈루냐 사람이면서 스페인을 넘어 유럽으로 확대되어 있는 작품 속 세상. 나는 갑자기 뜬금없이 아시아 문학이 궁금해졌다. 작가가 아니라 독자 입장이지만 일본과 중국과 홍콩과 대만을 넘어 동남 아시아와 남부 아시아의 문학 작품들이 정말 궁금해진 것이다. 이 작가 덕분이다. 나는 또 혼자 조용히 넓어지려나 보다.
[책 친구 우주님의 선물이었어요.]